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는 고로엔 해변에 고양이를 내려놓고 안녕이라 말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전거에서 내려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하는 기분으로 현관문을 드르륵 열었는데, 조금 전에 버리고 온 고양이가 "야옹" 하면서 꼬리를 세우고 살갑게 우리를 맞았다. 우리보다 앞서 집에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돌아올 수 있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자전거를 타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참이나 둘이, 아무말을 못 했다.
- P15

그런데 왜 그 고양이는 해변에 갖다 버려야 했을까? 왜 나는 그 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그건-고양이가 우리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 지금도 하나의 수수께끼다.
- P16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거대한 혼란과빈곤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기를 쓰고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런 더없이 불운했던 세대의 아주 미미한 일각을, 아버지 역시 남들처럼 짊어지게 된다.
- P20

그러나 아버지에게 그체험은 소년 시절의 마음의 상처로 어느 정도깊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뭐가 어째서 그렇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아버지에게 그런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
해변에 버렸는데, 우리보다 앞서 집에 돌아와 있는 고양이를 보고 어리둥절해하던 아버지가 마침내는 감탄하고 그리고 안도하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 P33

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 P35

중국 병사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그저 눈을 감고 조용히 거기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참수되었다. 
- P48

하나의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것을 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 P51

그렇다 보니 아버지는 내게 만성적인 불만을  품게 되었고, 나는 만성적인 고통(무의식적인 분노를 포함한 고통이다)을 느끼게 되었다. 
- P61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62

당시 상황으로 봐서 이렇게 애국적인 시를 읊을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거기에서, 특히 ‘또다시‘라는 말의 이면에서는 어떤 유의 체념 같은 심정이 어른어른 엿보인다. 본인은 아마 일개 학도로 조용히 생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격류는 그에게 그런 호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 P66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P87

이렇게 개인적인 문장이 일반 독자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것을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태생이 추상적, 관념적으로 사색하는 것에 서툴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환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P88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아닐까.
- P93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 P93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저 먼 아래,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가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 P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