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남인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된 계기.
학교에서 책 벼룩시장을 하더라. 미시경제 4판 해설집을 1000원에 판다길래 가보았는데 역시나 그 좋은 기회는 누군가 먼저 채갔더라. 다른 책 뭐 살거 없나 두리번 두리번 했는데 박형신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소비자사회학 책, 예전 사회학의 이해 교양 때 안경한테 빌려 읽었던 현실세계와 사회이론도 있었다. 다만 그 책들은 각각 만이천원, 팔천원. 새 책보다는 저렴한 값이었지만 왠지 벼룩시장에서 사긴 애매한 가격이잖아; 책은 아주 깨끗했지만 그 값이면 조금 더 주고 새 책을 사는 게 더 효용이 클것 같아 돌아서던 참에
’여자 생활 백서’가 교양란에 꽂혀 있는 걸 보았다. 단돈 5000원.
하지만 전혀 사고 싶지는 않은, 하지만 너무너무~ 읽어보고 싶은!
’여자 생활 백서’는 나름 추억(?)의 책이다. 고등학교 때, 학원 땡땡이 치고 대학문고가서 놀던 시절에 베스트셀러 코너에 늘 있던 책. 휙 훑어보면서 어떤 때는 "쳇, 실용서 따위"하는 맘으로 돌아섰고 어떤 때는 "한 번 읽어봐야지"하는 맘을 품기도 했다.
그 ’여자 생활 백서’ 옆에 언제나 놓여져 있던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가 바로 이 책,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당시엔 10대였기에 이 책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앞 뒷 표지와 목차를 훑어보다가 발견한 ’속물이 되어라’라는 말은 참 싫게 느껴졌다. 속물이라니, 속물이라니, 속물 싫어! (물론 나에게도 속물 근성은 있었지만, 까탈스럽고 맑고 높고만 싶던 10대 시절이었으니.)
여자 생활 백서를 발견하고 이 책도 다시 생각났다.
도서관에 여자 생활 백서는 대출중. 여전히 인기있구나, 예약을 해 두고 이 책을 찾았다.
물론 이 책도 여전히 인기있나봐. 특히 새로나온 실천편은 역시나 다 대출중.
하긴, 대학생의 대부분이 20대이니 ’20’대를 부각한 이 책은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이 책은 사회를 생각하는 지성인이랍시고 우울하고 비판적으로 사는 대신,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고 내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며 살라고 주장한다.
 |
그렇다면 속물이 되라! |
 |
|
페이지 : 뒤 커버 |
|
이 책이 말하는 속물은 돈에만 눈이 멀어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속물이 아니었다. (다행이도!!)
하지만 사회에 대한 괜한 책임의식보다는 나를 먼저, 좋은 조건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지 말고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꾸밀 건 다 꾸미고, 내 이익도 알아서 잘 챙기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멀리하지 말고 옆에 붙어있고. 돈은 정말 좋은 것이고 돈을 버는 것도 좋은 것이니까 지금부터 돈을 벌 기틀도 세워놓자!
일단 돈에 대한 건 상당히 현명한 이야기다. 수전노처럼 모으자는 얘기도 아니고, 경제관념 하나 없이 펑펑쓰자는 것도 아니다. 쓸땐 쓰고 아낄건 아끼고 굴릴건 굴리자는 얘기. 제태크를 시작하려면 20대에 하는게 훨씬 여유롭단 얘기다. 쓰더라도 현명하게, 가장 행복하게 쓰기. 이런 사람을 속물이라고 하진 않지? 물론 과거의 가치관에선 20대에 경제에 밝은 사람을 속물이라고 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 이런 사람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또 결혼에 대한 이야기. 조건 좋은 남자를 원하는 여자들을 속물이라고 한다면, 속물이 되어라. 단, 무턱대고 조건 좋은 남자를 원하기 보다는 그런 남자에 어울리는 여자가 먼저 되어라. 사랑과 조건을 양분하지 말아라. 좋은 얘기다. 결혼을 연애의 무덤이라든지, 보험으로 생각지 말아라! 옳지 옳지.
결혼은 내 삶을 살아가는 데 함께하고 힘이 되어 줄 ’좋은’ 동반자를 얻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야지. 물론 조건도 좋고 사람도 좋아야지. 사람만 좋은 사람이 있으려나? 나도 어릴 땐 조건 따위 뭔 상관이야! 했지만 지금와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 사람이 좋은 사람은 필시 조건도 좋다! 왜냐, 사람 좋은 사람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꼭 조건이 좋아질테니까. 진취적이고 꿈 많고 성실한 사람은 지금 당장은 가진 돈이 없더라도 미래가 열려있다. 반면 무지무지 돈도 많고 집안도, 직업도 좋은데,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고 돈 펑펑쓰고 불성실한 사람은 내 기준에선 조건이 꽝인거다. 암암,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야지.
근데 난 만약 내가 충분한 능력이 있다면, 돈 없는 남자를 부양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이 내 돈 까먹으면서 평생 먹고 놀 생각이 아닌 이상말야. 이 책에서
 |
꿈을 위해 결혼을 이용하라 |
 |
꿈을 지지해 줄 남편을 만나라, 결혼해서 일에 더 탄력을 받는 여자도 있다 |
페이지 : 219 |
|
라고 하는데 남자도 꿈을 지지해 줄 부인을 만날 수 있는 거잖아. 그 꿈이 "너는 밥값 벌어, 나는 나 놀면서 가끔 반찬값만 줄께" 이 딴게 아닌 이상!
사랑에 얽매여 정말 아닌 남자와 만나는 여자도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 점을 지적한다. 이건 자기자신을 얼마나 존중하고 사랑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막대하는 남자를 참을 수 없겠지. 그래, 나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내가 나를 대접해주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야.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에서 처럼.
음, 또 남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을 더 꾸미라는 말. 이건 세부적으로는 갸우뚱한 내용도 있었지만, 그리고 열받지만 동감한다. 못나면 성공하기 힘들다. 외모지상주의가 어쩌고 저쩌고하지만서도 인간에겐 시각자극이 가장 큰 자극이니깐. 꾸며라, 꾸며라. 몸도 마음도 꾸며라.
그리고 높게 살아라. 10대 생각했던 그 정신적인 높음이라기 보단 물질적 현실적으로 높게 살랜다. 취향도 고급으로, 취미도 고급, 옆에 있는 사람들도 고급. 고급취향을 따라가려다 보면 어느새 나도 고급이 된다나. 글쎄,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난 높게도 살고 낮게도 살고 프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아라. 응, 맞는 얘기. 하지만 이 책에서 ’책 속에 길이 있다, 처세서에만 있다’라고 주장하는 건 영 맘에 안든다. 국문과 나온 저자가 왜 이렇게 말할까? 작가 말대로, 처세서들은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한다. "긍정적으로 살아라,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라" 대박 베스트 셀러 시크릿에서 부터 몇 백부 팔렸을까 말까한 책까지 하는 소리는 다 그게 그거야. 가끔 아주 가~아끔 읽는 건 모르겠지만 처세서에 길이 있다는 건 =ㅁ= 하지만 긍정적으로 살아라. 그래, 긍정적인건 좋은 거지.
그런데, 왜 작가는 긍정적인것과 사회 비판적인것, 또 센티멘탈한 감정을 가진 것이 양분되는 것이라 보는 걸까? 긍정적이면서도 남을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할 수 있고, 우울한 문학에 빠져들어 읽으면서도 밝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것 아닐까.
이쁘게 옷 입고 다니고 일찍 일어나 화장하고 오면서, 자기 학점에는 눈에 불을 켜고 민감하지만 생각이 정말 없는 애들 많이 봤다. 으하하, 이 책엔 완전 나를 꼬집는 이것과 똑같은 예가 있다. 21쪽, ’M은 같은 과 친구 p를 늘 한심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P는 당시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보는 철학서의 제목조차 몰랐고, 늘 경제신문이나 패션지를 가까이했다. 그녀는 많은 대학생들이 공들여 활동하는 써클활동조차 하지 않았다. M은 노는 것과 자기 공부하는 것에 열심일 뿐인 그녀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늘 흐트러짐 없이 잘 다듬어진 외모는 그녀가 ’속물’이라는 심증을 더욱 굳히게 만드는 단서이기도 했다."
으하하 어쩜 내 생각하고 이렇게 똑같아. 내 뒤통수를 때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은,
그 사회비판의식있던 M은 나중에 일하느라 돈돈하면서 헉헉 대고
꾸미기만 하고 놀기만 하던 P는 잘 먹고 잘 살고 늙어서도 고운 자태를 유지하면서 여유가 있으니 봉사활동까지 하고 있더라
하는 거다.
에? 이렇게 쓴다고 내가 굴복할 것 같냐!
이 책은 행복하려면 높고 깊은 정신의 가치따위 포기하라고 한다. 왜냐, 어차피 30대가 되면 사느라 바빠서 포기하게 되니까 어차피 포기할 거 빨리 포기하고 행복하고 속물적으로 살 기반을 닦아놓자는 거지. 그리고 여유가 생겨야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 기반을 닦아 놓음과 동시에 고매한 사상과 깊은 생각들을 함께 할 수는 없는 건가요? 정말로 저자의 말 처럼 우울한 책을 보고 염세주의 철학자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우울하게 밖에 못 사는 건가요?
너무 이분법적인 생각이다.
좋다, 속물이 되는 건 좋다. 사람들 앞에 잘 보이기 위하여 나를 치장하는 것도, 경제적인 여유를 앞서 다져놓는 것도 좋다. 긍정적인 것도 좋고, 좋은 남자 만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관심을, 학문의 깊음을, 인간 사고의 무한함을, 나의 정신적 발전을 위한 수 없는 생각들을 하지 말자고? 그냥 정말 생각없이 이쁘게 입고 다니면서 학점이나 잘 따고 땡치자고?
에이, 싫다. 내가 그런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던가. 이야기 나눠보면 그 사고의 얕음에 놀라면서 얼마나 속으로 무시하게 되던가. 그런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남들이 대우하도록 나 자신을 최고로 대우하는’ 사람이 할 짓이 맞나?
그래도 나중에 보면 그런 애들이 더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거라고?
두고 보자구. 과연 어떨 것인지. 세상은 그렇게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야.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니 20대의 철 없는 객기들을 포기하고 그냥 속물이 되라구?
20대의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는 과정이, 현실적인 것보다 사회 정의나 도리를 생각해버리는 마음이 과연 쓸데 없는 것일까. 20대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는 데?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된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데 기여할 텐데 말야. 그 객기들도 살아가는 과정이고 꼭 거쳐야 할 관문일텐데,
노력한다면 60,70대의 나이에도 깨어있을 수 있을거라, 그렇게 소망하고 있다.
더하기.
나는 자기 계발서에 대해 어쨌건간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구나. 대부분을 동의하면서 봤는데도 무진장 까고 있당
이 책은 괜찮은 책이야. 괜찮은.(히히 결국 ’좋은’은 못 되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