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학교 SE 일반판 (2DISC) - 2 디스크, 일반 케이스
김명준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학교. 혹가이도에 있는 ’조선 초중고급학교’.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세운 학교이다. 일본인들의 차별이 심한데도 어린 학생들이 자기 내면의민족성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왠만한 사람이라면(일단은 의무교육이니까.....) 대부분 우리학교가 하나 이상은 있겠지.
그러나 출신 학교를 떠올릴 때 이 영화의 학생들 처럼 절절한 마음인 사람이 있을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장르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안돼? 왜 영화화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TV에 방영되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다큐멘터리.
다만 공중파에 방송되는 다큐멘터리보다 감독 개인의 시각이 강하게 들어있고, TV에서 말하기엔 조금 쎈(!)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다큐멘터리 영화. 재밌다고 생각하면 재미있을수도 있지만 한 없이 졸리기도 한 장르일텐데, 난 이걸 밤을 꼴딱 새고 맞은 아침 졸음을 쫓기 위해 보았다.
볼 수 있는 몇 가지의 영화 중 하나의 선택지였다.
사실 ’우리학교’라는 밋밋한 이름 때문에 그냥 딴 영화를 봐 버릴려고 했다. 그렇지만 대강의 내용을 살펴보니 조금 구미가 당겼다. 재일동포들이 다니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
졸음을 참으며 화려한 영상미도,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도 없는, CG도, 반전도 없는 영화를 보았다(정말 이상하지). 그러나 화면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졸기는 커녕, 어느새 웃으며 보고 있는 나를 발견.
일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일본 특유의 짧은 발음으로 우리 말을 하고 있다. 요새 인기있는 추성훈의 발음과 비슷했다. (추성훈도 조총련계 학교를 나왔다)
대부분이 귀화 3~4세인 아이들. 그냥 그대로 놔뒀다면 우리 말은 한 마디도 못하겠지. 안그래도 이 아이들은 일본어가 모어다.
이 아이들은 일본에 살면서도 일본인이 아니다. (일부는 일본국적을 선택하기도 함)
일본인들이 눈을 매섭게 뜨고 바라보지만, 교복으로 치마저고리를 떨쳐입고 있다.
자체적으로 ’조선어’로만 쓰여진 교과서도 만들고, 수업도 모두 우리말로 진행한다.
일본에서는 ’우리학교’를 일반 학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학교’를 바라보는 일본 내의 시각도 곱지만은 않다. 그런데 왜 그 편견과 멸시를 참아가며 살아갈까?
우리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선생님의 국적은 ’조선인’이다.
나는 사실 일본 내의 조선인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나라 대한민국은 한국이고, 조선이라고 하면 자기를 ’북조선’이라고 부르는 북의 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본 내의 동포사회가 조총련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과 남한 국적을 가진 ’한국인’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는 정도가 겨우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었다. 조선인과 한국인, 나뉘어진 국토처럼 일본 내의 동포사회도 갈라져 버린 것인 줄 알았다.
외국에 살면서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그들을 보며 마음이 찡하다가도
북을 ’내 조국’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면 갸우뚱했다.
실제로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북의 말투에 가까운 ’조선어’를 쓰고 체육대회때는 인공기를 계양한다. 친구를 ’동무’라 부르고 말투도 TV에서 본 평양방송 아나운서의 말투.
북의 색깔이 짙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런데 사실은, 일본이 전쟁 후 패망하자 조선에서 건너가 일본국적을 취득하고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조선인’으로 돌려버렸다고 한다. 그 땐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없었다. 일본내의 한인들은 붕떠버린 국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얄미운 일본, 얄미운 짓은 잔뜩하고서도 지들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의식은 가득가득하지) 그 후 한국에서 재일동포들에게 ’한국 국적’으로 바꾸면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펴서 일부 사람들이 귀화했다고 한다.
내 생각과 달랐다. 이 사람들은 ’북조선’과 관련된 ’조선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조선인이었다가 일본인이 되었으나, 결국 다시 조선인이 되어 버린 사람이었다.
우리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북한을 더 조국처럼 여기는 것은
일본 내에서 많은 고난을 겪는 조선인 학교들을 도와준 건 북한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원조를 거부하고 이데올로기 얘기만 줄창 하는 동안 북한은 여러가지로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남한 쪽 출신 이라도 ’고향은 남조선이지만 조국은 북조선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나의 나라로는 수학여행도 올 수 없다. 한국 대사관에 문의하면 "왜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느냐?"는 소리만 한다고 한다. 애원애원을 해서까지 남한으로 오고 싶지는 않다고, 그들은 그들 마음 속의 조국인 ’북조선’으로 떠난다.
일본과 북한의 사이가 아주 나빠서 북한 수학여행도 아슬아슬하다. 일본 언론이 흑색선전을 펴고, 일반 대중들은 그저 이유도 없이 ’조선인’을 죽이고 싶다고 말한다. 일본과 북한의 사이가 나빠지면 나빠질 수록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몸을 사리며 등교해야 한다. 선생님들은 불침번을 서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힘든데도 이 아이들은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아주 좋다고 말한다.
학교 대항 시합도 나가기 어렵고, 학교를 졸업해도 정상 학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일본 사회에 섞여도 아무도 눈치 못 챌 아이들인데, 굳이 조선인으로 살아간다.
평범하지만 눈을 빛내는 아이들, 착한 선생님, 가족같은 생활을 보며
이 아이들이 전처럼 멀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내 친구들처럼 순박하고 착할 아이들일테지.
그리고 내가 이 아이들을 멀게 느낀 것은 이 아이들이 북한과 더 관련이 있?서 일본국적 취득하고 즐겁게 살면 될걸, 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보같은 생각일지도.
내가 우리학교를 보며 한구석이 따뜻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린 같은 민족이니까.
같은 민족이나 이질감을 느끼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나와 내 나라의 독단 때문이 아닐까?
난 한나 아렌트를 읽었잖아! 그 욕하며 읽은(어려워서) 책을 여기서 떠올릴 줄이야.
꼭 ’내’ 나라에 살지 않아도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고, 일본에 살거나 한국에 살거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각자 살아가던 곳에서 살아갈 뿐. ’내’ 나라에 산다고 꼭 나와 같은 국적일 필요가 있을까? 거주지가 같은 외국인이나, 거주지가 다른 같은 민족을 마음으로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는
어렵던 아렌트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조선인들이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도와줄 수 있을텐데,
조선국적을 가지고 한국에 여행을 해도 아무 문제 없을텐데.
그러나 이건 ’내 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학교의 사람들이 마음으로 믿고 따르는 그들의 조국 북조선 역시
한국을 동반자로,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을까?
많은 것이 다르지만 여행할 수 있고,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도록.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영화를 볼 적에도 그랬지만 리뷰를 쓸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서 유익하구나.
여전히 리뷰의 매력에서 허우적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