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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만나다
김형민 지음 / 집사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여태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나의 세상의 약소함에 비해 세상 전체는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라도 된 것처럼 세상은 내가 갇혀있는 우물처럼 높았고, 그 속에서의 울림은 크나큰 것이었다.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한적히 개굴거리고 있을 때, 내게 책 한 권이 나타났다. 일주일이 넘게 고이 간직만 해두다가 결심을 하고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만 그 책이 그저 책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삶과 조우한 것이다. <삶을 만나다>라는 통로를 통하여.
이 책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글쓴이와 형식부터 말해야겠다. 이 책의 저자는 SBS에서 PD로 활동하고 있는 김형민씨로 촬영을 하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나 그의 체험기를 이야기 속에 진솔하게 담아냈다. 여러 가지 일화가 다발적으로 묶여있는 이 책의 형식이 그러하듯 김형민씨의 체험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그리고 그 각양각색의 체험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일 테고. 내용 면에서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 일화들이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읽혔는지는 아직도 확신하며 말할 수는 없지만, 얼추 짐작하여 말해보면 그 일화들 모두가 하나의 ‘삶’이었기에 자연스레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의 여러 방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그리고 인간적으로 담아낸 김형민씨의 글을 읽는 것은 삶과의 조우를 연상 짓게 만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소감을 들어보니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암울하다, 어둡다는 지적 아닌 지적이 나왔다. 물론 이 책의 일화들이 행복하다고, 그래서 꽃이 만발한 기쁨에 취해들 수 없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책 속의 이야기들은 암울하다기 보다는 인간적이라고 해야 함이 더 맞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정은 어두움과 절망이 아니었다. 감동과 슬픔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어떤 동질감을 느꼈을 뿐이다. 아내를 때리는 남편에게 벌벌 떨며 신고하겠다고 ‘위대한 겁쟁이’처럼 한 여인을 구출해내는 아가씨나, 가족들의 바람을 위해 잠도 못자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하나같이 암울하다고는 볼 수 없는 ‘일말의 희망’이 존재하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눈물 머금을 수 있었던 것이고, 내 삶에 비추어 대어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책이 암울했다면 난 결코 이 책을 ‘삶과의 만남’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테지만, 결코 암울하지만은 않기에 나는 이 책의 삶의 면모를 소소하게나마 체험했던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눈물방울을 쓸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드라마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눈물 흘릴 정도의 호소력이라면 그 드라마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테마라는 것이 내 생각이고 확신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슬픔과 갖가지 감정을 느낀다. 물론 그것들은 모두 삶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행위이고 말이다. <삶을 만나다>를 통하여 이 세상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인간적인지 다시금 실감했다. 그리고 이 세상이 현실적이고 인간적이기에 무서운 세상인 것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현실’이고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인데 우리가 못 살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들을 위해 마련된 보금자리에 왜 우리가 벌벌 떨어야 할까? 책을 통한 ‘현실’의 희망예찬은 생각보다 큰 인식을 변혁시키기에 충분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읽은 여러 일화들이 주마등처럼 기억 속을 훑어지나간다. 때로는 가슴 미어지고 마음 아픈, 하지만 그 작은 틈새에 밝은 빛의 꽃들이 만발한 이야기들……. 나는 결코 이 이야기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잊을 수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지만. 어찌 ‘삶’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삶을 만나다>라는 삶을, 어떻게 내 기억 밖으로 매몰차게 쫓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내 인생에 있어 삶으로 다가온 일화들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 내 삶의 언저리 한 부분을 장식해줄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장식품의 빛을 발함에 또 한 번 흐뭇한 미소를 흘릴 게 뻔하다.
진정한 삶의 모습과 단상을 책이라는 통로를 통해 마주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여지없이 이 책을 권한다. 책 속에 일화들이 담긴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일화들이 담긴 것도 아니라, 일화 속에 삶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 삶들을 만나고 느끼고 체험하며, 진정한 삶의 모습을 나름대로 구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