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전혜정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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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왜 이래


전두환이 한 말이다. 광주시민들을 향해서. 말문이 막혔다. 사과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고 아픈 것처럼 연기하면서 입을 다물고 들어갔으면 싶었다. 전두환은 짜증을 내며 말 했다.

이거 왜 이래.


“그런데 각하,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하지만 원래 대중에게 알려진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p.51)


광주 시민들을 향한 헬기사격이 있었나 없었나에 유무는 이미 밝혀진 바다. 다만, 사격 지시를 내린 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전두환의 “이거 왜 이래”발언 직후 폭로가 하나 있었다. 당시 5월21일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하고 떠난 직후 헬기 사격이 시작되었다고.

독재자 리아민은 자신과 자신의 통치 기반을 위해 자서전을 쓰려고 한다. 작가 박상호는 자서전 집필을 위해 리리궁으로 불려 들어와 리아민과 독대하여 대화를 나눈다. 독재자 리아민은 자신의 자서전 집필을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참 신나게 말을 쏟아내고 있는 도중, 작가 박상호는 독재자 리아민에게 되묻는다.

각하, 제가 알고 있는 거하고는 다른데요.

독재자에게 되묻다니. 민주화가 되기는 된 모양이다. 독재의 통치 기술 중 하나인 대중 선동과 선전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독재자와 그를 비호하는 세력과 언론보다 더 다양하고 다면적으로 정보를 취득하고 취합해 퍼뜨리는 대중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재자는 독재자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다.

전두환도 그렇다. 이거 왜 이래 라니?


“내가 선생을 리리궁으로 부른 이유는 국민들이 좀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니까요.” (p.58)


전땅크. 전두환을 일컫는 말 중 하나다. 단어의 어감만으로는 나쁜 의미로 쓰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전두환을 추억하는 단어다. 일부 커뮤니티의 게시판에서는 전땅크처럼. 전땅크때 같이. 라며 좌빨, 종북, 사회 불손 세력들을 밀어붙이라고 부추긴다. 전땅크 시절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것들이 말이다. 전땅크처럼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재자들이 그러하듯이 리리궁의 리아민도 자신을 미화하고 싶어 했다. “친숙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오랜 기간의 통치는 염증을 일으키게 마련인데, 그 염증을 걷어내고 더 친숙하고 국민에게 가깝게 다가서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통치에서 손을 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전두환 시절 언론은 죽었었다. 독재자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기사로 넘쳐 났다. 오죽했으면 “땡전뉴스”라고 했겠나. 9시 땡하고 오프닝 되는 뉴스에 매일 앵커의 첫 멘트가 “전두환 대통령은”이라고 시작했었다.

하지만 “친숙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대통령의 이미지”는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가 지금 어떤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일부 세력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미화되어 있는 대통령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이미지다. 어떤 면에서 전두환은 독재시절 언론을 잘 통제하고 자신의 이미지는 잘 세탁한 전직 대통령으로 볼 수 있다. 아직도 그를 추종하고 따르는 이와 세력이 있는 걸 감안하면 말이다. 그가 저지른 짓에 비해 너무 호화로운 현재를 살고 있다.


“수석비서관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구만. 네놈이 겉멋만 잔뜩 든 허풍쟁이 작가라고 하더군. 실력도 뭣도 쥐뿔도 없으면서, 운 좋게 첫 소설 하나 성공한 것 가지고 평생을 징글징글하게 우려먹을 작가라고 하더라고.” (p.264)


이미지는 만들어 낸다. 리아민의 자서전 집필가로 박상호를 고른 것도 수석비서관이다. 자신도 문학 소년이었음을 은근히 내비치며 내면적인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박상호를 건져 올린 것도 수석비서관이다. 때로는 무섭게, 때로는 친근하게 박상호를 쥐락펴락 한 것은 리아민이 아니라 수석비서관이다.

수석비서관 같은 사람이 이미지는 만들어 낸다. 리아민과 전땅크는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자신의 주군에게는 목숨을 바쳐 충성을 맹세하고 그렇게 산다. 그리고 그 주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주군의 의사에 반하는 것들은 가차 없이 잘라낸다. 자서전 집필 작가이든, 국민이든, 영부인이든.

결국 박상호는 리아민의 자서전을 집필하지 못한다. 애초부터 작가가 필요하지 않는 자서전이었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우려먹을 수 있는 작가로 초이스 된 것이었다.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도 그들이 나를 아주 극진하게 대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위, 리아민 효과였다.” (p.215)


리아민의 자서전을 집필하는 작가 박상호. 비록 문단에서는 권력에 빌붙은 박쥐라고 욕먹지만 리아민에게 잘 보이고 싶은 세력들에게는 땡큐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영화 관계자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비록, 디아민 효과가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박상호가 리아민과 수석비서관이 원하는 자서전을 써 들고 왔다면 어떤 결론이 되었을까? 그는 계속해서 리아민 효과를 누렸을 것이다. 작가·지식인으로서의 양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세상에서 그가 리리궁의 마지막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은, 단지 그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다른 이유가 없다.


“이 글은, 누가 봐도 전기라고는 할 수 없어. 이거 그냥 리아민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에 불과하잖아. 그것도 결론이 아직 모호한.” (p.249)


단지, 리리궁이 원하는 글을 써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기와 장편소설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박상호는 리리궁이 원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좀 더 리아민에게 살살 거리며 반짝이는 눈망울로 그의 거창한 허세를 찬양했다면 독재자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더 독재자의 오른팔인 수석비서관에게 살갑게 다가가서 각하의 의중을 묻고 충성했다면 단 번에 오케이 받았을 것이다. 박상호가 뜬금없이 영부인에게 관심을 돌리고 정율리에게 휘둘리지 않았다면 그는 독재자의 대단한 자서전을 집필했을 것이다.

리아민과 박상호의 생각과 결론은 다른 것이었다. 수석비서관과 박상호의 그것도 마찬가지다.

전두환과 국민의 그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당시 5월21일 광주에 갔었다는 어떠한 문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미국에 보고하는 정보보고에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엄연한 사실을 가지고 또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이 뻔하다. 신뢰할 수 없는 출처의 기록이다. 납득할만한 증거가 아니다. 등등.

그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아주 많이.


장세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리아민에게 수석비서관이 있듯이 전두환에게는 장세동이 있었다. 민주정권이 들어선 후 5공 청문회가 있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의원은 이 청문회에서 빛을 발했다. 또 한 명 있다. 바로 장세동. 끝까지 자신의 주군 전두환을 두둔하고 자신에게서 모든 선을 그어버리며 청문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세간에서는 의리의 사나이라고도 했고 전두환의 마지막 호위무사라고도 했다. 언론에서 그렇게 쓰면 또 그렇게 생각해 버린다. 그 생각은 믿음이 되어 각인된다. 국민된 자의 한사람으로서 처참한 심경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들만의 생각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그들만의 생각이 진실이라고 합리화하고 믿어버린 채 수십 년을 살아온 것이다. 한 올 만큼이라도 믿음의 실타래가 풀어지면 그들의 모든 과거가 부정되니까 그것만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일 테다.


29만원으로 호화 골프를 치고 29만원이 전부인 아버지를 둔 아들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물러난 독재자를 여전히 비호하고 두둔하는 세력이 있고 미화하며 그 시절을 그리는 못난 후세들이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모두들 너무 많이 다르다.


“박상호씨가 작가라고 해서 다른 이들보다 더한 윤리적 인간이어야 할 의무는 없는 겁니다. 작품만 좋으면, 사실상 비윤리적인 부분에 대해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이니까요.” (p.213)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라고? 그래, 작가는 비윤리적이어도 된다. 하지만 국가를 통치하는 자와 통치하는 세력 중심에서 일하는 자들은 윤리적이어야 한다. 윤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통치기반을 빼앗고 휘두르는 자들은 반드시 잘못된 방법으로 자신들의 통치기반을 미화하고 각색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면죄부 따위는 없어야 한다.

박상호가 쓰지 않은 독재자 리아민의 자서전은 불티나게 팔린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에서는 리리궁과 리아민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대부분 말로가 비참한 독재자들처럼 리아민의 말로도 처참했으면 좋겠다. 개인적 희망이다.


이거 왜 이래. 라고 광주 시민들과 기자들에게 짜증낼 수 있는 독재자의 말로가 존재하는 이 나라의 현실은 차라리 비현실에 가깝다. 촛불혁명으로 수준이하의 대통령과 세력을 몰아내도 수십 년 전 독재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 소설의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정이 비윤리적이라면 결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심판받아야 한다. 결과만 쫓다가는 사고가 난다. 다행히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비록 29만원밖에 없지만 “이거 왜 이래” 짜증낼 수 있는 현실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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