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 - 괴짜 과학자들의 기상천외한 죽음 실험실
코디 캐시디 & 폴 도허티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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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참으로 기기묘묘하다.

주로 찾아보는 채널과 관심사에 대한 영상을 한참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나와는 전혀 다르고, 그 분야에 관심조차 없었던 채널에 다다르게 된다. 그렇게 빠진 채널이 과학 관련 된 채널 몇 개다.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등, 단어만 봐도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썸네일로 가득하다. 그런데, 재미있다. 정말 쉽게 설명하고 재미있게 편집해 놓았다. 물론, 내가 관심 있는 채널을 한참 동안 찾아보다가 지루할 때면 한 번 들어가 보는 수준이지만 과학이라 하면 과의 자도 관심이 없었던 내게 이것은 장족의 발전이다.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은 과학책이다. 내가 절대 읽지 않았을 과학책. 하지만 이 책은 재미 있다. 흥미롭다. 키득거리며 책장을 넘긴 과학책이라니. 나와 같은 과학 문외한에게는 딱이다.

    

 

마이클 스미스가 꿀을 따려고 벌집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모험심 강한 꿀벌 1마리가 스미스의 바지 안으로 들어가 그의 고환을 쏘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각했던 것만큼 아프지 않았습니다. 스미스는 궁금해졌습니다. ‘고환에 쏘인 게 최악이 아니라면, 어디에 벌이 쏘였을 때 가장 아플까?’” (p. 41)

    

 

마지막으로 벌에 쏘인 게 언제일까? 기억이 맞다면 중학교 1학년 추석 연휴,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시골 신작로에서 사촌들과 정신없이 놀다 쏘였을 때다. 뒤통수에 쏘였는데, 할머니가 진짜 시골된장을 발라 주셨었다. 엄청 아팠던 기억이다.

만약 다시한번 고환에 쏘였다면, 내 인생 최악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이클 스미스라는 양반은 어디에 벌이 쏘였을 때 가장 아플까?’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단다. 한참을 웃었다. 역시 나는 과학자가 될 팔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매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스미스는 조심스럽게 핀셋으로 꿀벌을 집어 피부에 댄 후 침을 쏠 때까지 눌러 자극을 했습니다. 이렇게 스미스는 매일 5번씩 벌에 쏘였습니다.” (p.42)

벌에 쏘였을 때 가장 덜 아픔 부위는 두개골, 가운뎃발가락, 팔뚝위쪽이었습니다. 스미스의 통증 지수에 따르면 겨우 2.3을 기록했지요. 반대로 통증이 심한 부분은 얼굴과 음경, 콧속이었습니다.” (p.42)

    

 

음경이라니. 일부러 침에 쏘이다니. 활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찡그려졌다.

    

 

슈미트의 통증 지수에 따르면 벌에 쏘이는 고통은 4점 만점에 고작 2점입니다. 슈미트가 감히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직접 150종 이상의 곤충에게 물려보았기 때문입니다.” (p.44)

    

 

그런데 슈미트라는 양반은 더하다.

고환이든, 음경이든 벌에 쏘였다고? ! 그까짓 벌에 쏘인 걸 가지고!”

150종 이상의 곤충에게 물려보았단다. . 과학의 세계는 실로 오묘하다.

    

 

오티스가 제동장치를 발명하기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별로 인기가 없는 기구였습니다. 아무리 굵은 케이블이라도 사람들은 줄 하나에 목숨을 맡겨야 하는 상자 안에 몸을 싣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오티스가 제동장치를 개발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p.78)

    

 

엘리베이터 보수 업을 하는 내게는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특정한 이유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사람이 갇히면, 가능한 한 빨리 현장으로 이동해 갇힌 사람을 꺼낸다. 갇혀 있던 대부분 사람이 하는 말이 있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뻔했어요.”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고, 영화와는 다르다고, 안전장치가 23중으로 되어 있어 떨어질 일은 없다고 설명해도 잘 듣지 않는다. 처음 엘리베이터가 발명될 당시 제동장치가 없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나 같아도 그런 엘리베이터에는 근처도 가지 않을 거다. 영화나 TV에서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연출하는 엘리베이터 추락 장면은 대부분 가짜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벌에 쏘이고 곤충에 물리고 엘리베이터에 갇혀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인간이 어느 정도의 가속도를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썰매 실험에서도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갈비뼈가 바스러졌으며 발목이 모두 부러졌지만 살아남았다. ‘존 스탭이라는 사람 덕분에 인간은 40g이상의 감속도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일반인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과 접근이 생소하고 재미있다.

    

 

실제 그렇게 죽은 사람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2008, 영국의 한 엔지니어가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종이에 팔뚝을 베이는 바람에 0.6센티미터의 상처가 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고, 몹시 피곤을 느끼며 쇠약해졌습니다. 이후 의식까지 혼미해졌지요. 그는 결국 괴사성 근막염으로 6일 뒤에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p.147)

    

 

 반대로 전혀 죽을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어처구니없이 죽는 사람들도 있다. A4용지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종이에 베이는 경험. 피부에 살짝 상처가 남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영국의 한 엔지니어는 종이에 팔뚝을 베어 죽게 되었다. 고작 0.6센티미터의 상처로 말이다. ‘괴사성 근막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겁이 나는 병으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앞에서 계속 얘기하다가 갑자기, 이렇게도 죽을 수 있다니. , 운명이라거나 팔자가 사나워서가 아니라 과학적인 논리로 종이에 베이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뒤통수가 쭈뼛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인류 역사를 통해 계속됐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으니 말이다. 누구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 대륙을 이 잡듯 뒤져 불로초를 구하려 한 진시황제도 결국 죽었다. 진시황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이지만 현대에는 첨단의 과학이 불로초를 대신하고 있다. 과학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조금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건강하게 살 방법을 찾아내려 한다. 과연, 불로(늙지 않는)와 불사(죽지 않는)는 가능할까? 언제 닿을지 모를 미래의 과학에서는 가능한 일 일까?

요즘 자주 들여다보는 과학 유튜브 채널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있었다. 채널 운영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고 했겠지만 내게는 난해했다. 결론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면 과거와 미래로의 시간 이동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제대로 이해되지 않지만, 추정일 뿐이었다.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정도?

    

 

  작년 초, 아버지의 임종 전·후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10년의 투병과 남은 가족의 10년의 간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래 묵은 감정과 경험의 집합체여서 존재하는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아버지의 죽음은 단번에 찾아왔다. 아내와 아들이 지켜보는 눈앞에서. 그것은 지극히 초자연적이고 비과학적이었다. 온갖 의료장치를 몸에 달고 있었지만 우리 이야기를 듣고 눈꺼풀을 바르르 떨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단지 심장 박동을 기록하는 그래프가 평행선이 되었을 뿐인데. 정신없이 상을 치르고 나니,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시공간을 초월할 과학적 시도가 존재하고, 종이에 살짝 베이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과학으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눈 앞에서 생과 사가 갈라졌던 비현실, 꿈에 나오신 아버지의 또렷한 음성과 모습. 이것들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과학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있고, 증명하고 탐험하여 밝혀내야 할 것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앞서도 언급한바, 이 책은 재미있다. 과학이라는 것에 1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펼쳐 들어도 완독할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 아무리 쉽게 써도 재미가 1도 없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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