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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서 춤추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절벽 위에서 춤추다 (2019년 초판)
저자 - 이시모치 아사미
역자 - 이연승
출판사 - 블루홀6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68p
자칫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무도
단절된 공간. 다양한 인간군상들. 그리고 죽음. 죽음. 죽음......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그래! 범인은 이 가운데 있어!!"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대사는 짜릿한 맛을 주는 마법의 대사이다. 추리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밀실. 그리고 밀실과 비슷한 상황에서 대량의 살육전을 유발는 밀실장르의 최고봉이자 최고 빅재미를 주는 장르가 클로즈드 서클이다. 단절된 공간. 다양한 인간군상들. 그리고 죽음. 죽음. 죽음......추리의 3요소 후던잇, 와이던잇, 하우던잇을 골고루 충족시켜야 하는 비로소 납득할 수있는 작품이라 완성도 있는 클로즈드 서클물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런데 독특한 발상과 소재로 무장한 아슬아슬한 클로즈드 서클이 바로 이 [절벽 위에서 춤추다]이다.
가정용 풍력 발전기를 제조하는 회사 풍신 블레이드는 신제품 WP1의 대박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 하지만 구매자들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존재했으니, 가동중 발생하는 고주파 소음이 일부 사람들에게 편두통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본인, 혹은 가족, 혹은 지인 등 편두통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풍신 블레이드에 소송을 걸지만 민간과 대기업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 없었다. 결국 풍신 블레이드에 복수를 원하는 이해관계로 뭉친 10명의 사람들이 복수의 계획을 꾸민다.
복수의 대상은 3명. 사장과 전무와 WP1 개발부장.
10명의 사람들은 비어있는 회사 리조트를 점거한뒤 개발부장을 유인하여 살해한다. 이제 사장과 전무를 유인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2틀. 리조트에 숨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려던 그들에게 생각지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식당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동료 1명이 죽어있던 것.
이제 남은 사람은 9명.
그리고 9명 중에 살인범이 숨어있다.
2002년 데뷔 이래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본격 미스터리를 무려 46권이나 집필한 본격의 명수 '이시모치 아사미'의 역량이 결집된 작품으로 작가의 본격에는 자기만의 법칙을 따른다고 한다.
1. 다른 작가는 쓸 것 같지 않은 무대를 준비한다.
2. 그 무대에서 일어날 만한 사건을 트릭 없이 일으킨다.
3. 등장인물들의 난상 토론을 통해 진상을 밝힌다.
그래서인지 [김전일]처럼 고립된 섬의 별장 혹은 외딴 지역의 기숙학원 같은 클로즈드의 클리셰 같은 배경이 아니라 신선했다. 다만, 2번 같은 경우 호불호가 갈릴 듯 한데, 본인의 경우 기똥찬 트릭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트릭의 부제가 조금 아쉽게 느껴졌지만 3번 같은 등장인물들의 난상 토론으로 추리를 풀어나가는 점이 클로즈드와 안락의자를 접목한 재미를 주어 흥미롭게 느껴졌다. 뭐랄까.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끝없는 살인]과 유사한 방식이었달까.
다시 1번 법칙을 이야기하자면, 작품에 모인 10명의 남녀는 이미 개발부장을 공동 살해한 공범이자 운명공동체이다. 집단에서 이탈하면 복수를 그만두고 빠지는 배신자가 되버리는 관계를 통해 기존의 물리적 단절이 아닌 이해관계의 단절이라는 경계를 선보인다. 이후 이어지는 연쇄살인으로 생존자들은 고민하게 된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면서도 풍신 블레이드에 대한 복수를 이어가느냐? 아니면 복수를 그만두고 생존하지만 개발부장의 살해에 대한 죗값을 받을 것이냐? 마지 절벽위에서 춤추듯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들의 복수에 대한 의지를 끌고 가는 요소가 무엇인가. 그것이 생존자들의 난상 토론을 통해 각자의 거짓과 은폐의 교란을 통해 조종된다.
목숨을 잃더라도 복수를 이어간다.
절벽위에서 몸을 내던지는 레밍들 처럼.
극한으로 치닫는 광란의 카타르시스!
작품은 10명의 복수단이자 주인공격인 '에마'의 눈으로 진행된다. 조향사로 빛나는 미래를 꿈꾸지만 WP1의 부작용으로 후각을 잃고 비탄에 빠진 여성. 하지만 극에서는 뚜렷한 주관 없이 타인의 주장에 쉽게 넘어가는 주체적이지 못한 캐릭터이다. 결국 독자도 '에마'의 입장에서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펼치는 살인연맹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진정한 적인지, 아군인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잠긴 방안에서 사람들이 살해되지만 트릭을 맞추는 하우던잇 보다는 후던잇, 그리고 와이던잇(왜?!!)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작품이다.
결국 시작부터 종반까지 이어지는 무수한 난상토론에서 유의미한 단서를 캐치하는 자만이 작가가 던진 미스터리를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자. 떡밥과 거짓이 난무하는 카오스에서 진실을 맞출 자 누구인가?
"복수라는 건 정말 위험한 것 같아. 자기가 생각할 때는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는 것 같아도 옆에서 보면 엄청나게 위태롭지. 마치 절벽 위에서 춤추는 것처럼 말이야. 한 발짝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마는데도 우리는 모두 복수라는 춤을 멈추려고 하지 않았어. 그러는 동안 하나둘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렸고." _35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