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발견 - 과학이 밝혀낸 중년의 놀라운 능력
데이비드 베인브리지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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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는 나이 든 아줌마 아저씨들이 고리타분하고 싫었다.

내가 중년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그때 내게 중년은 갱년기,사추기,노후 등과 같은 단어와 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보면 중년이란 의사들은 폐경기라고 하고 사회학자들은 빈둥지증후군,청소년자녀양육으로 설명하고 경제학자는 사회생활의 절정기,혹은 출산후 직장복귀,노후대비같은 단어로 표현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요즘에는 "중년의 위기"라는 단어가 40대에서 60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듯이 사용되고 있다.


사회학 사전에서 보면 '중년의 위기'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다.

 

중년으로 들어가는 시점인 40대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경험되는 불안, 걱정 등을 말한다. 중년은 청년시기의 끝으로, 그들이 젊었을 때 가질 수 있었던 기회, 목표 등의 상실을 겪게 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나타나는 생물학적인 쇠퇴를 생각하게 되고 자신들의 관계를 재평가하고 삶을 관조할 것이다.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개인적인 성공과 성취의 한계를 재인식하고, 가정적 측면에서는 자녀가 출가할 때까지의 능동적인 부모역할에서 자신들의 중년계획으로 옮겨간다.

그렇지만 저자는 중년의 위기 그 진실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년의 위기는 너무도 깔끔하고 간단히 알 수 있는 개념이라서,심리학적 근거가 없더라도 정말이지 믿고 싶은 마음이 들며 일각에선 중년의 위기가 전쟁이나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남자들을 위한 대체 서사로서 최근 몇세대에서 개발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 주장엔 오늘날의 남자들은 삶에 남자다운 고난,진짜 역경이 결여된 것이 왠지 창피해 이 창피함을 '중년의 위기'라 불리는 꾸며낸 이야기로 덮으려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학자이면서 동물학자인 데이비드 베인브리지가 말하는 중년은 무엇일까?

 

중년은 인간의 진화의 결과이며 자연 선택의 산물로 우리의 생존을 도왔던 그 무엇이라고 한다.중년은 퇴화증상이 아니라고 한다.

 

중년의 우수한 준비 기술과 경험은 인류의 생존과 지속에 필수 요소이며,중년인들이 없다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인간의 생활 방식은 결코 유효하지 않을 것이란다. 중년의 변화는 자연 선택에 의해 우리 안에 심어져 있었고,우리는 그것으로부터 크나큰 육체적,문화적 이점을 얻는다.

 

중년의 우리는 더 많이, 더 열심히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르게'생각해서 앞서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중년의 흔한 전형성 두 가지-삶에 대한 통제력 결여로 인한 좌절감,그리고 증가하는 사회적,정치적 보수주의 경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년은 사실상 사회적,경제적 힘이 대부분 최고가 되는 시기인데도,중년인들은 미래에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될 것을 더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중년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에 더 보수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기보다는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애쓰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러면 중년은 행복할까?


중년은 실로 크고 전지전능한 인간 두뇌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중년인은 정신적 회복력이라는 산의 꼭대기에 올라 있다. 그래서 중년인은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식량 담당자이자 문화전달자인 이들은 너무나도 중요한 존재이기에,인생이라는 대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안정의 섬으로 진화되어왔다.

그래서 대개의 중년은 행복하다.


 

저자는 중년의 원인으로 유전자와 생리적 상태 및 진화 역사를 든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인간으로서 기능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너무나 맣이 유전자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져서,각 개인의 본성 중 아주 많은 부분이 유전자에 의해 정의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들에게는 서로 다른 한 가지 측면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진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각 개인은 스스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잘 선택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는 젊은 외모를 유지하려 애쓰고,늦둥이를 낳는 시도도 하고,젊었을 대 못해봐서 아쉬운 짓도 한번 저질러보라고 말한다.우리는 인류사에서 중년이 되기에 가장 좋은 시대를 살고 있는 행운아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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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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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과 두께때문에 놀라서 겁이 나보기는 처음이다.

그렇지만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상당히 노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아마 그것은 그가 일주일에 30~60시간씩 책을 읽고 이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했을 뿐 아니라,도스토예프스키,투르게네프,체호프 등 문학가의 저서 뿐 아니라 헤겔,니체,쇼펜하우어,마르크스 등 철학자의 저서를 아우르는 폭넓은 독서량에 있는 듯 보인다.


어려운 제목과는 달리 유쾌하게 달리는 내용의 전개는 흥미롭다.

우선 탈레브는 책의 서문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 책을 전개해 나갈 것인지 어떤 내용을 담게 될 것인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으면 심지어 5장은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이런 개념에 대해 잘 아는 독자들은 생략하고 넘어가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블랙 스완의 문제 안티프래질로 해결하라


안티프래질을 알기 위해 우리는 블랙 스완에 대해서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탈레브는 '블랙 스완’의 개념을 ‘과거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대 영역 바깥쪽의 관측값으로, 극단적으로 예외적이고 알려지지 않아 발생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고, 발생 후에야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설명과 예견이 가능해지는 사건’이라고 정의하였다. 예를 들면 경제공황이나 미국대폭발테러사건(9·11 테러), 구글(Google)의 성공 같은 사건을 블랙 스완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안티프래질은 무엇일까?


프래질은 부서지기 쉬움(fragile) 깨지기 쉬움이다. 이것의 반대말은 정확히 뭘까?

대부분은 강건함,회복력이 있음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부서지기 쉬운 것의 반대말은 최악의 경우에도 손상되지 않으면서 더욱 단단해 지는 것이 된다.그것에 대한 반대개념인 안티프래질은 프래질 앞에 마이너스를 붙인 것이다.


예를 들면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이 아니라 외상 후 성장하는 것이다.이는 시련을 겪으면서 더욱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안티프래질할 수 있을까?


합리적인 산책가가 되자.

합리적인 산책가는 여행가와 달리 일정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장소에 동화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계획의 포로가 아니다. 여행가는 목적론적 오류에 빠져들 수 있다.


사커맘이 되지 말자.

사커맘은 아이들의 삶에서 시행착오,즉 안티프래질을 제거해 생태학적 영역에서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아이들을 이미 존재하는 현실의 지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멍청이로 만들어 버린다. 

세네카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인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학교를 위해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물론 학교에서의 배움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고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학교는 체계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의 능력을 무시하면서 체계가 잡힌 곳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선택 편향을 갖는다.

그래서 블랙스완의 환경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안티프래질>은 많은 예를 들어가면서 어려운 용어와 상황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뚱보 토니는 안티프래질의 화신이다.

뚱보 토니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토론은 무척 재미있으며 우리의 인식이 전환을 일으킬만하다.


그동안 소크라테스의 화법은 상대방이 어떤 주제에 관한 일련의 진술에 동의하게 만들고는,이런 진술이 처음의 주제와 어떻게 모순되는지를 입증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여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단서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려고 했다. 그의 대화에서 소크라테스는 경건함을 정의하지 못해 초라해진 사람을 계속 괴롭혔다.


이제 토니는 이런 소크라테스와 맞짱을 뜬다.


토니:당신은 경건함과 경건하지 않음을 구별하게 만드는 특징을 정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정말 무엇이        경건한 행위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지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소크라테스:경건함의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척하면서 어떻게 그 단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까?


토니:제가 경건함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해서,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경건함의      의미를 언어로 잘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압니다.


그러면서 토니는 우리가 어떤 대상의 의미를 왜 고정시켜야 하는지 따진다. 소크라테스가 우리는 알 수는 있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제거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그는 사람들에게 자꾸 질문을 하면서 괴롭히는 방식으로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궁극적으로는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실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안티프래질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속는 사람과 속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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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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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 동안 작가 정여울을 매혹시킨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들이 작가에게 가르쳐준 소중한 메시지를 갈무리한 것이다. 작가는 아무리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사랑을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융의 "내 모든 경험 상 사랑은 거의 다 올라갔다고 생각했을 때 더 높이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산과 같습니다."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사람은 다소 극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때 본질을 드러내는 것 같아 보인다.

사회 질서가 무너져 버리는 상황이라거나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처럼 사랑이라는 감정 아래에서 인간은 본성을 드러내 버리며 무너져 버리기도 하고 끝없는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인간을 탐구하기에 얼마나 적절한 주제인가? 사랑이야말로 끝나지 않는 철학의 샘물이고,어떤 이론으로도 완전히 분석할 수 없는 삶을 예리하게 투시하는,보이지 않는 현미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영화와 연극과 소설이 이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인간을 그려내고 있나 보다. 

 

<잘 있지 말아요>를 통해서 본 많은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 우리의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이 혹은 앞으로 다가 올 사랑이 어떠할지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나의 과거의 사랑이 마치 지울 수 없는 메모리였던 것처럼,책 속의 짧은 구절에서도 환하게 되살아 나서 나를 과거의 사랑에 빠졌던 부끄러운 그 날로 데려가 준다. 마치 그때의 질감 하나하나가 되살아나는 느낌이라 읽으면서도 괜히 얼굴이 붉어지다 몸이 배배 꼬이다 한다.

 

이 책에 들어있는 서른 일곱 편의 이야기 중에 내 눈에 확 끌리는 두 편이 있었다.

20년 간 반복된 '단 하루'의 사랑 이라는 부제를 단 데이비드 니콜스 <원 데이>라는 작품은 아마 영화인 듯 한데 우정과 사랑의 긴 방황 속에서 마침내 확인한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하고 한 사람이 죽고 마는 이야기다.

작가가 말해주는 랑보다 더 깊은 감정이 '좋아함'일 수도 있다는 것을,우리는 오랜 외사랑에 지쳐버린 엠마의 그렁그렁한 눈빛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는 말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또 어떤 상황에서 이런 멋진 멘트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통째로 바꾸는 게 아니라,네 주변의 일부분부터! 네 열정과 네 전동 타자기를 가지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라는 말이 가슴에 남게 되는 그 장면도 꼭 보고 싶다.

해피앤딩은 아니지만 용기를 내서 고백하라고 하는 메시지로 작가는 읽었지만 나는 어떻게 보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또 다른 한 작품은 나도 읽었고 (비록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읽고 나서 너무나도 좋았던 작품이다.

에로틱한 우정의 불가능성이라는 제목을 단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그에게 삶의 모든 순간은 그저 한 번뿐인,지나가는 시간일 뿐이므로 그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기념해야 할 그 무엇도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아인말 이스트 카인말(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의 세계에서 '에스 무스 자인(그래야만 한다)의 무거운 세계로 귀환한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나약성에 대한 우화로 읽었으며 에로틱한 우정이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에로틱한 '우정'에 방점을 찍는다면,에로틱이라는 말에 지나친 과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남녀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긴장감이 바로 에로틱한 우정 아닐까

 

내가 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친숙한 스토리와 대사에 확 끌리기도 하고 옛 생각이 솔~ 솔~ 나기도 하고 그렇지만 나에게 다가 온 작품의 느낌과 작가의 분석이 달라서 색다른 맛을 느끼기도 하게 된다.


내가 보지 못한 작품들도 많았는데 이런 멋진 작품들은 내가 놓쳤구나 하는 생각에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하고 보니 이제 이런 가슴 저미는 사랑은 드라마나 영화나 책으로만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아픈 사랑을 다시 하고 싶다는 것보다 영화라서 아름다운 거고 책이라서 그런 거라고 투덜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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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와 함께한 마지막 일 년 개암 청소년 문학 20
마리 셀리에 지음,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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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은 다소 드라마틱해야 하겠다 싶다.

다소 기이한 행동을 하며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도 하고 게다가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나 음악을 해야한다. 그러면 그가 죽은(안타까운 상황) 뒤에는 많은 이야기를 남기게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런 부분에서 죽음을 빼놓고는 드라마같은 삶을 살다 갔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스승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는 제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림을 더 그리지 않고 조각에만 전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그가 남긴 많은 자료를 보건데 그는 회화 뿐 아니라 건축,시,작곡,육상,물리학,해부학,수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악기를 연주하기를 좋아했으면 직접 악기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나리자>라는 작품을 남김으로써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다.

 

이 소설은 그의 삶의 마지막 일년을 놓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린 다빈치와 그 주변인물을 볼 수 있다.


사실과의 교묘한 결합으로 모든 것이 마치 사실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마도 작가의 놀라운 솜씨 덕분인 듯 하다.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인 카테리나라는 인물의 눈으로 보는 실제 인물들은 작품속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엄마가 아이를 낳고 죽은 뒤 트라우마에 갇혀 말문을 닫아버린 카테리나는 아이를 낳다가 죽은 언니 대신에 다빈치의 저택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된다.


카테리나는 다빈치의 집에서 엄마와 닮은 <모나리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모나리자앞에서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고 위안을 받으려 몰래 모나리자를 보러 온다. 그러다 우연히 다빈치를 만나게 된다. 

다빈치는 이 여자아이의 이름이 자신의 어머니와 같고 고향도 같다는 사실에 정을 느끼고 자신이 고안한 황소뿔을 이용한 보청기를 주며 그녀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죽은 엄마라는 것을 매개로 그리고 <모나리자>를 매개로 인간적으로 친숙하게 된 두 사람과 다빈치의 수제자인 멜치와 하인인 바티스타와의 이야기는 제법 그럴 듯 하다.


이런 스토리에 다빈치의 업적을 적당히 버무려 놓았다. 스푸마토기법과 축제의 기획,그가 고안한 낙하산과 비행기 같은 발명품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청소년이 이야기속에서 자연스럽게 다빈치를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다빈치라는 위대한 화가의 마지막 일년이라는 시간 속에 몽땅 담아놓은 다빈치라는 인물은 따뜻하고 열정적으로 보인다. 비록 그가 일을 벌여놓고 마무리를 잘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삶은 어쩌면 이랬을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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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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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상속자들>을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 열여덟(딱 우리 아들의 나이)의 제국고 학생들 사이의 사랑과 우정, 뭐 그 정도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 보기 힘든 놀라운 장면에 사실 여자들은 환타지를 느끼고 꿈 속에서라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를 것이다.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시대의 부자들은 <그렇게 태어났기>때문에 부자였다.그러나 오늘날 플루토크라트들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그리스어로 부를 의미하는 plutos와 권력을 의미하는 kratos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부와 권력을 다 가진 부유층'을 뜻한다.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그들이 <일하는 부자>라는 사실이다.

 

포브스는 2012년 억만장자랭킹 순위에 오른 1,226명 가운데 840명을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분류했다. 그들 중에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을 만큼 가난한 집안 출신이 거의 없다. 열성적인 초기 교육,전문직에 종사하는 부유한 아버지를 가진,그들의 부는 그들의 활력과 지성,그리고 많은 행운이 가져다 준 열매였다.

심지어 달리트(불가촉천민) 출신의 플루토크라트도 있다.


 

플루토클라트들은 자선 활동은 좋아하지만 불평등을 해소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한 연구소에는 <소득>이나 <부의 불평등>을 제목으로 하는 어떤 연구에도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플루토크라트의 생각은 이렇다. "자선은 훌륭한 일이다. 비교적 적은 돈을 가지고 서도 자아를 빛낼 수 있고,도덕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불평등 문제는 다르다.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하려면, 결국 내가 벌어 들인 돈의 정당성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불평등을 연구하고 개선하려는 의도는 짓밟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플루토클라트들은 고국의 동포들이 아니라 세계적인 부자 동료들과 국경을 뛰어넘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갑부들에게 세상은 더 이상 국가로 나누어진 곳이 아니다. 다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들만의 모임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나라와 국경을 초월해서 협력을 이룰 것이며 심지어 그들만의 인공섬이라도 만들 생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플루토크라트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전례없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슈퍼스타 효과가 발휘되는 이러한 경제 하에서 한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자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는 반면 2등이나 5등,10등으로 밀려날 경우 경제적 보상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슈퍼스타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승자 독식 시장에서 정상의 자리는 오직 소수에게만 허락되어 있다. 특히 오늘날의 교육 주도적인 승자 독식 경제에서 열여덟 살의 1퍼센트가 성인이 되어서도 1퍼센트에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우리는 쉽게 플루토크라트가 될 수도 없는 나머지 사람들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우리 모두는 엘리트들이 시장에서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파이 전체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기존의 파이에서 그들의 몫을 늘리는 방식으로 부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

 

규제완화를 향한 뉴욕과 런던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그 경쟁속에서 플루토크라트들의 치열하면서도 삐뚤어진 공모는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중요한 원인이었다.


폴 라이언 미 하원의원은 개인에 대한 세금을 높일 것이 아니라 <지금 부자들이 수령하고 있는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사회의 불평등의 주요 원인은 힘 있는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기업 지원 정책과 힘없는 사람들의 기대를 외면하는 허울 뿐인 공약>에 있다고 밝혔다.

이 이야기가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트리클 다운 경제학(최상층이 부유해지면 더 많은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부의 흐름이 하층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보는 이론)은 어떠했는가? 우리는 그것의 떡고물을 기대했지만 소득불평등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플루토크라트들의 성장을 걱정해야 한다. 심각한 불평등은 시민 사회의 가치와 범죄율,도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칠 전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10억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질문에 초등학생 16%, 중학생 28%. 고등학생 39%가 '괜찮다'고 응답했다. 또 '부모님이 나를 잘 봐 달라고 선생님께 촌지(선물)를 주는 것은 괜찮다'는 항목에는 초등학생 30%, 중학생 25%, 고등학생 14%가 '그렇다'고 답했다. 청소년 10명 중 2~3명은 돈만 있으면 범죄도 스스럼없이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의 붕괴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사회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보다 자신의 이력서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 더 많은 정성을 쏟는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다를까? 어른들이 이런 학생들을 낳고 기르지 않았던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상속자들의 해드카피다. 나는 벌써 플루토크라트인 이들도 그리고 플루토크라트가 되려는 이들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무게는 비단 노력의 정도나 고통의 정도가 아닌 도덕적인 책임,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인간이면 당연히 가져야 할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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