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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평점 :
파티 업체를 운영하며 공갈과 협박을 일삼는 요코겐과 소위 조직 폭력배와 흡사한 야쿠자, 아버지를 증오하며 복수를 꿈꾸는 딸 크로체,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면서 다른 삶을 꿈꾸는 미타까지, 어느 요소 하나 평범하지 않다. 그렇다고 엄숙하다거나 올바른 면모는 티끌도 없는 소설. 그야말로 까마득한 한밤중에나 일어날 법한 비열한 일들이 서슴없이 펼쳐지는 암흑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암담하다는 건 아니다.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일어날 법한 돈놀이를 오쿠다 히데오는 빠르고 경쾌하고 심지어 재미있게,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며 늘어놓는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면 무섭고 치가 떨릴 일을 소설을 통하여 보는 것의 재미란, 상상을 뛰어넘는 자인적 충동과 그 해소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오쿠다 히데오가 좋을 때가 종종 있다.
이번에 읽는 그는 <한밤중에 행진>이라는 소설을 내놓았다. 표지부터가 쩐의 전쟁 분위기를 풍김과 동시에 비열한 거리를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사기와 돈, 도박 등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을 거침없는 문체로 통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야쿠자의 도박판에서 일어나는 돈거래와 그 돈거래를 주목하며 갈취의 순간을 염원하는 이들의 일상 아닌 일상. 뭔가 께름칙하여 걸리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킬킬거리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는 웃음이 아니라, 기분 째지도록 킬킬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약간의 혐오와 꺼림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사건의 재미에 비하면 별 문제도 아니다. ‘뒷거래’와 ‘급습’을 뉴스를 통해서만 보다가 소설로 읽는 느낌은 뭐랄까, 범접할 수 없는 공간에 범접한 것에 대한 속 시원한 유쾌함이라고 해야 하나? 자질구레함이 향긋함으로 상승하는 느낌, 바로 그거다!
심장 박동 수가 쿵쾅쿵쾅하며 최고조에 이른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것과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것, 이 두 가지 상황에 대비한 심장 박동 수는 점점 방망이질 속도가 빨라지고 소리는 점차 증폭된다. 이처럼, 이 책은 스릴과 재미의 증폭이라는 최대 무기를 지니고 있다. 평범함을 넘어 안전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결핍된 상황을 조명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들은 나 자신이 못할 짓을 해주는 소설에게 큰 감동과 재미를 느낄 것이다. 일상에서의 탈피, 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출입금지구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자유로움을 이 소설에서 발견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테마는 역시 ‘돈’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을 엄습해오는 그것. 얼굴 들라치면 어김없이 추격해오는 그것. 우리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무서운 그것. 그것이 바로 돈인 셈이다. 그런 무서운 돈을 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에 행진>에서는 마치 작고 동그란 구슬처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아주 가지고 논다. 돈을 농락하는 것인지 우리들을 농락하는 것인지 이 세상을 농락하는 것인지 모를 소설은, 무서운 돈을 가벼운 깃털처럼 훅하고 불어대며 보란 듯이 사건을 전개한다. 세상만사를 미물처럼 보는 가벼운 시선이 다루는 억 만 톤의 소재가 아주, 아주, 기가 막히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겐 일상과 다름없는 생활이 우리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탈피로 여겨진다. 과연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들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은, 결국엔 ‘인생?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던지듯이 막나가는 재미를 선보인다. 우리가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