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의 사회학 - 디자인으로 읽는 인문 이야기
석중휘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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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가 독특하다.
스스로를 '호구'라 말하고 있다.

호구 : 어리숙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초록창 사전에서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스스로는 표현하기에 결코 적합한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호구(?)라 말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디자이너이다.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작가이기도 하다.
이력만 봐서는 대단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책을 보고나니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의 착하게 살기 위한 행동들이 '호구'로 보여지는 것 같다.
더구나 '을'의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기가 좋다.
단지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나누려고 한 것 뿐인데.

어쩌면 말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오류는, 이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 배려라는 삶의 의미로부터 말이다.
이유는? 그래야만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또 그래야만 비천하게라도 삶이란 걸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늘 안타깝다.
이 배려를 위해 소모해야 하는 시간이, 또 그 시간의 힘겨움과 싸워야 하는 우리네의 삶이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는 그 '차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성적순으로, 재산순으로, 명예순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높은 순서로 올라가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비천하게라도'라는 단어가 왜 내 가슴에 박히는건가?

우리의 세상 역시, 그때의 그들처럼 새로운 변화를 원했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다양성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러해서 권력은 흔들렸고, 사람들은 파편화되었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렇게도 원했던 자유의 모습을 갖춘 채.
그러고는 서서히 잊혀져갔다.

B급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세상의 질서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를 지원하고 뒷받침한,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민중들의 피와 땀이 만들어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후세들에게 물려줄 세상은 우리들의 노고로 만들어진다.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도전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며, 실수는 내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지금의 대학은 말이다.
상대평가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가 곧 상대와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즉 성적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해서 지금 대학은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
남들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그런 비정한 의미의 장소로.
그래야 나의 성적이 올라간다.
그래야 내가 취업을 할 수 있다.

너무나 현실적인 글이다.
그리고, 너무나 마음 아픈 글이다.
우리가 물려줄 세상은 이런 세상은 아니였는데... 너무 미안하다.
굳이 낭만까지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청춘을, 그 아까운 청춘을 이렇게만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책임지지 못할 것이기에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하겠다.

다양한 사회, 문화적 주제를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고 있다.
아무도 호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고, 을이 되고 싶어 하지 않고, 약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호구가 되고, 을이 되고, 약자가 된다.
왜? 도대체 왜?

'착함'이 '호구'와 동의어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착함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착한 행동을 점점 더 보기 어렵다.

모두들 착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착한 사람인가? 나는 호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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