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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곳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미숙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5월
평점 :
기술의 발달은 독서의 패턴도 다양화시켰다.
종이책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읽을 수도 있고, 오디오 파일로도 책을 '들을' 수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독서 방법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은 모두가 대동소이할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이 책을 통해 목적별 독서법을 알려주고 있다.
소설과 전공서를 읽는 목적은 다르다.
목적이 다른 만큼, 그 방법도 다르다.
사고를 키우기 위해, 지식을 늘리기 위해, 인생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읽는 것과 책을 읽는 것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콘텐츠를 '대하는 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읽을 때는 콘텐츠에 차분히 집중하기보다는 금세 다음으로 넘어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하나의 콘텐츠를 깊이 들어다보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는 것이다.
같은 글이라도 어떤 매체를 통해 접하느냐에 따라 관심이 깊이가 달라진다.
왠지 인터넷으로 접하는 글은 가볍게 대하고, 종이로 된 책은 진지하게 본다.
물론,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이다.
비단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작품은 술술 읽히지 않는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생각하게 되어 좀처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을 때도 있다.
'이제 얼마나 남았나... 아직도 다 못 읽었네' 하고 몇 번을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 역시 독서다.
머리가 아늑해지는 느낌마저도 겁내지 말고 깊은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까짓, 덤벼봐야지'하고 경의를 담은 무사의 마음과 자세로 앞으로 나가보자.
고전이라고 하는 책 중에서 쉽게 읽혀지지 않는 책들이 있다.
난독증이 의심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고,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그럴때 '다음에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그 책을 접었다.
책꽂이에 이런 책이 몇 권 있다.
이 글을 보니 다시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번에는 접지 않을 수 있을까?
사고를 심화시킬 때 중요한 것은 자신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는 것이다.
글을 읽고 '그런 뜻이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건 내 경우에 무엇에 해당될까?' '나였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와 연관되어 생각해 보는 것.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인데, 하지 못하고 있다.
'다독다작다상량'이라고 했다.
많이 보는 것만큼 많이 생각을 해야 한다. 나와 연관시켜서...
사고를 심화시키려면 대화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책을 읽은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라고 권하고 싶다.
상대방이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하지 못한다면 이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해한다'라는 말의 기준이 뭘까?
난 남에게 충분히 쉽게 설명할 수 있는가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머리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대화를 하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쯤 지나 다시 읽어보면 과거에는 몰랐던 부분이 이해되거나 납득되기도 한다.
좋은 작품에는 그런 깊이가 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다.
잘 이해되지 않아도 마음에 계속 남으며, 어느 날 문득 '그런 의미였구나'하고 깨닫게 되기도 한다.
애매하고 아리송한 느낌도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책들이 있다.
나에게는 삼국지, 어린 왕자가 그러하다.
그렇기에 다음에 읽을 때는 어떤 느낌을 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독서는 자신과 다른 관점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을 때 의식해야 할 것은 '저자의 눈'으로 보는 일이다.
자신과 관점이 달라도 일단 저자의 눈으로 책을 읽어보자.
그것을 반복하면 관점이 중층적이고 다각적으로 바뀐다.
한 점에 머무르지 않고 두께와 깊이, 넓이를 가진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내'가 아닌 '저자'의 관점에서 책을 본다면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관점의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런 관점의 변화가 책을 읽는 목적 중 하나가 아닐까.
다양한 책읽기 방법을 볼 수 있었다.
'책을 본다'는 것은 '글자를 본다'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