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와 클로버 세트 1~10(완결)
우미노 치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이 만화를 처음 만난 건 부끄럽게도
불법 다운로드 스캔 판.


이제야 장만하게 되어 누군가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작품은 진작 사줬어야 하는 건데, 만화책을 사는 건 아무래도 그냥 책 사는 것 보다 훨씬 고민스럽다. 눈치도 보이고ㅋ



내 주위엔 오타쿠들이 조금 있어서 그 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만화를 보면 후회하지 않는데, 이 만화도 한참 그러던 중.
(여담이지만 내 주위의 오타쿠들은 안경 뚱땡이 이미지가 아니다;
이 만화의 하구미 처럼 생긴 동그랗고 귀여운 소녀라든가,
여자보다 더 곱게 생긴 남자애라든가.
외모 지상 주의라는 거 참 슬프지만, 왠지 이 들이 오타쿠 짓을 하면 사람들은 귀엽고 신기하게 본다. 만약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외모가 별로인 사람들이 그러면 치를 떨면서 말야. 나도 사람들의 눈에 조금은 마니아틱한 인간으로 비칠터인데, 난 어떤 이미지일까.)



동네의 만화방이 하나 둘 닫아가고, 원래 가던 조그만 만화방(만화도 몇 개 변변찮게 없었다)도 드디어 닫아버렸다. 동네를 뱅뱅 돌아도 만화방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도 돈이 없기는 매 한가지지만 그 땐 더 했다.
만화를 보고 싶다고 후딱 사서 읽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지금도 몇 번 읽은 만화 아니면 살 수 없다. 샀다가 배신감이 들면 그 다음엔 어쩌란 말야 ㅠㅠ 나에겐 아직 만화책 한 권 값도 크다.



밤을 새워가며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뭔가를 해야만 하고,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서글펐다. 
그냥 끝 없이 어린아이로 살고 싶었다. 매일 매일 먹고 자고, 읽고 싶은 걸 읽고 보고 싶은 걸 보고 밤낮없이 헤헤 거리며 살고 싶었다.


그 낭비하는 시간의 99%는 정말 먹고 자고 읽고 보았다.
나머지 1%의 9할은 나를 혐오했고 겨우 1할을 고민하는 데 썼다.
정말 아깝게 보내버린 시간일지도 모른다.
(뻔뻔하게도 그 시간이 참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중)





아주 선명하고 뚜렷한 목표, 대학이라는 목표를 좇아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 뚜렷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없던 대학이란 곳은 
사실은 신기루였다. 


전공은 꽤 재미있지만 아무 압력도 없었다면 내가 정말 이걸 배우려 했을까?
아니 대학에는 가려고 했을까? 
공부하기가 죽기보다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심지어는 사람도 만나기 싫고 밥도 먹기 싫었다. 




그러던 차에 이 만화를 읽게 된 거다.

처음에는 생각없이, 아무 내용도 모르고 읽게 되었다.
모리다의 개그 캐릭이나 귀여운 하구미에게 빠져 킥킥대며 읽었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얽히고 섥혀 있지만 그냥 그렇고 그런 만화의 특성인가봐, 하며 생각없이 읽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심각하게 몰입하고 있었다.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만 같아 울먹이며 읽고 있었다.



특히 나는 
다케모토에게 극심한 동질감을 느꼈다.

운이 좋아 대학이란 곳에 들어왔지만 머리도 별로 좋지 않은 것 같고, 전공에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하다못해 공부하겠다는 열정도 별로 없는 나.
그리고 만드는 것이 좋아 미대에 들어갔지만 모리다와 하구미의 재능에 압도당해 버리는 다케모토가 너무 비슷한 거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쩔쩔맨다는 점도.




하구미를 좋아하지만 자신감이 없어 지레 포기해버리려고 하는 답답함,
그 착해빠진 얼굴과 행동에 왠지 내 가슴이 찢어지더만.

그가 쌓는 ’청춘의 탑’에 마음이 아렸고 대책없이 떠나버린 자전거 여행에 가슴이 설레었다.

다케모토가 성장해 나갈 수록 
왠지 나도 커 나가는 것 같았고
다케모토가 드디어 땅끝에 닿았을 때
내 가슴이 뻥 뚤린 것 같았다. 


밤을 꼴딱새우고 아침 일곱시쯤 이었을 거야.
이 맘 때, 아침 공기마저 찌는 여름이었어.  
이미 훤해진 방안, 밤을 새워 띵한 머릿 속으로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어린 애처럼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었다고 내가 갑자기 의욕이 생기고 뭔가를 찾은 건 아니었다.
이걸 읽은 이후로도 한참을 방황했지만 (그리고 남들이 보면 나는 아직도 방황 중이지만) 그래도 이 책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다케모토의 말 처럼, 텅 빈 가슴을 가지고 밤을 새우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 때의 느낌은 이내 잊고 말았지만
내 무의식 속 어딘가에서 계속 힘이 되어 주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아주 작은 전진이라도 할 수 있게.



어쩌다보니 다케모토의 이야기만 쓰고 말았지만
허니와 클로버의 인물 중 어느 한 명도 미워할 수 없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극명하게 나뉘지 않는, 나쁘기만 한 사람도 착하기만 한 사람도 없는 게 바로 삶이 아닐까. 

완벽하기만 한 사람도 없고, 재능이란 것도 절대적인 건 아니다.



재능이란 게 없는 나로서는 
하구미나 모리다가 얄미워야 할텐데 그렇지만도 않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그들 만의 슬픔이 있다는 걸, 짊어져야 할 몫이 크다는 걸 알았달까




자신의 감정대로만 살 수 없다는 것
좋아하지는 않지만 돌봐주고 싶은 마음들, 
사랑하지는 않지만 고마운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 행운,
봐주지 않는 사람을 향한 사랑, 
청춘의 방황, 방황, 방황.


이 모든 것이 복잡하고 또 질서있게 
아주 잘 짜여진 무늬 양탄자나 화문석처럼 
이야기와 감정을 직조해낸 만화가 ’우미노 치카’야 말로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하지만 언제나 책 날개엔 ’앞으로도 더욱 더 열심히 할께요’라는 말이 적혀 있다.




지금은 그 때보다 조금 어른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해 보았고 
그보다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철 없고 여전히 늦잠을 자고
여전히 계속 놀고만 싶지만.

어쩌면 하고싶은일이 무언지 결국 찾지 못할지도 몰라. 
하나모토 교수님 말처럼 ’어른이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야’
산다는 건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할게요’가 답일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지.


하구미가 다케모토에게 빌어준 행복, 
마치 나에게 빌어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하루만에 일본 만화를 10권 봐서 그런지
왠지 일본번역투로 글을 쓰는 것 같은 나의 니글니글한 서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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