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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악몽과 계단실의 여왕
마스다 타다노리 지음, 김은모 옮김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세 가지 악몽과 계단실의 여왕 (2019년 초판)
저자 - 마스다 타다노리
역자 - 김은모
출판사 - 한겨레출판
정가 - 14000원
페이지 - 279p
세상을 살면서 단 한번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악몽
상당히 독특한 제목으로 판타지 혹은 몽환적 성격의 일본추리라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막상 작품을 까보면 그 어떤 작품보다 현실적이고 생활밀착형이며 일반적인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최악의 끔찍한 악몽같은 상황이 진정한 공포로 와닿는 네 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단편집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고 그 손에서 떠난 돌멩이가 개구리의 원한을 등에지고 수박만한 짱돌이 되어 다시 던진이의 뒷통수를 후려치는 이야기랄까...머...그런 다소 불편한 내용의 네 편의 옴니버스 단편집이다. 비록 시작은 미미했으나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악의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 처럼 극단을 향해 치달아간다. 도망칠곳 없이 자신을 집어삼킬 악의를 피해 달아나는 4인의 각기 다른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봤음직한, 혹은 내가 겪을지도 모를 일상성을 다루는 이야기라 좀 더 피부에 와닿았던 것 같다.
1. 매그놀리아 거리, 흐림
딸이 납치됐다. 납치범이 전화를 걸었다. 납치범의 요구는 황당하게도 매그놀리아 거리로 나와 전화를 받으라는 것. 복잡한 거리 한복판. 울리는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 납치범이 말했다. "지금부터 거리의 누군가가 내게 떨어져 죽으라 야유하면 난 딸이 납치당한 장소를 말하지 않고 떨어져 죽을 것이다." 남자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 건물 옥상을 둘러봤다. 남자가 서있는 바로 앞 고층 건물 난간에 휴대폰을 든 남자가 위태롭게 서있었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거리를 걷던 인파가 고개를 들어 옥상 끝의 남자를 바라봤다. 금새 사람들이 모였다.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자 기다림에 지쳤는지 불만 섞인 목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시간 그만 끌고 그냥 뛰어내려버려!!!!"
2. 밤에 깨어나
밤거리 여성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는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제빵공장 야간조에 일하는 남자가 의도치 않게, 묻지마 범죄자로 오해받게 된다. 범죄당시 알리바이가 있어 의심으로 그쳤지만 오래도록 백수생활을 하다 밤마다 외출하는 남자를 보는 이웃들의 눈초리는 이미 차갑게 식어있다. 어느새 이웃마을에서 조직된 자경단원들이 남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에 이르는데.....
3. 복수의 꽃은 시들지 않는다
처음엔 초딩아들이 누군가에게 밀쳐 도로로 넘어지고, 차에 치어 크게 다칠뻔한 사건이 발생한다. 두번째로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이번엔 스쿠터를 타고 퇴근하는 남편이 거리에 매놓은 노끈에 목이 걸려 넘어질뻔한다. 시시각각 남자의 가족을 위협하는 누군가의 존재. 그리고 잊고 있던 고등학교 시절 왕따였던 동급생이 나무에 목을 메 자살한 사건이 떠오른다. 지금의 위협은 당시 자살한 동급생의 복수인 것일까?
4. 계단실의 여왕
DVD를 빌리러 나가던 여성은 불편한 이웃 할머니를 피해 들어온 아파트 계단실에서 정신을 잃은채 누워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눈에 띄는 외상없이 자는듯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을 살핀 여성은 이내 여자가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양아치 여자임을 알아챈다. 매일 요란한 화장과 헐벗은 옷을 입고 자신을 비웃던 여자...마침 잘됐다 싶은 여성은 죽던 말던 쓰러져 있는 여자를 그대로 두고 가려고 하는데.....
불현듯 내게로 찾아온 극단적 상황. 도대체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곰곰이 오래전 과거의 혹은 얼마전 일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원인들. -_-;;; 그렇다 이것은 악의의 나비효과. 내가 지은 작은 죄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 최악의 천벌로 찾아온 것이다.
'여느때처럼 버스 정류장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던 내게 누군가 다가온다. 허름한 차림의 남자. 촛점을 잃은 눈빛. 불그스름한 얼굴. 코를 찌르는 알콜냄세. 얼굴을 찡그린 내게 남자가 말을 한다. 뻐끔. 뻐끔. 귀를 가득 채운 락음악 소리에 붕어처럼 뻐끔거리는 입모양의 남자가 우습게 보인다. 마냥 뻐끔거리는 남자.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뭔데요?"
남자는 앞서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듯 말한다. "학생. 내가 급한일이 생겨서 급히 가봐야 하는데...차비가 부족해서....버스비 천원만 빌릴 수 있을까?" 요즘 버스비를 위시해서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다더니 이 주정뱅이도 딱 그런 부류인가 했다. "없어요! 저리 가세요!" 차갑게 말했지만 남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구차하게 조르다 반응이 없던지 급기야 내 팔목을 붙들고 매달렸다. "아...시X! 저리 꺼져요!" 강하게 남자를 밀치자 남자는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나는 곧바로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를 탔다. 버스 창밖의 남자는 땅바닥에 주저않은채 나를 노려봤다. 남자의 분노에 찬 눈빛은 출발한 버스를 계속 따라갔다.'
위 상황은 가상이지만 본인도 버스 정류정에서 원만이? 천원만, 오백원만이 들을 꽤 자주 만났었다. 돈을 건넨 적은 한번도 없지만 만약 위 상황의 남자가 실제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면...예를들어 평소 병을 앓아오던 아들의 용태가 급변해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임종을 지키지 못할 상황이었다면? 혹은 집을 지키던 노모가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상황이라면? 남자의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한 학생은 의도치 않게 남자에게 철천지 원수가 될지도 모른다. 며칠 뒤....혹은 몇달 뒤....버스를 기다리던 학생이 남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을지 누가 아랴.....
매순간 언제나 선의를 배풀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속에서 아주 작디 작은 사건 하나가 언젠가 내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악의의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공포가 독자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온다. 나역시 의식하지 못한채 그런 악의의 씨앗을 뿌려왔고, 앞으로도 뿌리게 될지 모르기에....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부처, 예수가 아닌 이상에야....-_-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이야미스의 정수를 보여준다. 빠른 호흡이 가독성과 집중력을 높이고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이 진정한 절망을 목도하게 한다. 읽다보면 끝없는 지옥의 계단을 걸어내려가는 기분이다. '저놈은 자업자득이야.', '정말 재수도 없는 놈이구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군.' 네 편. 네 명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야기속에서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