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후회하는 삶을 그만두기로 했다 - 내 뜻대로 인생을 이끄는 선택의 심리학
쉬나 아이엔가 지음, 오혜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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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능력보다 진정한 우리를 훨씬 잘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가방이나 구두는 좋은 제품을 걸치거나 신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남들이 보는 눈도 있잖아요. 또 하나쯤은 갖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한 30대 직장인의 고백이라고 한다. 비싼 브랜드의 백을 매면 나도 그만큼 가치 있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가치소비라는 말까지 등장하며 '명품을 사는 것이 돈을 더욱 절약하는 일이고 더 가치 있는 소비'라고 여긴다. 이 말에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하고 있고, 나 또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경우가 있다. 특히 먹고살기도 바쁘고 여유가 없을 때는 고려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요즘, 특히 소확행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요즘에는 그런 경향이 강하다.
쉬나 아이엔가의 <나는 후회하는 삶을 그만두기로 했다>에서는 "실용적인 기능을 하는 선택은 선택자의 정체성에 대해 큰 의미를 함축하지 않지만 그 실용적이지 않은 선택은 우리를 보여주는 지표 같은 게 된다."라고 말한다. 특히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전하는 일이 보편적인 때에는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쉬나 아이엔가는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잠재적으로든 간에 가능한 한 정확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삶을 구성하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을까? 저자인 쉬나 아이엔가는 다양한 실험들을 들어 우리의 선택이 때로는 너무 터무니없이 엉터리임을 보여준다.
선택의 가짓수가 미치는 효과에 대한 실험을 보면, 많은 수의 선택지를 줄 때보다 (20-30) 적당한 수의 선택지(4-6)를 줄 때 실제로 선택을 하고, 자신의 결정에 더 큰 확신을 갖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 더 만족해한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한다.
서로 비슷한 색이어서 색들의 구분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지만 특별하게 이름이 붙여졌을 때는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에 매료되어 색을 선택하는 경향도 발견된다.

세상 만물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이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인 척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이것에 대한 용어도 존재한다. 평균 이상 효과(better-than-averagd effect)  레이크 워비곤(lake wobegon)이 그것이다. 레이크 워비곤이라는 말은 그곳의 모든 여자는 강하고, 모든 남자는 잘생겼으며, 모든 아이는 평균 이상으로 똑똑하다고 묘사했던 허구의 도시 이름에서 생겨난 용어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모두 레이크 워비곤의 자랑스러운 시민인 것이다.  스스로를 '양의 무리 가운데 홀로 있는 존재'라고 믿으며 타인은 생각 없이 순응하지만 자신을 생각을 갖고 선택한 거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스스로를 비롯해서.

맥줏집에서 진행한 한 연구가 재미있었다. 서로 다른 맥주를 주문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따라쟁이가 되지 않으려는'충동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맨 처음 맥주를 주문한 사람이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처음 주문한 사람은 그냥 '자기에게 정직할 것'외에는 다른 의무가 없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사람들은 '따라 하고 싶지 않다는 충동에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게 반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연구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표현할 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보아줄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며 살아가지만 적어도 선택을 하고서 후회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지를 알고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타인의 목소리보다. 잘 선택하는 능력은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아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쉬나 아이엔가의 <나는 후회하는 삶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우리가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읽어내는 데는 조금의 인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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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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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딱 만 50세이 이렇게 홀로 사막의 한 가운데에 있었으면...

며칠 전 50의 생일이 지나갔다. 생일이 있기 몇 주 전부터 몸은 아프다가 말다를 반복했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다가 기운이 하나도 없다가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바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것이었다. 이 지루한 질병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내가 발 딛고 처한 현실은 이 책의 제목처럼 '잠깐 멈춤'을 할 수 있게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질 않았다. 아픈 것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으면 일이 바빠지고 조금 한가해지는 것 같으면 다시 아프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그 즈음에 이 책을 침대에 누워서 읽었다. 차분하게 앉아서 이리저리 정보를 구하면서 읽었어야 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여성에겐 폐경기로 대표되는 중년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인해 잠시 쉬면서 충전을 하고 젊었을 때와는 다른 몸을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계획을 세우면 된다는 정도의 내용이라고 짐작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그렇게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오히려 '중년'에 대해 생리학적으로 문화 인류 학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더 알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나는 중년을 그저 '제2의 사춘기' 정도로 인식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을 병, 혹은 약간의 방황기라고. 그래서 그동안 별생각 없이 지냈고, 쏟아지는 정보와 지식을 외면해 왔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폐경이 여성에게 주어지는 선물 혹은 축복으로 보며, 여성 해방의 관점으로 본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욕구나 감정에 집중하게 만들었던 생식 호르몬이 반대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변화되어,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여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력은 폐경기 여성의 열정에서 나온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중년에 뇌도 새롭게 변화해 가다 보니 불면증이나 우울증, 건망증 같은 혼란스러운 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중년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과 저자는 조금은 다르게 중년을 받아들이고 있다. 저자인 마리나 벤저민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폐경기(자궁수술로 인한)를 겪으며 중년이라는 주제에 집중한다.

자신의 문제이자 모든 인류의 문제인 중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저자는 갑자기 다가온 중년의 자신-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존재-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 반대로 눈에 띄지 않는 부류가 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세상 사람들 눈에 다르게 보이는 덕분에 자신 또한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자유, 누적된 통찰력과 원시안적 안목으로, 또한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꿰뚫어보는 레이저 같은 직관력으로 세상을 간파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고 말한다.

저자는 심리학자의 융의 경우처럼 '지독한 외로움'과 '탐색의 시기'를 소중한 것들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몸 또한 자신의 의식의 한 형태임을 받아들이라고.

호르몬의 도움을 잠시 받은 뒤에는 부족한 대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맞서야 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인간은 죽어가는 존재이다. 죽음이라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은 오히려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는 것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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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혼자서 - 60세에 첫 유학길에 오르다
강인순 지음 / 에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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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아니 변함없이 지루한 우리의 사고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10여일정도의 여행이 가져다주는 변화도 놀라울 때가 많은데, 하물며 1년동안의 유학은 어떨까?
그것도 인생의 후반기 중의 후반기, 예전같으면 골방에 누워 잔소리를 하고 있는 할머니가 된 나이인 60세(지금은 절대 절대로 그럴 수 없지만)에.
<파리,혼자서>의 작가  강인순님은 바로 그런 나이에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 방법으로 버킷리스트 1번에 적어 놓았던 프랑스 유학을 떠났고, 유학을 끝내고 돌아 와 역시 항상 머릿속에만 있었던 글쓰기 공부를 한 뒤 정말 책을 낸 것이다.
이 책의 추천서를 쓴 여러 사람 중에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김갑수 님의 글이 가장 나의 독서와 맞닿아 있었다.
'참 많은 예술 기행서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강인순의 체험이 선택될 이유는 글솜씨나 내용의 전문성 따위가 아니다. 한마디로 숙성의 힘이 가득한 책이다. 일생토록 갈망했고 긴 세월 사전 준비를 해 왔던 프랑스 예술의 정수들. 하지만 특별한 전문가가 아니라 불란서가 낯설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표 집필한 것만 같은 친숙함이 이 책의 강점이자 가독성으로 다가온다. 내게는 짧은 여행지였을 뿐인 프랑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좀 오래, 많이, 그리고 깊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올 봄에 같이 독서모임을 하던 동료들과 프랑스 여행을 했다. 아비뇽에서 우리는 카뮈의 무덤이 있는 루르마랭(루르마항)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비뇽에서 우리는 작은 렌트카를 빌려 아무리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어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루르마랭으로 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낯선 길을 따라 강인순 작가의 그 말처럼 '출구가 많은 로터리들'을 지나 도착한 작은 마을 루르마랭은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파리, 그리고 관광객이 넘치는 아비뇽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카뮈의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 한 부부를 만나 그들의 안내로 카뮈의 무덤과 카뮈가 살던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고개를 숙여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지나 카뮈의 집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로 우리를 데려다 준 그 부부는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이 낯선 동네에 카뮈를 보겠다고 그 먼길을 온 더욱 낯선 동양인 아줌마들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그들 덕분에 카뮈가 쓰던 방을 올려다볼 수 있었고 카뮈의 무덤까지 같이 걸으면서 아몬드 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도 볼 수 있었다.

나도 작가처럼 고등학교 시절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그의 문장에 놀랐고, 또 여전히 이해를 못한 채 때때로 꺼내 읽어보고 있지만, 카뮈의 집과 무덤을 보았다는 그 경험으로 더욱 그의 작품에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파리, 혼자서>를 읽는 것이 내게는 두 번의 프랑스 여행을 호출하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그녀가 보고 감동했던 몽생미셸, 로댕의 발자크 동상, 빅토르 위고의 집과 보주 광장 모두가 다시 가보고픈 곳이다. 또한 프랑수아 1세의 샹보르성, 슈농소성, 보-르-비콩트성 그리고 클로 뤼세는 다음에 기회가 되서 다시 프랑스를 간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나의 노트 한 곳에 적힐 것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여행을 하고 다른 나라를 방문하고 그리고 그것을 글로 남기겠지만, 그 깊이와 폭은 각기 다르다. 단순히 안내서로, 여행 가이드북으로 그치는 책이 있고, 독자의 마음 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힐링이 되는 책도 있다.

또 언젠가 여행을 위해 가방을 꾸리겠지만, 그 때 나도 이런 깊이를 가지고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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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의 한 사람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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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서서 다른 곳을 꿈꾸며 사는 나에게 '내 눈앞의 한 사람'은 때로는 귀찮고 또 때로는 버겁기만 한 존재일 때가 많다.
매일 보는 얼굴, 매일 듣게 되는 비슷한 이야기.
거기에서 벗어나고픈 날이 많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여행을 좋아한다.
이곳을 떠나 훌쩍 다른 곳으로 낯선 이들 속으로 떠나는 것.
나는 그게 좋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왜 이곳의 그 귀찮은 존재들이 그리운 건지.

우리는 여행지에서 우리 스스로 낯선 이방인의 존재가 된다. 우리는 익명의 관찰자가 된다. 낯선 장소, 낯선 언어 속에 온몸으로 그들을 이해하려 드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통해 많을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눈 감고 지나치던 것들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오소희 작가의 <내 눈앞의 한 사람>은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게 된 인생의 소중한 단상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오소희 작가의 여행과 자신의 여행이 다르다는 것, 그 다름에서 어떤 것이 생겨나는지 알게 된다. 관광객인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고 지나간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일상 속에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생각을 나눈다. 여행을 떠난 이들의 만남, 혹은 여행객과 여행객을 만난 사람들의 만남. 이 지점에서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뒤돌아보며 생기는 관조적인 태도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든다. 조금은 넓어진 마음의 공간에는 내가 안아야 할 많은 이들을 넉넉히 품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물에서 바라본 뭍은 아주 작더라. 거기서 들리는 소리도 아주 작았어. 의아할 정도였지. 어째서 나는 저 작은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 세상의 전부인 듯 매달렸을까? 어째서 곤충의 윙윙거림처럼 작은 목소리들에 일희일비하며 괴로워했을까? 그제야 깨달았어. 사람의 일이란 그처럼 작은 거라는걸. 내가 생의 한 토막을 내어줬던 일도, 거기서 비롯된 좌절도, 달빛과 바닷물에 녹이고 나니 그저 한 방울이었던 거야.

여행에서 만난 사랑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통해 내 눈앞의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의 너른 공간을 갖고 싶다. 그럼 여행을 떠나야겠지. ㅋㅋ
폴 서루는 <여행자의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당신만의 여행을 위해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 다음 여행에서는 '친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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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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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끝낼 못할 것 같은 이야기가 드디어 끝났다."
드디어 끝이 나버린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는 또다시 이 이야기의 처음인 1부 <나의 눈부신 친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이야기의 화자인 레누는 자신만의 힘으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눈부신 친구'인 릴라에게 영감을 받아 글을 쓰는 레누는 릴라가 갑자기 사라진 그날부터 자신과 릴라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풀어놓는다. 둘 사이의 우정, 그들이 사는 나폴리의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정치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레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독자의 경험과 맞물려 독자 각자의 기억 속 어디쯤 묻혀있던 추억을 소환해내곤 한다. 소꿉장난을 하던 어느 따스한 봄날의 기억, 학교에 처음 들어가던 날의 낯설기만 하던 책상과 의자,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잘생긴 남학생, 목소리를 높여 민주화를 외치던 캠퍼스의 매캐한 공기.
그렇게 레누와 한국의 한 여성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아마 그것은 그 시기를 건너온 대부분의 나라에 살았던 많은 여성들의 경험과 닮아있을 것이다. 레누와 릴라는 결혼을 하고 별거(혹은 이혼)를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을 하고 이별도 한다. 사람에 대한 증오와 환멸 그리고 후회,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그 다양한 감성들이 레누가 풀어놓는 이야기 안에 다 담겨있다. 게다가 마치 대하소설처럼 역사의 큰 줄기를 따라 사람들이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풀어놓았다.
레누가 책을 내고 세상의 반응이 책의 내용과 다르게 나타나는 것처럼, 나는 엘레나 페란테의 책을 읽고 있지만, 마치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비평가들이 서점에 있는 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선입견이 만들어낸 가상의 책을 소환하는 것 같았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책, 어쩌면 그 책 안에는 읽는 독자의 추억과 기억이 함께 담겨 독자의 수만큼 더욱 풍성해질 것 같다.
그래서 영원히 끝나지 못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 이야기의 끝도 알 수 없고, 그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도 불명확한.

이 책을 덮으면서 결국 잃어버린 아이와 레누와 릴라의 첫 번째 강렬한 기억인 잃어버린 인형이 겹쳐지며 뻗어나가기만 하던 선분의 끝이 만나 영원히 돌고 도는 커다란 원을 그려놓아 독자들을 끝없이 처음과 끝을 반복해서 돌게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이것이 레누의 이야기였는지, 릴라의 이야기였는지, 아니면 엘레나 페란테 그 얼굴 없는 작가의 이야기인지 모르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스스로 연필심이 커다란 원을 그리는 동안 움직이지 않는 컴퍼스의 고정된 축이라고 착각하지만(이 책 속의 레누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릴라처럼 흐물흐물 녹아 퍼지는 액체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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