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 -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김소민 지음, 소윤경 그림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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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바뀐다는 소재는 신선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즐겨 차용하는 만큼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린다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유아기나 아동기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푸념처럼 뱉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와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만복이네 떡집 (김리리, 비룡소)』에 나오는 ‘다른 사람 생각이 쑥덕쑥덕 들리는 쑥떡’을 구할 수만 있다면 너도나도 손에 넣으려고 달려들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은 다른 사람과 영혼이 바뀌어 다른 사람의 몸으로 그 사람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체험해 봄으로써 얻어지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스스로를 객관화함으로써 성장해 나가는 발전지향적인 이야기 등의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혼자만이 즐기는 스릴이 아니라 영혼을 바꾼 두 사람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만들어내는 스릴이 유쾌함을 더한다.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은 7~10세 저학년을 위한 동화 발굴을 위해 비룡소가 제정한 ‘비룡소 문학상’의 1회 수상작이다. 만화나 영화나 다른 동화에서 써먹을 대로 써먹은 주제인 영혼 바꾸기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읽기에 유쾌한 이유는 아이의 시선을 담아낸 글맛에 있다. 영혼이 바뀐 상태에서 어른 남자와 어른 여자의 몸을 묘사하는 부분은 유쾌함의 절정이다. 왈가닥, 여자 깡패, 태권소녀라는 별명을 가진 동생 묘묘와 태권도 대련을 앞두고 걱정하던 동동 앞에 불쑥 나타난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 아빠의 약국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색색깔의 캡슐 병이 진열대를 메우고 있는 기묘한 약국에 스스로를 캡슐 마녀라고 부르는 할머니가 버티고 서 있다. 캡슐 약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동동이는 캡슐 마녀가 최근에 발명한 ‘영혼을 바꾸는 캡슐’에 솔깃해 한다. 허약하고 겁 많은 동동은 동생 묘묘와 영혼을 바꿔서 태권도 대련에서 동생 묘묘를 이기고 싶은 생각으로 게임 아이디와 비밀번호라는 이상야릇한 약값을 치르고 집으로 달려온다. 땅콩크림빵 사이에 캡슐을 넣어두고 묘묘가 먹기만을 기다리던 동동의 계획은 느닷없이 나타나 빵을 날름 집어먹은 아빠 때문에 뒤죽박죽이 된다.            


하필 아빠와 동동이가 서로 영혼이 바뀐 다음날은 동동의 엄마가 죽고 혼자서 약국을 운영하며 아이 둘을 키워온 아빠를 측은하게 여긴 아빠 친구 보리밥 아줌마가 선을 주선해놓은 날이었다. 어른의 몸을 한 동동이의 데이트가 어설프고 실수투성이였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실수를 만회하려는 동동이의 아이다운 기특한 마음이 통해서 새엄마를 얻게 된다. 한달 동안 동동이의 게임 아이디로 게임을 실컷 즐기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캡슐 마녀로부터 영혼이 바뀌는 캡슐을 하나 더 선물로 받게 된 동동이는 이번에도 동생 묘묘와의 영혼 바꾸기를 시도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동이의 영혼이 들어간 몸에는 가슴에 묵직한 사과 두 개가 달려있다.^^ 영혼이 바뀐 두 사람 중 한사람의 영혼이 자라야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데 아마도 동동이네 세 식구와 새 엄마의 진정한 가족 만들기를 통해서 영혼은 주인을 찾아갈 것 같다. 잠이 덜깬 모습으로 품에 쏙 안기는 엄마 없이 자란 어린 묘묘가 안쓰럽고, 어린 묘묘의 머리를 서툴게 감아주면서 아내 없는 7년 동안 두 아이를 키워낸 아빠의 노고를 새삼 느끼게 되었던 첫 번째 영혼 바꾸기처럼 두 번째도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유쾌하게 풀어나가리라 믿는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따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영혼이 바뀌는 캡슐을 발명하고 게임을 즐기는 캡슐 마녀라든가 아빠의 몸 속에 들어간 동동이가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처럼 매력적인 캐릭터와 유쾌한 이야기가 넘치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은 눈과 마음으로 읽기에 유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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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이네 떡집 난 책읽기가 좋아
김리리 지음, 이승현 그림 / 비룡소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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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터무니없는 독심술의 근거는 『만복이네 떡집』의 쑥떡이다. “엄마, 다 알고 있거든요. 난 쑥떡을 먹어서 엄마의 생각이 쑥덕쑥덕 다 들리거든요.”하면서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나가곤 한다. 하루 종일 조잘거리는 것이 때로는 귀찮아서 아이에게 ‘입에 척 들러붙어 말을 못 하게 되는 찹쌀떡’을 날려도 그건 별로 효과가 없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 비실비실 웃게 되는 바람떡’, ‘달콤한 말이 술술 나오는 꿀떡’, ‘재미있는 이야기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무지개떡’, ‘눈송이처럼 마음이 하얘지는 백설기’, ‘오래오래 살게 되는 가래떡’이 찹쌀떡 쑥떡과 함께 만복이 전용 떡집에서 파는 떡의 종류들이다. 부잣집 외동아들인 만복이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 모두 만복이의 입에서 원하는 것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뭐든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가족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군침 도는 떡값이야 주머니 속 두둑한 용돈으로 해결하면 될 텐데 이 떡집의 떡값은 착한일이나 아이들 웃음으로 치러야 한다. 안하무인에다 버릇없고 걸핏하면 친구들과 싸우고 욕쟁이 깡패 심술쟁이로 불리는 만복이에게 떡값으로 치를 착한일이 있을 턱이 없다. 겨우 한 가지 착한 일을 생각해내고 맛본 찹쌀떡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떡을 맛본 다음날부터 만복이는 착한 일과 친구들의 웃음을 모을 방법을 생각한다. 시작은 만복이네 떡집의 다른 떡들도 맛볼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착한 일을 실천했지만 자신의 변화에 기뻐하는 가족들과 다가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만복이 스스로도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만복이의 변화된 모습은 만복이가 등교해서 교실로 들어서기 전 친구들의 외침으로 알 수 있다. “욕쟁이 깡패 만복이 온다.”는 조심하고 경계하라는 알림에서 “만복이 온다.”면서 만복이 자리로 몰려 재미있는 얘기를 듣는 반가움으로 변하면서 더 이상 예전의 만복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친구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선생님이나 친구의 속마음도 헤아릴 줄 알고, 수줍어하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갈 줄도 아는 멋진 만복이로 변해가면서 자신의 예전의 모습들에 대한 반성도 잊지 않는다. 만복이에게 더 이상 ‘만복이네 떡집’은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만복이네 떡집’은 만복이의 호의를 무시하고 만복이의 코피를 터뜨린 ‘장군이네 떡집’으로 슬며시 간판이 바뀐 것을 보고 만복이는 헤벌쭉 웃으며 가게 앞을 지나쳐 간다.


만복이처럼 ‘부잣집 외동아들’은 아니고 ‘그냥 외동아들’인 우리 아이에게 가정 안에서 버릇없는 말이나 행동은 엄하게 꾸짖는 편이고 집 밖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언행은 삼가도록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지시키고 있다. 형제 없이 혼자 자라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또래들과 어울리는 부분에서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노력 없이 그냥 주어지는 부분은 최소화 하려고 노력하고 대신 아이와의 약속 또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눈 맞추고 안아주며 자주 표현을 하지만 잘못된 행동은 눈물을 뚝뚝 흘리도록 혼을 내기도 한다. 꾸지람이 끝나면 달려와 안기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밑바탕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낼 시기가 됐는데 과연 ‘요즘의 학교란 곳이 아이를 믿고 맡길만한 곳인가’ 라는 의문만 무성하고 도통 뒤숭숭한 이야기들만 들린다. 우리의 아이들은 가정, 학교, 사회 어느 한 곳에서라도 소홀히 한다면 상처받기 쉽다. 하지만 어느 한 곳의 따스한 배려가 무한한 가능성과 용기와 긍정적인 에너지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가 ‘위저드 베이커리’나 ‘만복이네 떡집’과 같은 간판 하나씩 내다걸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꾸짖고 규칙을 강요해서 숨 막히게 하기보다 스스로가 반성하고 변화할 시간을 기다려줄 줄 아는 넉넉하고 아늑한 공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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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3-0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님 지금 리뷰 올리셨구나~ 전 애들 보내놓고 애아빠 어제도 술 먹고 들어와 끓여논 콩나물국에 밥 말아먹고 지금 커피 마시면서 여기 들어왔다능~ 서재 브리핑보니 섬님이 젤 앞에 놓여 있더라구요.

전 그래도 학교에 대한 믿음이 가요. 사실 선생님들도 우리 다녔을 때 비하면 아이들을 폭력이나 폭언으로 대하진 않더라구요. 진짜 유별난 사람은 단 한명 민준이 일학년때 빼곤 다 좋으신 분들이였어요. 대체로 나이든 할머니 선생들이 문제지 선생님들 요즘 좋으시더라구요. 아이들도 아직은 어려서 초등5,6학년 가야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는데, 그게 다 부모와의 연대하고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

신내동이 아니고 상봉동으로 이사했어요. 여기가 살기는 편한 것 같아. 이마트나 코스코도 가깝고~

2012-03-12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2-03-0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한이 중랑천 올 때 연락 줘요. 나야 번호 그대로인데^^ 근데 거기에서 올 수 있을까? 너무 먼데. 승한이 학교가서 밥 먹고 오기까진 자유시간이네요. 흑흑 우리 땐 무료급식이 없어서 11시면 왔는데, 승한 엄마 좋겠어요~

나도 슬슬 일어나서 청소해야지. 울 애들은 정말 집안을 너무 폭탄처럼 해놔요.
 
장화 신은 고양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9
샤를 페로 글, 프레드 마르셀리노 그림,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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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와 전설이나 민담을 채록해 엮은 동화책 속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변형을 낳는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샤를 페로와 독일의 그림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읽는다면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백설 공주> 등은 시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윤색되어 온 이야기들이다. 잠자고 있는 미녀를 취해 아이를 낳게 했고, 신발에 억지로 발을 끼워 넣으려고 발뒤꿈치와 발가락들을 잘라내고,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한 여자가 계모가 아니라 친모였다는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의 충격과 파장을 생각하면 적당하게 손을 댄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채록한 이야기를 윤색하지 않고 그대로 출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던 그림 형제의 고집도 존중한다. 사실적인 이야기가 잔혹하다 할지라도 이야기가 반드시 교훈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찬성한다. 고집스럽게 사실적으로 기술한 그림형제나 이보다 앞서 출간된 샤를 페로의 이야기가 시대에 맞게 혹은 차용한 작가의 주관에 따라 자유롭게 변주할 원전이 되어주고 있으니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샤를 페로의 글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샤를 페로의 동화는 궁정이나 살롱에서 낭송된 글이라서 이야기 끝에 교훈을 강조한 훈훈한 결말로 각색되었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그러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에서는 잔혹한 그림형제본보다 페로본을 선호했음이 당연했을 것이다. 샤를 페로 보다 나중에 나온 그림형제의 동화집에도 「장화 신은 고양이」가 수록되어 있고 페로본과 그림형제본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 읽었던 동화나 지금 내 아이가 읽는 그림책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방앗간 막내아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졌고, 가난한 주인에게서 장화 한 켤레 얻어 신고 갖은 계략을 꾸며서 주인에게 부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인은 서양의 전설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거인으로 잔인하게 사람을 잡아먹고 자유롭게 변신을 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오거(ogre)' 혹은 '오우거' 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거인은 서양의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인데 오거라는 명칭이 샤를 페로의 「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고 한다. 콜린 맥노튼의 『거인 사냥꾼을 조심하세요!』에서는 아예 대놓고 ‘오우거는 나쁜 거인’을 지칭한다고 말하고 있고, 토미 웅게러의 『제랄다와 거인』에서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식성을 드러내놓는 거인이 등장한다.


얼마 전에 아이와 함께 영화 「장화 신은 고양이」를 보면서 동화의 원전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판본인 페로본 그림형제본에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여기에 ‘디즈니’본이 하나 추가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원작에 손을 대서 어쩜 그리도 완벽하게 변신을 시키는지 놀라운 따름이다. (‘디즈니’본이라 했지만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전체를 두고 한 말이다. 디즈니와 드림웍스를 굳이 구분하자면 「장화 신은 고양이」는 드림웍스 작품이다.) 그림책으로 읽어 장화 신은 고양이를 이미 알고 있었던 아이가 영화를 보던 중간에 ‘잭과 콩나무’ ‘험티 덤티’가 마구 섞였다고 얘기를 했다. 거기에 ‘장화 신은 고양이’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 하면 바로 연상되는 ‘조로’까지 뒤섞어 놓은 것까지는 아이는 몰랐을 테지..^^ 거인과의 한판을 제외하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얘기가 현란한 로드 액션 활극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이 모든 현란함은 「장화 신은 고양이」「잭과 콩나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원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동화의 뒷얘기들을 찾아다니고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다리를 놓아보는 것이 내가 그림책과 동화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이런 얘기들은 몰라도 이 그림책을 읽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으니 그냥 책을 즐기면 된다. 익숙한 이야기에다 칼데콧 아너상까지 받은 그림이 아닌가..그저 편안하게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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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 2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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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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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5 1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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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7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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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5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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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녀석 맛있겠다 - 별하나 그림책 4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1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백승인 옮김 / 달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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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감동은 그림책이 추구하는 이상향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그림책을 만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재미나 감동 어느 한쪽이라도 완벽하게 만족시키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두 마리 토끼를 쫓으려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가 나오는 것보다는 어느 한쪽이라도 확실하게 방향을 잡는 게 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 『고 녀석 맛있겠다』처럼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그림책은 확실하게 눈도장 찍어두고 작가의 다른 책들까지 두루 섭렵하곤 한다. 2004년에 출간된 『고 녀석 맛있겠다』에 이어서 지난달에 나머지 시리즈들이 한꺼번에 출간됐다. 물론 7월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고 녀석 맛있겠다』에 힘입어 다른 시리즈들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티라노사우루스다』,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 『넌 정말 멋져』가 시리즈의 나머지 작품들이다. 미야니시 타츠야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고 녀석 맛있겠다’시리즈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는 ‘늑대&돼지’가 등장인물인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가 시작이었다. 늑대&돼지 이야기는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2009년 12월)』, 『찬성!(2011년 2월)』까지 이어진다. 미야니시 타츠야의 작품은 독특한 일러스트로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굵은 테두선 안에 마치 초등학생이 그려놓은 것 같은 단순화한 그림에는 유머가 넘친다. 늑대, 돼지, 공룡, 숲속, 나무, 별빛 가득한 밤하늘 등의 그림 하나하나에는 미야니시 타츠야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독특한 표정이 있다. 그림에 녹아든 유머는 글에까지 번져서 그림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깔깔대게 된다. 이 정도에서 멈추면 이렇게 사설을 길게 늘어놓을 정도로 길어진 칭찬이 민망하다. 웃으면서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게 하는 감동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고 녀석 맛있겠다』의 ‘맛있겠다’는 안킬로사우르스라는 아기공룡의 이름이다. 알에서 갓 깨어난 아기공룡 안킬로사우르스를 잡아먹으려고 했던 티라노사우르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고 녀석 맛있겠다’라는 말이 그대로 아기공룡의 이름이 되어버린 것이다. 엉겁결에 초식공룡의 아빠가 된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르스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좀 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마법주문과 같은 말, “아빠처럼 되고 싶어요.”에 감동한다. 아기공룡을 잡아먹으려는 다른 육식공룡과 싸움을 하고, 초식공룡처럼 풀을 뜯어먹고 아기공룡이 따온 빨간 열매를 먹기도 한다. 박치기나 꼬리치기, 울부짖는 법처럼 험난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들을 아기공룡에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하지만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르스와 초식공룡인 안킬로사우르스의 위험한 동거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티라노사우르스는 아기공룡을 동족의 공룡들에게 돌려보내며 쓸쓸하게 돌아선다. 아기공룡과 티라노사우르스의 어처구니없는 첫 대면에서 웃음이 터지고 본능까지 넘어선 아비의 사랑에 코끝이 찡해진다.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가 보여주는 재미와 감동은 이제 그림책에서 서서히 멀어져가는 우리 아이를 잡아 앉힌다. 신간목록들을 보다가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가 새로 나왔네” 하면서 아이에게 한마디 했다가 몇 년 전에 읽었던 『고 녀석 맛있겠다』를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나머지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아이의 등쌀에 못 이겨 아직 우리집으로 들이지 못한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와 ‘늑대&돼지’ 시리즈들을 서둘러 불러들이고 있다. 이렇게 망설임 없이 뒤탈 걱정 없이 후련하게 그림책 추천하기도 오랜만인 것 같다.^^ 『고 녀석 맛있겠다』재미있다. 감동도 있다. 아직 만나보지 않은 어린이들이 있다면 적극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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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도둑 놈! 놈! 놈! 읽기의 즐거움 6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유혜자 옮김 / 개암나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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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빚어낸 판타지를 현실 속에 능청스레 녹여내고, 대두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날카로움과 더불어 따스한 시선과 유머를 잃지 않는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글은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오이 대왕』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해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는 흉물스럽고 교활한 오이대왕으로 인해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사는 볼프강네 가족들의 비밀스런 뇌관을 건드려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머릿속의 난쟁이』에서는 이혼한 엄마 아빠, 서로를 싫어하는 양쪽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를 오가며 즐겁지 않은 성탄절 파티를 해야 하는 안나가 머릿속에 사는 난쟁이와 고민을 나누고, 『언니가 가출했다』는 이혼과 재혼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와 재구성을 다루며 그 안에서 억압과 순종을 강요받은 열다섯 언니의 가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깡통 소년』은 부모의 조건에 맞는 아이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깡통에 넣어져 배달된 여덟 살 소년 콘라트를 엄마의 경험도 없고 게으르고 청소나 요리는 젬병인 바톨로티 부인에게 툭 던져놓는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작품 몇 개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현실과 밀착되어 있고, 유쾌하고 즐거운 구성을 보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는 유명한 어린이 청소년 문학 작가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독일 청소년 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 등의 수상 목록이 유명세와 인기를 말해주고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좋아하는 아동 청소년 문학 작가들은 독일어권에 집중되어 있다. 미하엘 엔데, 에리히 케스트너, 제임스 크뤼스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작품은 아직 읽지 않은 제목의 책을 발견할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읽곤 한다. 『우체국 도둑 놈!놈!놈!』은 저작권 표기란을 살펴보니 1986년 작품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만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책의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책의 삽화는 대개의 경우는 글의 한 장면을 재현하거나 분위기를 표현하는 정도인데 이 책에서는 그림에 등장하는 만화의 말풍선 또한 글의 연장이라서 지나치면 이야기의 연결이 끊어져 버린다. 144쪽의 분량이지만 순식간에 늘 그렇듯 즐겁고 유쾌하게 읽힌다.   


어린이들이 위기의 순간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짜릿한 모험 이야기는 동화작가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모양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소년탐정 칼레’, 에리히 케스트너의 ‘에밀과 탐정들’이 그랬듯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어린이 탐정단은 ‘무퍼파’이다. 지역신문 사건사고란에 실린 열한 살 소녀 이본카 피본카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로 결심한 무퍼파에 사건의 발단을 알고 있는 이본카의 친구인 리제가 합류해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리제에게는 쌍둥이 이모할머니가 계신데 두 이모할머니가 뺨을 맞대고 읽고 있는 책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목사관 살인 사건」인 것을 보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매력적인 탐정 할머니 ‘미스 마플’을 흉내 내면서 무퍼파의 사건 수사에 깊숙이 개입하게 됨을 미리 알 수 있다. 어린이 탐정단이 등장하는 이야기 속 악당의 모습들이 그렇듯, 이 이야기에도 어수룩하기 짝이 없어서 결정적 순간마다 황당한 실수를 저지르는 세 명의 도둑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콧수염 오토, 뚱보 오토, 삐딱이 오토...이름이 모두 오토인 세 도둑은 우체국 현금수송차를 털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소녀 이본카에게 계획을 들키게 되자 이본카를 납치해 범행을 벌일 날까지 친구인 키티의 집에 감금한다. 하나씩 밝혀지는 사건의 단서를 쫓는 무퍼파 아이들과 ‘미스 마플’ 쌍둥이 할머니는 돈을 훔쳐 달아나던 세 도둑을 추격한다. 도둑들의 황당한 실수와 쌍둥이 할머니들의 기지로 우체국 현금 도난사건과 이본카 실종사건은 예상했던 방향으로 해결된다.


세인트 메리 미드 마을을 거의 벗어나본 적이 없는 미스 마플 할머니가 자신의 집 정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차를 마시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마을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꿰뚫고 있었듯이 리제의 이모할머니 두 분도 무퍼파의 그간의 행동들을 슬쩍 꼬집는다. 남의 체리나무에서 체리를 훔치고, 우유 가게 간판을 떼어가고 하수구를 막히게 하는 장난 또한 나쁜 짓이라는 부드러운 경고도 잊지 않는다. 신문에 무퍼파에 대한 특별기사까지 실리며 유명인사가 되었으니 심심하고 따분하다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못된 장난이나 치던 무퍼파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나는 조악한 삽화와 제멋대로 각색한 명작과 전래 동화가 유년시절 책의 전부였던 시대를 살았다. 물론 그것마저도 귀했었다. 이어서 한국위인전, 세계위인전, 소년대삼국지,..이런 것들을 읽고 나서 읽을 책이 없으니 바로 고전 문학 작품들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졸라서 받은 세계문학 전집의 1권이 단테의 「신곡」이었던 이유로 예비 중학생이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이야기다. 그저 지면을 채운 글만 읽으면서도 읽었고, 어렴풋이 느낌만 잡을 수 있으면서도 읽었다. 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작가의 작품은 작가 소개글에 언급된 작품들을 찾아서 읽는 것으로 이어갔다. 빠듯한 용돈을 아껴서 삼중당 문고, 범우사르비아문고를 비롯한 문고판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닥치는 대로 많이 치열하게 읽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책을 읽었던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나는 요즘 어린이 청소년 문학을 즐겨 읽는다. 그 시작은 내 아이보다 몇 년 앞서 아이가 읽을 책을 미리 읽어본다는 이유였지만 이제 여덟 살인 아이를 두고 청소년문학까지 와 있다는 것은 이미 발단이 됐던 이유는 뒷전으로 물러났다는 얘기가 된다. 책들이 열병식 하듯 늘어서 있는 어린이 서가를 거닐 때면 나는 책이 풍성한 요즘 아이들에게 한없는 부러움과 질투마저 느낀다. 나는 오늘도 그 시절에 만났더라면 좋았을 책들을 원없이 읽으며 열세 살에 단테의 「신곡」을 끌어안고 머리를 쥐어짰던 가엾은 내 청소년기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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