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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 글읽는 사람 - 과학적으로 읽고 논리적으로 쓴다, 텍스트 메커니즘
구자련 지음 / 다섯번째사과 / 2014년 11월
평점 :
[글쓰기/서평]「글 쓰는 사람 글 읽는 사람」글의 과학적인 정석

나는 글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 글 읽는 사람이기도 하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한창 인기를 끌었던 때부터 남몰래 학교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곤 했다. 그때는 왠지 도서관에 가는 모습이 모범생인 척 하는 행동인 듯 부끄럽게 느껴져서 비밀스럽게 가야만 했다. 작가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이 장안의 화제가 됐을 때 나도 인터넷에 소설을 썼다. 쓰다가 매번 금세 포기하기는 했지만 그때 나는 자발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됐다.
대학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글 쓰는 사람, 글 읽는 사람이 됐다. 혹시 떨어질까 염려하여 여러 대학, 각기 다른 학과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그게 전부 합격했다. 그 중에서 문예창작과를 택했다. 집에서 가깝다던가 하는 부가적인 이유는 일절 생략하고 그저 '글'에 대한 관심으로 정한 학과였다. 글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고 또 잘 쓰고 싶다는 욕심과 관심이 지금의 진로를 정하게 됐고 앞으로 인생에 있어서도 빠질 수 없는 하나의 길이 되었다. 「글 쓰는 사람 글 읽는 사람」을 펼치게 된 이유도 정확히 같다. 글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 오롯이 이 책에 대한 연결 고리로 작용했다. 여태껏 글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매커니즘을 파악한다는 등의 개념을 생각해보지도 배워보지도 못했다. 중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은 자는 시간과 다름 없었기에 글의 논리를 익히거나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몸으로 부딪치면 감각적으로 글에 접근한 경험밖에 없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문제와 고민에 부딪힌다.그리고 그때마다 그것들을 극복하고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곤 한다. 그 시간 중에서 공부하는 시간 다시 말해 텍스트를 읽고 쓰는데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놀이방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평균 20여 년이라는 절대적 비중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글을 읽고 쓰는 것이 고민인 듯하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모두가 잘 읽고 잘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 16
처음에 책을 훑어 보며 이해하기 무척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무척 전문적이고 딱딱한 느낌이어서 글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따라가기 어렵다고 느꼈다. 앞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다보니 과연 모든 글에는 논리가 있었다. 글의 한 덩어리, 텍스트는 논문, 리포트, 논술, 보고서, 에세이 등 어떤 종류의 글이든 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국가의 언어이든지 똑같이 작용했다.
책에서 강조하는 텍스트의 논리는 바로 한 문장이 아닌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고리다. 비유법이나 강조법 등의 수사법을 통해 문장을 꾸미든가 주어와 동사가 어울리게 끔 하는 등의 한 문장 문법은 이미 학교 문법 시간에 배웠기에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글을 읽을 때 핵심 주제를 파악하고 익히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고, 글을 쓸 때도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잘 이어줬을 때 좋은 글이 된다는 논리가 바로 책의 핵심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고리는 뭘까?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간단한 예를 보면 어느정도 감이 온다.
섬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위의 시를 보면 '섬'이라는 단어를 주고 받음으로써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별다른 접속사(책에서 표현하는 표지어)가 없음에도 의미 전달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담백하고 깔끔하며 세련된 글이 됐다. 책에서 강조하는 글의 논리는 바로 이런 연결 고리를 뜻한다.
좋은 글, 완성도가 높은 텍스트의 조건은 다양하다. 내용의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하고, 중복을 피하고, 독자의 관점에서 간결하고 쉽게 읽혀야 한다. 그렇다면 내용을 떠나 형식적인 관점에서 완성도가 높은 텍스트의 구체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가시적으로 문장과 문장 사이에 표지어가 많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문장 간에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장 간의 방향성이 명확해야 한다.
P. 34
「글 쓰는 사람 글 읽는 사람」에서 말하는 글의 논리를 익혔을 때, 글을 읽는 건 그렇다 쳐도 그 논리에 따라 매번 계산적으로 쓰는 글이 과연 매력이 있을까? 책에서 말하는 논리문법은 말하자면 글의 정석과도 같다. 어느 분야에서든 정석은 중요하다. 허영만 화백의 작품 타짜를 보면 주인공에게 화투를 가르쳐주는 화투 고수가 이런 말을 한다. "정석을 익힌다고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석을 모르면 고수가 될 수 없다". 또한 화투로 돈을 잃고 과정을 되짚어 보는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정석대로 쳤어야 한다. 이래서 정석이 중요하다'. 논리문법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글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에 베어 논리적인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훈련할 수 있게끔 논리문법이라는 글의 정석을 익히는 것이다. 정석을 익히고 나서야 변칙적이고 자유로운 글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 텍스트는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의사소통이다. 가장 고전적이지만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가장 강력한 매체이기도 하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 표현의 결정체다. 문화와 콘텐츠가 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텍스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 해결의 도우미가 되기도 하고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메신저이기도 한, 어쩌면 삶의 동반자적인 역할을 하는 텍스트. 정석 정도는 익혀야 되지 않을까?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감성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이성을 극복한 감성이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추상화는 전통 드로잉 기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전제로 가능했다. 구상을 극복한 사람이 추상을 넘어갈 수 있고, 이 추상을 극복한 사람은 다시 더욱 진보한 구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추상은 구상을 전제로 하며 진보한 구상은 다시 추상을 전제로 한다 .최악의 경우는 구상 없는 추상이다. 해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체의 대상(구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적 사고력을 갖추고 감성적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냥 감성적인 사람은 차원이 다르다. 이성이 중심인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고 이성이 필요없는 시대는 아니다.
P.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