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폭풍 - 야자와 아이 걸작선 시리즈 5
야자와 아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좋아하는 만화가를 몇 명 꼽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사람이 야자와 아이다.



어릴 적 만화방에서 우연히 못난 그림체의 만화를 발견하고
'그림 되게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며 빌려와서는
하룻 밤 새 다섯 번을 반복하여 읽었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읽고,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었고, 또 다시 읽었다.
봐도 봐도 더 읽어서 가슴 속에 새기고 싶고 놓친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휙 보고 던지는 만화가 아닌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 가지고 있고 싶은 만화를 처음 만난 거 였다.



야자와 아이가 좋은 건 많은 이유가 있다.
그 못난 그림체(지금은 너무 예쁜 그림체로 보인다. 애정이 담뿍 담겨서 일까)도 좋다.
처음에는 못나 보였지만 지금은 개성이 넘치는, 흔해 빠지지 않은 그림체라서 좋다.
게다가 인물들이 다 특색이 있게 생겼고 표정이 다양하다.

또 그 섬세한 이야기 구조도 좋다.
사춘기 소녀들의, 또 더 큰 여인들의 감성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 부서질 것 같은 감정을 아주 똑바로 그려낸다.



뿐 만 아니라, 가장가장 좋은건
작가 자신이 자신의 인물들에게 쏟는 애정이다.
물론 만화가든 소설가든 자신이 창작한 인물에 애착은 가겠으나
이렇게 따뜻하게 인물을 돌보는 작가는 드물다.

전 작에 나왔던 인물들이
다음 작품에 중요한 소품이나 엑스트라가 되고
때로는 그 인물의 가족이 다른 작품의 주요 인물이 되기도 한다.

또 어떤 만화에서건 
별로 비중없는 인물들의 사정도 다 상세히 그려진다.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다 알게 되면서
독자들은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입체적이게 된다.
주인공 몇 명만 줄창 등장하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처럼 복잡하고 따뜻한 인생사가 펼쳐진다.



나는 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는 작가들을 좋아한다.
그런 작가들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인지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결과가 파국으로 치닫는 스토리라도 인간미를 잃지않는 묘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한국 만화가 이시영, 황숙지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작가 노희경도 그런 사람이다.



이 '야자와 아이 걸작선'은 
야자와 아이의 초기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장편을 내기 전에 낸 단편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천하의 야자와 아이지만
1,2권은 솔직히 약간 서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체가 지금의 것이 아닌것도 그렇지만
(그림체가 서서히 개성을 찾는 건 많은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좋기도 하다.)
대사나 스토리를 잘 못 따라가겠다.
문화차이인가 싶기도 했지만

뒷 권으로 갈 수록
완전히 따라갈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마음 아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1, 2 권이 서툴었다고 결론 지었다.


하지만 서툴다고는 하나
그렇고 그런 뻔한 작품들을 내 쏟는 만화가들에 비해
좋은 작품이다.


단지 기준은 야자와 아이의 위대한(ㅋㅋ 나 사이비 종교 신도같음) 필력에 비교한 거야.



호흡이 짧고, 단편이라 모든 조연들의 매력이 충분히 발산되지는 않지만
야자와 작품의 매력을 느낄 수는 있었다.
작고 귀여운 여 주인공이나(내 남자친구 이야기의 주인공 처럼)
짧은 머리의 남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주인공(나나처럼)이 잔뜩 등장했다.
키 크고 멋있는 남자들도 (야자와 만화의 남자들은 대부분 그런 듯) 잔뜩!


그리고 초기 작은 약간 몰입이 어려웠지만
갈 수록 너무나 재미있었고
특히 작가가 스스로 걸작이라고 밝힌
'분홍빛 폭풍'은 그 짧은 책 한 권이 
엄청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책을 사고 
엄마한텐 조금 핀잔을 들었지만
나는 너무 만족한다.


열다섯 번도 더 읽을 거니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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