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 생각들 - 어느 날, 그림 속에서 피터가 말을 걸었다
전현선 글.그림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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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서평]「그림이 된 생각들」로렐라이, 기묘한 그 언덕의 그림



 

그림이 된 생각들 - 8점
전현선 글.그림/열림원


 예술가에게 설명은 필요없다, 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만일 그가 정말 예술가라면 이미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를 전달 했어야 되는데 거기에 설명이 덧붙여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라면 예술이 아니다, 라는 게 톨스토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밝힌 입장이다. 「그림이 된 생각들」은 전현선 화가가 본인의 작품들을 수록한 에세이집이다. 자칫하면 톨스토이가 말한 '설명이 필요한 예술'의 오류를 범할 뻔 했지만 이 책에 작품에 대한 해설은 거의 없다. 대신 그림이 된 생각들을 독자에게 전한다. 그래서 제목이 「그림이 된 생각들」​이다. 나는 그 기묘하고 중독성 있는 세계에 빠졌다. 그 세계가 담긴 그림들은 불가능이 없었고 무제한적인 흐름이 느껴진다.


 유리병처럼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정직하고 솔직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이 비밀 없이 투명하다면 살아가는 것도, 타인과 관계 맺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은 속을 알 수 없어야 사람이라는 말로 들린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보여지는 부분이 아닌 숨겨진 부분을 알고 싶은 열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P. 7 


 책의 부제라고도 할 수 있는 '어느 날, 그림 속에서 피터가 말을 걸었다'의 피터는 책에서 전현선 화가 외에 주연 역할을 한다. 피터가 대체 뭐지? 누구지? 하는 호기심을 일으키고 간혹 등장하여 조금씩 존재를 보여주어 집중력을 유지하는 매직 포인트 역할을 한다. 어느덧 나에게도 말을 거는 것처럼 생명력이 느껴지는 피터는 내 손을 잡고 전현선 화가의 개인적이고도 확실한 세계관으로 이끌어 나간다. 화가는 표현에 무척 능숙하다. 그림은 당연하고 글도 무척 탄력적이며 종종 좋은 표현이 느껴진다. 글에서 드문드문 소설을 많이 읽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 곳곳이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반면에 시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풍기는 곳도 있다. 로렐라이, 그 위험한 언덕처럼.


 아침에 일어났을 때 흐린 날씨에 비가 오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비 오는 날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단상은,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꽉 채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여유로움이다. 이러한 단상은 초등학교 때 만들어졌다. 선생님은 소풍 가기 전날 우리에게 가방을 두 개 준비하라고 하셨다. 소풍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해가 쨍쨍하면 소풍 가방을, 비가 오면 단축 수업 가방을 들고 오기. 당연히 소풍 가는 것이 좋았지만 비가 와서 소풍이 취소되었던 날 느꼈던 가볍고 여유로운 느낌 또한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P. 74 


 아무래도 에세이다 보니 전현선 화가에 대한 인상을 많이 받는데,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 든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표현하기 위해 어딘가로 끊임없이 걷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적막한 분위기는 공포 영화를 연상 시키기도 하지만 무서워할 일은 없다. 마치 피터가 화가에게 말을 건 것처럼 화가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 것만 같다.  로렐라이 언덕에서 흘러 나오는 요정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듣는 것처럼 화가에게 어딘가로 이끌려 나갈 것 같다. 중독될 위험 외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림이 된 생각들」​은 그림을 즐기고 이야기를 즐기고 이미지를 즐기는 독서가 된다. 


 라디오의 잡음과 TV의 지지직거리는 화면이 아주 오래전에 별들이 보낸 빛의 흔적들이다. 지하철이 멀어질수록 알림음의 음이 떨어지고 늘어지면서 이상하게 들리는데 그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우리의 우주는 계속 커지고 있고, 수백억 년 전 존재했던 별들에게서 나온 빛은 오랫동안 계속 직진하다가 늘어져 빨간 빛으로 변하고, 지구에 도착할 때에는 라디오 주파수와 비슷해진다. 그렇게 별들은 라디오를 타고 우리에게 도착한다.

P.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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