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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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야기는 목적지를 향해가는 것이지만 내게 있어서 그것은 내 마음 속을 깊숙이 비추어 보는 것이기도 하다. 길을 걸으며 여행의 견문이 넓혀진다면 마음의 길을 찾으며 그 내면이 구체화된다. 멀리 떠날수록 가까워지는, 그래서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나 자신과의 사이가 한결 더 친밀해지는 어찌 보면 역효과의 원리가 여행을 통해 성립되는 것이다.




<연금술사>가 딱 그런 경우다. 산티아고의 기나긴 여정을 바라보며 나는 그 거리와 비례하여 나 자신의 마음속 즉, 자아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보석을 찾기 위해 떠난 모험의 결과물로 더 값진 ‘자아의 신화’를 일궈낸 그를 지켜보는 내가, 마치 그가 된 것인 양 마음이 풍족하게 여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결국엔 자기 내면의 길을 밟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내면의 길이 보다 더 확장된 것일 테고, 그의 여정이 빛을 발했던 것이다. 천신만고를 무릅쓰고 헤쳐나간 그 여로는 가히 위대했으며 그 귀로는 더더욱 찬란했다.




이 책은 ‘자아’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과 그것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힘, 그리고 이것들을 통한 ‘성찰’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양치기로 일해오던 주인공은 어느 날 연속된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을 찾아가는 여로가 바로 자아를 찾아 떠나는 통로이다. 물질의 성질을 변화시켜 무엇이든 금으로 재탄생시키는 연금술과 굳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그것을 해동시키는 ‘자아의 신화’는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연금술사>의 원리는 자아의 또 다른 실험인 것이다. 자아의 신화를 연금술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정말 마법과도 같다. 그 마법의 척도는 엄청난 위력의 독자들의 깨달음으로 구현되는 것이고.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주인공의 여행과 내 마음속을 번갈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연금술사>가 실로 대단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결국에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그 책의 진가가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항상 내 자신을 둘러보게 되고 마음에 귀 기울이게 되고 무엇을 쫓아가야하는가 궁리를 하기도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연금술사>는 그 정점에 자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 자신이 무언가를 소망할 때 온 우주가 그 소망의 달성을 위하여 도와준다고 한다. 간절히 소망하면 우주는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고 끝내 그 소망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게 <연금술사>가 말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진리이다. 사방에 깔려있는 돌덩이를 반짝이는 금으로 변화시키듯이 우리는 한낱 꿈을 간절한 소망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언제 금으로 변하는 지 또렷이 지켜보면서 그것을 빤히 응시하고 그것이 발하는 소망의 광채를 눈 곳곳에 서리게 하여 마음 한 편에 흡수를 해야 한다. 우리가 한낱 꿈을 간절한 소망으로 바꾸길 원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현실’로 진화시키고 싶어 한다면, 그 소망의 실현을 위하여 만물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만물이란 결국에 나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도로 위를 활보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 길을 굽어보는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현실에서의 도피를 위하여 여행을 떠난다고들 하지만 결국엔 나 자신의 막힌 길을 뚫어보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일 테고, 그 여행의 결과물로 지친 다리를 이끌고 돌아오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은 더욱 탄탄하여 돌아오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의 여행이 단지 도로 위에서의 도보가 아니라 ‘자아의 신화’와 ‘소망의 실현’이라는 우림과 툼밈을 가지고 떠나는 내면의 여행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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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jung0211 2007-08-2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코엘료의 책 중에 베로니카를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답니다. 그러나 아직 이 책은 읽어보지 못 했네요.ㅠㅠ 코엘료 작품 중에 제일 유명한 책 같은데~ 상상마루님 리뷰 보니까 막 더 읽고 싶어지네요!

상상마루 2007-08-21 15:09   좋아요 0 | URL
앗, 찜질녀님이시다!! ^-^~~ 반가워요 ㅎㅎ
파울로 코엘료는 <악마와 미스프랭>에서 시작해서 최근에 읽은 게 <연금술사>랍니다. 저는 파울로의 책 중에 <연금술사>가 가장 난 것 같아요. 일주일 시리즈 3권은 그다지 감흥이 없었어요.....^^;;

비로그인 2007-08-26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맘에 드는 책이지요.^^ 지금까지 한 다섯번은 읽은것 같아요.ㅎㅎ
저도 읽을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책을 대할때면 항상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마음속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생각하고, 다짐한답니다.
 
삶을 만나다
김형민 지음 / 집사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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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태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나의 세상의 약소함에 비해 세상 전체는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라도 된 것처럼 세상은 내가 갇혀있는 우물처럼 높았고, 그 속에서의 울림은 크나큰 것이었다.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한적히 개굴거리고 있을 때, 내게 책 한 권이 나타났다. 일주일이 넘게 고이 간직만 해두다가 결심을 하고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만 그 책이 그저 책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삶과 조우한 것이다. <삶을 만나다>라는 통로를 통하여.




이 책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글쓴이와 형식부터 말해야겠다. 이 책의 저자는 SBS에서 PD로 활동하고 있는 김형민씨로 촬영을 하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나 그의 체험기를 이야기 속에 진솔하게 담아냈다. 여러 가지 일화가 다발적으로 묶여있는 이 책의 형식이 그러하듯 김형민씨의 체험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그리고 그 각양각색의 체험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일 테고. 내용 면에서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 일화들이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읽혔는지는 아직도 확신하며 말할 수는 없지만, 얼추 짐작하여 말해보면 그 일화들 모두가 하나의 ‘삶’이었기에 자연스레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의 여러 방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그리고 인간적으로 담아낸 김형민씨의 글을 읽는 것은 삶과의 조우를 연상 짓게 만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소감을 들어보니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암울하다, 어둡다는 지적 아닌 지적이 나왔다. 물론 이 책의 일화들이 행복하다고, 그래서 꽃이 만발한 기쁨에 취해들 수 없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책 속의 이야기들은 암울하다기 보다는 인간적이라고 해야 함이 더 맞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정은 어두움과 절망이 아니었다. 감동과 슬픔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어떤 동질감을 느꼈을 뿐이다. 아내를 때리는 남편에게 벌벌 떨며 신고하겠다고 ‘위대한 겁쟁이’처럼 한 여인을 구출해내는 아가씨나, 가족들의 바람을 위해 잠도 못자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하나같이 암울하다고는 볼 수 없는 ‘일말의 희망’이 존재하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눈물 머금을 수 있었던 것이고, 내 삶에 비추어 대어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책이 암울했다면 난 결코 이 책을 ‘삶과의 만남’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테지만, 결코 암울하지만은 않기에 나는 이 책의 삶의 면모를 소소하게나마 체험했던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눈물방울을 쓸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드라마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눈물 흘릴 정도의 호소력이라면 그 드라마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테마라는 것이 내 생각이고 확신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슬픔과 갖가지 감정을 느낀다. 물론 그것들은 모두 삶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행위이고 말이다. <삶을 만나다>를 통하여 이 세상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인간적인지 다시금 실감했다. 그리고 이 세상이 현실적이고 인간적이기에 무서운 세상인 것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현실’이고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인데 우리가 못 살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들을 위해 마련된 보금자리에 왜 우리가 벌벌 떨어야 할까? 책을 통한 ‘현실’의 희망예찬은 생각보다 큰 인식을 변혁시키기에 충분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읽은 여러 일화들이 주마등처럼 기억 속을 훑어지나간다. 때로는 가슴 미어지고 마음 아픈, 하지만 그 작은 틈새에 밝은 빛의 꽃들이 만발한 이야기들……. 나는 결코 이 이야기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잊을 수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지만. 어찌 ‘삶’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삶을 만나다>라는 삶을, 어떻게 내 기억 밖으로 매몰차게 쫓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내 인생에 있어 삶으로 다가온 일화들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 내 삶의 언저리 한 부분을 장식해줄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장식품의 빛을 발함에 또 한 번 흐뭇한 미소를 흘릴 게 뻔하다.




진정한 삶의 모습과 단상을 책이라는 통로를 통해 마주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여지없이 이 책을 권한다. 책 속에 일화들이 담긴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일화들이 담긴 것도 아니라, 일화 속에 삶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 삶들을 만나고 느끼고 체험하며, 진정한 삶의 모습을 나름대로 구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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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6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마루님의 글을 보면 다 읽고 싶어지는 군요.ㅋ 인간다운 모습이 살아있는 책이란 말이 굉장히 매력적인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이 책도 눈여겨 봐야 겠군요.^^

상상마루 2007-08-17 12:32   좋아요 0 | URL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 연탄길이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아는 사람한테 세상 얘기 듣는 것 같은 느낌 ㅎㅎ
 
논개 1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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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번영로의 시 「논개」를 보면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라는 대목이 나온다. 논개의 마음을 상징하는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이라는 표현이 논개의 열의와 절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과 열정적인 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적군을 품에 안고 투신하듯 낙하하는 논개의 행연이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다다를 때, 논개의 그 붉은 마음은 적시지 아니하고 더더욱 붉어질 것이다. 육체와 혼의 분리과정 속에서 논개는 그 열정적인 붉은 마음으로 조국을 위하여 이바지하였던 것이다.




인물사전보다 교과서, 교과서보다 시로서 먼저 접한 논개. 그녀의 이름은 세상 어느 곳에라도 파다한 존재이지만 정작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미실」을 통해 화려한 수식어의 역사소설을 선보인 김별아의 <논개>를 읽으면서 난 정말 그녀를 모르겠다싶은 답답함과 미지의 그것을 바라보는 호기심과 더불어 그 붉은 마음 새어질리 없는 열정을 읽었다. 논개가 나라를 위하여 한 공적보단 논개라는 인물의 생애와 사랑을 재구성하여 소설으로 형상화한 <논개>는 어찌 보면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더 깊이 따져보자면 ‘역사소설’을 바탕으로 한 ‘인물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태생은 결코 ‘순풍’이 아니었다. 폐경을 바로 코앞에 둔 어머니와 늙어버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의기어린 모습을 보였다. 그 어린 나이에 강을 향하여 몸을 내던진 논개라는 인물의 생애는, 그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그녀의 생애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쓴 저자 또한 순탄치 않았다. 쉽게 술술 읽어가려고 할 때면 더덕더덕 붙어있는 수식어와 모르는 한자어들과 마주하여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내 생각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중에서도 역사소설을 볼 때면 항상 어려운 단어들과 장신구 같은 수식어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를 보다 더 생생하게 비추려는 노력인 걸로 보인다. 김별아가 <논개> 속에서 수식한 문장들을 보면 하나같이 공을 들이지 않고 쓴 부분이 없어 보이니, 역사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올려 쓰는 것이야말로 정녕 힘든 글쓰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야기가 나한테 올 때 쓴다는 김별아.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오기 전에 간절히 바란다는 저자의 간절함이 논개를 통해 재연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논개>를 읽으며 가장 좋았거나 혹은 가장 나빴던 것은 ‘사건적’ 전개의 방식이었다. 시작부터 무언가 사건의 끊임없는 통로를 통하여 이어져가는 이야기는 흥미를 끊지 않게 해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 또한 그 사건의 요점과는 상관없이 그 사건의 출두인이 된 것처럼 그 사건의 동아줄에 끌려 올라가기 바빴다. 그러나 이런 전개방식의 단점 또한 ‘사건’에 있다. 사실 <논개>의 앞부분은 그렇게 뛰어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문장만 두고 보면 평가하고 말고도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100여 쪽이 지나도록 논개의 존재가 두드러지지 않는 점이나 지나치게 극적인 사건의 흐름을 두고 보면, ‘논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논개’를 엑스트라로 하여 좀 더 빛을 내보이게 하고 그로 인해 사건을 주목받게 하려는 심산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주인공 논개는 잊혀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책 제목이 <논개>인 것이고 그리하여 ‘인물소설’이다. 사건은 그저 그랬고 논개는 굉장히 좋았다.




논개의 사랑이라는 테마는 정말 좋았다. ‘충신’으로서의 논개를 비추는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하여 논개의 빛이 그늘에 가려져버릴 수도 있는 것인데, 논개라는 개인의 존재를 덮지 아니하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면, 인물은 눈물을 머금을 수 있는 것인데 머금은 눈물을 닦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은 정말 말 그대로 논개다. 그래서 논개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었고, 논개 주변으로 일어난 사건에 강한 시선을 던졌다. 논개라는 인물이 내 인식 속에 더욱 굳건히 자리 잡고서, 생기를 점점 더 확연히 띄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며 이 소설을 기분 좋게 읽었다. 기억 속에 묻혀버린 인물의 재생이란, 잊혀진 기억을 다시 추억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결국엔 사람이었던 논개. 그녀를 활자 속으로 들여다보며 우물 깊은 곳에서의 울림처럼 널리 퍼지는 그녀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비록 오해와 편견에 휩싸인 논개였지만, 이 소설을 통해서라도 혹은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을 통해서라도 논개는 비로소 한 여인으로의 생애를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이 더 붉게 빛을 발할 때 우리는 논개를 진정 느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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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
심형철 지음 / 포스트휴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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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멋모를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그 미지의 공간을 탐미했던 나에게, 더 이상 실크로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지각하게 해 준 책이 바로 <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이다. 낭만과 꿈이 서린 소위 말해 ‘비단길’이 알고 보면 척박한 황무지의 모습을 보이며, 중국의 과거와 지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하니 어찌 참을 수 있더냐. 여비가 없으니 책이라도 펼칠 수밖에.




<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는 우리가 이름으로밖에 접하지 못했던 실크로드를 저자가 직접 발로 체험하며 기록한 일종의 답문서이다. 직접 찾아가 보았다는 저자의 말에 이 책이 여행서적인지 사회서적인지 헷갈렸지만, 읽어가면서 단순한 여행서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는 단순히 여행으로 즐기는 책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를 비롯하여 동양과 서양이 엇갈리고 통하며 섞이는 지점의 역사를 통틀어 이해하는 책이다. 저자 심형철씨가 고심을 하여 재구성하고 직접 답사까지 하며 글을 실었다고 하는데, 그 노고가 여실히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였다.




이 책을 만나기 전 나의 인식에 의하면 실크로드는 단지 하나의 ‘길’일 뿐이었다. 떠돌이 개가 음식물 쓰레기를 찾아 골목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하나의 통로, 그것이 책과의 조우 이전에 나의 굳어있는 인식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난 후에는 실크로드가 그저 하나의 통로일 뿐만 아니라, 거대한 ‘문명’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실크로드는 길 위에 황무지가 얹어지고 사람들이 소통하며 나라들 간의 교역이 성행하던 과거의 혹은 미래의 혹은 현재의 중심의 개척지라고 할 수 있다. 그 거대한 역사와 짙은 풍토, 그리고 여러 곳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문화의 샘물을 틀어 받아 융합한 새로운 문화의 발생, 이 모두가 실크로드를 ‘꿈’이라는 다다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이룰 수도 있는 형체로 형상화한 것이다. 말은 ‘꿈’이지만 결국에 실크로드 또한 수많은 세월과 문명이 빚어낸 ‘현실’이기에 더더욱 매력이 발산되는 것 같다고, 나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고개를 조아리다 가끔 멈칫 갸우뚱하게 될 때가 있는데, 사회서적이라는 점이 지루함과 난해함을 동반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세계의 역사로서 중요하게 여기다 그 거대하고도 방대한 역사에 짓눌려 숨통을 막혀버려 헥헥거리기 전에, 이 책을 보다 쉽게 생각해야한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역사’이기 이전에 실크로드는 ‘사회’이며, ‘사회’이기 이전에 ‘사람이 살던 곳’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을 우리네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이웃집으로 탐방 간 듯한 느낌으로 새로 알아나가는 재미를 쏠쏠 느끼며 읽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사진과 일화들이 독자들의 눈을 더욱 신선한 거리들로 채워줄 것이다.




실크로드와의 첫 만남이 간접적인 만남이라 실크로드에게 약간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실크로드와의 직접 만남을 ‘꿈’꿔보리라. 물론 ‘꿈’꾼다는 것은 ‘현실’로 승화되리라는 의지의 한 요소라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이며, 실크로드의 꿈을 찾아 나서고 싶다.




거대한 문명의 결정체 실크로드. 그 곳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거대한 역사일까, 역사의 진리일까, 소중한 문명일까, 아니면 신선한 체험일까? 이 중 한 가지를 고르기는 너무 힘들다. 역시나, 실크로드에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은 앞서 언급한 것 모두이다! 거대한 역사와 역사의 진리, 그리고 소중한 문명과 그것을 넘어서는 신선한 체험. 이 모든 요소들이 뒤엉킨 복합체가 바로 실크로드이며 이것은 바로 ‘꿈’이다. 정말로 ‘꿈’인 것이다. 언젠가 현실로 두드러지게 나타날 ‘꿈’이, 실크로드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세상의 진리가 실크로드의 길을 따라 우리의 정신을 가로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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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5 0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꿈의 실크로드를 찾아 나서는데 동참하고 싶군요.ㅎㅎ

상상마루 2007-08-15 20:35   좋아요 0 | URL
^-^~~ 같이 떠나요~~ 배낭을 메고~~ㅎㅎ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이경상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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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기자기한 캐릭터 책가방을 메고 아장아장 학교로 걸어서 통학하던 시절. 그 시절 나는 충격적인 사실 한 가지를 알았다. 국어교과서에서 어떤 포스터를 봤는데 그 내용이 그때 당시의 내게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 포스터는 이렇게 생겼다. 세 가지 색깔의 크레파스가 나란히 놓여있고 ‘모두 살색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 그런데 그때 당시의 내가 보기에 세 가지 크레파스는 각각 검은색, 살색, 흰색이었다. 그런데 왜 모두가 살색이라는 건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당시의 나는, ‘살’색이 검은색일 수도 있고 흰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감지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베벌리 나이두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는 어릴 적 보았던 ‘모두 살색입니다.’ 문구와 상통한다. 아파르트헤이트가 현행되던 시절부터 폐지된 후의 상황까지 그 전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베벌리 나이두는 유색인종이 겪어야했던 고통과 참혹한 현실, 그리고 그들의 관용정신까지 통틀어 보여주고 있다. 컬러드와 사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친구를 잃은 백인 소녀의 이야기와 백인들의 무자비한 정책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게 된 컬러드 가족의 이야기, 친구로부터 놀림감이 되는 흑인 아이의 이야기 등은 그들이 사회로부터 받아야했던 보이지 않는 핍박과 혹은 뻔히 보이는 핍박을 여실히 드러낸다. 베벌리 나이두의 이야기들은 사회를 고발하는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사회와 현재의 사회를 그려나감으로서 자연스런 통찰을 구하는 ‘세계의 이야기’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비열한 베일에 감싸인 불공정함이 눈에 선했다. 당연한 것처럼 유색인종을 향해 거침없는 압박과 구박을 일삼는 경찰청 사람들과 아무 대책 없이 그들의 법에 순순히 응하는 백인 시민들, 그리고 그 사이의 경계에 홀로 남아 갈피를 잡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컬러드인들……. 너무도 안타깝고 대책 없이 마음이 저려왔기에 책을 덮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덮어버리면, 그들을 나 몰라라 외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고 읽어나갔다. 지금은 그보다 나아졌다고 그들의 과거를 외면한다면 뼈저린 그들의 과거는 무참히 짓밟히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물론 그들에게 연민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연민은 가엾음을 불러일으키고 가엾음은 하찮음으로 뒤바뀌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난 그 당시의 사회를 정면으로 응시했고, 그 당시 사회의 편협함을 속속들이 발견했다. 과연 그 누가 그들이 빠진 구렁텅이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거대한 그늘이 구렁텅이에 빠진 그들뿐만 아니라 나에게까지 칙칙한 어둠을 드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끝끝내 그들을 구원한 것은 그들 바로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구원한 것은 아파르트헤이트의 폐지도 아니었고 백인들의 개탄도 아니었다. 바로 그들 자신의 정신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현행 당시 백인들에 의해 억압당하던 그들은,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나서 그들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었다. 거의 모든 여론이 복수를 예감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관용의 자세를 지니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탄생하면서 그들의 위업은 조금이나마 달성된 듯하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능력에 맞게 대통령의 권한을 쥘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명백한 사실을 꿈이 아닌 현실에 입각하여 증명해보였으니 말이다.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책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 절대 잊혀져서는 안 되고 가려져서도 안 되고 와전되어서도 안 되는 역사를 이야기의 재미의 틀에 맞추어 형상화한 이 책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이 내게 선사한 교훈들은 내 마음속 한 자리에 영원히 간직되리라. 세상에는 이면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한다는 것, 그리고 죄는 미워하되 죄를 지은 이들을 증오해서는 안 된다는 관용정신까지 여러 차례 소중한 진리를 새겨들은 기분이다. 예부터 맘고생 많이 해오던 유색인종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힘을 주고 싶다. 결코 당신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들이 받은 상처가 아물고 흉터까지 싹 가실 때까지, 그들의 권리는 충족되어야 하며 그들의 정신은 존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며 꼭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막돼먹은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검둥이라고 외쳐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검둥이가 아니다. 그들의 피부는 검은색이기 이전에 살색이다. 세 가지 크레파스가 ‘모두 살색’이듯이 그들의 피부 역시 살색일 뿐이다. 백인과 황인과 다름없이 흑인들 또한 살색을 가진 한 인간일 뿐이다. 그들의 거무스름한 피부를 그 누가 더럽다고 하는가. 그들의 피부는 더러움의 검정이 아니라 ‘조금 더 진한 살색’일 뿐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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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13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 속에 존재하는 여전한 '비열한 베일'들. 암담하지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관용정신'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보게 됩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상상마루 2007-08-13 20:2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안녕하세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비열한 베일'들의 파렴치한 행각에 치가 떨렸어요. 그 쪽 사람들도 참 대~단하지만, 더 대단한 건 관용으로 불의를 품에 안은 남아공 사람들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