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보그지만 괜찮아 (2disc)
박찬욱 감독, 임수정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가끔 어떤 영화는 터무니 없이 저평가될 때가 있고
 한 쪽에서는 극찬을 받고 한 쪽에서는 혐오당하기도 한다.
 나에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아주 좋은 영화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영화.


 그렇지만 역시 나는 나고, 내가 좋은 게 좋은 거다.
 나 자신의 취향이 최고라고 믿어야 행복하다는 일념으로
 이 영화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을 나 또한 이해 못하겠도다.
 이런 마음으로 리뷰 시작~!



 먼저 한 마디로 말 하자면
 이 영화는 사랑영화다. 
 (모 사이트의 별점을 둘러보니, 혹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 '청춘영화'라고)

 그것도 아주 지독한 사랑영화.


 그런데 사랑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그런 사랑 영화.
 왜냐면 이 영화는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거든. 
 우리가 모두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랑의 본 모습.



 주인공 영군(임수정)과 일순(비)은 정신병원에서 만났다.
 영군이는 자기가 싸이보그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쥐라고 생각했던(정신분열증 때문이다) 외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외할머니를 잡아간 하얀맨(의사,간호사)들을 죽이고 할머니에게 틀니를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하얀맨을 동정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일순은 어릴적 자신을 떠나버린 엄마 때문인지 반사회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유없이 모든 것을 훔치고 화를 내기도 한다. 동정심, 감사하는 마음 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엄마 얘기를 하면 발끈하며, 언젠가는 자기 자신이 점보다 작은 존재로 소멸해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더더욱 뭔가를 훔친다.



 하얀맨을 죽여야 하지만 하얀맨들에게도 할머니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주저하는 영군이는 일순에게 동정심을 훔쳐달라고 한다.


 동정심을 훔쳐서일까? 일순이는 영군이가 너무너무 불쌍해보인다. 너무너무 안되 보인다. 
 자기가 싸이보그라서 밥을 먹으면 고장난다고 밥을 먹지 않는 영군이는 너무 말랐다. 보호실에 잡혀들어가 강제로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 영군이 때문에 꺽꺽대고 운다.


 일순은 영군을 위해 '라이스메가트론'을 만들어 주며
 자신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엄마의 사진을 묻어 버린다.


 그리고 이 둘은 아무 장애도 받지 않고 사랑한다. 
 장기하의 노래 처럼 '아무 일 없이 산다. 너희들이 속이 불편하더라도'



 
 그래, 이 영화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이 영화는 아기자기하고 예쁘면서 또 잔인하다.
 환상과 현실이 마구 뒤섞인다. 어지럽다.
 그냥 보면 "얼라리오 어쩌란거야?"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없는건 정신 분열증 환자의 특성이랜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연출력이다.


 
 또 이 영화에선 정신병자들이 사랑을 한다.
 예쁘고 잘생기고, 번듯하거나 멋있는 혹은 작가나 피디같은 감각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남녀들이 얽히고 꼬이고 울고 웃고 사랑해야 되는데, 그게 '우리'가 보고 싶은 말랑한 사랑 영화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내가 하는 사랑을 '감히' 정신병자들이 하는 거다. 
 마음이 전달되지 않아 아파하거나 상대의 외도로 술을 마시고 울거나 하는 장면도 없다. 
 둘의 사랑엔 거리낄게 없다.

 말도 안 된다. 내 사랑은 아프고 힘든데. 내 사랑하는 그 사람은 반듯하고 멋있는데.
 
 이런 이유로 영화가 불편해지는 게 아닐까.



 
 사랑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깨트린 것 외에도 
 일반적인 기대를 무시해버린다.

 영군이가 밥 안먹고 찡찡거릴때 일순이는 "니가 무슨 싸이보그야! 밥 먹어!" 이렇게 나와야 정상일지도 몰라. (게다가 일순의 병은 안티 소셜이고 정신 분열증이 아니다. 일순의 입장에서도 지가 싸이보그라고 우기는 영군이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런데 일순이는 "싸이보그는 밥 먹으면 안돼? 싸이보그지만 밥 먹어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우리는 왠지 어이가 없다.
 

 
 이 여러모로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은 영화때문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되어 버리는 거다.




 그렇지만 영화가 그리는 게 
 인정하기 싫어도, 마음이 찝찝해도 
 그게 본질이다.


 그리고 조금 더 곱씹어 보면
 그 '불편한' 사랑의 본질에 고개가 끄덕인다.




 사랑은 정신병자들도 한다.
 그리고 그 들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보다 더 평탄하고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짜여진 기준에 상대를 맞추느라 난리를 치는데,
 그래서 내 수준에 맞는 직업, 외모, 인성을 가진 상대를 만나기 위해 일생을 발버둥치는데
 영군과 일순은 말도 안 되는 상대의 결점('우리'가 보기엔 정말 상대할 수도 없는 인간인데)을 어떠한 비판 없이 수용해 버린다.

 밀고 당기는 불필요한 감정소모는 제껴두고
 존재의 목적을 찾는 데 주력한다. 

 그리고 상대가 아닌 내 자신이 변한다.
 동정심이 생길 수 없는 안티소셜에게 동정심이 생기고
 밥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싸이보그가 밥을 먹는다.
 이 처럼 숭고한 변화를 가져온 게 사랑이다.

 사랑의 위대함에 몸서리쳐지고 격한 감동이 눈물이 되어 찔끔 올라오는 느낌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사랑 그 자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주 진하디 진한, 사랑 100%의 액기스를 보여준다.

 우린 사랑을 물에 탄 달콤상큼한 것들은 좋아하지만
 그 진득진득하고 기괴해 보이는 진액 그 자체가 눈 앞에 나타나니 
 싫어하고 꺼려한 게 아닐까?




 아무런 조건 없이 상대를 수용하고
 내가 더 좋아하네 니가 더 좋아하네 싸우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이 믿지 않더라도 나 만은 그 사람을 믿어주고
 서로의 존재의 목적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면
 
 우리가 하는 사랑도
 비 온 뒤 무지개 나듯 환상적일텐데 


 우리는 재고, 또 재고 또 또 잰다.
 왠지 재지 않으면 내가 불리하게 될 것만 같아 그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 같은 관계는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그런 '우리'에게
 이 영화는 찜찜하다.




 하지만 '나'는 감동한다.
 '나'는 정말이지 멜로영화를 좋아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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