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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마법의 수프 ㅣ 웅진 세계그림책 14
클로드 부종 지음 / 웅진주니어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어느 주말 아침, TV속 북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잠시 보고 있었다. 카메라에 잡힌 여인네들의 얼굴이 어쩜 그리도 곱던지...남남북녀라고 우선 떠올릴 수 있었던 말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든 생각. 하도 깎아 대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의 불편해 보이는 밑 부분처럼 뾰족해진, 소위 말하는 ‘V라인’이라는 얼굴에 덩달아 얼마나 날카로워져 있었는지 그 동글동글한 얼굴이 너무나 푸근하고 예뻐 보이는 거다. 마음을 흔드는 빼어난 미인도 없지만 설사 그런 미인을 눈앞에 두고도 어느 정도의 개보수를 거쳐서 만들어진 얼굴일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연예인들의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과거 사진들의 충격도 그렇거니와 주변에도 평생의 콤플렉스였던 부위에 손을 대서 몰라보게 예뻐진 사례들이 너무나 흔하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획일화된 미인의 얼굴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거다. 마녀 라타투이의 마법의 수프가 만들어낸 라타투이를 쏙 빼닮은 일곱 명의 꼬마 마녀들을 통해서 이 얼굴이 저 얼굴 같은 개성을 잃어버린 현대의 미녀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면서 모음 차이로 하늘과 땅처럼 갈리는 진정한 ‘미녀’와 ‘마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 그림책 세계에서 튀어나올 수만 있다면 마녀 라타투이는 현실 세계로 당장 튀어나와 예뻐지는 마법의 손길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어느 날 잡지 속 미녀의 얼굴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견주던 마녀 라타투이는 자신도 잡지의 미녀처럼 예쁜 여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예뻐지는 마법 수프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부엌에 있는 마법의 책을 다 뒤지지만 마녀의 마법의 수프 요리법은 죄다 공주를 두꺼비나 오이로 만드는 요리법 밖에는 없다. 레시피에도 없는 예뻐지는 마법의 수프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작정한 라타투이는 여기저기서 이상야릇한 재료들을 집어넣어 수프를 끓인다. 과연 이 재료들고 예뻐지는 마법의 수프가 만들어질지 의문스러운 재료들을 배짱좋게 넣어서 완성한 마법의 수프를 우선 고양이, 박쥐, 두꺼비, 생쥐, 부엉이 등에게 먹이고 그 동물들을 금고 안에 집어넣고 문을 잠가둔 뒤 다음날 수프의 효과를 기다릴 작정을 한다. 미녀가 되는 꿈을 꾸며 밤을 보낸 마녀 라타투이는 금고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란다. 일곱 명의 꼬마 라타투이들이 배고파 죽겠다고 수프를 끓여내라고 소리를 질러대고 난리가 난 것이다. 예뻐지겠다는 꿈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라타투이는 새 식구들을 먹이느라 하루 종일 일만 해대야 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잘 가라, 사진 속의 여자여!
잘 가라, 미녀의 꿈이여!
라타투이의 마지막 탄식이 어쩐지 심하게 공감이 간다. 아침에 식구들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해놓고 남편 깨워서 아침상 차려주고 시간 맞춰 아이 깨워서 아침밥 먹이고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 유치원 버스 태워 보내고 집에 들어와 커피 한잔 마시고는 바로 빨래며 청소며 아이 간식과 저녁 찬거리 장보고 오면 벌써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된다. 결혼한 지 6년. 아이 어릴 때 거치적거렸던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 묶던 스타일 그대로 몇 년을 지내다보니 머리카락의 윤기도 사라지고, 그마저도 요즘엔 흰머리가 삐쭉삐쭉 나와서 가끔씩 남편에게 머리를 들이밀어야 한다. 피부의 탄력도 예전과 같지 않고, 일상의 피곤함마저 쉬이 찾아온다. 잡지 속 미녀의 꿈은 고사하고 나의 눈부셨던 시절도 지났다는 증거들이다. 눈부시게 빛나던 시절을 지나온 이 모습으로 앞으로 채워갈 남은 시절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눈부신 외모는 다시 찾아올 수 없어도 나만의 은은한 향기 정도는 풍기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라타투이의 탄식은 이렇게 나의 탄식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