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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아아아, 두말하면 잔소리인걸 난 왜 몰랐을까? 생선뼈가 추스르는 살덩이들이 우수수 밑창으로 풍덩풍덩 빠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왜 살코기를 한 점이라도 입에 물고 싶어 안달이었던 거지? 거두절미의 이론이 여기서도 통할 줄 알고 몸통을 노리려 했던 거야? 어림없는 소리! 거두절미가 아니라 몸통만 싹둑 잘라서 흐리멍덩한 대가리하고 말라비틀어진 꼬리만 남아있는 걸 끝을 보고야 알았던 거야? 대어라더니, 이건 무슨 송사리만도 못하잖아?
핀란드소설은 처음이었다. 평소에 깨끗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휘바휘바거리며 알고 지내던 폴란드를 책으로 처음 접했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라는 책인데, 블랙유머의 대가라고 소개되어있는 아르토 파실린나의 작품이다. 사실 표지만 보고는 블랙유머를 떠올렸지만 그 내용을 보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새까매졌다. 이도저도 아닌 내용과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감흥이 마음을 새까맣게 만들었다. 설정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 현실에 찌들어 살던 바타넨이라는 남자는 어느 날 차 사고로 인해 토끼를 다치게 했고, 그 이후로 가족이건 일이건 뭐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토끼와 함께하는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좌충우돌이라면 좌충우돌이고 무미건조라면 무미건조한 여행의 일상들. 이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게 끝이라는 거다. 토끼와의 만남 이후 뭐 하나 진전되는 사건이 없다. 마치 발길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찍어댄 사진 같다. 컬러 사진이 아니라 흑백사진이고 표정도 동세도 긴장감도 제로인 종이쪼가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토끼 똥 같은 눈물이 또르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무미건조함과 진지함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고자 한다면 재치와 블랙유머의 합당한 비율로서 조합을 해야 하는 것인데 왜 이 작가는 조합이 아니라 짬뽕을 해놨는지 의문이다. 재치는 눈 씻고 찾아보려도 찾아볼 수가 없고, 블랙유머는 킬킬거리는 웃음이 아니라 흥미가 바닥나는 암흑의 세계를 창조한다. ‘여행’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도 그저 제자리에서 겸연쩍게 멀뚱거리고 있는 이 작가에게 무기사용법이라도 슬며시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왜 총탄을 가지고도 발사를 안 하는지, 칼잡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칼을 뽑아들지 않는지, 그게 아니더라도 왜 그 무기를 과감하게 내팽개치고 주먹을 쓸 생각을 안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가운데 그는 시종일관 ‘여행’이라는 무기를 장식용으로 애용한다. 결코 긴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진지한 구석도 완연하지 않은 이 소설을 두고 과연 여행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이라도 계승하려는 듯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꾀하려는 심산이 얼핏 보이기도 했는데 조화는 웬 조화? 그 둘을 철저히 분리하여 따로따로 고장 난 조립기구처럼 완벽하게 나누어 조명을 비추는 실력은 정녕 대가답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가진 결핍을 종합해보면, 블랙유머라는 이름을 내걸고 유명무실 노릇을 하고 앉아있는 전혀 유쾌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은 미지근한 여행소설인데 또 여행소설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과의 분리성이 뚜렷한 짬뽕제조기라고 할까? 짬뽕의 맛은 가히, 가히, 아주 가히 경이롭다. 원더풀! 브라보! 엑설런트! 굿잡! 굿! 굿! 굿! 눈물나게 퍼펙트!!!
병 주고 약 주기 ― 그래도 단편적인 사건을 읽을 때만큼은 잠시나마 읽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배치된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과 우스운 설정이 가끔, 아주 가끔 짬뽕에 후춧가루 몇 가루 뿌려줬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중도하차할 가능성이 99.9%에 다다랐을 것이다.
현실의 일탈 속에서 만끽하는 자유와 다채로운 여정을 담은 핀란드 소설 <토끼와 함께한 그해>. 거두절미의 역효과를 다분히 보여주는 선전을 했지만, 흐리멍덩한 대가리와 말라비틀어진 꼬리의 씁쓸한 맛으로 읽기에 적합한 것 같다. 살이 포동포동 올라있는 소설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이 소설은 그런 소설들과는 달리 비약적인 독특함과 아이러니한 맛을 새롭게 탄생시켰다는 점에 의의를 둬야겠다. 하지만 이 소설과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현실의 일탈 속에서 만끽하는 자유’를 표현할 때에 있어서 보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 자유를 외치다가 자신의 머리나 박고 꼴까닥해버린 <적의 화장법> 속의 주인공처럼 되기 싫다면 더 큰 매력을 발산하기를. 자유! 자유! 자유! 삼창의 외침이 종말을 남길지 수작을 남길지는 그대의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