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A! 남미여행 100 - 남미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100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
박명화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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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책을 펼치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갈 수 있을까?'이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꼭 가고 말 거야.'라는 말은 하게 된다.

그 사이에는 무언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여행지의 이야기가 있다.



<Hola! 남미여행 100>이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지금 열리고 있는 월드컵이라는 국제적인 축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미라는 우리와는 다른 색채와 향기가 나는 낯설고 먼 곳이라는 데서 오는 끌림이기도 하다.
강렬한 색깔과 향기, 그리고 열정이 가득할 것 같은 남미를 가보고 싶다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지.'로 생각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1. 문학에서 만난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평전으로 만났던 체 게바라, 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얼마 전 돌아가신 마르케스,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그렇지만 무척이나 끌리고 있는 로베르토 볼라뇨, 그들의 작품과 그들의 삶에서 텍스트로만 느꼈던 숨결을 직접 느끼고 싶다. 팜파스와 가우초, 체 게바라의 동상과 다양한 문화상품, 아니 적어도 자국의 언어로 쓰인 그들의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2. 남미 사람들의 삶만큼이나 열정적인 그들의 건축물은 직접 내 눈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색다른 건축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겪어보지 않고 어떻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아침, 그들의 한낮, 그리고 늦은 오후와 밤, 그 일상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되는 그들의 삶을 보고 싶다. 
사진에서 보이는 멕시코의 과나후아토의 개구리 언덕은 동화 속 마을 같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이 땅에 은이 발견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은 생산량을 자랑하게 된 개구리 마을. 형형색색의 건물과 복잡한 골목이지만 그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오히려 색다른 곳을 발견하는 기쁨이지 않을까?


3.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제일 가고 싶은 곳은 고향일까? 하늘과 가까운 그곳일까?
고향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가보고 싶지만 갈 수 없었던 상상만으로 행복했던 마음속의 그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마추픽추를 꼽고 싶다. 과연 인간이 건설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길만한 그곳, 마추픽추. 글로도 사진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는 그곳은 가야만 알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 가볼 수밖에.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그곳으로 찜해둔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술적 리얼리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미술관 등.
남미 미술의 결정체라고 하는 말바 미술관, 그곳에는 안토니오 베르니, 페르난도 보테로,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의 정열적이고 독특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영화와 그림으로 나에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프리다 칼로의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남미 여행의 이유는 그 밖에도 먹을거리(커피와 매콤한 그 음식들)와 음악을 빼놓을 수 없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네 가지의 이유만으로 남미 여행을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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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잔혹사 - 도난과 추적, 회수, 그리고 끝내 사라진 그림들
샌디 네언 지음, 최규은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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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술품 절도를 다룬 영화는 의외로 많다.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백만 달러의 사랑>,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인코그니토>, 숀 코네리, 캐서린 제타 존스 주연의<엔트랩먼트>, <헤드헌터>, <갬빗>, 그리고 우리나라의 영화 <인사동 스캔들>. 이 영화들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익히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비너스 상, 르네 마그리트, 마네, 모네, 렘브란트, 그리고 뭉크의 작품까지.  

 

<백만달러의 사랑>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인코그니토>

 

 <엔트랩먼트>

<인사동 스캔들>

 

 <헤드헌터>

<갬빗>

 

미술품 절도라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이며 낭만적인 도둑질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돈이나 마약과는 달리 '아름다워서' 일까? 돈이나 마약을 훔치는 도둑보다 미술품을 훔치는 도둑은 뭔가 더 있어 보이는 걸까?

<미술품 잔혹사>라는 책을 통해서 미술품을 훔치는 도둑들을 보니 아름다워서 훔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몸값'을 위해서였다. 유명한 미술작품이라는 인질을 담보로 '몸값'을 뜯어내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미술품을 훔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미술품을 도둑맞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혹은 보험회사 측은 '몸값'을 지불하고 작품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의 1부는 작가의 경험을 적은 터너의 유증작을 찾는 과정의 기록이다. 의외로 허술했던 작품 전시와 터너의 중요한 두 작품을 장장 7년에 걸쳐 추적해서 결국은 협상을 통해 되찾았지만 범인들에게 돈을 주고 그림을 되샀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은밀한 과정을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접할 수 없는 것이기에, 또 영화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면이기에(그리 낭만적이지 않지 않은가?) 미술품 도난은 결국 '도둑질'임을 확인하는 사례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어떻게 미술품 절도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는가? 그 이야기를 저자는 2부에서 풀어놓고 있다. 뭉크의 <절규>가 오슬로의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에서 도난 당했다. 이 도둑은 '형편없는 보안 상태에 감사할 뿐입니다.'라는 엽서까지 남기고 사라졌다. 또 다른 뭉크의 <절규>는 2004년에 도난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도난당했던 <뭉크>와 <모나리자>는 도난 사건으로 악명이 더해졌고, 중요성과 가격은 상승했다. 이들 작품을 돌려받기 위해 지급한 '몸값'혹은 제보자에 대한 사례금이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과연 윤리적인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미술품은 잉여자본의 조악한 토템이라는 말도 있다. 

게다가 전쟁이나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 유물과 문화재의 약탈로 채워진 선진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의 많은 작품들은 거대한 제국주의 욕망의 증인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 작품들은 어떻게 돌려받아야 할까? 몸값을 줘야 할까? 지나간 일이라 잃어버린 물건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 작품들은 눈에 보이지만 사라져버린 찾아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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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라는 뜻밖의 횡재 - 기후변화를 사업기회로 만드는 사람들
맥켄지 펑크 지음, 한성희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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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동이 다 도덕적일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라고 <온난화라는 뜻밖의 횡재>의 저자인 맥켄지 펑크는 말했다. 이 말은 언뜻 사람들은 대부분 도덕적인 행동을 하지만 간혹 그렇지 못할 때가 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 말은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라는 책을 떠올린다.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동물들보다 오히려 나쁜 선택을 해서 같은 종의 인간들을 힘들게 혹은 못살게 더 나쁘게는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하는 행동의 뒷면에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온난화라는 뜻밖의 횡재>는 인간의 이런 추악한 이면을 다 보여준다.
우리는 온난화라는 재앙이 우리가 이산화탄소를 너무 많이 배출해서 생겼기에 환경을 생각해서 그리고 후대의 인류를 위해서 행동하자는 교육을 받았으며 비록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적기는 해도 양심적으로 살고 있다. 온난화로 인해 변하는 지구환경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는 기업체들이 있었다. 이들은 파우스트식 거래를 하고 있었다.
지구온난화의 피해지역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은 자본도, 전문 기술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탈바꿈할 만한 인적자원도 없다. 그들이 대부분의 변화와 악화된 상황을 떠안고 있으며, 외부의 선진국들은 대부분의 이익을 이미 가져갔다.
온난화로 인해 벌어지는 세 가지의 재난, 즉 해빙, 가뭄, 홍수의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기업체들은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경제적인 이익을 챙기기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이미 해놓은 상태다. 물이 부족해질 것을 대비한 물중심 헤지펀드, 물사용권 혹은 물소유권을 위한 부동산을 이미 사두었으며 온난화로 인해 닥칠 식량부족과 식량가격 상승에 대비해 투자도 벌써 해놓았다.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도덕적 행동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온난화라는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가 특히 선진국이 만들어 낸 문제를 온통 뒤집어써야 하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이 문제로 인해 집과 나라를 잃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온난화를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는 도덕적인 문제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흥미를 느끼게 하려는 다양한 시도로 가득 찬 책이지만 그 서술이 논점을 흐릴 때가 많았으며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문제의 주장을 뭉게버려서 온난화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이들을 감정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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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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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위대한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예언된 볼라뇨의 작품 <2,666>을 우리의 머릿속에 콕 박히게 할 놀라운 가격 2,666원의 <볼라뇨 전염볌 감염자들의 기록>은 볼라뇨의 작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리석은 한 독자에게 여러 길들을 보여주었다.

평론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지만, 그리고 소수의 독자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지만, 판매 부수는 적다고 하는 그의 작품은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가 적음에도 상당히 놀라운 이미지를 획득하고 있다. 그 이미지는 아마도 평론가들의 영향이겠지만, 혹은 마케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기꺼이 볼라뇨가 최고라는 말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소수를 The happy few (행복한 소수)라고 한다. 이 말속에는 고도의 미적 감식안이 있는 소수의 교양인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 보인다.

'볼라뇨는 입증하지 않는다, 분해하고 보여줄 뿐'이기에 우리는 아직 성장하지 못한 두뇌로 스스로 해석하고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아이처럼 당황스러워한다. 그가 던지는 웃음, 익살, 해학, 농담, 희롱, 냉소를 때로는 재미있게 읽기도 하지만 그 뒤를 캐느라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그래서 볼라뇨를 읽은 다른 독자들은 어떤 것을 발굴해내었는지가 너무 궁금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볼라뇨라는 인물을 통해 연결된다.

<2666>에 대해 정혜윤은 (개인적으로 이분의 서평을 좋아하고,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두려움으로 사로잡는 것과 맞서 싸우는 압도적인 책'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정혜윤의 글은 없다. 이 책을 통해 다른 분들의 다양한 평들을 접한 후 따로 더 찾아보았다.) <칠레의 밤>에 대해서는 그날 밤의 변명, 혹은 죽기 전 날 밤의 변명이라는 별칭을 붙여놓았다. 적어도 죽기 전 날 밤에 변명하지 않으려면 사는 동안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나는 몰랐지!', '신이 감춘 일을 뭐 하러 뒤늦게 파헤친담!', '여기선 다들 그렇게 해요.'하며 자기합리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약간은 비슷하지만 다른 해석을 하는 평론가도 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 문제의 장소에 함께 했음에도 그 죄의식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한마디로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유죄다.'

볼라뇨가 그의 작품을 통해서 말한 '악'은 이 세상의 현실이다.  이야기는 하지만 완전히 해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일은 논리적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기에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된다. 볼라뇨의 단언하지 않음으로 인해 독자는 문학이라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문학이라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 본 사람은 인생을 보다 너그럽게 볼 줄 안다고 하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체험은 골치 아프기 마련이다. 하지만 또다시 문학 속에서 길 잃는 체험이 그립다. 

평론가들의 글에서 '길을 잃게 한다'라는 문장을 만나고서 안도감이 든다. '그들도 나처럼 헤매는군.' 그리고' 볼라뇨 전염병에 걸린 이들이 있어서 우리는 그나마 볼라뇨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군.'

위대한 고전문학을 남긴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독자들은 어쩌면 볼라뇨를 늦게 알아채고 뒤늦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따라가기 바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따라가고픈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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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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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이 먼저 떠오르는 터키의 토로스산맥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그 속에서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그냥 희생만을 다루었다면 영웅소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웅은 그런 희생과 부조리와 불합리 속에서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엉겅퀴가 자라서 땅을 경작하기 힘들지만, 지주 압디의 강압에 억지로 일을 해야 하는 열세 살의 메메드가 탈출하는 장면에서 이 서사는 시작한다. 메메드는 탈출하면서 끝없이 이제 메메드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것은 지주에게 착취당하고 매 맞고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하면서 존중을 받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다. 
두르순 아저씨가 말한 마을,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농사일도 안 시키고, 엉겅퀴도 자라지 않는, 바다, 소나무가 있는, 바다 건너갈 수 있는, 지주가 없는 마을을 찾아 엄마의 곁을 떠난다. 그가 당도한 곳은 (사실 두르순 아저씨는 그 마을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다. 아마 그것은 두르순 아저씨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을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민중이 꿈꾸는 유토피아일지도 모른다.) 도망친 곳에서 멀지 않은 쉴레이만 아저씨가 사는 마을이다. 엉겅퀴가 자라지 않는, 소나무가 있는, 바다 건너갈 수 있는 이런 마을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농사일을 안 시키고, 지주가 없는 마을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도망친 메메드는 쉴레이만 아저씨네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아저씨는 일도 시키지 않고 그저 마을을 한번 둘러보는 건 어떠냐 하며 메메드가 놀아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뭐라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한 메메드는 이렇게 묻는다.
"쉴레이만 아저씨, 늘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나요?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밥만 축내잖아요."
쉽레이만이 대답했다. "괜찮다. 뭐가 그리 급하냐? 너한테 적당한 일을 찾아 주마, 메메드"
아이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는 사회, 아이들은 그저 즐겁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정말 평범한, 그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소박한 사회 정도만 꿈꾸는데 이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 했던 것이다.

이렇게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어린 나이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메메드는 점차 의적으로 그리고 억압받고 있는 민중들의 영웅으로 커간다. 지주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며 소작인들에게는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주는 현실에 모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어쩌지 못하고 사는 민중들은 영웅을 기다린다. 그런 염원은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질되기도 한다. 하지만 도도하게 저 밑바닥에 흐르기 마련이다. 

메메드가 특히 다른 사람과 다른 부분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었다.

조금 더 큰 메메드는 친구와 함께 시내를 구경한다. 그곳에서 만난 온바시 아저씨는 지주가 없는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또한 넓은 세계에 대해 말해준다. 메메드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는 이 넓은 세상을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지주 압디도 개미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다. "지주 압디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야......"

문학은 인생의 진실을 말한다. 그 진실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또 다를 수 있다. 그 진실은 가슴속에 묻어 둔 한마디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민중의 삶 속에서 민중이 꿈꾼 염원과 한이 터져 나온 것이 영웅소설로 변한다. 우리나라의 홍길동과 임꺽정이 그러했고, 터키의 <의적 메메드>가 그렇다.

이 소설이 고발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주가 억압하는 사회, 정부 관료가 힘 있는 자들과 한편이 되어 민중을 착취하는 사회, 그리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도 행동하지 않는 우리를 보여준다. 그래서 어떤 것을 제거하고자 할까? 불평등과 불합리와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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