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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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과 아이에게 자신의 욕심을 투영시켜 끊임없이 다그치는 부모가 아이들을 옥죄는 세상이다. 아이를 아이의 모습 그래도 봐주고 절대 강요나 간섭 없이 기다려주는 엄마는 왠지 직무유기라는 엄중한 죄를 짓고 있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세상이다. 아이의 일상을 잠시 들여다보자. 평일은 학교와 학원 등 하루하루 소화해 내기에 급급하고 주말과 휴일에는 다음 주를 준비해야 하고 방학은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놀이터에서 잠깐 노는 시간도 일과와 일과 사이에 짬을 내야할 정도이다 보니 이러다가 숨을 쉬는 것조차 스케줄을 짜야 하고 변기에 느긋하게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 만성변비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늘지 않을까 노파심이 들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아이들이다. 그러면서 주위의 잘난 친구들과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엄마가 정해놓은 기준에 도달하도록 등 떠밀리지만 엄마의 기준이란 것은 쫓아가면 또 저만큼 멀어져 있다. 늘 헉헉대며 쫓다보면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하는 것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이런 시스템이 아이들을 결코 행복하게 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엄마일 수밖에 없는 내 고민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쏟아져 나오고 있는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와 그 안에서 가족의 의미를 재정립 해보자는 주제의 이야기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읽은 『열세 번째 아이』처럼 유전자 조작으로 부모의 조건에 맞는 완벽한 아이를 만든다는 이야기와 아이가 자신의 엄마를 주문한다는 『엄마 사용법』은 표면적으로 서로의 입장이 바뀐 것만 다를 뿐 결국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자에 속하는 어른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기를 권하는 이야기.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 달 남짓한 학교생활 중에 처음 평가라는 것을 한다고 하니 받아쓰기나 단원평가를 준비 없이 치러도 되는지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서둘러 단원평가 문제집을 들이밀고 채점을 하는데 한두 문제 실수가 보였다. 옆에 앉혀두고 설명을 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엄마들의 욕심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내 목소리가 힐책하는 듯 느껴진 모양이다. 황급히 목소리를 바꿔서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야, 엄마는 100점을 맞으라는 게 아니야. 실수하는 부분을 알려주려는 거야.” 서둘러 수습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이들은 묻고 싶어질 것이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엄마의 기준에 맞는 아이를 주문해서 받아서 키우지 그랬냐고.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결코 이런 엄마를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항변이 들리는 듯하다. 『엄마 사용법』의 보편적 엄마 모습인, 아이들을 시간 맞춰 깨워주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주는 가전제품과 같은 엄마를 더 선호할 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의 지나친 간섭에 지친 세상을 비웃듯 『엄마 사용법』속 세상의 엄마는 존재감이 없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 하는 용도가 전부인, 엄마의 존재감은 딱 거기까지인 세상이다. 그마저도 서툴면 불량엄마라 하여 가차 없이 버려진다. 하지만 처음 엄마라는 생명장난감을 갖게 된 여덟 살 현수는 ‘안아주고 책도 읽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따스한 엄마를 꿈꾼다. 하지만 배달 되어온 생명장난감 엄마는 현수에게 다가오지 않는 기계적인 모습만 보인다. 현수는 아기에게 세상을 하나씩 가르쳐주는 엄마처럼 생명장난감 엄마에게 자신이 바라는 엄마의 모습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다. 잠들기 전에 책 읽어주기, 웃으며 손 흔들어 인사하기, 손잡고 산책하기 등등.. 현수의 생명장난감 엄마는 점점 특별한 엄마가 되어 간다. 하지만 생명장난감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세상은 현수의 엄마를 불량품으로 규정한다. 현수와 엄마는 불량 생명장난감을 수거하는 파란 사냥꾼들에게 쫓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현수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깊어간다. 어쩌면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는 현수처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바라고 원하는 무수히 많은 것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하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다.       


언젠가 내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가 상상하던 모습의 아들이에요?” “그럼, 상상하던 모습보다 훨씬 더 멋진 아들로 태어나줬지.” 나는 또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럼 엄마는 우리 아들이 상상하던 엄마와 비슷했어?” “엄마 뱃속에서 컴퓨터로 엄마를 주문했는데 나와 보니까 훨씬 더 좋은 엄마가 있더라고요.” 그래, 나도 안다. 말은 참 고맙지만 100% 만족스러운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끌어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누군들 모르랴. 아이는 나한테 좋은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아줬지만 나도 이런 책을 읽으면 뜨끔해지는 보통의 평범한 엄마다. 하지만 아이에게 좋은 엄마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제부터 나는 아이의 마음을 배워나가려 한다. 그 시작을 좋은 엄마의 모습을 흐리는 말과 행동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부터 하려고 한다.

  

『엄마 사용법』은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전 대상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처럼 기발하고 참신하고 강렬하고 도발적인 소재는 아니다. 요즘 이런 게 유행인가 싶게 자주 목격되는 소재다. SF의 옷을 입은 미래의 어디쯤이 아니라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전하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메시지가 강해 재미를 가려버린 느낌이 든다. 초등 저학년용 읽기 책에 상징이나 은유나 의미부여나 코드 숨기기가 지나치면 재미를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출판사의 이름을 건 공모전이다 보니 약간의 권위 챙기기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인 모양이다. 눈물 나게 감동적이고 막무가내로 재미있다. 라는 한 줄 감상평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작품도 수상작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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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파랑 2012-04-1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리뷰인데 추천이 없다니^^ 그런데 초등학교 갓 입학한 아이가 정말 저렇게 엄마한테 물엇나요? 놀랍습니다.

햇빛섬 2012-04-16 10:29   좋아요 0 | URL
훌륭한 리뷰라는 칭찬에 아침부터 팔랑팔랑 날아갈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집 꼬맹이는 성장도 느리고 행동도 느린데 말로만 다 해먹는 녀석이라서 가끔 어른들을 뜨끔하게 하는 말들을 쏟아놓곤 한답니다. 그날도 제가 한방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