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2disc)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별 다섯개로도 모자라다.



어떻게 하나의 영화가 액션, 스펙타클, 탄탄한 플롯, 뛰어난 연기, 흡입력, 철학을 모두 다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거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심오하면서 볼거리도 있고 보는 사람을 한시도 지루하게 두지 않는, 그런 영화 딱 하나 기억난다. 매트릭스! 그렇지만 매트릭스는 2,3을 내면서 망..망했다. 그리고 본편도 약간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나에겐)



다크 나이트는 액션 영화여.
그렇지, 말하자면 액션 영화다.


나는 원체 액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막 웃다 나오는 코미디 영화나 멜로, 감동대작(감동적인 드라마류의 영화를 내 맘대로 이렇게 부른다)을 좋아한다. 액션이나 블록버스터는 재미있긴 한데 내용도 없고 남는 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런 나도 배트맨이 슝슝날아다니는 다크나이트의 화면에 빨려들어가 버렸다.

뭐,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고 지루한 부분이 한 부분도 없는 영화다.
어쩜 이렇게 영화를 잘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아귀가 척척 맞아 떨어지고 
쓸데없다거나 루즈해지는(늘어지는) 부분 하나 없었다.



화려한 액션, 배트맨 차, 배트맨네 집, 첨단 무기 이런 것도 눈이 홱홱 돌아가게 만들었지.


그렇지만 그 딱 맞아 떨어지고 지루함 없는 점이 
왠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영화 참 잘 만들었다
이 말이 기냥 막 튀어나올 정도.




가장 압권인 것은 이제는 고인이 된 히스레저의 연기다.
다크나이트는 조커가 주인공 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나온다.
히스레저는 어쩌면 그렇게 조커 그 자체가 되었을까.

히스레저의 죽음에는 여러가지 말이 있다.
그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과다복용하여 사망했는데, 자살이다 아니다 말이 많다. (처음에는 마약 과다복용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졌댄다)
다크나이트를 찍기 전 부터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자살이건, 실수로 혹은 약이 듣지 않아 과다복용하여 죽었건간에
조커역을 맡으면서 우울증이 심해졌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화면에서 음울하고 괴기한 인물에 완벽히 동화된 히스레저를 보았다.
조커가 너무 무섭고 잔인해서 몇번이나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어쩌면 그렇게 조커일까. 
너무나 뛰어난 연기를 보고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
만약에 히스레저가 조커역을 그렇게까지 잘 해내지 않았더라면, 조커에 심취하지 못하고 동화되지 못하고 어설프고 허술한 연기를 했다면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천재들은 왜 단명하는 걸까. 마음이 아프다.



배트맨이 정의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절대 선이라면
조커는 절대 악이다.
어둡고 음울한, 아무런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에 죄책감 없는 모습.
사람들은 조커를 '별종'이라고 부르는데 
조커는 배트맨도 사람들에겐 별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은 일반인들에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한 존재일 뿐이다.



또한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언제나 공존한다.
배트맨이 있기에 조커가 있고, 한 쪽이 존재하기에 다른 한 쪽이 '완벽해질 수 있다'

배트맨은 조커를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는다. 그는 선하니까.
조커역시 배트맨을 죽이지 않는다. 

넌 날 죽일 수 없을거야. 나도 널 죽이지 않아. 네가 없으면 누구랑 놀아? 내 존재가 너를 완벽하게 만드는 거야
 
페이지 : 조커의 대사(괴팍하게 읽어보셔요)  



조커는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악마적 본성을 끌어내려고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혹 당하고, 자신을 믿는 사람을 배신하고, 죽고 죽인다.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애고자 노력하던 의욕있는 검사, 그래서 국민적 우상이었던 하비덴트는 조커의 부추김에 깊은 곳에 있던 악을 드러내버렸다. (배트맨은 그가 정의롭고 순수했기에 더 쉽게 타락할 수 있었던 거라고 말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람이었다.
인간됨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동요하고 싸우고 고민했지만 서로를 죽이지 못했다. 사람이기에.


배트맨은 안정을 위해, 질서를 위해 
남이 저지른 악행을 뒤집어 썼다. 
사람들은 영웅을 가지게 되었고 안정을 되찾았지만 진짜 영웅은 오명을 쓰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희생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배트맨이 쫓기는 걸 본 꼬마가 
"왜 배트맨이 도망가는 거야? 그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잖아."라고 말한다.

어린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명확하게 보이는 것을 
우리는 왜 보지 못할까.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런식으로 포장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누명을 썼을까, 희생되었을까.

인간은 그런 존재인 거다. 인간의 마음 속엔 너무나도 끔찍한 악이 있고 궁지에 몰리면 악이 나를 지배하고. 일이 마감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야기를 만든다. 특히 윗 사람들이 저들 좋을대로 이야기를 만든다. 살기 바쁜 대중들은 그걸 또 곧이곧대로 믿고 대강 살아간다. 궁금하고 믿기지 않기도 하겠지만 귀찮겠지, 그리고 두렵겠지.

인간 역사의 기나긴 순간에서 이런 일들이 계속 생겼겠지, 길게 보지 않더라도 우리의 지난 정권과 밝혀지는 여러 비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점이 슬픈거다. 너무너무 슬픈거다.
암에 걸린 연인이 죽어가는 것도 슬프지만
이런 영화야 말로 비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나를 버리고 사람들의 믿음을 지켜주고자 했던 배트맨이 있고
사실을 똑바르게 바라본 소년이 있기에
끝끝내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결말이다.


'괴물' 관람 후로 가장 슬프게 느낀 영화, 다크나이트.


인간 본성과 세상사의 부조리.
그리고 이 영화를 가장 슬프게 만든 건
어린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뜬 히스레저 ㅠ



이제는 많이 컸는데, 갈수록 아빠랑 더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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