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치와 진리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9
김선욱 지음 / 책세상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다들 입문용으로 추천한 책 '정치와 진리'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내가 어렴풋이 정치란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많은 생각들이
맞거나 틀렸다는 것, 본질적으로는 같더라도 가는 길에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정치란 다양성을 기반으로, 서로 대화를 통하여 각자의 다름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진리와는 다르며 지금 정치에서 최고로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경제'와도 무관하다.
또한 (조금 충격적이게도) 도덕과도 무관하다.
정치는 공적인 것, 사회적인 것(경제)을 끌어들이면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 살짜쿵 태클,
이 책에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고, 그 당시 사회적이란 말로 잘못 번역이 되었고 실은 "정치적 동물이다"가 맞다고 한다.
물론, 이 책이 '사회적인 것'을 아주 좁은 의미로 보기 때문에 어떤면으로는 이 책의 서술이 맞다. 사회적인 것을 경제적인 것, 먹고사는 문제에 치중하는 것으로 본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본질이 그것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것에는 광의의 의미도 있다.
정치경제를 모두 아우르는 것을 현대에서 '사회'라고 하거든.
사회학과로서 괜히 울컥했다.
진리란 설득의 영역이 아니고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법칙이다. 경제 또한 설득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를 진리의 영역으로 보는 오류는 아주 옛날부터 있어왔다.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철인이 해야한다고 믿었던 플라톤부터, 정치를 단 하나의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로 정치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이지.
그렇지만 정치는 다양성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활동이다. 효율성으로 다가가면 안 된다.
그래서 얼핏 보기엔 조금 쓸데없고 짐스럽다.
정치가들이 비싼 세금 받아먹으며 한 안건을 가지고 몇날 며칠 싸우는 모습이 꼴보기 싫다.
그렇지만 비효율적이라고 정치를 없애고 누군가가 효율적인 하나의 관례로 처리할 때, 우리들의 본질적 자유는 어디로 가는가. 짐스럽고 쓸데없어 보이더라도 참아줘야 한다.
정치는 다양성을 극대화시키는 행동이다. 그 다양성 속에서도 하나의 의견이 모여진다. 우리는 그 의견이 '진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설득과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타당한 의견'이다.
이 타당한 의견은 다수결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의견이 타당하려면 자기 자신의 이익에서 벗어나 '비판적 거리'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 무조건 눈 앞의, 나만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타당한 의견이 될 수 없다.
의견을 타당하게 만드는 데는 '원리'가 작용한다. 동정이나 감정이 우리를 하나로 모으기 쉽지만 동정은 어떤 행위를 구체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다. '원리'에 따른 결속이 행위를 이끌어낸다.
나는 책을 읽으며 많은 혼란에 빠졌다가 다시 나왔다가 다시 빠졌다가 했다.
내가 내심 존경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언제나 주장했던 것이 '도덕성, 원칙'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가 옳다고 여겼던 것이 사실 정치에선 옳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니.
책에 이런 구절도 나온다. '인기에는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정치가의 말이 얼마나 황망한 것인지. 정치란 것이 합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기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인기, 즉 합의를 얻지 못한 정치가가 어떻게 정치가일까.
그래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책은,
그 인기라는 것이 꼭 현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인기가 아니라, 훗날 얻어질 인기를 의식하고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만약 어떤 정치가가 현재에는 반대가 심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정책을 무리해서 펼치고자 한다면 그는 미래의 인기를 염두에 둔 것이다.
또 도덕성에 대한 해명도 나온다. 정치는 도덕의 법칙과 무관하다. 도덕 또한 하나의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성이 부족한 정치가는 사람들의 합의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도덕성과 정치의 관계는 생각보다 가깝다.
그리고 원칙 중시. 상황에 맞게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기 보다 원칙을 따른 그 사람. 나도 언제나 원칙을 중시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원칙을 하나의 진리처럼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이다(적어도 정치에서는 말야). 내가 말하는 원칙을 이 책에 나온 '원리'와 거의 동의어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어떤 일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감정과 지역성을 넘어 원리 원칙으로 평가해야 한다. 원리, 원칙은 정치에서도 삶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의견을 '원리가 이런 거니까 대들지마!'하는 태도로 밀어부칠 때 문제가 된다.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이다.
정치는 설득과 동의를 통해 얻어진 합의와 연대가 힘이기 때문에
권력은 다수의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정치는 수단일 뿐 변치않는 잣대가 아니다. 정치를 통해 만들어진 법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법을 어기는 사람이 많다면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법이 잘못된 것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법이 더 이상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지 못하므로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은 법과 정치를 절대적이라 생각하면서 비판없이 따르지만
그 법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고 고칠 수도 있는 것이다.
 |
국민들이 법을 준수하고 국가의 명령에 따르는 이유는 그 법이 자신들의 동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며,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법을 동의했고 국가 명령을 그 동의의 연장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
 |
|
페이지 : 119 |
|
하지만 가끔, 바보같은 정치인들이 있다.
우리가 합의와 동의를 주어 뽑아 주었는데, 즉 권력은 우리가 빌려줬는데
원래부터 지껀 줄 알고 날뛰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 일임한 권력이라면 지들이 맘껏 써도 되는 줄 아는 정치가가 있다.
그래서 권력을 준 국민들을 강제력으로 주무르고 억압시킨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정치적 현상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명문화된 법이 더 이상 공동의 의지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법과 시민의 의지사이에는 긴장감이 형성된다. 이 긴장감의 순간은 법의 정당성을 검증하게 하는 긴장감이고, 진정한 권력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긴장감이다. 법이 더 이상 시민의 의지를 반영하지 않을 때 법은 시민에게 폭력적 행위를 가해서만 자신의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설득적 힘을 잃어버린 법이 단순한 법조문에 의거해 시민의 행위를 제약하려 할 때, 시민의 입장에서 그 법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근본적으로 제기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혁명의 순간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정치적 권력과 폭력의 배타적 관계를 볼 수 있다. 양자의 배타적 관계란, 권력이 극대화된 경우 폭력은 최소화되며, 반대로 권력이 최소화된 경우 폭력이 최대화되는 현상이다. 국가가 어떤 명령을 내릴 때 시민이 자발적으로 따른다면 폭력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명령을 시민이 따르지 않는다면 국가는 공권력의 이름으로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 |
 |
|
페이지 : 120 |
|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그렇게 억압하는 당신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최소화된 권력으로(국민들이 더 이상 동의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현 정부가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려 한다면, 그리고 국민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일면적 잣대를 저리로 치우고 유연한 자세를 가진다면
국민들은 동의와 지지를 줄 것이다.
그런데 왜 높은 사람들은 이 쉬운 걸 모르는 거야=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