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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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책인시공」책의 신비로운 시간과 공간

 


 

 

책인시공 - 
정수복 지음/문학동네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시공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1000년 전에 쓰였던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지금 읽은 책이 앞으로 1000년 후에도 읽힐 수 있다. 한국에서 쓰여진 책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읽힐 수도 있고, 미래에는 우주에서 쓰여진 책도 한국으로 날아올 수 있다. 인간의 물리적 힘으로는 닿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책이라는 간단한 도구로 해결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책 안에 담긴 이야기에 관해 생각했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해보자. 우리는 책이라는 도구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책을 읽다가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연합군이 독일을 점령 했을 때 지리적으로 독일에 가까운 소련군은 독일의 과학자들을 재빠르게 소련의 연구소로 빼돌렸다. 뒤늦게 독일에 도착한 미군은 독일 도서관과 연구실에 쌓여 있던 책을 본국으로 실어날랐다. 독일 과학자를 빼돌린 소련은 과학기술 경쟁에서 50년대까지 미국을 앞섰지만 독일에서 온 과학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점차 과학발전의 속도가 느려졌다. 그 반면 책을 실어나른 미국은 그 책을 해독해 수많은 과학자를 교육하여 결국 소련을 앞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원천으로서 책은 사람보다 힘이 세고 오래간다.

 

 「책인시공」P. 39 

 

 

 

 

 

 「책인시공」은 책의 시공을 이야기한 책이다. 저자 정수복은 마치 고요히 시간이 정지된 공간을 산책하듯 책을 생각한다. 책이란 무엇인지, 책을 어떤 시간에 읽는지, 인생의 사계에서 읽는 책의 사철 등 신비로운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하듯 책의 시간을 거닌다. 공간 역시 마련해놓았다. 책을 읽는 장소는 집안에서도 다양하다. 서재, 거실 소파, 부엌 식탁, 침대, 화장실, 다락방, 마루 등은 이야기가 주위 환경과 조화되는 영적인 장소와도 같다. 바깥으로 나가면 카페, 지하철, 버스, 배, 비행기, 기차, 호텔방, 바닷가, 병실, 감옥, 묘지 등 온 세상이 책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나만의 보금자리 같다. 

 

 

 김영하의 주인공은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이렇게 독백을 한다.

 

  "돈키호테를 생각해봐. 모험을 떠나자마자 친구와 식구들이 책을 불태웠잖아. 그에 비하면 넌 얼마나 행복해? 네가 사랑했던 책들과 여전히 같이 있잖아."

 

 골방, 그곳은 혼자만의 내밀한 독서가 가능한 환상의 공간이다. 그러기에 서재가 없다면 골방에서라도 책을 펼칠 일이다.

 

 「책인시공」P. 154 

 


 


 

 「책인시공」은 빠르지 않다. 비행기는 고사하고 KTX조차 못되는 새마을호같은 속도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수복 씨와 함께 책이라는 특권을 손에 쥐고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시간의 자유로움과 공간의 탄력있는 근육이 느껴진다. 내가 가지고 있던 시간에 책이란 어떤 시간을 가리켰는지, 내가 보낸 공간에 책이란 어떤 자리를 마련했는지 되돌아가는 과거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앞으로의 시간에 어떤 책이 지나갈지, 앞으로의 공간에 어떤 책이 머물지 미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도서관은 쥐라기의 화석들과 빙하기에 사라진 동물들의 흔적과 여러 겹으로 켜켜이 쌓인 지층을 떠올리게 한다. 도서관은 썩지 않게 처리한 지식의 표본들을 보관하는 지식의 박물관이다. 도서관은 지혜의 보고이며 정보의 원천이다. 그곳은 세상과 우주에 대한 온갖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의 우주다. 도서관은 사유의 냉장고다. 상하지 않게 잘 보관되어 있는 다양한 사유의 재료들을 꺼내 생각을 요리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다. 요리에 필요한 불은 머리에서 나온다. 책 속의 문장에 눈길이 닿으면 냉동되어 있던 생각의 얼음들이 녹아 따뜻해지면서 생각의 아지랑이를 무럭무럭 피어나게 한다.

 

 「책인시공」P. 232 

 

 

 

 

책인시공 - 
정수복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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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이 공업 이야기 - 인간은 말(馬)이 아니다. 당근만 있으면 된다!
야마다 아키오 지음, 김연한 옮김 / 그리조아(GRIJOA)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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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라이 공업 이야기」신의 직장, 인간의 직장

 



미라이 공업 이야기 - 
야마다 아키오 지음, 김연한 옮김/그리조아(GRIJOA)

 

 당신이 만약 회사를 경영하게 된다면 어떤 회사를 롤모델로 삼겠는가? 국내 최대 글로벌 기업 삼성? 창조적 경영 기업 구글? 

 나에게 만약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미라이 공업을 택하겠다. 내가 기업을 경영할 일은 절대 없다. 하지만 이런 꿈의 직장을 경영한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질 정도로 미라이 공업은 정말 파격적이다. 미라이 공업의 파격적인 경영을 잠깐 살펴본다면 우선 '개선 제안 제도'가 있다. '제안서를 내면 보기도 전에 500엔을 지급'한다. 한 달에 제안서를 20번 내면 1만 엔이 된다. 1,000엔부터 3만 엔까지 상금도 준다. 

 보통 출장 갈 때 상사에게 허락을 받지만 미라이 공업에 그런 건 없다. 보고·연락·상담이 금지다. "걔 어디 갔어?" "몰라요" 같은 상황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다섯 명만 모이면 동호회 활동비 한 달 1만 엔을 지원한다. 심사 같은 건 없다. "시간외근무 따위 하지 말고 인생을 즐겨라, 행복을 느끼면서 열심히 일해달라"고 말한다.

 전원 정직원이다. 사람을 비용 취급하지 말라고 하고 싶단다. 정직원도 아닌 사람은 기술을 성실히 배우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무 시간은 8시 30분~4시 45분, 일본에서 가장 근무시간이 짧은 회사다. 그런데 휴일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회사다. 연 140일 쉰다. 연말연시도 20일간 쉰다고 한다. 대략 12월 23일부터 1월 10일까지 쉰다. 

 직원 여행도 무척 파격적이다. 해마다 단체로 국내 여행을 하고, 5년에 한 번은 해외 여행을 간다. 기본적으로 전 직원 참가이며 비용을 회사가 전액 부담한다. 

 

 

 그전의 여행에서는 '미스터리 여행'이라는 기획도 있었다. 이 또한 어느 여행 회사도 한 적이 없는 기획이었다. 먼저 전 직원에게 제비를 뽑게 해서 미리 A, B, C 세 그룹으로 나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공항으로 모이게 되는데, 그때까지 자기가 어느 나라로 여행 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든 괜찮도록 옷을 여러 종류로 준비해야 했다. 결국, A조는 영하 5도의 파리, B조는 영상 30도의 하와이, C조는 영상 30도의 플로리다로 떠났다. 필요 없는 옷은 여행 대리점에 맡겼다.

 직원 여행에는 물론 큰돈이 들지만, 직원들끼리 기획해서 즐겁게 하니까 좋은 '당근'이 된다. 일도 할 맛이 나지 않을까.

 

 P. 134

 


 

 미라이 공업은 어째서 이런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 걸까? 일이 그만큼 힘들거나 까다롭기 때문일까? 아니면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인가? 미라이 공업의 창업주이자 이런 어마어마한 경영을 하는 창업주 야마다 씨는 당연하게 이런 말을 한다. "먹고자는 일뿐이라면 돼지도 하고 있고 소도 하고 있어. 날마다 야근을 시켜버리면 직원은 집에 가서 먹고자는 일밖에 못 해. 직원은 가축이 아니니까 자기만의 시간을 줘야 해".

 

 우리는 당연한 일을 놀라움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경영 속에서 살고 있다. 야마다 씨는 단지 직원의 행복을 위해 이런 경영을 한다. 직원이 행복하다. 회사 일을 열심히 한다. 회사가 잘 된다. 단순하고 인간적이며 직관적인 공식이다. 직원이 행복하니 부정부패도 저지르지 않는다. 저질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일이 행복하고 자유 시간을 누릴 수 있으며 윗사람은 참견하지 않고 아래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며 일을 하니 만사형통이다.

 

 

 나는 '직원은 경영자를 속이는 법이다'고 생각한다.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율에 맡긴 것이다. 자꾸 속여도 된다. 이렇게 하면 인간은 오히려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는 직원 식당이 있다. 메뉴는 매일 10종류가 나오고, 모두 357엔이다. 그중 200엔을 회사가 부담하고 남은 157엔은 직원이 부담한다. 옛날에는 식권을 썼는데, 종이를 쓰면 비용이 들어서 폐지했다. 그래서 직원이 직접 신고하는 것으로 해버렸다. 각자가 몇 번 식사했는지 매달 자진해서 신고하는 식이다. 자기 부담 식대는 횟수에 따라 급여에서 뺀다.

 

 P. 152 

 

 



 미라이 공업에는 인사과도 없다.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는 한 사심이 들어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인원도 없고 보안 시스템도 없고 정문에 경비원도 없다. 도둑 맞아 회사가 손해를 보는 비용보다 경비회사 등과 계약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과당경쟁 속에서 직원이 행복하도록 충분한 급여를 주기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인다. 

 

 

 이런 게 바로 신의 직장일까? 아니다. 나는 미라이 공업이 매우 인간적인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취급하며 서로의 행복을 위해 사장부터 말단까지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은 보통 사람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지 않은가. 이런 회사에 다닌다는 상상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이런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상상에 행복해지는 그런 회사. 신은 할 수 없는,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경영, 그게 바로 인간의 직장 미라이 공업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보통, 회사에서 가장 급여가 적은 사람은 신입 여직원이야. 그 여직원도 자동차는 자기돈으로 사. 그게 당연하지. '우리 회사는 급여가 적으니까 직원에게 차 한 대씩 사주자'고 생각하는 사장은 없어, 헌데, 회사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사장은 자기 돈으로 차를 안 사. 꼭 회사 돈을 써서 여직원보다 후러씬 비싼 고급 차를 사. 그리고 회사 돈으로 기름을 넣고 회사 돈으로 자동차 보험을 들고 그 차를 사적인 곳에도 써. 그런 사장의 모습을 본 직원이 과연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까? 돈을 많이 못 버는 중소기업 사장이 회사 돈으로 고급 차를 사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러지 말고 사장도 자기 돈으로 형편에 맞는 차를 사면 그것만으로도 직원은 감동해."

 

P. 163 

 

 

 

 

 


미라이 공업 이야기 - 
야마다 아키오 지음, 김연한 옮김/그리조아(GRIJ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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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 장자가 묻는다 후 엠 아이 Who am I 시리즈 1
명로진 지음 / 상상비행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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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누구냐 넌」웃긴 사람 장자

 


 

누구냐? 넌! - 
명로진 지음/상상비행



 

 

 내가 다닌 대학의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연령대가 참 다양했다. 빠른 년생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에 취직한 아들을 두신 어르신까지, 폭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전부 내 동기들이었다. 그 중에서 나보다 5~6살 정도 많은(정확한 나이가 기억나지 않는다) 래퍼가 있었다. 홍대 클럽에서 공연도 하고 앨범도 내는 진짜 래퍼였다. 그 형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행동과 태도로 많은 동기들과 선배들의 빈축을 샀다. 

 그 형의 여자친구가 정말 놀라웠다. 미모도 몸매도 성격도 학벌도 굉장히 훌륭한 여자친구였다. 도대체 이토록 훌륭한 여성이 왜 이런 형과 사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할까? 그 여자친구는 연세대 철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철학이라는 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학문일까? 그 누나는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한 최초의 인물로 자리 잡고 있다. 

 

 

 성질 급한 이가 배로 강을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뭔가가 배 뒤에 쿵! 하고 부딪혔다. 그는 몸이 기우뚱하며 물에 빠질 뻔했다. "도대체 뭐야?" 하고 돌아보니 어디선가 빈 배가 떠내려 와 그의 배에 부딪힌 것이었다. 그는 곧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아 노를 저었다. 얼마를 가다 보니 또 다른 배가 와서 부딪혔다. 그 배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성질 급한 이는 상대를 보고 비켜 가라고 소리쳤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않자 두 번 소리쳤고, 두 번 소리쳐 듣지 않자 이번에는 온갖 욕을 섞어 가며 화를 냈다.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화를 내는 까닭은 무엇인가? 앞의 배에는 사람이 없었고 뒤의 배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산목>

 

 P. 20 

 




 철학에 관련된 책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그저 재미있는 말장난이구나 하고 읽었을 뿐, 철학에 대해 특별한 인식을 가지진 못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은 관심이 간다. 바로 장자다. 2,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훌륭한 성인으로 이름을 남긴 이 사람이 꽤 웃기다.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기 보다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스스로 이해시키는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농담 따먹기도 능숙하게 해내시는 분이다. 자유롭고 가볍다. 동양철학자 중 가장 이름값이 높은 공자를 질투하는가 싶더니만 공공연하게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한다. 

 철학이란 무겁고 재미없으며 지루하고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개똥같은 것일까? 장자 이분이 말하는 게 철학이라면 철학은 최소한 재미도 줄 수 있는 학문이다. 

 

 

 당연히 유학자들은 장자를 이단으로 본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공자뿐 아니라, 공자를 해석한 남송 학자 주희까지도 신처럼 모셨다. 그들은 주희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해서 이교도처럼 여겼다. 사문난적이란 교리를 어지럽히고 주희 사상과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물며 공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상종을 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했기에 장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배척했다. 연암 박지원 같은 일부 사대부만이 장자에 대한 글을 썼을 뿐이다.

 나는 이렇게 상상해 본다. 공자와 장자가 만난다면? 위대한 두 성인 사이에는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고 가리라.

 

 장자: 세상이 하도 어지러워서 제가 공자 형님을 소설 속의 인물로 등장시켰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난 척하는 선비들 좀 깨달으라고요.

 공자: 응, 잘했네, 허허허.

 

 P. 145 

 


 

 「누구냐? 넌!」의 저자 명로진 씨도 아마 장자의 이런 매력에 빠져 이 책을 썼으리라 본다. '아니, 이토록 재밌는 철학을, 이렇게 웃긴 사람을 모르다니!' 하는 생각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명로진 작가는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많이 내신 분이라 책으로나마 몇번 접한 적이 있는데, '글은 쉽고 재밌게' 라는 모토로 글을 쓰시는 분이다. 웃긴 사람(장자)에 대해서 쉽고 재밌게(명로진의 글쓰기) 쓰니 어찌 재밌는 책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청소년을 거쳐 성인이 된 이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에이, 권장연령 청소년을 내가 읽을 순 없지'. 장자 그분께서 그런 말을 한다면 아마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까. 

 

 장자: 우주에서 보면 다 똑같은 티끌인데 뭘 얼마나 더 안다고 빼시는가. 그냥 읽으시게. 하하하.

 

 

 우리 마음이 굳어져서 우리가 스승을 섬기듯 그 굳은 마음을 따른다면 세상에 스승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똑똑한 사람은 물론이고 개나 소나 다 스승이 있다고 하겠지. 

 마음은 원래 변덕스러운 것. 그러니 그런 변덕스런 마음으로 뭐가 옳고 뭐가 그르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얼마나 말이 안 되느냐고? 그건 마치 오늘 월나라를 향해 떠난 사람이 어제 그곳에 도착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을 있을 수 있다고 우기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하하.

 

 오호, 저 순발력, 역시 장자 선생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그려. 그런데…… 듣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구만 리를 날아가는 붕새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열자 이야기 있잖아요. '있을 수 없는 일을 있을 수 있다고 우기기'는 장자 선생님이 먼저 시작하신 거 아닌가요? 하하하.

 

 

 

 

누구냐? 넌! - 
명로진 지음/상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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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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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번역가 이윤기의 자유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그의 자유는 글에 있었다. 번역가 이윤기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윤기라는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어떤 책을 번역하고 어떤 글을 썼는지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건 그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느낀 땀과 자유가 그의 글에게서도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 이 사람은 정말로 글 자체를 사랑하는 분이구나. 스타일 있는 문체로 좋은 글을 쓰는 분이구나 하는 것. 이 책은 그의 자유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간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 선생님이 번역하기도 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따로 설명할 필요없이 대중에게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특히 작가 사이에서 평판이 빛을 발한다.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뽑는 작가가 많다. 어떤 작가는 매년 다시 읽어본다고 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는 실패밖에 없다. 그 유명세를 느낄 때마다 읽어보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힘든 지루한 작품이었다. 

 

 

  "아버지, '피복지급'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옷을 준다는 뜻이다."

  "아버지, 그럼 급료수령'은요?

  "월급 받아 가라는 소리다."

  "왜 그렇게 쉽게 쓰면 안 되지요?"

 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해서 입대한 아들과 나 사이에 실제로 오간 대화다.

 

 사람들은 왜 어려운 말을 즐겨 쓰는가? 자기네들끼리만 아는 말을 씀으로써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난처하게 하는가? 말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포기하기 싫은, 달콤한 권력에의 유혹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조르바가 어째서 그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윤기 선생님에게 느낀 그 자유가, 조르바와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나도 이제 '조르바의 자유'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말에 얽매여 휘둘리지 않고, 말을 부릴 줄 알았던 사람. 말과 언어, 글과 삶으로 짙게 얼룩진 이 책은, 이윤기 선생님의 딸, 이다희 님의 말대로 이윤기 선생님이 남긴 유산이 됐다. 

 오늘 다시 한번 「그리스인 조르바」를 펼칠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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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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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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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백과사전과 교과서의 재미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강명관 지음/천년의상상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책을 좋아했다. 접근이 쉬운 소설에게 먼저 호감이 갔을 뿐이지, 글자가 나란히 배열되어 인쇄된 모든 것에 호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에 대해 알고 싶어지듯 책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책은 한 사람 이상이 널리 전하고 싶거나, 후대에 남기고 싶을만한 가치를 언어로써 종이에 옮겨놓은 것이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출판된 것이 아닐까. 비록 '조선시대'라는 한정이 붙긴 했지만 책을 매게로 발전해온 지식의 역사를 속속들이 보여주겠노라 하는 의지를 담아냈다. 

 

 

 언어가 음성에 머무른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성대의 떨림으로 만들어진 음파는 시간 속에서 소멸한다. 음성은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받는다. 이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문자가 탄생했다. 문자는 언어를 공간에 고정시킴으로써 음성의 시간적 제약에서 탈출한다. 명확히 한계 지을 수는 없지만, 이 고정물이 일정한 형태를 가지면 그것을 우리는 책이라 부른다.

 

 P. 12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목차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방대한 자료와, 역사적 사료는 두 페이지에 한 개 꼴로 수록되어 있을 만큼 수가 많다. 흔히 책에 대해 알고 있었던 상식을 깨부수는 지식은 물론,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자랑거리 삼아 이야기하던 으쓱함을 무너뜨리는 비수도 꽂혀있다(최초의 금속활자가 부끄러운 사실이 될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이 같은 내용으로 앞으로 4권의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니 '책'이란 가치에 조금 더 경외심이 생길 정도다. 

 

 

 따라서 금속활자인쇄술이 도입되었다 해도 그것은 목판인쇄를 대체할 수 없었다. 대량 인쇄물을 빠른 속도로 찍어내기란 여전히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말해 아주 적은 수량의 책만 금속활자로 찍어냈으니, 조선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활자로 인쇄된 선본은 극소수의 몫이었다. 뒤에 '서적의 유통' 문제와 관련해 다시 다루겠지만, 이는 중앙 관료의 몫이거나, 아니면 돈 많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P. 106

 

 

 

 읽을수록 정말 방대하고 전문적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너무 백과사전스럽게 전문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옛날 교과서처럼 지루하다. 스쳐가면서라도 들어보지도 못한 조선시대 여러 기관의 이름과 많은 사료와 인용은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우리는 좋아하는 이성을 만났을 때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거지, 공부하고 싶은 게 아니지 않는가. 이 책은 '책'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양과 질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지만, '책'에 대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냐고 물어본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요즘은 교과서도 재밌게 나온다. 책에 대한 어지간한 애정이 아니라면 정독은 불가능한 책이 아닐까. 잠깐잠깐 꺼내서 참고삼아 읽는 정도밖에 활용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약용의 저작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사실 당대 민중에게는 그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지식인 내부에서도 정약용의 방대한 경학 연구물을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아주 가까운 극소수 지인들 사이에서만 겨우 읽히는 정도였다면,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닐 것인가? 

 책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의 유통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1만 권의 서적이 저 음습한 장서고에 유폐되어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다면, 그 1만 권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P. 26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강명관 지음/천년의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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