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시 삼백수 : 5언절구 편 우리 한시 삼백수
정민 엮음 / 김영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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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시라니~~. 요즘에는 그냥 시도 잘 읽지 않는데, 한시는 과연 눈에 들어올까? 하지만 그것은 괜한 우려였다. 일단 번역해 주신 시가 재미있고, 쉬웠다. 위트가 묻어났으며 자연경관만을 읊었다고 해도 한눈에 풍경이 그려지는 시들이 많았다. 다시 또 읽어봐도 고개를 갸우뚱해야 하는 시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의미가 가볍지는 않았다. 그렇게 풍경처럼 그려지는 시에 담긴 인생사는 무겁고도 무거웠다. 그 숨은 행간의 의미를 정민 교수님은 자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시를 읽다 보면 읽는 이의 마음이 맑아진다. 그것은 시를 쓴 이의 마음이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짧은 시 한 수에 많은 여백은 자칫 표면적인 것에만 그칠 수 있겠다. 그 우려를 염려해서인지 정민 교수님은 그 뒤에 숨은 뜻까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현대적인 번역이라 한시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 풍랑>

  - 최수성

푸른 강 해 저물고

찬 날씨에 물결만.

외론 배 일찍 대리

밤중엔 풍랑 많네


그냥 읽으면 밤이 되면 풍랑이 거세지니 빨리 물가로 배를 몰아가 정박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만 읽힌다. 하지만 정민 교수님의 해석을 읽다 보면 행간이 보인다. 한시는 그냥 경치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풍경을 짐짓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 시에 얽힌 일화는 기묘사화 후에 최수성의 숙부 최세절이 승지로 있었다. 최수성은 숙부에게 이 시를 써서 멀리 떠나 있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부쳤다고 한다. 이렇게 보니 지금은 시절이 수상하니 배 몰고 풍랑 속에 뛰어들 때가 아니라 안전한 물가에 묶어둘 때라는 것, 즉 벼슬을 버리고 나오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 이야기가 더욱 놀랍다. 이 시를 받은 숙부 최세절이 이 시를 임금께 고해바쳤다. 그리고 최수성은 신문을 받고 죽었다. 삼촌이 자신에게 충고를 한 조카를 고발해 죽이던 세상이었다. 이렇게 짧은 한시 한 수에는 한 세상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칭찬>

  -조식

사람들 바른 선비 아끼는 것이

범 가죽 좋아함과 비슷하구나.

살았을 젠 못 죽여 안달하더니

죽은 뒤에 비로소 칭찬을 하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른말하는 사람을 죽일 듯이 물어뜯는 것은 똑같다. 행여 그 말 때문에 자기 밥그릇을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며 욕하다가 막상 죽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칭찬 일색이다. 죽은 뒤에 남기는 이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마는 살아서도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빌어본다.


<짹짹>

 - 송익필


언제나 짹짹짹 우는 새

어이해 언제나 족한가?

사람들 족함을 모르니

그래서 언제나 부족타.


재미있는 시다. 짹짹 우는 참새 소리를 족족 우는 걸로 듣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오히려 족함을 모르고 부족하다 불평하는 데서 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소리에 지쳐 문득 짹짹 우는 참새 소리가 족족으로 들리는 환청을 겪은 모양이다.


<통군정에서>

  -정철-


압록강 건너가려 하다가

송골산으로 곧장 올랐네.

화표주의 학을 이리 불러서

구름 사이로 함께 노닐리.


이 시를 읽으면서 조금은 화가 났다. 정철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으로 유명한 글을 잘 쓰는 선비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나중에 선조 임금과 임진왜란, 그리고 당파싸움 등에 얽힌 정철의 일화를 알고 나서 글과 사람이 그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글에 표현되는 자신은 권세와 욕망과는 거리가 먼 유유자적하는 선비지만 실상을 전혀 그렇지 못했으며, 이 당시 일본군에 쫓겨 압록강까지 도망갔을 처지인데 이런 시를 읊고 있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감히 '나라가 지금 어떤 상황인데, 구름 사이로 함께 노닐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며 꾸짖고 싶어진다. 이러니 나라가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지 않았겠는가.


<생각>

    -김니-

얻은 지 오래되니 어이 잃음 없으랴

영화로움 많고 보면 필히 재앙 있으리.

고향집 울타리 밑 심은 국화꽃

주인이 돌아옴을 기다리겠지.


이렇게 자신의 몸가짐을 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얻은 이것이 마땅히 나의 것이 아님을 알고 지금의 영화가 오래가지 않을 것을 믿기에 처신에 조심하고 삼가는 이들의 글은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조심스럽게 한다.

마지막으로 연말에 딱 맞는 시를 하나 발견했다.


<다짐>

  -이식

작년에도 이 사람

올해도 같은 사람.

내일은 새해니

같은 사람 되지 말자.


올해를 보내며,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며 새롭게 다짐해 본다. 같은 사람 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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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cchn12 2024-05-29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세절이 정말 조카를 무고로 죽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