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 생각들 - 어느 날, 그림 속에서 피터가 말을 걸었다
전현선 글.그림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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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서평]「그림이 된 생각들」로렐라이, 기묘한 그 언덕의 그림



 

그림이 된 생각들 - 8점
전현선 글.그림/열림원


 예술가에게 설명은 필요없다, 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만일 그가 정말 예술가라면 이미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를 전달 했어야 되는데 거기에 설명이 덧붙여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라면 예술이 아니다, 라는 게 톨스토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밝힌 입장이다. 「그림이 된 생각들」은 전현선 화가가 본인의 작품들을 수록한 에세이집이다. 자칫하면 톨스토이가 말한 '설명이 필요한 예술'의 오류를 범할 뻔 했지만 이 책에 작품에 대한 해설은 거의 없다. 대신 그림이 된 생각들을 독자에게 전한다. 그래서 제목이 「그림이 된 생각들」​이다. 나는 그 기묘하고 중독성 있는 세계에 빠졌다. 그 세계가 담긴 그림들은 불가능이 없었고 무제한적인 흐름이 느껴진다.


 유리병처럼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정직하고 솔직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이 비밀 없이 투명하다면 살아가는 것도, 타인과 관계 맺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은 속을 알 수 없어야 사람이라는 말로 들린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보여지는 부분이 아닌 숨겨진 부분을 알고 싶은 열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P. 7 


 책의 부제라고도 할 수 있는 '어느 날, 그림 속에서 피터가 말을 걸었다'의 피터는 책에서 전현선 화가 외에 주연 역할을 한다. 피터가 대체 뭐지? 누구지? 하는 호기심을 일으키고 간혹 등장하여 조금씩 존재를 보여주어 집중력을 유지하는 매직 포인트 역할을 한다. 어느덧 나에게도 말을 거는 것처럼 생명력이 느껴지는 피터는 내 손을 잡고 전현선 화가의 개인적이고도 확실한 세계관으로 이끌어 나간다. 화가는 표현에 무척 능숙하다. 그림은 당연하고 글도 무척 탄력적이며 종종 좋은 표현이 느껴진다. 글에서 드문드문 소설을 많이 읽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 곳곳이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반면에 시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풍기는 곳도 있다. 로렐라이, 그 위험한 언덕처럼.


 아침에 일어났을 때 흐린 날씨에 비가 오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비 오는 날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단상은,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꽉 채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여유로움이다. 이러한 단상은 초등학교 때 만들어졌다. 선생님은 소풍 가기 전날 우리에게 가방을 두 개 준비하라고 하셨다. 소풍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해가 쨍쨍하면 소풍 가방을, 비가 오면 단축 수업 가방을 들고 오기. 당연히 소풍 가는 것이 좋았지만 비가 와서 소풍이 취소되었던 날 느꼈던 가볍고 여유로운 느낌 또한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P. 74 


 아무래도 에세이다 보니 전현선 화가에 대한 인상을 많이 받는데,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 든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표현하기 위해 어딘가로 끊임없이 걷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적막한 분위기는 공포 영화를 연상 시키기도 하지만 무서워할 일은 없다. 마치 피터가 화가에게 말을 건 것처럼 화가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 것만 같다.  로렐라이 언덕에서 흘러 나오는 요정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듣는 것처럼 화가에게 어딘가로 이끌려 나갈 것 같다. 중독될 위험 외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림이 된 생각들」​은 그림을 즐기고 이야기를 즐기고 이미지를 즐기는 독서가 된다. 


 라디오의 잡음과 TV의 지지직거리는 화면이 아주 오래전에 별들이 보낸 빛의 흔적들이다. 지하철이 멀어질수록 알림음의 음이 떨어지고 늘어지면서 이상하게 들리는데 그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우리의 우주는 계속 커지고 있고, 수백억 년 전 존재했던 별들에게서 나온 빛은 오랫동안 계속 직진하다가 늘어져 빨간 빛으로 변하고, 지구에 도착할 때에는 라디오 주파수와 비슷해진다. 그렇게 별들은 라디오를 타고 우리에게 도착한다.

P.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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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옆 철학카페 - 세네카부터 알랭 드 보통까지, 삶을 바꾸는 철학의 지혜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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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서평]「도서관 옆 철학카페」이 책 한번 마셔보세요



도서관 옆 철학카페 - 
안광복 지음/어크로스


 '책을 소개하는 책'이 있다. 개인적으로 무척 즐겨 보는 편이다.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은 계속 이어져 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시리즈 중 하나다. 「파이 이야기」로 유명한 얀 마텔이, 캐나다 수상에게 책을 추천하는 편지를 모은「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는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최고의 롤모델이 됐다. 「아주 특별한 독서」는 평소에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 많이 소개되어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북큐레이터라는 직업으로 개인의 기호에 맞춰 책을 추천하는 직업도 있는 모양이다.

 「도서관 옆 철학 카페」​도 위에 언급한 책들과 같은 '책을 소개하는 책' 의 범주에 들어 가는 책이다. 책의 가장 뒷면을 살펴보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의 목록이 나오는데, 철학적인 이야기가 담긴 꽤 높은 수준의 책이 많고 저자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나눈다. 책을 소개하거나 '책을 소개하는 책'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과연 저 책이 나에게도 재미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사람의 독서 취향은 정말 가지각색이라 내가 재밌게 읽고 친구에게 강력 추천하며 빌려 준 책이 심드렁하게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대로 빌려주는 게 미안할 정도였던 책이 친구의 찬사를 받으며 금의환향 할 때도 있다.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길러진 취향 탓에 내용에 관한 해석을 달리 하는 것이 호불호를 가르기도 한다. 「도서관 옆 철학 카페」​의 저자도 본인만의 철학적인 해석을 오해(?)하는 독서라고 귀엽게 애교 부리며 독자에게 슬며시 자신만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모든 이해는 오해다." 라는 니체의 말은 이때 빛을 발한다. 어떤 책을 읽건 나는 지은이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부터 헤아리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놓인 문제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지를 가늠할 뿐이다. 나에게 철학은 현실의 문제를 싸워 이기게 하는 '무기'여야 한다.

P. 5 

 

 내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재미다. 재미는 다른 사람의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만의 해석이 바탕이 됐을 때 이루어지고는 한다. 독서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 중에 책을 보고 잘못 이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독서를 꺼려 하는 사람이 꽤 많다. 소설이나 시를 읽고 문제를 풀며 정해진 답을 맞춰야 하는 잘못된 교육 방식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는 "화자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화자가 해석하고 들어가는 글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창조해야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소설 뿐만 아니라 모든 책이 그렇다. 한 권의 책을 100명이 읽으면 100가지 해석이 나오고 그 중 어느 하나 정답인 것이 없고 정답이 아닌 것이 없다. 「도서관 옆 철학 카페」​의 저자가 내놓는 철학적인 해석도 역시 정답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해석 중 하나다. 


 젊은이들은 현재에 살기 어렵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탓이다. 반면, 나이 든 이들은 과거를 곱씹으면서 현재를 날려버리곤 한다. 현명하게 나이 든 사람만 오롯이 '현재'를 누린다.

P. 274 


 「도서관 옆 철학 카페」​은 책을 매개로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연속이다. 독서 모임 같은 것을 생각하면 좋다. 독서 모임을 한번이라도 참여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꽤 재밌다. 특히 내가 재밌게 본 책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노래방에서 한번 붙잡은 마이크를 놓치 않는 꼴불견처럼(?) 말하고 싶은 내용이 산더미다. 「도서관 옆 철학 카페」​에 나오는 책에 대해 저자가 말하고, 또 나의 해석도 말하는 즐거운 소통의 시간이 된다. 책은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매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책은 쌍방향 매체다. 저자가 책을 보며 이런 이야기를 한 것처럼 나도 「도서관 옆 철학 카페」​를 보며 내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책으로 써냈다는 점과 그렇지 않았다는 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도서관 옆 철학 카페」​는 제목 그대로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느낌이 나는 책이다. 커피 향에 감각이 되살아나고 그 맛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난 커피를 못마시지만...). 어디선가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책 한번 마셔보세요".


 P.S '~해볼 일이다' '이럴 때 ~책을 읽어 볼 일이다' 등의 문장 전개가 너무 많이 반복된다. 저자의 글쓰기 습관 같은 데 조금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을 직접 바라보지 못한다. 나를 보는 다른 사람의 표정에 비추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안다.

P.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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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 글읽는 사람 - 과학적으로 읽고 논리적으로 쓴다, 텍스트 메커니즘
구자련 지음 / 다섯번째사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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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서평]「글 쓰는 사람 글 읽는 사람」글의 과학적인 정석



 

글쓰는 사람 글읽는 사람 - 
구자련 지음/다섯번째사과


나는 글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 글 읽는 사람이기도 하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한창 인기를 끌었던 때부터 남몰래 학교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곤 했다. 그때는 왠지 도서관에 가는 모습이 모범생인 척 하는 행동인 듯 부끄럽게 느껴져서 비밀스럽게 가야만 했다. 작가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이 장안의 화제가 됐을 때 나도 인터넷에 소설을 썼다. 쓰다가 매번 금세 포기하기는 했지만 그때 나는 자발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됐다. 

 대학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글 쓰는 사람, 글 읽는 사람이 됐다. 혹시 떨어질까 염려하여 여러 대학, 각기 다른 학과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그게 전부 합격했다. 그 중에서 문예창작과를 택했다. 집에서 가깝다던가 하는 부가적인 이유는 일절 생략하고 그저 '글'에 대한 관심으로 정한 학과였다. 글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고 또 잘 쓰고 싶다는 욕심과 관심이 지금의 진로를 정하게 됐고 앞으로 인생에 있어서도 빠질 수 없는 하나의 길이 되었다. 「글 쓰는 사람 글 읽는 사람」​을 펼치게 된 이유도 정확히 같다. 글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 오롯이 이 책에 대한 연결 고리로 작용했다. 여태껏 글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매커니즘을 파악한다는 등의 개념을 생각해보지도 배워보지도 못했다. 중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은 자는 시간과 다름 없었기에 글의 논리를 익히거나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몸으로 부딪치면 감각적으로 글에 접근한 경험밖에 없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문제와 고민에 부딪힌다.그리고 그때마다 그것들을 극복하고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곤 한다. 그 시간 중에서 공부하는 시간 다시 말해 텍스트를 읽고 쓰는데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놀이방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평균 20여 년이라는 절대적 비중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글을 읽고 쓰는 것이 고민인 듯하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모두가 잘 읽고 잘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 16 


 처음에 책을 훑어 보며 이해하기 무척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무척 전문적이고 딱딱한 느낌이어서 글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따라가기 어렵다고 느꼈다. 앞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다보니 과연 모든 글에는 논리가 있었다. 글의 한 덩어리, 텍스트는 논문, 리포트, 논술, 보고서, 에세이 등 어떤 종류의 글이든 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국가의 언어이든지 똑같이 작용했다.

 책에서 강조하는 텍스트의 논리는 바로 한 문장이 아닌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고리다. 비유법이나 강조법 등의 수사법을 통해 문장을 꾸미든가 주어와 동사가 어울리게 끔 하는 등의 한 문장 문법은 이미 학교 문법 시간에 배웠기에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글을 읽을 때 핵심 주제를 파악하고 익히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고, 글을 쓸 때도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잘 이어줬을 때 좋은 글이 된다는 논리가 바로 책의 핵심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고리는 뭘까?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간단한 예를 보면 어느정도 감이 온다.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이 있다.

그 에 가고 싶다.


 위의 시를 보면 '섬'이라는 단어를 주고 받음으로써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별다른 접속사(책에서 표현하는 표지어)가 없음에도 의미 전달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담백하고 깔끔하며 세련된 글이 됐다. 책에서 강조하는 글의 논리는 바로 이런 연결 고리를 뜻한다. 


 좋은 글, 완성도가 높은 텍스트의 조건은 다양하다. 내용의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하고, 중복을 피하고, 독자의 관점에서 간결하고 쉽게 읽혀야 한다. 그렇다면 내용을 떠나 형식적인 관점에서 완성도가 높은 텍스트의 구체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가시적으로 문장과 문장 사이에 표지어가 많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문장 간에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장 간의 방향성이 명확해야 한다.

P. 34 


 「글 쓰는 사람 글 읽는 사람」​에서 말하는 글의 논리를 익혔을 때, 글을 읽는 건 그렇다 쳐도 그 논리에 따라 매번 계산적으로 쓰는 글이 과연 매력이 있을까? 책에서 말하는 논리문법은 말하자면 글의 정석과도 같다. 어느 분야에서든 정석은 중요하다. 허영만 화백의 작품 타짜를 보면 주인공에게 화투를 가르쳐주는 화투 고수가 이런 말을 한다. "정석을 익힌다고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석을 모르면 고수가 될 수 없다". 또한 화투로 돈을 잃고 과정을 되짚어 보는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정석대로 쳤어야 한다. 이래서 정석이 중요하다'. 논리문법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글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에 베어 논리적인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훈련할 수 있게끔 논리문법이라는 글의 정석을 익히는 것이다. 정석을 익히고 나서야 변칙적이고 자유로운 글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 텍스트는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의사소통이다. 가장 고전적이지만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가장 강력한 매체이기도 하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 표현의 결정체다. 문화와 콘텐츠가 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텍스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 해결의 도우미가 되기도 하고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메신저이기도 한, 어쩌면 삶의 동반자적인 역할을 하는 텍스트. 정석 정도는 익혀야 되지 않을까?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감성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이성을 극복한 감성이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추상화는 전통 드로잉 기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전제로 가능했다. 구상을 극복한 사람이 추상을 넘어갈 수 있고, 이 추상을 극복한 사람은 다시 더욱 진보한 구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추상은 구상을 전제로 하며 진보한 구상은 다시 추상을 전제로 한다 .최악의 경우는 구상 없는 추상이다. 해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체의 대상(구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적 사고력을 갖추고 감성적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냥 감성적인 사람은 차원이 다르다. 이성이 중심인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고 이성이 필요없는 시대는 아니다. 

P.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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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 -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교육 프로젝트
에르빈 바겐호퍼 외 지음, 유영미 옮김 / 생각의날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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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문/서평]「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교육의 새로운 방향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 - 
에르빈 바겐호퍼 외 지음, 유영미 옮김/생각의날개


 교육의 '모범' 중국이 흔들리고 있다​. 책의 첫 소제목이다. 중국의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서 하루종일 공부를 하고 학원을 갔다가 하루가 바뀔 때 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그것을 똑같이 반복한다. 책에서는 가장 의미 없는 공부를 하는 국가의 사례로 중국이 등장하지만 대한민국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이정도는 코웃음이 나오는 수준이다. 창조성을 가두고 정형화된 교육에 맞추어 인간성을 상실한 아이들이 성장하여 삶에 의미를 찾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중국의 세계 최고 수준 자살률로 말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1년 연속 1위다. 중국의 자살률이 얼마 정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중국은 OECD에 가입하지 않았다)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이 106개 국가 중 그린란드, 리투아니아에 이어 3위라고 하니, 역시 이 부분에서도 중국보다 우리나라의 사례가 더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봐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책은 에르빈 바겐호퍼 감독의 다큐영화 <알파벳>을 기본 토대로 만들어진 책인데, 만약 그 다큐팀이 국가의 인지도를 배제하고 '의미 없는 공부'를 하는 정확한 사례를 찾으려 했다면 대한민국만큼 어울리는 나라는 없다. 중국은 피사 테스트(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 이제 막 발을 들여 놓은 태동 단계에 있고 우리나라는 이미 매년 상위권을 유지하는 포화 상태일 뿐이다.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지' 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해야 되는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의 우리들이다.


  "중국은 학생들이 어려운 숙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면에서 세계에서 둘재가라면 서러운 나라예요. 중국 정부, 부모, 교사, 교장, 모든 사회 계층이 이런 상태를 고집스럽게 비판하고 있어요. 모두가 알다시피 이런 교육은 아동과 청소년의 건강하고 정신적인 발달에 해가 될 뿐 아니라, 창조성과 상상력을 죽이는 교육이에요. 이런 교육은 학생들을 호기심과 연구 충동, 창조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 단지 시험기계로 만들 뿐이지요."

P. 38 

 

 책의 주인공은 '안토닌'이라는 이제 막 기기 시작하는 아이다. 안토닌은 남들과 다르게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치원은 물론 학교도 다니지 않은 채 성장한다. 그의 아버지인 안드레 슈테른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성장했다. 원서의 문체가 원래 그런건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의 가독성은 그다지 좋지 않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이 맞춤법이 맞나? 하는 의문도 곳곳에서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는 아주 집중적이고 압축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들이 주도되는데, 이런 행위의 결과는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지문은 대체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곳곳에서 느껴졌던 가독성의 문제에도 책은 원작이라 볼 수 있는 다큐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안토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카메라를 따라 같이 이동하는 기분이 든다.  안토닌의 성장 과정은 보통의 사람들이 우려하는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때 생기리라 생각했던 문제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며 지금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무척 의미 없는 생각인지를 몸소 증명한다. 다른 아이들이 놀이방에, 학교에 또는 베이비시터와 함께 집에 있으며 정형화된 생각을 주입 받을 때 안토닌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세상을 얼마나 근사하던지!


 우리는 안토닌의 발달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토닌이 적절히 발달하고 연구하는 단계에 있음을 알고 있고, 그것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자연적인 과정에 개입하여 그의 진로를 바꾸려고 하면, 자연적인 과정은 단절되고 만다. 자연적인 과정을 가속시키려 하면 자연적인 과정은 끝나버린다. 나비를 잡아당긴다고 나비가 빠르게 자라는가. 나비는 오히려 죽고 말 것이다.

P. 71 


 책으로 접했을 때 안토닌 슈테른 부자의 삶은 멋지고 옳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 내가 그런 선택을 하기에는 보통의 용기로는 부족하다.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외에도 많은 현대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을 보아오며 나중에 내 아이는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 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이제 곧 아이를 가져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지만 정말 아이를 가졌을 때 학교에 보내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교육이 아직 바뀔 수 없다면, 변화의 의식이 아직은 모자르다고 생각되면 바뀌어야 하는 건 내 자신이어야만 한다. 내가 훗날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는 분명 용기 있는 선택에 한 걸음을 보태준 게 분명하다.

 웹서핑을 하다보면 무분별하게 대한민국을 폄하하는 누리꾼을 종종 보게 된다. 대한민국이 우리의 모국임에도, 마치 자신은 본인이 욕하는 그 어두운 부분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가장 살기 안 좋은 최악의 국가처럼 보인다.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이야기를 퍼트리는 데다가 밝은 곳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어두운 곳을 과대포장하여 욕 하는 이들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는 한다. 교육도 사실 그런 분야 중 하나다. 나도 분명 우리나라 교육의 좋은 부분 보다는 안 좋은 부분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가 좋은 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지금의 교육을 과도하게 비판하거나 암울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희망찬 새로운 교육 방식을 제시하는 것 뿐이다. 


  "데스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곳입니다. 데스밸리에는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4년 겨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데스밸리에 비가 내린 것입니다. 177mm도 넘게 말이에요. 그리고 2005년 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데스밸리 전체가 봄꽃으로 덮인 것이죠. 이것은 데스밸리가 죽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데스밸리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표면 바로 뒤에 성장의 씨앗들이 싹틀 수 있는 조건들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나는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조건을 만들어 주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면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P.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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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세부터 행복을 가르쳐라 - 아이가 평생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우문식 지음 / 물푸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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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서평]「만 3세부터 행복을 가르쳐라」행복의 기본 개념을 잡아라



 

만 3세부터 행복을 가르쳐라 - 8점
우문식 지음/물푸레



 본문에 충격적인 통계가 나온다. 이미 많이 접해본 통계임에도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 총생산은 23,837달러로 상당히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청소년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 직장인 스트레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온갖 불행이라는 불행은 다 모은 것 같은 통계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행복과 정반대되는 기록만 연신 갱신하고 있는 걸까?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고, 경쟁적으로 공부하는 게 다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어린 시절을 경쟁에 매달렸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자, 이제 행복을 물을 수 있겠다. 이제 당신은 드디어 행복합니까? 

P. 25 

 

 언젠가부터 행복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 되고 있다. "부자되세요" 라든지 "대박나세요" 하는 인사말이 유행하면서도 "행복하세요" 라는 말은 언제 들어 봤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행복이라는 목표를 위해 '부자', '성공', '대박' 등의 키워드가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 주객전도라는 말이 어울린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1300만 관객을 돌파한 인기 영화 <국제시장>을 살펴보면 황정민이 주연한 주인공이 독일로 광부 파견을 가는 내용이 있다. 목숨을 저당 잡히고 고된 일을 하며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전형적인 우리의 아버지들 모습이다. 국내에서 다같이 으쌰으쌰 했던 새마을 운동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잘 살아 보기 위해 모두들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바라봤다. 그 결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고 우리는 이제 정말 살만해졌다. 이제는 좀 행복해져도 될 것 같은데 아직도 현대인은 행복에 대한 개념을 잡지 못하고 있다.


  '행복이 뭐예요?' 라고 아이가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들이 많다. 행복이 무엇인지 대답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라'는 말도 못 하겠다고 한다. 행복을 강조하면 왠지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질 것 같은 불안에, '행복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다. 우리 부모들은 행복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고, 많은 행복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P. 11 

 

 「만 3세부터 행복을 가르쳐라」는 행복을 배우지 못해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기 어려운 우리들에게 행복의 기본 개념을 잡아준다. 행복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공을 비롯하여 근거를 더해주는 실험 결과와 나와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행복 연습을 제공한다. 책을 읽어보면 가능한 많은 행복을 알려주고 싶은 작가의 착한 욕심이 느껴진다. 책의 크기가 크고 두껍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모자란 구석 없이 모든 것에 구체적이며 상세하고 알차다. 

 책의 저자 우문식 한국긍정심리연구소 소장은 행복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이롭게 했을 때 더욱 가치 있는 행복이라는 걸 몸소 책으로 보여주고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그렇다. 우리 민족의 사상적 원리인 홍익인간 이념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이롭고 행복한 모습. 우리의 선조가 바라고 또 우리가 앞으로 후손에게 바래야 될 모습이지 않을까.

 

 

만 3세부터 행복을 가르쳐라 - 8점
우문식 지음/물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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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히재기 2018-11-05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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