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호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2
외젠 다비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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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북호텔이 Book호텔일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고, 평이 좋아 선택했었는데, 실은 北호텔이었다는 건 책을 펼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소설이 포퓰리스트 상을 받은 첫 번째 소설이라는 것도 책을 받고 난 후 알았구요.  하지만 직접 읽어 본 느낌은  '처음 만나는 낯선 서술방식이지만 너무 좋았다'였어요. 마치 '다큐멘터리 3일'을 보는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카메라로 북호텔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주욱 훑어가며 그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작가는 1927,1928년 파리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들은 그저 이름이 없어도 좋은, 그냥 A,B,C... 라고 불러도 될만큼 존재감이 두드러진 인물들이 아니예요. 극적인 행위나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사소하고 자칫 하찮아 보이는 행동들이 연결되는 것, 그래서 주제가 가볍고 사소해서 어쩌면 무의미해 보이는 것이지만 작가는 아마도 이것이 바로 인간 삶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 듯 보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서사를 요약한다는 것조차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호텔에는 '쥔장'인 르쿠브뢰르 부부와 가정부,대장장이,인쇄공,마차꾼,여공,지하철 종업원 등 파리의 하층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작가가 전하는 이들의 삶은 다음의 글에서 약간 엿볼 수 있는데요.

 

불안정하고 덧없는 인간들이 의지할 곳을 찾고 있는 마흔 한개의 방들 가운데 선~~ p.39

그들의 언 얼굴들은 새벽처럼 시푸르뎅뎅하다. 단조로운 운명이 그들을 짓누르는 것이었다.p.42

고정관념을 가진 고집과 광적인 욕망을 지닌, 머리가 약간 돈 인간이었다.

그는 자기 위치에 대하여 헛된 자만심을 지니고 있었다. p.86,87

 

 작가의 이들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지지만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할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독자에게 소설가의 판단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 스스로 소설 속의 인물들의 삶을 그리고 거기에 비춰진 독자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이들의 일상은 사소하고, 반복적이고, 권태롭고, 그리고 패배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그들을, 우리를 살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대단치 않은 직업에 못 박힌 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호텔에는 가지각색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몇몇 회사원들,회계원 한 사람, 급사들, 전기공들, 인쇄공이 둘 있는가 하면 건설 계통의 일꾼으로는 미장이, 벽 칠장이, 석수장이, 목수 등 만약 파리가 지진으로 파괴되어 버리면 재건에 필요한 인간들이었다. p.42

 

 우리 사회는 이런 이들에 의해서 지탱되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비록 '북호텔'은 재개발에 의해 무너져버리고 그 자리에 '모던 피혁'이 들어서겠지만 이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또 비슷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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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그릴스, 뜨거운 삶의 법칙
베어 그릴스 지음, 김미나 옮김 / 이지북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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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에 나오는 허크는 그의 단짝 톰과 보물 찾기로 엄청난 돈을 얻었다. 그들은 한 부인의 보호를 받으며 살게 되는데 3주 후 허크는 종적을 감춘다. 그는 도살장 뒤꼍에 뒹굴고 있는 빈 나무통 속에 있었다. 그는 "먹을거리가 너무 쉽게 얻어지니까 도무지 밥맛이 없어. 그런 식으로 먹는 건 재미가 없거든."하고 말한다. 그에게 모험은 인생의 참맛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허크처럼 모험을 떠난 이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모험가 알렉스 벨리니, 그는 사하라 사막을 뛰어 건너기, 썰매로 알래스카 횡단하기 등을 했으며 이번에는 그린란드 빙산에서 1년 살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가까이에는 비록 예능이지만 '정글의 법칙'의 김병만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야성적인 원조 정글남인 '맨 앤 와일드'의 원조 정글남 베어 그릴스가 있다.

 

 이들은 왜 모험을 떠나는 것일까? 허크의 말처럼 '인생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서일까?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을 극복해내는 데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그것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고도 한다. 캐나다의 모험가 부르스 커크비는 모험은 호기심이고 불확실한 것을 수용하려는 의지이며 이전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실행한다는 것에 대한 감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명과 제도 안에 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모험은 낯선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여전히 모험은 익숙하지 않으며 여전히 그들은 낯설다. 우리는 그들의 목숨을 건 모험을 불안하게 지켜본다. 얼마 전 한 모험가의 비극적인 죽음이 전해졌다. 해리 데버트라는 모험가가 멕시코 해변에서 플라스틱 백에 담긴 채 발견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험 여행을 즐겼고, 블로그에 꾸준히 삶에 대한 열정을 표현했다. 그는 삶의 관찰자이며 여행가였다. 세계의 경이로움을 직접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듣고, 경험할 기회를 평생 가졌고, 그리고 그 속에서 죽었다.

 

 영국의 엄친아 베어 그릴스는 영국 공수특전단(21SAS) 출신의 고도의 생존기술 전문가다. 하지만 낙하산 사고로 척추가 부러지면서 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되었다. 일반인이라면 이제는 편하고 안정적인 삶을 택할 만도 한데 그에게는 모험의 피가 들끓고 있었나 보다. 그는 바로 에베레스트 정복에 나섰고, 최연소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지금은 디스커버리 채널 <맨 앤 와일드>의 프로듀서이자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모험을 그는 몸으로 해야만 하는 사람인 듯하다. 우리는 주어진 밥상을 그저 맛있게 먹지만 그는 스스로 찾아서 먹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허클베리 핀과 같은 모험의 여정이 위에서 말한 해리 데버트처럼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는 그것 또한 삶이라고 받아들일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보면서 모험이라는 낯설고 두려운 상황을 극복하면서 느끼는 희열에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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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남정호 지음 / 김영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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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총장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린다. 국내 정치에 대한 희망의 부재가 불러온 그의 이름을 우리는 유엔 총장이 되었을 적 뉴스와 책을 통해서 많이 접했다. 어렸을 적 에피소드를 주로 다룬 위인전 느낌이 다분한 책부터 검증되지 않은 그의 리더십을 말하는 책까지 그는 한순간 대한민국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뉴스는 쏙 들어가 버렸고, 종종 외신을 전해주는 뉴스에 따르면 일하지 않는 총장, 존재감이 없는 사람, 심지어 유엔의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이라는 말까지 들렸다. 과연 반기문은 누구인가?

 애매한 어법, 욕먹지 않는 적당한 처신 때문에 반반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는 그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나와 있는 그에 대한 위인전식 접근의 책과는 다른 접근의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는 반기문 유엔총장이 과연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국제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앞으로 어떤 인물로 남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서로 다른 의견을 조용히 조율하면서 움직이기에 애매하다거나 일을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평을 듣던 그가 그동안 한 일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저자는(중앙일보 부국장이면서 국제 선임기자로 뉴욕 특파원 시절 유엔 본부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반기문 유엔 총장의 고민과 카리스마, 혹은 리더십과 인간적인 면을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펼쳐놓고 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랑과 과한 외교적 언사를 해오는 다른 유엔 총장들과 달리 조용하고 딱딱해 보이는 그는 초기에는 여러 나라에서 비판을 받았다. 물론 거기에는 반기문 총장 자체의 문제점도 있었다. 사형제에 대한 한국의 현실 때문에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 점, 인권에 대한 소극적인 행동 등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시정해 나갔으며, 그의 여성에 대한 시각과 행동은 획기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조용하기만 했던 그의 행보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에 찬 적극적인 행동으로 변했다.  그 근간에는 열정과 노력, 무엇보다 솔선수범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아시아적 리더십이 있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작은 실수를 한 뒤 재치 있게 수습하는 행동을 보여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반 총장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한 기자회견에서 내륙 개발도상국 유엔 콘퍼런스 개최를 주관한 오스트리아에 사의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레일리아로 잘못 표현했다. 반 총장은 측근들로부터 자신의 실수를 지적받고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지요.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께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재치 있게 사과했다. '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다'라는 말은 오스트리아가 사람들에게 오스트레일리아와의 혼동을 피하게 하면서 자국을 알리는 데 애용하는 문구다. 실수를 인정한 반 총장은 이후 유엔을 통해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다'라는 글과 이미지가 적힌 티셔츠를 직접 들고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거듭 오스트리아 국민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반기문 총장의 이러한 태도는 더욱 그를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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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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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천재이며 지독한 공부벌레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명한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책의 제목은 <적을 만들다>이다.

적을 만들라고?

나는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과 싸우지 마라','친하게 지내라'라는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이 말이 무척 낯설었다. 심지어 에코는 이 책에서 적이 없다면 적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

에코가 뉴욕에서 만난 파키스탄 택시 운전기사는 그에게 그의 나라에는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에코는 그 당시 적이 없다고 대답했더니 그 택시기사는 '어떻게 적이 없는 나라가 있느냐'며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그 질문에 당장 만족할 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서 발전된 생각으로 표현되었다.

현재 이탈리아는 외부의 적이 없고, 지난 60년간 진정한 적을 두지 않았던 것이 이탈리아의 불행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치 체계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그것에 맞서는 장애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적이 없다면 만들어 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현존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 자신을 인식할 수 있으며, 여기에 근거하여 공존과 순응의 규율이 세워진다.

 

또 그가 말하는 절대와 상대는 무척 흥미롭다.

'절대'는 우리도 느끼는 것처럼 아주 잘 팔리는 이름인 듯 보인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절대와 상대는 상황과 관계에 따라서 아주 다른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절대란 연결이나 경계에서 자유로운, 얽매이지 않는 모든 것이라는 것으로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 이유와 근거를 가지며 설명되는 무엇이다. 이것은 신과 유사하다.  따라서 절대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거나, 만약 존재하더라도 생각할 수 있거나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이런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불꽃, 교회의 보물 찾기, 그리고 빅토르 위고의 글쓰기까지 이어진다. 빅토르 위고에 대해 그는 스스로 신이라 믿었거나 적어도 신의 공식적인 통역관이라 믿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코가 보기에 위고의 문학을 지배하는 특징은 세상의 사건을 과도하게 기술하는 방식과 신의 관점에서 그것을 보려는 불굴의 의지였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나 <웃는 남자>의 그윈 플레인의 경우는 과잉의 시학이 작용한 결과이다. 그렇지만 위고의 과잉의 시학이 보여준 것은 역사의 숨 가쁜 호흡과 악취가 진동하는 포효를 우리가 느끼길 바랐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에코의 관심이 어느 부분에서는 이 책을 읽는 독자와 거리가 멀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번뜩이는 재치와 뒤통수를 치는 시각은 우리에게 평소와는 다른 면을 보는 의외의 경험을 안겨준다. 천천히 책을 읽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내용의 주제를 만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이야기로 흘러들어가는 낯선 경험을 안겨줄 수 있는 독서는 우리의 독서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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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렐렘
나더쉬 피테르 지음, 김보국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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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인간의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이 작품은 도대체 어떤 문제를 말하고 있는가?

우선 겉으로 보기에는 난해하고, 독특하고, 실험적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결코 눈 감을 수 없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만난다.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 위해 애인의 집에 온 남자는, 그녀가 건넨 마리화나를 피우며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간다. 아니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게 상상 속의 것인지 계속 헷갈린다. 시간은 흐르는 듯 고정되어 있으며, 나는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침대에 그대로 묶여있는 듯 고정되어 잇다. 그리고 시간은 여전히 12시 30분. 남자는 간혹 애인에게 시간을 묻고 물을 달라고 하지만 시간은 여전히 12시 30분이며, 물은 스스로 떠서 마시지도 여인이 가져다 주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일인가?

 

이렇게 약간의 이야기가 흐르는 과정이 있지만 대부분의 글은 남자의 생각의 흐름이다. 그는 과연 나는 무엇인가? 그가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오가며 그는 삶과 죽음 등을 생각한다.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그는 출구를 모른다. 자신의 존재 밖으로 나간 듯 보이지만 결국은 자신의 존재 안으로 더욱 들어와 버렸다. 거기에서 느끼는 외부 세계의 무질서와 혼란. 그렇다면 자신은 이해하기 쉬운 존재인가?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가 생각한 자신은 거짓이었다. 알 수 없는 나 자신과 또 알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 의 관계, 즉 삶은 불가해한 것이며 그 속에 던져진 우리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책 속의 문장들>

확장되는 시간 속, 혼미의 시간에는 모든 시간이 한결같이 현재이다. 현재. 그 안에 과거와 미래가 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같은 거야! 하지만 이것이 이미 느꼈던 것과 동일한 실제의 기만임을 나는 헛되이 알기만 하는 걸까?

 

만약 내가 욕실에 있지 않았다면, 만약 그녀가 물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고, 나는 그저 침대에 누워있었으며 모든 일이 오직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것뿐이고, 지금은 이미 끝난 것이다.

 

시간이 멈추고, 그것은 나의 상상 속에서만 흐른다. 실제는 그 마지막 한 조각도 상상임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 증명의 행위 역시 상상이다. 반복되는 것. 내 논리가 이미 이를 증명한 그 사실의 반복. 그 궁극점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존재가 멈추고, 이미 내가 아닌 그때가 아마도 그 순간, 이 12시 30분., 이것이 그 시간인데, 지금까지는 아직 내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신념 속에 내가 있다. 형이하학적 존재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관념 속. 시간은 그 유효성을 잃었다.

 

최소한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 검은 무(無)에, 유일하게 실제 나의 자리로 보이는 거기에 내가 다시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최종적인 시간까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동안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으며,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날 수 잇었던 그것만을 상상했던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를 알고 있다. 입구는 있었지만 출구는 없는 그 순환 속에 들어섰다.

 

나는 나 자신의 밖에 닿았던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안으로 다시 떨어진 것이다. 나의 분투, 애정, 거짓의 결과이다. 내가 두려워했기에 외부 세계와 나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두려워하지 않기에 외부 세계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심히 무질서했으며, 너무도 복잡했다. 만약 나 자신으로 단순화시킨다면, 그런다면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속에 있는 그 세계를 말이다. 거짓이었다. 도피는 이것에 대한 거짓이었다. 하지만 기댈 수 있는 모든 것을 허용한다면 외부 세계 없이 나 자신이 그것의 외부 세계가 되는 것, 이것을 원했던 것이다.

 

알 수 없는 나의 상징들을 다른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상징들로 묶어주는 관계가 삶이었다.

내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징. 그녀 또한 단지 내 속에 존재하는 상징, 여성성인 것, 내 애정의 대상은 나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이기에, 그 안에서 나는 최후의 기댈 것으로 느꼈던 그 유일한 것을 붙잡기 위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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