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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1호 - 2018.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즐겨듣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대학생 토론 동아리 학생들을 초대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주제 중 하나가 ‘통일에 대한 대학생들의 생각’이었다. 총 학생 수는 5명이었는데, 나는 당연히 대다수가 통일을 찬성하고 반가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결과는 4대1. 4명이 비관적이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4명이 비관적인 가장 큰 이유는 확실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통일이 돼서 얻게 될 이득은 불확실한데, 통일이 돼서 받게 될 불이익은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친 세대라고 해도 촛불혁명을 함께 겪은 세대인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이상적인 건지, 그들이 너무 현실적인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백낙청의 <어떤 남북연합을 만들 것인가 - 촛불혁명 시대의 한반도>를 읽으며 계속 생각했다. ‘아! 이 책을 그 친구들이 읽어봐야 하는데~!’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적인 사건이 남북 화해를 이끌어내고 남북화해가 다시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대변화에 동참하느냐 아니면 이를 거부함으로써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느냐 하는 위기를 불러옴에 따라, 일본의 아베 정권도 뒤늦게나마 북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형국이다. 세계적으로 얼마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p.33)
실로 엄청난 변화다. 교황을 만나 힘을 얻었다. 아시아 변방에 불과하던 한국 대통령에게 유럽 정상들의 미팅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세계는 이미 한반도의 변화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데, 딱 두 군데만 모르고 있다. 한국 내 수구세력과 한국 국민들.
“한반도의 당면 목표는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이다.” (p.18)
백낙청 선생님은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을 제시한다. 서두르면 실수하게 된다. 허겁지겁 우겨 넣으면 체하기 마련이다. 충분한 동의와 사안에 대한 인식의 성숙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반대가 반대를 낳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향해 있는 작금의 현실을 가장 싫어할 수구 세력과 자유한국당의 무논리, 무경험, 무모한 공격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이 시간을 끄는 데는 비핵화라는 과제 자체의 복잡성을 빼놓을 수 없다.” (p.21)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풍계리 시험장을 폭파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과 세력은 거짓말쟁이다. 한반도의 영구적, 항구적 평화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거짓 뉴스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한다. 역사 공부는 물론, 정치 공부도 해야 한다. 통일이 가져다줄지도 모를 불확실한 이득에 대해 예측하고 판단해야 한다. 더불어 정말 이득이 될지 안 될지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좀 떠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다소 재미는 없더라도 계속해서 말해줘야 한다.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 않나. 말해주고 가르쳐 주고 이해시켜 주고 난 다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회사 앞에서 지나가는 중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질문을 했다.
“왜 해야 해요? 굳이?”
어떤 이들에게 통일은 절실하고 당연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통일은 그저 귀찮고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일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현실에서 출발해야 길을 찾을 수 있다.
“분단체제의 고질병 중 하나가 상대방을 욕하며 자기개혁을 회피하는 습성인데, 영구분단에 동의한 두 나라로 바뀐다고 해서 그런 습성이 사라질 확률은 낮다.” (p.28)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학 때부터 거의 20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있는데, 그 녀석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대학 때 다투던 그 문제로 지난주에도 다퉜다.
70년을 분단되어 있었다. 허리가 두 동강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상체와 하체를 맞춰보려 애쓰고 있다. 새로 기름칠도 하고 떨어져 나간 살점과 신경과 근육도 이어 붙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다.
백낙청 선생님이 제안하는 ‘낮은 단계의 남북 연합’을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교육하고 홍보하고 전파하고 가르치면서 우리 안에서도 천차만별로 갈라진 이견들을 추슬러야 한다. 그것이 통일 후 맞게 될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과 갈등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