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열에게 맹세!! 5 - 완결
황숙지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국내 만화가 중에서 꽤 좋아하는 편인 황숙지의 첫 연재 작품이다.



 황숙지는 ’화장실에는 천사가 산다’로 데뷔했는데,
 그 단편집을 읽어본 기억으론 아주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재미있지도 않았고 격한 감동(울컥하는 느낌을 동반한)을 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서 왠지 흐뭇하게 웃음지을 수 있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만화였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몇 안 되는 만화였다!


 중학생 때 작고 냄새나는 만화방에 앉아 눈을 반짝이며 이 책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황숙지는 감정의 조각들을 잘 잡아내고
 풋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잘 그려낸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사랑을 모르던 나에겐 그저 두루뭉술한 느낌일 뿐이었으나
 이 만화가 권을 거듭해 나오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을 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로구나.
 이미 어른이 되어 단단해진 심장을 가진 나에게
 이 만화의 주인공들은 예전 만큼의 떨림을 주진 못한다.


 그리고 너무 커버린 나의 눈으로 다시 보니
 생각보다 장난스럽고 생각보다 서툴다. 
 유머가 넘치는 만화인 건 좋긴 하지만 그 유머가 조금 하이퀄리티였으면 하는 바람. 
 지금의 눈으로 보니 정말 중학생들을 겨냥한 어린 유머일 뿐이다. 
 스토리 전개도, 이야기 방식도 그 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서툴다.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왠지 툭 튀어나온 것 같은 부분이 있다. 
 (특히 막판에 갑자기 난수에게 끌려하는 정열이의 심리는 대체 알 수가 없다. 좀 더 그럴싸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부분이 많다구!)

 
 또 황당한 설정들이 너무 크게 나온다.
 곰 형상의 난수 아빠를 곰에서 변한 사람이었다가 다시 곰으로 돌아갔다는 
 말도 안되는 설정의 사랑이야기를 너무 긴 분량으로 실었다. 
 정열이와 닮은 난수 엄마를 등장시켜야 하기는 했겠으나
 장난스러움이 과도해서 만화 자체가 가벼워져 버렸다.
 그냥 1권에서의 설정처럼 ’아들에게 곰 같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아빠인 것으로 이어갔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개인적으로 1권에서 난수 아버지 인간 모습으로 나오는 컷을 정말 좋아한다. 사랑이 듬뿍듬뿍 묻어나기 때문에!)

 

 앞서 말한 바 있지만 난수와 정열이의 러브 스토리가 개연성이 없고
 분량도 너무 부족하다.
 사랑이와 유신이의 사랑은 아주 상큼하고 신선하며 또 만화 전체에 충분히 배치되어 있는 것과 비교할때 너무 아쉽다. 


 개인적으로 유신이나 사랑이보다 난수와 정열이에 더 마음이 가기 때문일까.
 남자다운 난수가 좋고, 못된 사랑이 보다 착한 정열이가 더 좋다.
 만화 전체에서 사랑이를 아무리 매력녀로 만들어 놓아도 얄미운 건 얄밉다.
 정열이가 언니를 딱히 미워하지 않는 모습도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니를 미워하지 않는 정열이가 그만큼 더 안쓰럽고
 애처로운 만큼 마음이 간다.



 왠지 아쉬운 점만 잔뜩인 것 처럼 썼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만화이기 때문에 더 아쉬운 것이지, 더 발전했으면 하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지.




 작가의 특기인 섬세한 감정표현은 여전히 아름답고 상큼하다. (다만, 예전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느꼈다면 이제는 왠지 고것들이 귀엽고 흐뭇하고 ㅋㅋ 요즘 애들은 참 이런느낌이랄까나)
 그림체도 특색있고 사랑스럽다.



 황숙지 작가의 최근작(H2O)까지 다 읽어보았는데
 여전히 과장된 설정이 있고 그 설정을 이야기속에 충분히 녹여내지 못한다는 느낌이 있다. 

 그렇지만 최근작이라 해도 겨우 세 번째 작품이다.
 더군다나 ’사정맹’은 첫 번째 작품이다.
 

 황숙지 작가는 날이 갈수록 더 멋진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만화의 성장을, 빛나는 원숙미를 기대한다.


 더불어
 우리 나라 만화가 청소년 대상 만화에서
 더 다양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번영하기를 바란다.

 ’다 커버린 원숭이’도 정신 못차릴 정도의 만화를 그려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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