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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ㅣ 가랑비메이커 단상집 1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0년 9월
평점 :
처음 이 책의 띠지를 보고 놀랐다.독립출판물임에도 10쇄 개정증보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출판시장은 참고서를 제외하면 그리 크지않고, 그 시장도 기라성같은 출판사들의 대형출판물로 가득하여 독립출판물이 설 자리가 크지 않다.
그런데 5년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자리를 잡고 있다니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가랑비메이커'라는 이름을 보고 저자가 아니라 출판사인줄 알았다.
가랑비를 만드는 사람?
필명이 독특하다 생각했는데, 글을 보고나니 충분히 이해되는 필명이다.
소나기도 아닌 가랑비를 만드는 사람.
글과 참 어울리는 필명이다.
삶이란 영화에 나레이션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은 어떤 문장이 되어
당신에게 전해질까.
첫 페이지부터 멍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지금 이 순간은 영화의 어디쯤이고, 어떤 장면이 보여질까?
밋밋한 모노드라마속에서 관객은 무엇을 느낄까?
출발점에서 멀어진다고 목적지와 가까워지는 게 아니었다.
멀리 나아갈수록 되돌아 가는 길을 찾기란 더욱 어려웠다.
긴 시간을 되돌아가며 나는 깨달았다.
젊음의 때에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방향을 잃은 채 내달리는 수고에 중독되지 않는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중독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되는줄 알았고, 대부분 그러하였다.
누군가 정한 목적지라도 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목적지도 없이 일단 앞으로 내달렸다.
젊음이였기에 그 속도는 좋았으리라.
어느 순간 멈춰보니 어디인지로 모를 곳에 나 홀로 서 있었다.
어찌어찌 지금 여기까지 와 있지만,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든다.
정말 어땠을까?
닫힌 문 앞에서 시간도 잊은 채
열리기만을 기다린 적이 있다.
두드려도 보고 소리쳐 보기도 했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
문이 열렸고 그때 알았다.
닫힌 것들에게도 꾹 다물고
열지 못했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어떤 문은 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닫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문은 열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닫기 위해서 필요한 문도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토록 오랫동안 열리기를 갈망했던 문이였는데, 막상 열리니 닫혀있음이 옳았음을 알게되었다.
가끔은 닫혀 있는 문이 고마울 때가 있다.
언제부턴가 나도 이뤄낸 것도 없이
너무도 바빠졌고
내가 그리워하던 이들에게
야속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바쁘단 핑계로 안부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늘 감사하고 있음을 더 늦기전에 전해야겠다.
더 야속한 사람이 되기 전에...
한줄을 읽는다.
다시 그 줄을 다시 읽는다.
도돌이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다시 읽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런 날에는 조금씩 흩뿌리는 비가 내려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