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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OBC를 전라남도 장성에서 받았다. OBC는 (Officer's Basic course) 흔히 초군반 교육이라 부른다.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소위 계급장을 단 상태로 초급군사훈련을 받는 것이다. 벌써 15년 전이다. 세월이 빠르다. 영천 3사관학교에서 4개월 동안의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10월 말부터 이듬해 2월 중순께 까지 OBC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나는 병과가 보병이었으므로 광주 상무대에 있는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했다. 그곳이 바로 OBC교육을 하는 장소였다. 통칭 광주 상무대라고 했으나 행정구역으로는 전남 장성군에 위치해 있었다. 초겨울에 시작되어 한겨울을 지나는 교육이었으나 남도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에 추위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겪은 남도의 추위는 대단했다. 무엇보다 내 생전 그렇게 많은 눈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경북 포항에서 나고 자라 대구에서 학교를 다닌 게 이전까지 인생의 전부였다. 지리적 특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눈이 많이 내렸다. 전남 장성, 영광, 함평, 전북 고창 부근에 아무튼 무진장 눈이 내렸다.
소령 진급을 앞둔 훈육장교의 훈육을 받는 탓에 우리는 눈이 펑펑 내리는 아침이면 웃통을 까고 보병학교를 2바퀴씩 돌며 뜀걸음을 하곤 했다. 다들 담배 2개비에서 나올 만한 엄청난 양의 입김을 토해내는 동시에 각자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내면서 뛰었다. 특히, 높은 계급이 모여 있는 본관 앞을 지날 때면 더 목청껏 군가를 불러대곤 했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내무반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뭘 그렇게도 시키는지 청소부터 얼차려, 총기 수입 등등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었다.
반쯤 나간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이 수십 번 반복될 때쯤 동기들 사이에서 비슷한 생각이 싹텄다.
아니, 우리도 이제 장교인데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훈육장교라고 해봤자 대위인데?
야금야금 우리들 피도 안 마른 머리에 반항기가 물들 때쯤이었지 싶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동기간에 주먹다짐이 일어났다. 마침, 진급을 앞두고 우리를 정예장교로 만들기 위해 혈안(자기가 진급하기 위해)이 되어 있었던 그 훈육장교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많이 맞았다.
눈이 하얗게 쌓인 훈육대 뒤편에서 하얀 눈을 등허리로 맞으며 엎드려뻗친 채로 참 많이도 맞았다.
많이 아팠다.
그 일로 훈육대 전체가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정말 따뜻한 날 맞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아팠던 것 같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하얀 눈 위에 서서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웃통을 까도 하얀 입김에 욕설을 더하지 않았다. 높은 계급이 모여 있는 본관을 지날 때면 훈육장교의 핏대 세운 ‘더 크게’ 소리를 듣지 않아도 너나 할 것 없이 방금 배운 군가처럼 그렇게 목 놓아 군가를 부르며 달렸었다.
“연세대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연희교차로 근처에서 백골단에게 죽어라 얻어맞았다. 추운 날 맞으면 따뜻한 날 맞은 것보다 두 배는 더 아팠다.” (p.184, 대학 시절)
“체포되었다. 장안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싸대기를 좀 맞았다. 아는 대로 불었더니 더는 때리지 않았다.” (p.185, 대학 시절)
소설가의 산문집을 읽는 일은 흥미롭다. 아무래도 소설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소설가 김훈에 흠뻑 빠져 그의 소설을 탐독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 그를 모르겠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우연찮게 김훈의 산문을 읽으며 그와 그의 소설을 더 알게 되었었다. 손홍규 작가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의 소설을 읽기 전 그의 산문을 먼저 읽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이 책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적인 표현이 즐비한 글부터 위에 인용한 글처럼 배꼽을 잡을 만큼 재미있는 글도 있다.
‘아는 대로 불었더니 더는 때리지 않았다.’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이내 슬퍼졌다. 작가의 대학생활이 나의 대학생활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연배도 5년 정도 차이가 나고 나는 어디에 끌려가 싸대기를 맞을 만큼 열심히 운동하지도 않았지만 대학가에서 더 이상 정의와 대의의 가치가 학생들에게 먹히지 않아 가던 운동의 끄트머리를 비슷하게 겪었던 것 같다. 함께 운동에 뛰어들었던 동기는 단과대 학생회장이 되어 여러 운동에 참여했고 구속까지 되었었다. 같은 학회에 속해있던 동기 및 선후배들은 경찰서에 가기도 하고 경찰이 찾아와 만나기도 했는데, 1년도 채 몸담지 않았던 내게는 그 어떤 공권력의 접촉도 없었다. 그때 내가 ‘나는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지, ‘왜 나의 열렬한 투쟁의식은 공권력이 알아주지 않는 건지’라고 불평했는지 적확하게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지금 이렇게 졸렬하고 비루하게 일상을 버티는 꼴을 보면 전자가 100%다.
“어디로 갈래? 묻기에 휴전선으로 보내주세요, 했다. 왜? 하고 묻기에 전 글을 쓰려는 사람입니다. 분단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요. 그는 내게 좆까!라고 했으나 정말 휴전선으로 보내줬다.” (p.186, 대학 시절)
‘좆까’라고 했으면 보내지 말아야지, 참 야속한 사람이다.
“이듬해 2월 졸업을 하루 앞둔 날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당선이라고.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에게 등단했다고 말했다. 축하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월급은 얼마냐?” (p.188, 대학 시절)
‘월급은 얼마냐?’에서 또 배꼽을 잡으며 뒹굴었다. 작가 본인에게는 웃픈 경험일 수 있겠지만 어지간해선 책을 보며 웃겨서 나뒹구는 일이 없는 나를 나뒹굴게 했다면 이 작가, 참 글 잘 쓰는 사람이다. 아! 비슷한 친구의 경험이 있어서 더 공감했을 지도 모르겠다. 네팔에서 NGO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8∼9년 되었다. 그곳에서 의미를 찾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친구다. 1년이나 2년에 한두 번 한국에 들어온다. 귀국해서 본가인 대구에 내려오면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 “너 언제 취직할래?” 9년이나 외국에서 생활하며 일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우리를 만날 때마다 친구는 우리에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월급은 얼마냐?” 작가의 아버지도 내 친구의 어머니도 이해된다. 그 바람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식의 속상함 또한 이해된다. 나도 그러니까. 당신도 그럴 테니까.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을 때 당신의 오른쪽 뺨에 부딪혔다가 중심에서 밀려나며 가장자리에서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반죽 같은 햇살의 덩어리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p.64, 어머니와 나)
“슬픔과 고통으로 한번 구겨진 사람은 제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은박지가 그러하듯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p.195, 기억이 우리를 본다)
한 달 전쯤, 이사한 새집에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일주일 정도 계시다 내려가셨는데, 토요일 오후의 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멍하게 TV를 응시하고 있는 어머니의 뺨을 관통하듯 비추던 찬란한 햇빛의 눈부심.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린 순간 마주쳤다. 슬픔인지 죄스러움인지 안쓰러움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저녁을 먹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여전히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의 뺨이 너무 야위고 깊게 패인 주름이 너무 얄미웠다. 구겨진 은박지가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어머니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은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위의 인용문을 읽고 나서(특히 64페이지)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머니 번호를 눌러 통화했다.
보편적인 감정과 경험인지 작가와 나만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좋으면서 싫었다.
자꾸만 되돌아봐야 하니까.
“글쓰기처럼 독서 역시 그런 행위다. 나는 아직 행복한 책읽기가 무언지 잘 모른다. 내게 독서는 고달픈 행위였다.” (p.139,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다)
“아무리 오랜 세월 되풀이해서 쓴다 한들 결코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으로 써온 문장들이 내게도 있다.” (p.311, 바람이 분다)
절망으로 써온 문장들이 아직 내게는 없다. 그만큼 절실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흉내만 냈던 것 같다. 이제는 이직을 하고 절대적으로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끄적일 시간도 모자란 판이라고 혼자 자위하며 지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독서가 고달프고 절망으로 문장을 써야 한다니, 더 겁이 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을 읽는다. 가끔 글도 끄적인다. 아직 절망의 나락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오히려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본다.
처음 만난 작가와 글이었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일단 글을 너무 잘 쓴다. 미학적이며 현실적이다. 유머도 있다. 이 책을 다 읽기 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그의 소설 2권을 담았다. 얼른 읽고 싶다.
올 해 만난 최고의 작가다.
‘아짐찮다(p.44)’, ‘묵새기며(p.57)’, ‘넛할아버지(p.54)’, ‘갈쌍갈쌍 했다.(p.79)’, ‘햇살이 은성했고(p.100)’, ‘벼리어진(p.286)’
처음 만난 단어와 표현이 많았다. 하나하나 찾아가며 뜻을 반복해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