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의 비밀 - 초등4~중3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요즘 사춘기' 설명서
김현수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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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녀교육/서평]「중2병의 비밀」내 아이가 아프다면



  

중2병의 비밀 - 
김현수 지음/덴스토리(Denstory)


 나는 자녀 교육에 참 관심이 많다(여자친구도 없는 주제에). 독서지도사 생활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얻어야 했던 지식과 정보들이 관심으로 바뀌고, 내가 어렸을 때 받은 교육에 대한 회의가 느껴져서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배우고자 했다. 독서지도가 보통 유아나 초등부를 대상으로 하고 그동안 교육에 관해 읽었던 책 대부분 역시 같은 대상과 입시에 대한 책이었기에 일명 '중2병'을 앓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생소한 편이었다. 내가 과연 '중2병'을 앓고 있는 사춘기 자녀가 있다면 나는 과연 현명하게 그 우환(?)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의 아이들은 내가 자랄 때와는 다르고 내가 자녀를 키울 때쯤이면 또 지금과는 다를 게 분명하다. '아이들은 다 알아서 자란다' 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중2병의 비밀」​의 내용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있다.

 

 김정은이 남침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2병'이 무서워서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만큼 현재 우리 아이들이 앓고 있는 중2병은 무척 무섭다.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웹툰 <싸우자 귀신아>에서 중2병을 정의하길 중2병이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고독하며 세상을 등진 존재라 여기는 증상'이라고 한다. 사춘기는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여서 긴장과 불안이 넘치기 때문에 올바른 길잡이가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은지 어림짐작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엄마 아빠는 너밖에 없어" 을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도 모른 채 아침마다 그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부모를 보면 얼마나 소통이 안 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특히 자녀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고 뭐든지 부모의 뜻대로 자지우지 하려는 모습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모습으로 보인다. 그들이 이제 막 부모의 품을 벗어나 하나의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개채로 인정할 때 사춘기, '중2병'의 처방은 시작된다.




 가족이라는 구성은 아무리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얼굴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상호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아이나 부모 둘 중 하나가 아침에 화를 낸다면 그 화가 그날 저녁까지 감정의 불행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는 일이 곧 나의 행복을 지켜주는 처방과도 같다. 대부분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학교라는 공간에 소속되는 이상 중학생이라는 신분은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고 중2병은 필연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중2병은 불치병이 아니다. '중2병'으로 파생되는 정신적인 질환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가족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2병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조치할 수 있는 그 비밀을 안다면 우리 가족의 정신 건강을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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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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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서평]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인생을 위한 발판




 2010년 9월 G20 정상회의의 마지막 날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폐막 연설을 마치고 한국 기자들에게만 질문권을 줬다. 개최국 역할을 훌륭히 해낸 한국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고 하나의 특권이었다. 우리 기자들은 어떤 질문을 던졌을까? 결과는 중국 기자의 질문을 끝났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 기자들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하고 중국 기자에게 그 권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G20의 대미를 장식한 10분 남짓의 간담회 동영상은 '오바마 한국 기자'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기자들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하고 질타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이런 현상은 비단 기자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질문 부재 현상은 대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 강의실 대부분의 모습에서 토론과 같은 상호작용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경청과 필기만이 가득하다. 배움의 전당 대학에서조차 질문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질문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안의 탐구욕과 학구열이 만들어낸 궁금한 물음이 아닌 남이 정해놓은 답을 찾기에만 연연하고 있는 것 같다. 밑바닥을 치고 있는 독서율만 보더라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많은데 사람들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책을 읽지 않는다. 잘 나가는 책은 학습 만화나 자기계발서가 거의 다다. 


 문제는 우리 인생도 '질문 부재'와 같이 누군가 정해 놓은 답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내놓은 답이 오답인지 정답인지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는 대학에만 가면 행복할 줄 알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학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대학이 탐구보다는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한 대학이라는 수단이 어느새 대학이라는 목적을 위해 불행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로 바뀌고 말았다. 정말 이대로도 괜찮을까?


 나는 대학 생활을 무척 즐겁게 한 편이다. 강의도 정말 유익했고 캠퍼스 생활도 무척 재밌었다. 가슴 설레는 연인도 만났었고 지금까지 연락하고 왕래하는 선후배도 생겼다. 내가 이렇게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한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이 대학을 위한 경주마로 키워지던 도중 의지가 약해서였든 경쟁에 뒤쳐져서였든 어쨌든 나는 입시라는 전국민적 대회에서 중도이탈을 했지만 누구보다 보람차게 대학 생활을 했다. 그때 배웠던 독서와 글쓰기는 인생의 한 지표가 되었고 지금도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금도 대학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어린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는지,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대학을 가려 하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왜 대학을 가는지 물음에서 더 나아가 왜 인생을 사는가에 대한 물음까지 나아가기 위해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가 새로운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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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대로도 좋아 - 해다홍의 일상공감 에세이툰
해다홍 지음 / 미디어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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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서평] 「그냥 이대로도 좋아」 기록이라는 특별한 주문


 


 짐 캐리가 열연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트루먼 쇼>는 배우의 역량은 물론 '나의 일상이 전세계 생중계 되고 있다' 라는 약간 중2병스러운 설정이 무척 참신하고 철학적이어서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 독특한 세계관을 바라보며 한 가지 들 수 있는 의문은 과연 평범한 남자의 일상이 전세계 생중계 될 정도로 콘텐츠적 가치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내가 느끼기에 나의 일상은 무척 반복적이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일상이 곧 재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재적으로 마음에 들어왔다. 에세이도 의외로 일상을 다룬 에세이가 재밌다. 무언가 가르침을 주려하고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에세이는 부담스럽기만 하고 재미도 없다. 딱히 마음 속에 와닿는 것도 없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도 부담없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책을 배우기 위해 읽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책은 첫 번째로 재밌어야 읽을 수 있다. 해다홍의 일상공감 에세이툰 「그냥 이대로도 좋아」​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이지만 담백하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페이스북 '좋아요'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엄만 어떻게 그렇게 버티고 살았어?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

  "나도 미리 알았다면 못 살았을 거야."

P. 51 


 사람은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을 통해 본인의 존재를 확인한다. 해다홍의 「그냥 이대로도 좋아」​를 보고 있자면 그런 존재에 대한 느낌을 확실하게 받는다. 나만 세상 살이에 힘든 줄 알았더니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다. 힘든 세상에서 나와 같이 각자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 역시 있구나 하는 생각에 별 것 아닌 일인데도 마음이 벅차다. 나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없을 때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건 재밌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다. 사람이 혼자서 살 수 없다는 말은 물리적인 능력 이외에도 이렇게 정신적인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다.


 말로 다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기엔 글이 최고인 것 같다.

P. 176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된 그림 일기가 매일 똑같아 보이진 않는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쳇바퀴만 도는 것 같은 착각에도 인생은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었다. 일기로 하루하루를 기록한다는 건 내 일상이 특별해지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기억하려하면 일주일 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일기에 기록된 내 삶은 분명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내 안에 쌓여 있다. 내 인생에 아무런 특별한 일이 없을 거 같은 기분이 들 때, 나 정말 이대로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해다홍의 그림 일기는 이대로도 좋다는 응원을 해준다. 


 나는 내 인생을 0.001% 시청률의 드라마라 비유하고 싶다.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주인공이니까. 웅장한 배경음악을 깔면 스스로 머쓱해질 때도 있고 역할에 심취하기엔 심심할 정도로 평범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난 언제나 중심에 있다. 가끔 본인이 타인의 드라마에서 엑스트라인 것 같아 우울해질 때 오로지 나만 연출할 수 있는 드라마로 돌아오자.

 P.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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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쓴 편지 - 붓다처럼 걸어간 1600리 길, 그 위에서 나눈 묵상
호진.지안 지음 / 불광출판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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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서평] 「성지에서 쓴 편지」 당신의 위로는 어디에 있습니까?



 

성지에서 쓴 편지 - 
호진.지안 지음/불광출판사


 가족이나 친한 지인 중에 종교에 깊이 빠진 사람이 없어서인지 적극적으로 권유를 받아본 적도 없고, 종교를 믿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고등학교 때 드럼을 배우려는 불온한(?) 의도로 잠깐 교회에 다닌 것 말고는 특별히 종교를 찾은 일이 없다. 평소에 즐겨 보는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믿을 수 없는 사건·사고로 어쩐지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지기도 했다. 또한 웹서핑을 하다보면 종교를 믿는 일로 우월감을 느끼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생각은 틀린 생각이라 치부하며 자신의 신을 믿지 않는 것을 우매한 정신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종교에서 얻을만한 건 뭘까? 각각의 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적 존재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더라도 가슴 속 어딘가에 무언가 의지할만한 존재를 간직하는 일만은 가치 있는 일 같다. 물에 빠졌을 때 기도하며 동아줄이 내려오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용기를 부여할만한 그런 존재가 나에게는 신이 될만하다. 


 몇 년 전 어떤 책에서 "진실의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다."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무릎이라도 칠 만큼 기뻤습니다. (…) 신격호와 전설이 싯다르타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죽이고 있는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한때는 우리에게 그런 요소들, 그런 표현 방법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같은 것들이 싯다르타를 역사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P. 27 

 

 편지는 그런 면에서 종교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알겠지만 훈련소에서 받는 편지 한통의 위력은 대단하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온전히 담겨 오랜 시간 정성들여 쓰인 편지는, 요즘에 스마트폰으로 1초면 보낼 수 있는 메신저의 메시지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비로소 힘을 낼 수 있는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닫게 하는 도구가 바로 편지다.「성지에서 쓴 편지」​는 불교와 붓다(석가)라는 신념으로 굳게 묶인 호진 스님과 지안 스님이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그들의 편지에는 편지에서 얻을 수 있는 그리움이 담겨 있고 종교에서 얻을 수 있는 의지 또한 빼놓지 않았다.


 뒷날 싯다르타가 소나 비구에게 거문고의 비유로써 설명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문고 줄은 지나치게 팽팽해도, 반대로 지나치게 느슨해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없지 않습니까.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줄이 적당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수행을 위해서도 두 극단에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P. 84 


 호진 스님이 붓다의 뒤를 따라 떠난 1,600리 순례 길 여정은 무척 고단한 길이라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인데, 호진 스님과 지안 스님의 불교에 대한 태도는 굉장히 겸손해 놀랄만하다. 그건 바로 깨달음이 '고행'에 있지 않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붓다 역시 고행이 깨달음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그것을 전파하려 발을 돌렸다. 역사와 신화가 된 붓다의 모습을 현재에 맞춰 형상화 시키는 모습은 그들의 성지가 '고행'이 아니라 이미 마음에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다. 해골물로 유명한 원효 스님 역시 모은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았나. 편지로 주고 받은 그들의 생각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의 성지, 그 위안의 장소 또한 보이는 것만 같다. 


 종교는 자칫 교조의 역사를 미화시키기 위해 허구적이고 초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설화들이 가지는 전설의 상징성을 잘못 받아들이면 맹신에 빠져 문제가 생기지요. 결과적으로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의해서 오도되어 그릇된 종교관과 인생관을 가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오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간자의 역할이 있어야 하고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 도와주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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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짓 - 일상 여행자의 소심한 반란
앙덕리 강 작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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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서평] 「딴, 짓」 당신의 안전한 열외 




딴, 짓 - 
앙덕리 강 작가 지음/소담출판사



 문예창작과 소설 창작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에 언급하신 소설 중에 유독 인상 깊은 소설이 있다. 이동하 작가님의 단편 소설 「열외」가 그것이다. 워낙 오래된 소설이라 읽어보기 힘들고 검색해도 기사 한 줄 찾기 힘들어 줄거리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략 요약하자면 이렇다. 긴 세월동안 한 회사에 몸과 마음을 모두 받쳐 하루도 빠짐없이 개근한 남자가 있었다. 어느날 그는 난생 처음 일상이라는 정해진 레일에서 벗어나 잠시 나름의 일탈을 하였는데 그 후로 회사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못 알아보고 자신의 자리는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잠시 일탈하는 순간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존재를 잃어버리고 사회라는 톱니바퀴에서 '열외'된 것이다. '일탈'이란 그렇게 무섭다.

 

 일상이란 지루하고 지겹기도 하지만 평온함과 안락함도 가지고 있어 포기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만약 감정이 흐르는 대로 일탈하게 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새인가 '열외'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앙덕리 강 작가님의 소심한 일탈 「딴, 짓」도 그런 무서움을 등에 지고 시작됐다. 나의 의도보다는 타인의 의지가 더 많이 개입된 일상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 가벼운 여행을 떠나자는 이야기다. 남들 모두가 하는 보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정신적인 딴짓을 권유하기도 한다. 그녀의 딴짓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가벼운 아우성과도 같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잠시 벗어나 한가로이 한눈 팔며 마치 관람객이 된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며 딴짓을 하고 싶은 순간, 앙덕리 강 작가님의 「딴, 짓」은 좋은 간접 체험이 된다. 내 감정이 갈증을 느낄 때, 삶이 권태로울 때, 더이상 짜릿한 이벤트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일상을 다르게 사는 특별한 행동 '딴짓'을 해보자. 남이 만들어 놓은 삶 보다는 내가 만드는 삶을 살고 싶을 때 「딴, 짓」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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