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에밀 아저씨의 길고도 짧은 1년
에밀 수베스트르 지음, 김현숙 옮김 / 페이지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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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사람들이 다 에밀아저씨 같으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햇빛이 가장 먼저 닿는 다락방에서 창 밖의 새들에게 빵을 던져주는 그 인정 많은 손길,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지닐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한숨이라는 단어는 깨끗이 사라질 것이다. 때로는 지붕 위의 철학자처럼 깊은 사색에 잠기고, 때로는 반가운 이웃들을 맞이하여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에밀아저씨. 그의 사색과 이야기의 목적지는 오직 한 군데이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가난과 함께하는 생활이지만 그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풍요롭다. 그런 따뜻한 마음씨에 내 마음까지 절로 녹아버리는 느낌, 그것은 매우 충만한 느낌의 감동이었다.


 

고아들에게 아낌없이 먹을 것을 내주는 드늬할머니, 부모 잃은 소녀에게 기꺼이 차비를 쥐여주고 먼 길을 걸어가는 두 자매, 장애인이라고 업신여김 받으면서도 희망과 미소를 잃지 않는 모리스 아저씨 등 에밀의 이웃들은 소소한 행복을 아는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더 큰 잔으로 마신다고 더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들의 친절한 마음이 저절로 그 진리를 일깨워주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각박한 세상은 꽝꽝 얼어붙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희생은 사랑으로 전해지고 그 과정에서 샘솟는 훈훈한 공기는 이 세상의 희망온도를 높여 조금 더 아름답게 변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누가 뭐래도 고달픈게 사실이다. 혹자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 할 정도로 인생살이에 있어 고통과 불행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고달픈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응해야할까? 아니다, 그러기보다 고달픔 속에 피어있을 작은 행복의 꽃을 찾아나서는 것이 더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그런식으로 모두가 조금의 온기를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눈보라는 그 힘을 잃고 따뜻한 산들바람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비록 책 속의 이야기일지라도 분명히 어딘가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지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한 사람이든 불행한 사람이든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락방에 사는 아름다운 에밀아저씨를 만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모든 이들이 그를 만나고 조금이나마 따뜻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꼭 읽으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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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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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가 되지 않으면 글쓰기를 때려치울 수도 있다고 김훈은 말했다. 그렇다면, 재미벌이가 되지 않으면 김훈의 책을 읽는 것을 때려치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나는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었다. 작가정신이라는 것에 지고지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그 말은 대단히 현실에 찌든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소설을 읽어보니 정말로 현실에 찌든 것은 그의 발언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들임을 깨달았다.


<공무도하>의 인물들은 강을 건너려다 빠져죽기는커녕 저 너머로 흐르는 강을 쳐다보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할 여력이 없는, 그래서 일찍이 건너편 세상을 잊어버린 사람들이다. 좋게 말하면 삶에 밀착된 인물이지만, 다르게 부르면 이 땅에 매여 있는 혹은 지울 수 없을 정도로 물들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애정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사방팔방으로 현실에 부대끼게 된 형태의 밀착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것처럼 딱 떨어지는 문장들은 우리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시신들과 그것을 포착해내는 신문기자, 가까운 바다에서 물밑작업을 벌이는 사내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실제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것이 진정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당직이 끝나고 새벽에 빈속으로 흘러들어가는 소주 한 잔, 바다 깊숙한 곳에 묻힌 고철덩어리를 건져 올릴 때 덩달아 붙어있는 시퍼런 녹, 기르던 개에게 물려 죽은 아이가 빨랫줄에 걸어놓은 한 마리의 개 그림, 이런 단상들이 조각조각 저마다의 파편으로 흩어져 땅 속 깊숙이 박히고 그 위로 세상의 먼지가 뒤덮여 딱딱하게 굳어진 것이 이 노린내 나는 삶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커다란 감동이나 신선한 이야깃거리는 없지만 인간, 그 중에서도 이 시대의 인간의 모습을 과장됨 없이 그대로 잘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싶다. 전체적으로 물비린내가 나는 듯하여 고전시가의 한 부분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의 분위기와도 상통했고, 그래서 그런지 강을 건너려는 것, 결국에는 물에 빠질 줄 알면서도 기어코 강을 건너려고 애쓰는 존재가 인간은 아닐까하는 어렴풋한 추측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선조들은 그런 노래를 불렀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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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1 - 만남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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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왼쪽 하단 혹은 오른쪽 하단에 적혀있는 쪽수가 털끝만큼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눈대중으로 아무 곳이나 펼쳐 읽으면 그대로 빠져드는데 쪽수가 무슨 대수겠는가. 앤이 머릴러의 자수정 브로치를 훔쳤다고 거짓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앤이 일레인 공주를 연기하다 배가 부서져 물에 빠져 죽을 뻔하고, 길버트의 잘생긴 머리 위로 석판이 내리꽂히기도 한다.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쓴 몽고메리도 놀랍지만, 이 모든 사건의 주인공이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소녀인 ‘끝에 e자가 붙은’ 앤이 사고뭉치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좋으니 신기한 일이다. 뭘 해도 사랑스러운 건 내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일까?


고아가 따뜻한 가정을 얻고 사랑을 받으며 비로소 행복한 아이로 거듭난다는 것은 몽고메리 특유의 레퍼토리인데, 이 책 역시 그에 해당한다. 비현실적인 설정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그것은 단지 허구일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데, 몽고메리를 읽으면 읽을수록 비현실적인 걸 알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꿈꾸고 심지어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간절히 믿게 되었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가 사랑으로 허기진 배를 가득 채우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면서 온 몸이 따뜻해짐을 느끼는 것이다. 머릴러가 앤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나도 같이 그린게이블즈에 살게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앤 셜리에게 동화되었고, 그 아이의 기쁨과 슬픔과 괴로움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 우리는 감정의 탯줄로 이어진 혈육관계인 것 마냥 함께, 어떤 일이든 같은 자리에서 느끼고 공유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앤과 마음의 벗이 된 것이다!


기쁠 때든 슬플 때든 이 책을 읽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진실한 친구와 얘기할 때는 언제나 마음이 편하고 기분 좋은 것처럼, 이 책은 내게 진실한 우정과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을 덕지덕지 붙여 가지고 다니던 것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것 역시 앤에게로 향하는 나의 순수한 마음의 추억이기에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의 마음에는 사랑의 온기가 식지 않고 있고, 그 반대편에는 이름 모를 쓸쓸함이 깃드는 것을 느낀다. 나에게는 영원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애번리요, 가장 아름다운 소녀는 앤이요, 가장 아름다운 책은 이 책이 되겠지만, 이런 별천지를 다녀오고 나서 쓸쓸해지는 마음을 추스르기는 쉽지 않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애번리만한 마을은 없고, 앤 같은 소녀를 과연 만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가능성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뒤에 남는 쓸쓸함의 잔해들……. 그러나 이런 행복한 이야기가 있어 실제 삶의 행복은 조금이나마 높아지게 마련이다. 나 역시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가 그 전보다 행복하다.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애번리를 꿈꾸고 행복한 고아 소녀를 상상하는 일을 결코 그만들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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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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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인생 역정을 들어보면 삶은 기적이 아니라 불행과 기기묘묘한 사건들의 연속인 것 같은데, 도대체 그런 삶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항상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의 주인공을 발견했으니, 바로 장영희 선생님이시다. 목발을 짚고 큰 발소리를 내며 걸어온 그녀는 본인이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 조바심을 낼 정도로 대단한 '희망의 고성방가'를 실천해왔다.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인생살이의 고충과 수없이 겪게되는 실수들을 아름다운 희망의 끝맛으로 녹여내는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나도 내 삶의 뒤안길을 되돌아보고 앞서 난 길을 향해 전보다 더 당당한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런 그녀의 글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아쉬워진다.

 

생존의 그녀는 게을렀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사기 당하기 일쑤였다, 말이 급해 실언을 할 때가 많았다, 미리 준비하기 보다는 코 앞에 닥쳐야만 허겁지겁 시작했다, 고 한다. 이 모든 게 다 그녀가 글 속에서 고백한 인간 장영희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게으르고, 사기 당하고, 말 실수 하고, 코 앞에 닥쳐야 서두르는, 그런 모습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장영희 선생님은 그저 평범한 인간이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범하면서도 그녀가 색다른 향기를 내뿜을 수 있는 이유는, 항상 그녀의 마음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는 희망의 기운 때문인지도 모른다. 암 투병 중에도 기적을 믿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을 다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꿈꾸게 만드는 것, 그것은 정말 기적 같은 희망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때는 동네아줌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편안하고 재밌게, 때로는 삶을 탐구하는 지붕 위의 철학자인 것 마냥 소중한 가르침으로 다가오는 글 한 편 한 편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고스란히 남아 그 온기로 몸 전체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느낌이 든다. 이 추운 겨울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꺼운 외투, 따뜻한 음료, 잘 돌아가는 난방장치이겠지만, 과연 이것들만 있으면 정말로 춥지 않을 수 있을까?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해지려면, 희망과 기적을 믿는 삶에 대한 열의, 그리고 속 깊은 곳으로 전달되는 사랑의 통신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기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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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교회사 - 교양인을 위한 13가지 기독교 신앙 이야기
이성덕 지음 / 살림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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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교회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 주는 느낌은 썩 좋지 못한 것이다. 종교 전쟁이 떠오르고, 다니다가 안 다니고 있는 교회 전도사님의 끈질긴 회유가 떠오르고, 무교인 내게 다소 맞지 않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교회사'라는 제목을 보고는 식겁할 수 밖에. 그래도 읽어봤다. 그런데 내 식겁과는 상관 없이 실속있는 책의 구성에 흠칫 놀란다. 아니, 이럴 쑥갓~!

다량의 사진과 역사를 통틀어 보는 듯한 방대함.

전문서적을 보는 듯한 지식소양의 즐거움.

그냥 교회사가 아니라, '이야기' 교회사라서 달랐던 걸까. 내 예상과는 달리 매우 흥미로웠다.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고, 눈이 동그래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교회라는 단어는, 건물의 의미를 넘어 기나긴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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