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Young Adult 세계명작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양정화 엮음 / 꿈꾸는아이들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아쉬운 것은 완역본이 아니라, 어린이들 대상으로 나온 책 같다는 점.
  완역본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지루할 수 있는 고전을 
  간단하고 매끄럽게 읽을 수 있었기에
  어린이 대상으로 나온 책을 읽는 것도 꽤 괜찮다는 느낌.


  
  나는 허세를 부리는 소설, 지나치게 감상적인 소설을 싫어한다.
  내가 너무 건조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걸까?

  이렇든 저렇든,
  난 대중적 연애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오바스러운 감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렇지만 순정만화엔 가슴떨린다. 난 뭘까)


  명작이라고 불리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면서 분노했다.
  그의 마음에 공감해서 분노한게 아니라
  
  아 이 주인공은 뭐야-_- 정신병자임?
  이런 생각이랄까.

  지 혼자 슬프고 지 혼자만 세상 모든 고뇌를 다 짊어지냔 말이다!!
  암튼 너, 싫다 베르테르 싫어!


  가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언제나
  "베르테르, 넌 싸이월드에 글이나 써!!!!" 하면서 흥분하고 만다.

  
  그런데 내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너무 싫다고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럼 넌 위대한 개츠비도 싫냐?"라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안 읽어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대체 이 소설이 어떻길래 
  개츠비도 싸이월드에 글이나 써야할까? 
  싶었다.



  소설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은,
  스콧 피츠 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쓴 후에
  미국의 대표적 작가가 되었다는 것,
  위대한 개츠비가 당시 미국의 사회상을 너무도 잘 묘사했다는 것,
  어쨌거나 명작 중의 명작이라는 것.


  그리고 읽고 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은
  내가 그렇게 넊 빠지게 보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각본을 스콧 피츠 제럴드가 썼다는 것!
  이걸 왜 그땐 몰랐지.



  
  읽으면서 계속 들던 의문은,
  어떻게 개츠비와 베르테르가 같다고 사람들이 느끼지?
  하는 거였다.


  개츠비에서 화자는 옆집사는 남자 캐러웨이이다.

  그가 개츠비의 이야기를 전해주니까
  감상적일 수 없다.
  개츠비 속의 엄청난 격동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소설은 건조했다.


  화자가 개츠비를 이해하면서, 나도 같이 개츠비를 이해했다.


  무엇보다, 개츠비는 '람세스'처럼 잘나기만 한 인물도 아니고
  (여기서 또 등장한다. 내가 싫어하는 소설 람세스. 어떻게 인간이 한 번도 실패를 안 하니)
  '베르테르'처럼 감상에 젖어 끙끙대기만 하는 인물도 아니다.
  사랑의 열병을 앓지만 행동에 옮긴다.
  

  그녀의 집이 바라보이는 집,
  그녀의 사촌 옆집을 사서
  저 멀리 그녀가 살 집의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는 개츠비를
  비웃거나 경멸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아련해질 뿐이다.


  그의 치기와 격렬할 감정들을
  화자가 걸러주니 
  난 오글거리지 않고 개츠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
  다음번엔 완역본으로
  혹은 영어를 열심히 해서 원작그대로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베르테르 얘기와 개츠비를 함께 엮던 사람들과
  또 다시 책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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