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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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에 대한 첫 기억은 중학교 때, 마트에서(서점이 아니라 마트였다 분명) 박완서의 책을 집어든 엄마가 "참 글 잘쓰는 작가야."라고 말 했던 것.


  그 때 집으로 사 온 책은 '오래된 농담'이었다.
  어린 내가 읽기에는 요상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단숨에 빨려들 듯 읽었지만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바람을 피우는 주인공, 이혼하고도 생명력이 넘치게 요요하게 살아가는 여인, 여성생활의 부조리 등등... 어리니까 이해못하는 깊이였다.


  그렇지만 박완서라는 이름은 머릿속에 깊게 남았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마련인데,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라니.



  엄마는 박완서 책을 볼 때 마다 옳지, 하며 사주셨다. 
  그래서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도 읽었고
  MBC 인기프로그램이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선정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읽었다. 싱아를 읽으면서 비로소 눈에 하트를 달기 시작했던 것 같아. 완전완전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싱아의 후속작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 였다. 그 땐 이미 싱아도 두 번 읽었다. 국어 교과서엔 '그 여자네 집'이 나와서 마음을 소복하게 적셨고, 우리학교에서 쓰던 문학교과서엔 박완서의 등단작인 '나목'이 실렸다. 나목을 공부할 때 절로 신나서 국어 선생님 말씀을 눈에 불 켜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무엇보다도 박완서가 해 주는 옛날얘기에 쏙 빠져 버렸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이지만 나에게도 지워지지 않을 6.25 이야기도 좋아했지만 가장 좋아한 건 개성 이야기다. 박적골에서 살던 어린 박완서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분단이 되어 그 곳에 더는 가 볼 수도 없고, 분단이 되지 않았다 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기 때문에 더 절절하게 재미있었는지도 몰라.



  박완서가 마흔이 넘어 등단했다는 이야기는 엄마에게 들었다.
  박완서가 꽤 나이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6.25를 겪었다면 우리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임이 분명한데도 나는 박완서가 조금 젋다고 생각했다. 왜 그럴까나 생각해 보니까 그가 쓴 글에서 뿜어져 나오던 엄청난 생명력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 아주 꼬꼬마였을 때 조금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초딩때 꿈은 거창하게도 선생님 + 동화작가 + 시인 또는 소설가 였다ㅋㅋㅋ
  지금은 요 모양 요 꼴이지만, 이래뵈도 꼬마때는 문학어린이였거든ㅋ 책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었거든.


  그런데 커 가면서 깨달은 건, 가슴에 아픔을 품고 사는 사람이여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픔과 응어리가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 어릴적, 행복한 작가가 되어 행복한 글을 쓸 수는 없을까 많이 고민했다. 그렇지만 슬픈 사람이 글을 쓰는 것 보다 행복한 사람이 글을 쓰는 게 훨씬 어려울 것 같았다. 마음 따뜻하고 행복한 글 조차도 아픈 일들을 감동적으로 바꿔 쓰는 거니까 말야. 난 그 아픔을 다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박완서 자신도 이렇게 말한다.

  땅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씨는 봄이 와도 싹트지 못할 것이다. 고독의 밑바닥을 치지 않고는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그건 슬픈 일이다. 글쓰는 일에 사로잡히게 될까봐 점점 더 몸을 사리게 되는 것도 그 고독하고 처절한 암중모색을 견딜 만한 힘이 나에게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남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페이지 :  114  


  노령이지만 힘이 넘치는 글을 쓰는 작가의 변.



  두부를 읽으면서 박완서가 얼마나 늙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나 자신과는 별개라는 것, 그래서 나이가 들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다. 일을 하거나 음식을 먹어도 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나이이다.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자연으로 다시 가고 싶고 고향생각에 언제나 사로잡혀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실향민'의 모습이다. 손자들이 장성한 할머니다.


  그녀에게 얼마나 아픔이 많았을지 다시금 깨달았다.
  6.25와 그 후의 처참한 이념싸움(어느 한국문학에서나 참 가슴 찢어지게 그려지는)을 직접 겪었을 뿐 아니라 남편과 아들을 앞서 보냈다. 이 모든 것들이 잊혀지지 않고 놓여지지 않아 글을 썼다고 말하는 작가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작가의 숙명은 왜 그런 것일까?



  또한, 박완서가 얼마나 빛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도 누구보다 빛나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박사학위 따면서 공부하고 거들먹거리는 그런 공부를 하지 않았을텐데도 그는 세상을 꿰뚫어 않다. 



  여기 수록된 산문 중에서 박완서의 통찰력이 가장 빛나는 글은 '구형예찬'이다. 2002년 월드컵 이후에 쓴 글이다.
  여기 박완서가 스포츠가 인간을 끓어오르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쓴 부분이 있는데, 그건 내가 지난 학기에 스포츠사회학에서 줄창 배웠던 부분이었다. 학자가 아니지만 학자보다도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놓았다. 조금 감동했다.

  계속 읽어나가다보니 축구에서 정치로, 정치에서 지구로 연결되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필은 무형식이 형식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축구가 정치가 되고 정치가 지구에 대한 사랑이 되는 어떻게보면 혼란스러울수도 억지스러울수도 있는 흐름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관통시킨 것은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외경심을 가지며 묘한 기분으로 책장을 잠시 덮었던 기억이 난다.



  구형예찬도 재미있었으나 역시 나에게 가장 재미있던 것은 '개성사람 이야기'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던 옛날 얘기에 사로잡혀 지내던 박완서와 같이, 나도 옛날얘기들을 무진장 좋아하나보다. 나에게 할머니 뻘인 늙은 작가가 해주는 옛날 이야기는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할머니 무릎에 누워 옛날 얘기를 조르던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 내 세대에선 개성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태어나기 전 부터 나라는 분단되어 있었으니 개성사람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박완서가 어릴 때만 해도 서울 사람들이 개성사람을 짜다고 욕했다고 한다. 돈 계산에 밝고 확실한 모습이 야박해 보였나봐. 


  개성사람들은 돈을 나눌 때 우수리가 생기면 성냥 한 갑을 사서 나눠가질 정도로 확실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돈을 꿔줄 때는 정말 믿는 사람에게 받을 생각 없이 꿔주는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타지사람들은 개성사람들이 이렇듯 셈에 철저한 걸 인색한 것과 동일시하는 것 같은데 그건 절대로 아니다. 개성사람이 인색하다면 아마 그건 자신에게 대해서일 것이다. 자신에겐 박하고 남에겐 후한 거야말로 개성 인심의 진수이다. 후하다는 건 덮어놓고 뭘 많이 준다는 게 아니라 일단 도와줄 만해서 도와주면 그만이지 그걸 갖고 질질 끌며 생색을 내지 않는 깔끔함을 말한다. (중략)
  타지사람들이 개성사람을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날 지독한 사람으로 여기는 게, 자신을 위해 아끼고, 베풀 만한 사람에게는 베풀되 나중에 그걸 가지고 절대로 떠벌리지 않는 결곡한 정신 때문이라면 흉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개성에는 소문난 몇몇 부잣집이 있는데 그들이 일제 때 소리소문없이 해외에 독립자금을 댄 건 개성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일제 때야 소리소문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 쳐도 해방후에는 그걸로 애국자연할 수도 있었으련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페이지 : 169  

  검소하면서도 집 안 만은 광이 나도록 닦고, 노는 땅을 보면 그 자리에서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그러면서도 음식은 맛깔나게 해 먹었던 개성사람들. 참 멋쟁이가 아닌가! 

 
  작가 자신도 말하지만, 공산주의하에서 지금 개성사람들은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성사람을 보고 싶구나.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본 노인들의 증언을 들을 때야말로 갈라진 채로 살고 있다는 게 극도로 안타까워진다.


  이 외에도 아치울마을 이야기들도 재미있었고, 언어사대주의에 대한 글, 글을 쓰는 작가의 숙명에 대한 글도 즐거이 읽었다.


  산문집을 찾아 읽는 건 여러 책 고루 읽기 운동(내 마음대로 운동ㅋ)의 일환인데
  실은 산문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도서관 저 쪽 끝에 모여있는 산문집 코너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권 빼서 읽는데, 거의 대부분 읽다가 후회하고 중간에 포기해버린다.


  그런데 박완서의 이 책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산문집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산문도 소설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구나! 수필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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