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으로 돌아간 악어가죽 가방 길벗어린이 저학년 책방 9
김진경 지음, 윤봉선 그림 / 길벗어린이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이야기와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지나 서로 교감한다. 그 소통의 흔적들을 하나씩 만나는 과정이 이야기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채인선의 『노래기야 춤춰라』의 구두신고 춤추는 노래기 천개의 발은 로알드 달의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의 운동화 신는 지네와 소통하고, 김혜연의 『코끼리 아줌마의 햇살 도서관』의 사서와 여섯 살 진주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속 사서와 마틸다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밀림으로 돌아간 악어가죽 가방』은 제목과 간단한 소개글을 읽자마자 비네테 슈뢰더의 환상적인 일러스트로 만났던 『악어야, 악어야』를 떠오르게 했다. 나일 강가에 살던 악어가 악어 가게에 가면 근사한 물건들이 많다는 귀부인들의 얘기만 듣고 파리로 떠난다는 『악어야, 악어야』의 얘기와 도시 백화점 진열장의 악어가죽 가방이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한다는 얘기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생태계와 환경 문제일 것이다. 동요 악어떼..“정글 숲을 헤치며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악어떼가 나온다. 악어떼!!” 내 아이의 아들이나 손자쯤 되면 아마 악어 또한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동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악어는 왜 그리 멋진 가죽을 갖고 태어나서 이런 수난을 당하는 건지...『밀림으로 돌아간 악어가죽 가방』에서는 우쭐대기 좋아하는 악어의 먼 조상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임금님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자에게 큰상을 내리겠노라 선포하자 평소 뽐내기를 좋아하는 악어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보려 애쓴다. 악기 연주도 실패하고 노래도 해보려 하지만 굉장한 소음일 뿐이다. 아름다운 소리를 찾다 지쳐 벌렁 드러누워 우연히 꼬리로 배를 통 쳤는데 아주 그럴듯한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 길로 임금님의 궁전으로 뽐내러 달려간 악어는 임금님의 악사가 되어 궁전에서 살게 된다. 단지 그냥 뽐내고 싶었을 뿐인데 맘껏 뽐내며 살던 물웅덩이를 떠나 궁전의 돌바닥을 기어 다니며 살게 된 것이다. 악어의 고민만 깊어졌다면 다행일 텐데 악어의 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사람들은 악어를 마구 잡아서 뱃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등가죽으로는 가방이며 지갑이며 허리띠도 만들었다. 그때부터 악어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뭐든 뽐내기 좋아하는 조상 할아버지 악어 때문에 지금 백화점 진열대의 어미와 새끼 악어가 가방이 되어 떡하니 올라와 있는 것이다. 깊은 밤 사람들 눈을 피해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와 아기 악어에게 마법과도 같은 푸른 불빛 회오리가 일어난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이 있는 뽐내기 좋아하는 조상 할아버지 악어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큰 가방 악어와 작은 가방 악어가 악어의 모습으로 변한다. 백화점 쇼윈도 유리를 깨고 하수구 뚜껑을 깨트려 하수구로 들어가 강을 타고 사람들 눈을 피해가며 밀림으로 돌아가게 됐다. 욕심 많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밀림 깊숙이 숨어버렸을 테지.

악어가죽 제품이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팔려나가게 된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고, 판타지적 요소가 다소 황당한 상황에 튀어나오지만 그림책에서야 개연성을 따지고 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야기 말미에 혹시 우연히 길에서나 강에서 마주친 악어가죽 가방이 있었다면 아마도 밀림으로 돌아가고 있는 어미와 새끼 악어였을 거라는 센스 있는 유머도 밍밍한 맛이 날 수도 있는 빤한 마무리에 톡 쏘는 맛을 더해준다.

주변 사람들 중에 평소 사치나 허영과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명품 백 하나 정도는 필요하더라는 얘기들을 한다. 집안 경조사나 격식 차려야 할 자리에 가면 소박한 옷차림과 존재감 없는 가방이 주눅 들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 눈부신 청춘의 빛이 사그라지는 나이의 자연스런 보상 심리를 작동시켜 겉모양새에서 보충하려 드는 것일까... 엊그제 한강에서는 인공섬에서 펼쳐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모피쇼로 시끌시끌했다. 누군가가 들고 나온 피켓처럼 ‘모피는 동물의 것!!’...동물의 가죽은 엄연히 그 소유가 동물임을 인간들은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가장 멋지고 빛나는 모피를 만들려고 살아있는 짐승의 가죽을 벗긴다고도 한다. 누군가가 내 가죽을 벗기려 든다면 그 공포와 분노가 극에 달해 날뛸 게 빤한데 말 못하는 동물들의 그 슬픈 눈빛을 너무나도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해버리는 게 아닌지 분개하게 된다. 내 것도 아닌, 남의 가죽을 벗겨 몸에 두르면 품위와 기품이 저절로 생겨나는 걸까? 우리 인간들도 뽐내기 좋아하던 악어처럼 뽐내고 우쭐대느라 후대의 원망이 하늘에 닿아 하늘나라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laalthd 2014-01-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gkg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