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거 대디 자본주의 - 친밀한 착취가 만들어낸 고립된 노동의 디스토피아
피터 플레밍 지음, 김승진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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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슈거 대디'는 앱 이름이다.
데이팅 앱의 하나인데, 설계 당시부터 '돈'을 목적으로 한 만남을 부정하지 않는다. (권장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가 '원하는 것'을 거래하는 것이다.
그것이 돈이든, 성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이 책 '슈거 대디 자본주의'는 현재 가장 널리 퍼져있는 신고전파 자본주의의 맹점을 파헤치고 있다.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돈'을 매개로 한 거래-그 형태가 '고용'이든, '만남'이든-를 위해서 점점 개인의 의사가 박탈당하고 있는 실정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말하는 '공유 경제'의 플랫폼 기업들이 이러한 고용(?)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직접 고용이 아닌, 개인 사업자 형태의 고용 형태이다.
자신이 일한 만큼의 수당을 가져가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한 제반 장치나 위험은 고스란히 근로자의 몫이다.
즉,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들고, 관리도 수월한-거의 안하는- 형태의 근로 형태이다.

우버는 개별 운전사들에게서 합의 사항에 대해 동의를 얻는 방식을 취한다.
합의 사항은 언제라도 변경할 수 있지만 그 변경이 운전사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합의는 유령 계약처럼 작동하는데, 이는 더 강력한 통제를 발휘한다.
이것이 사실상 '계약'이라는 데서 오는 강제성과 구속력, 그리고 '합의'라는 느슨한 형태가 함의하는 불안정하고 비공식적인 재량의 여지가 결합돼 있는 것이다.

현재 우버가 취하고 있는 합의 사항은 '계약'의 장점과 '합의'의 장점을 모두 취하고 있다.
이는 개별 근로자와 회사가 거래하기에 가능하였다.
이런 부당함을 안 근로자들은 뭉쳐서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우버는 다른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비단 우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공유 경제 플랫폼의 근로자들도 이들과 다를 바 없다.
이미 많이 이슈화되기 시작했고, 배달의 민족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한때 깊은 관심을 가졌던 자포스의 홀라크라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직원의 자율이 보장된 경영방법이기에 속으로 많이 응원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니 안타깝다.

자포스 직원들의 탈출 러시가 언론에 널리 보도되자 어떤 사람들은 이를 자본주의 비판자들이 결코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냉정한 사실을 입중해주는 사례라고 봤다.
노동자들이 실은 위계를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다.
권위와 위계의 구조를 노동자들이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느끼며 그런 구조는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이런 억지가 정당화되지 못하도록 훌라크러시는 성공했어야 했다.
지금도 다양한 새로운 조직 형태가 시도되고 있다.
위와 같은 논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소위 '유연' 고용 시스템은 하루 노동시간을 상당히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노동자가 보수는 구체적인 작업량에 따라 받지만 늘 대기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주가 커다란 파이를 가져간다.

비용의 상당 부분을 노동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정해진 시간 동안 노동의 밀도를 높이는 것보다 산출을 늘리는 데 더 효율적이다.
이 모든 것이 고용주에게는 좋지만 그 밖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많이 든다.

이것이 공유 경제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기업은 언제든 근로자를 호출할 수 있으며, 사용한 시간만큼의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고용주에게 이보다 더 좋은 근로자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24시간 쉬지 않고 일을 하지 못하고, 숙련된 노동자의 인건비가 높아지기에 고용주들은 이런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로봇이나 기계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시장 개인주의는 '자유로운 선택'과 별로 관련이 없다.
진짜 자유는 이탈의 자유와 결정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되는 자유는 가짜 선택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고용주에게 파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이것도 여전히 그의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선택이 실제로 일어나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과 캘리포니아의 경영자들 모두가 개인주의적인 자유를 계속해서 집착적으로 찬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탈의 자유'와 '결정하지 않을 자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둘에 대한 자유가 없다.
이 자유의 행사는 곧 근로의 자유, 해고를 뜻하기 때문이다.
계약에 의한 노동은 물론이고, 기재되지 않은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고용주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당한 계약, 슈퍼 대디 자본주의이다.


위의 내용이 긱이코노미 노동자의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산업 사회 초창기이 노동형태와 비슷하다니 놀랍다.
노동형태도 역사처럼 돌고 도는 것인가?

자동화가 꼭 일자리 자체를 없애지는 않는다 해도 노동이 탈공식화를 중대하게 촉진하기는 한다.
이는 세 단계로 이뤄진다.
첫째, 디지털화는 인간 노동자의 필요성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지만 인간 노동자를 그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역량에서 분리시킨다.
둘째, 그에 따라 업무 전문성이 덜 요구되면서 그 일자리는 저임금 일자리가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됐기 때문이다. 비정규 노동력과 온디맨드 방식의 계약 노동력을 쓰는 것도 가능해진다.
앞에서 봤듯이, 이런 방식은 직업을 탈전문하고, 상사와 '잘 지내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중차대한 문제가 되게 만든다.
셋째, 직업의 특질 중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는 부분은 그 속성상 매우 사회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야기될 일자리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없어지는 일자리도 있겠지만, 위와 같이 변하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변화에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저자는 마지막에 그 해결책으로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위기의 기저에 있는 탈공식화 경향을 꺾는 것과 관련해 네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경제적 빈곤을 없애자.
둘째, 사기적인 자가 고용과 제로 아워 계약을 불법화하자.
셋째, 공공 영력을 탈민간화/탈개인화하자.
넷째, 노동 제도를 탈중심화하자.

이는 개인의 노력보다는 국가, 기업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슬프지만,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다.

얼마 전 택배 직원의 과로사가 큰 이슈가 되었다.
또 하나의 슈거대디 자본주의의 부작용이라 볼 수 있다.
하루 빨리 이런 부작용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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