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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월
평점 :
모든 생물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준비한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최대한 늦게 맞이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 책의 저자, 김범석님은 서울대학교 종양내과 의사이다.
쉽게 말하면 암병동 의사이다.
하루에도 수십명의 암 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고싶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그들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며 사는 건 의외로 쉽지 않다.
사회에 발들이고 나면 먹고사는 일에 힘쓰느라, 눈앞의 현실에 치여서 스스로에 대해 물을 여력이 없다.
물어서 답을 안다고 한들 훌훌 털고 내 멋대로 살 수도 없는 일이다.
당장 오늘 뭘 먹을지, 뭘 할지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마지막 문장의 사치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평온하게 보내는 오늘이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보고자 했던 내일'이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일을 겪게 되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잠시일 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하루하루를 '먹고 사는'데 정신을 쏟는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행복하고, 잘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나온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리셋 버튼이란 건 없다.
결국은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부러웠다는 이야기다.
그 같은 변화가, 삶을 대하는 깊이와 여유 있는 태도가.
그럼에도 나 자신을 다독였다.
아직은 내가 그 같은 리셋 버튼을 만나지 못한 것뿐이라고.
언젠가는 나 역시 그 같은 순간을, 무엇인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리셋.
지금 과감히 자신의 인생에 대한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있는가?
리셋이라 함은, 지금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크고 작은 자신만이 지켜야 할,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기에 리셋 버튼이 있어도 쉽게 누르지 못한다.
리셋 버튼을 만난다는 것은 더 이상 잃을게 없다는 것일게다.
리셋 버튼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다만 보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고, 보이더라도 '아직은' 누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누르지 않는 그 용기 또한 아직은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내가 판단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내게는 의미 없어 보이는 삶도 당사자에게는 의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고 스스로를 잃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채 단지 '살아만' 있는 환자들을 마주할 때, 내가 그 같은 시간을 늘려온 것은 아닌지 책임과 죄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이번에도 알 수가 없었다.
'살아있다'의 기준이 무엇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단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인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사람마다 그 기준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겪고 있느냐, 타인이 겪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식들이 부모를 떠나보내기 싫어 생명 연장을 위한 각종 의료행위를 한다.
자식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인 부모 입장에서는 표현을 하지 못할 뿐 엄청난 고통이 될 수도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효도일까?
이 부분을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란 생각을 해 본다.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아마, 닥치는 그 순간에도 지금처럼 많이 갈등할 것 같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서 대답할 차례다.
이 부분을 보면서 갑자기 떠오른 노래가 있다.
신해철의 '우리앞에 생이 끝나갈 때'.
지금 그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 생을 보면서 내 남은 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책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아직 남아 있는 나의 인생을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살아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나의 생각을, 감정을 전달해야겠다.
"오늘의 나에게, 내일의 너에게(Hodie Mihi, Cras Tibei)"
한동일 선생의 저서 '라틴어 수업'에 있는 글이라고 한다.
내일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궁금한 사람은 꼭 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