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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 -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교육 프로젝트
에르빈 바겐호퍼 외 지음, 유영미 옮김 / 생각의날개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인문/서평]「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교육의 새로운 방향

교육의 '모범' 중국이 흔들리고 있다. 책의 첫 소제목이다. 중국의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서 하루종일 공부를 하고 학원을 갔다가 하루가 바뀔 때 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그것을 똑같이 반복한다. 책에서는 가장 의미 없는 공부를 하는 국가의 사례로 중국이 등장하지만 대한민국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이정도는 코웃음이 나오는 수준이다. 창조성을 가두고 정형화된 교육에 맞추어 인간성을 상실한 아이들이 성장하여 삶에 의미를 찾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중국의 세계 최고 수준 자살률로 말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1년 연속 1위다. 중국의 자살률이 얼마 정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중국은 OECD에 가입하지 않았다)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이 106개 국가 중 그린란드, 리투아니아에 이어 3위라고 하니, 역시 이 부분에서도 중국보다 우리나라의 사례가 더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봐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책은 에르빈 바겐호퍼 감독의 다큐영화 <알파벳>을 기본 토대로 만들어진 책인데, 만약 그 다큐팀이 국가의 인지도를 배제하고 '의미 없는 공부'를 하는 정확한 사례를 찾으려 했다면 대한민국만큼 어울리는 나라는 없다. 중국은 피사 테스트(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 이제 막 발을 들여 놓은 태동 단계에 있고 우리나라는 이미 매년 상위권을 유지하는 포화 상태일 뿐이다.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지' 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해야 되는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의 우리들이다.
"중국은 학생들이 어려운 숙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면에서 세계에서 둘재가라면 서러운 나라예요. 중국 정부, 부모, 교사, 교장, 모든 사회 계층이 이런 상태를 고집스럽게 비판하고 있어요. 모두가 알다시피 이런 교육은 아동과 청소년의 건강하고 정신적인 발달에 해가 될 뿐 아니라, 창조성과 상상력을 죽이는 교육이에요. 이런 교육은 학생들을 호기심과 연구 충동, 창조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 단지 시험기계로 만들 뿐이지요."
P. 38
책의 주인공은 '안토닌'이라는 이제 막 기기 시작하는 아이다. 안토닌은 남들과 다르게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치원은 물론 학교도 다니지 않은 채 성장한다. 그의 아버지인 안드레 슈테른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성장했다. 원서의 문체가 원래 그런건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의 가독성은 그다지 좋지 않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이 맞춤법이 맞나? 하는 의문도 곳곳에서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는 아주 집중적이고 압축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들이 주도되는데, 이런 행위의 결과는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지문은 대체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곳곳에서 느껴졌던 가독성의 문제에도 책은 원작이라 볼 수 있는 다큐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안토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카메라를 따라 같이 이동하는 기분이 든다. 안토닌의 성장 과정은 보통의 사람들이 우려하는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때 생기리라 생각했던 문제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며 지금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무척 의미 없는 생각인지를 몸소 증명한다. 다른 아이들이 놀이방에, 학교에 또는 베이비시터와 함께 집에 있으며 정형화된 생각을 주입 받을 때 안토닌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세상을 얼마나 근사하던지!
우리는 안토닌의 발달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토닌이 적절히 발달하고 연구하는 단계에 있음을 알고 있고, 그것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자연적인 과정에 개입하여 그의 진로를 바꾸려고 하면, 자연적인 과정은 단절되고 만다. 자연적인 과정을 가속시키려 하면 자연적인 과정은 끝나버린다. 나비를 잡아당긴다고 나비가 빠르게 자라는가. 나비는 오히려 죽고 말 것이다.
P. 71
책으로 접했을 때 안토닌 슈테른 부자의 삶은 멋지고 옳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 내가 그런 선택을 하기에는 보통의 용기로는 부족하다.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외에도 많은 현대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을 보아오며 나중에 내 아이는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 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이제 곧 아이를 가져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지만 정말 아이를 가졌을 때 학교에 보내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교육이 아직 바뀔 수 없다면, 변화의 의식이 아직은 모자르다고 생각되면 바뀌어야 하는 건 내 자신이어야만 한다. 내가 훗날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는 분명 용기 있는 선택에 한 걸음을 보태준 게 분명하다.
웹서핑을 하다보면 무분별하게 대한민국을 폄하하는 누리꾼을 종종 보게 된다. 대한민국이 우리의 모국임에도, 마치 자신은 본인이 욕하는 그 어두운 부분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가장 살기 안 좋은 최악의 국가처럼 보인다.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이야기를 퍼트리는 데다가 밝은 곳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어두운 곳을 과대포장하여 욕 하는 이들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는 한다. 교육도 사실 그런 분야 중 하나다. 나도 분명 우리나라 교육의 좋은 부분 보다는 안 좋은 부분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가 좋은 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지금의 교육을 과도하게 비판하거나 암울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희망찬 새로운 교육 방식을 제시하는 것 뿐이다.
"데스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곳입니다. 데스밸리에는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4년 겨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데스밸리에 비가 내린 것입니다. 177mm도 넘게 말이에요. 그리고 2005년 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데스밸리 전체가 봄꽃으로 덮인 것이죠. 이것은 데스밸리가 죽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데스밸리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표면 바로 뒤에 성장의 씨앗들이 싹틀 수 있는 조건들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나는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조건을 만들어 주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면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P. 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