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은 #정세랑

🍊 제목에서 오는 친숙하고도 낯설음의 이중적인 느낌 (설자은이란 이름이 이유 없이 너무 좋은데, 돌아왔다고 하니.. 뭔가...). 코발트블루 바탕의 친숙하고도 낯선 표지. 거기에 정세랑 작가라니.. 진작부터 읽고 싶었는데 항상 책은 밀려 있고, 내 정신은 나가 있어서 미루는 줄도 모르면서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도서관에서 얼쩡거리고 있는데 내 앞에 저 설자은 책등이 짠 하고 보이면서 낼름 대출신청을 ^^

🍊 앞 서 표지를 얘기했는데 내 스타일의 표지였다. 사실 나는 꽤 오린 시간 표지의 새를 매가 발톱을 세우고 하강하는 듯한 모습이 아닌 하얀 부엉이 혹은 하얀 올빼미로 알고 있었다 (사실 부엉이와 올빼미가 지금도 비슷하게 생긴 걸로 알고 있다.. 새를.. 잘 모른다...). 그랬더니 책을 읽으며 알았다. 눈이라 생각했던게 발톱이었다는....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는 것인가) 심지어 그 옆의 칼은 지금까지 알지도 못했다가 역시 책을 읽으며 표지에 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인가....ㅠ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저 하얀매와 칼은 큰 상징성을 가지는데, 그 상징성이 책의 끝에 가서야 나온다. 바로 설자은의 앞으로의 활동에 관한 상징성이었다.

🍊 이 책은 역사, 삼국 이후 신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며 또한 추리를 해 나가는 소설이다. 왜 친숙하고도 낯설었는지 네 개의 챕터 중 첫 번째만 읽고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미야베 월드 제 2막‘의 느낌이었다. 오래전 그 시대로 돌아가 추리를 하는데, 그 추리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그 속에 사람들 자신만의 서사가 있고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처연한데 그 속에 따뜻함이 있다. 따뜻함이 있을리가 없는데 그렇다. 하나 하나가 단독적인 이야기지만 묶어두고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미미 여사를 따라했다거나 그런게 아니다. 내가 감히 말하기도 그렇지만, 정말 잘 짜여져 있고 그 와중 여운이 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책의 뒷 쪽 책날개를 보면 이 책이 시리즈로 진행될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현재 3권까지 기획에 된 것 같은데 벌써 2권, 3권이 기대가 된다.

🍊 책에는 총 4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첫 번째인 <갑시다, 금성으로>는 첫 번째 추리이며 주인공인 자은과 인곤이 만나는 이야기다. 여기서 설자은이 원래는 설미은으로 죽은 오빠를 대신하여 가문을 위해 남장하는 여인으로 나온다. 큰 형 (큰 오빠)인 효은 조차 셋째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그 시대엔 그랬나 싶다. 역사라는 게 학교 다닐 때엔 그렇게 싫다가 커서 보면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건데... 지금 신라 생각나는게 골품제가 있었다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도서관서 빌렸다. why 시리즈 ‘삼국의 경쟁‘ ㅎㅎ) 자은이 된 미은이지만, 원래도 자은이 그랬을 것 같기만 하다. 그 시대의 여인 같은 느낌 보다 원래 자은이었던 사람 그 자체다. 남녀를 떠나서 내가 좋아하는 내 취향. 그에 반면 인곤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뭔가 시리즈 마지막 권에 가면 뭐가 나올 것 같은데. 자은만큼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친구(?)이며 식객이지만, 자은 만큼 비밀이 많은 사람. 알고 보니 백제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집단의 수장(이라기엔 너무 혼자 여행하고 있음)이나 왕족이거나... 등등등...

🍊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두 번 째 이야기 <손바닥의 붉은 글씨> 였는데, 완전 이 느낌은 미야베 월드 제 2막 느낌이었다 (비슷하다는 게 아니라, 이 말이 나에겐 정말 최고의 칭찬이다). 정세랑 작가 역시 지금을 만들어준 책에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집>을 들었다. 외딴집... 아 정말 좋지...말투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 심지어 꼭 그렇게 결론을 내려야 겠어라는 처연함까지 모두 돌이켜보니 다 그래야만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 번째 <보름의 노래>나 네 번째 <월지에 엎드린 죽음>이 덜 한 건 아니었다. 특히 네 번째는 설자은 시리즈가 계속 되고, 심상치 않게 될 거라는 걸 보이면서 큰 역할을 한다. 다만 아쉬운 건 선아의 남편인 진오룡을 조금 더 멋있는 사람으로 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 찌질하게 나온 것 같은데 그게 설자은을 더 멋있어 보이게 하지 않는다. 자은을 그렇게 하려고 작가님이 만드신 건 아니겠지만... 차라리 진오룡, 선아, 인곤, 자은 모두 각자의 색깔로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 효은은 진짜 짜증나는데 매력이 있고, 도은도 좋다. 설씨 집안 매력있다. 그러고보면 선아네 친정은 풍지박산 났지만 선아 뿐 아니라 지율, 옥화, 두 가신들까지도 매력있어. 역시 소설은 인물이 매력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 글이.....ㅠㅠ)

🍊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절로 ‘아, 미치겠다‘가 나왔다.


🍊 더더더 마음에 남은 구절들

🍃 자은과 인곤은 함께 생각의 고리를 짚어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각자 서로를 평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41

🍃엎치락뒤치락 없이 명분이 틀림없는 싸움을, 하나의 적과 했더라면, 싸웠던 이들도 지금보다는 평안에 이를 수 있지 않았을까?
˝지옥에서, 지옥으로……………˝
끔찍하게도 그것이 김무헌의 마지막 말이었다.
143

🍃하지만 나도 잃은 과거에 잠겨버리는 쪽을 택했네. 앞서 이끌던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멈춰 서면, 뒤따르던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방향을 바꿔 꼬리가 될 수밖에 없지.
154

🍃잃은 것을 잃은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괴롭지요. 무엇을 잃었는지 아는 쪽이 낫습니다.
172

🍃˝으...... 어울리지 않아. 전혀 어울리지 않아. 나는 설자은이 데면데면해서 마음에 드는 것이네. 잘 보관한 맵쌀처럼 습기가 없는 게 좋아. 제발 다시는 그러지 말게.˝
198

🍃˝자네에겐 그런 사람이 있나? 그렇게 어긋난 일도하게 만들 만한 이가?˝
자은이 기대하며 묻는 것 같아, 인곤은 바로 떠오른 답을 전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그런 이가 있는 자가 부러움을 살 자인지, 없는 자가 두려움을 살 자인지 모르겠네.˝
212

🍃˝설자은.˝
자은의 이름을 불렀다. 자은이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형편없게 나와 혀를 깨물었다.
˝나의 흰 매가 되어라.˝
284

🍃 작가의 말
제가 쓴 이야기는 앞서 읽은 이야기들에서 태어났을 겁니다. 장르문학의 근사함은여러 시대의 작가들이 크고 높은 탑을 이어 쌓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작은 돌을 보태고 싶습니다.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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