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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들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4
김중의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2월
평점 :
광인들 (2018년 초판)_밀리언셀러클럽 한국편-034
저자 - 김중의
출판사 - 황금가지
정가 - 12000원
페이지 - 286p
미치광인들
2003년 평택에서 군생활을 할때의 일이다. 전국적으로 돼지 콜레라가 발병해 난리가 난 시점이었고....내가 머물던
평택지역에도 돼지 콜레라가 창궐하여 대대적인 살처분이 예정되었고 우리 부대에서 살처분 대민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부대서 특기당 몇명의 인원을 차출하는데 운없게도 나도 끼게 되어 중식 후 두돈반을 타고 돼지 농장으로 출발했다.....가던중 잠시 차를 멈추고 방역복과 방역덧신을 지급받고 방역복을 입었다. 백색의 방역복을 입은 사내무리들을 보니 웬지 생화학 무기 공격을 받고 수습하는 SF영화를 보는듯한 초현실적 느낌을 받으면서 농장에 도착했다....가보니 포크레인으로 엄청난 크레이터 같은 구덩이를 파놓고 바닥에 비닐을 까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생소한 광경에 긴장
하면서 어버버~ 서있었더니 돼지를 효과적으로 썩히기 위한 석회 포대를 나르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그렇게 힘좀
쓰니 준비가 완료되었다....그리고...수백마리의 돼지들이 줄지어 입장하는데....처음 몇마리는 구덩이 근처에서
정수리에 오함마로 한방에 내려치니 꽥!!! 단말마의 비영과 함께 사지가 굳은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넘어가더라....
그런데 이 돼지놈들이 그광경을 보고 나니 수많은 돼지들이 사람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거다... 한마리
한마리 잡아 죽이다간 밤새도 안될것 같았는지 결국 틈도 없이 모아놓은 돼지들을 향해 포크레인 삽을 가차없이
내리 찍어 구덩이로 밀어 떨어트렸다... ㄷㄷㄷ 두동강 나는 돼지, 머리가 잘리는 돼지, 허리의 반이 잘린채
너덜거리는 돼지들.....동강난 사이로 내장이 줄줄 흘러내리면서도 숨통이 끊어지지 않아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꽥! 꽥! 꽥!!!!!! 여기저기 돼지 비명소리가 난무하고 그걸 바라보는 난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지옥도였고..구덩이 가득찬 살아있는 돼지들이 자기 동료들을 짓밟고 올라가려고 하고, 운좋게
구덩이를 올라온 돼지들은 가다리던 사람들에게 망치로 머리가 깨바셔지고...그렇게 한참을 작업하고 아직 살아있는
돼지들을 향해 석회가루를 뿌리고 하얗게 석회가루를 입은 돼지들을 향해 그대로 모래를 덮는다. 꿀꿀 꽥꽥 돼지들의
비명이 하늘을 떠나가라 울려 퍼지고 살아있던 돼지들이 흙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을 때쯤.....부패가스 나올 관을
한가운데 박아 넣으면서 살처분 작업은 끝이난다. 점심부터 시작된 작업은 새벽 2시쯤 끝이 났다. 물론 그 지옥도를
지켜보고 있던 내 정신도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인간의 효율적 잔인함에 몸서리 처지게 놀랐던 끔찍한경험이다...
한동안 돼지에 대한 쇼크상태가 꽤 오래 지속됐는데....귓가에 돼지 비명소리가 계속 들리는것 같은 환청도 들리고
꿈속에 두동강 난 돼지들이 나오는 악몽도 꿨었다....몇일 뒤...살처분 하여 빈 축사를 정리하는 대민지원을 다시
나갔는데, 온통 역한 냄새가 마을을 뒤덮고...흙을 덮었던 땅은 온통 물렁한 진흙으로 뒤바껴 갈라진 틈으로 부글
거리는 거품과 함께 핑크빛 침출수가 끊임없이 흘러 내린다....죽음의 침출수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구제역 살처분 장면을 바라본 내겐 인간의 야만성과 잔혹성에 언젠간 하늘의 천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구제역 살처분 후 누출된 침출수에서 광인 바이러스가 창궐하고...삽시간에 인간들을
거침 없이 집어 삼킨다...효율적으로...아주 빠르게....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손에 끔찍하게 사라져간 가축들이
내리는 단죄이자 천벌이 아닌가....
작가인 수하는 포항에서 딸 희정을 만나고 집인 청주로 돌아가던중 날이 저물어 근처 여관에서 하루를 숙박한다.
남편의 폭력을 못이기고 어린 딸을 남겨두고 집을 나간 수하는 이후 이혼하여 혼자가 되고 친딸인 희정에게 조차
자신이 엄마임을 말하지 못하고 전남편과 새엄마 몰래 연락하고 만나는 관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딸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은 커지고 모처럼 시간을 내어 딸과 함께 포항에서 영화를 봤던것이다. 딸과의 즐거웠던 하루
를 추억하며 잠자리에 든 수하는 문밖의 커다란 소음에 눈을 뜬다. 온통 부서지는 소리와 끔찍한 비명소리들...
기회를 봐서 재빨리 여관을 나온 수하는 자신의 마티즈에 올라타고 전속력을 엑셀을 밟는다...그리고 이내 이어
지는 추돌사고....가까스로 낯선 남성과 소녀의 도움을 받아 소녀의 집으로 피신한 수하는 자동차 사고로 인해
한쪽 다리가 부러진것을 알게 된다. 딸 희정과 연락이 안되는 수하는 딸을 찾기 위해 남성과 함게 휠체어를 타고
딸이 살고있는 경산으로 찾아가는데.....
좀비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제는 다리나 질질끌고 절뚝이며 느리게 다가오는 단순한 좀비물은 식상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요즘 좀비들은 기존 좀비와는 다른 특성들을 하나씩 갖고 나오는데, 머...[28주후]처럼
좀비들이 뜀박질을 한다거나 [셀]처럼 일정 주파수로 소통하며 단체행동을 한다거나 아니면 얼마전 출간됐던
[창백한 말]처럼 좀비 아포칼립스 이후의 생존자들의 삶을 다루는등의 식상함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들이 보여
진다. 그렇다면...[광인들]의 차별화는 무엇인고 하니...감염된 광인들이 비감염자들을 홀리는 것이다..ㄷㄷㄷ
똑똑똑 "혜진아. 이모다. 혜진이 안에 있니? 구원받아야지?"
똑똑똑 "혜진아. 이모다. 혜진이 안에 있니? 구원 받아야지?"
똑똑똑 "혜진아. 이모다. 혜진이 안에 있니? 구원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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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혜진아. 이모다. 혜진이 안에 있니? 구원받아야지?"
똑똑똑...
아침부터 일몰까지 문밖에서 계속 이어지는 이모의 부름....집안에서만 갇혀 있던 은둔자들이 반갑고 낯익은
목소리에 문을 열게 되면....문밖의 이모는 혹은 동생은 혹은 누나는 혹은 엄마는 혹은 아빠는...반가운 인사대신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고 나를 산채로 뜯어먹는 것이다....운좋게 눈치채고 문을 안열어 줘도 문제다. 끊임없이
간격을 두고 하루종일 계속되는 유혹의 소리는 갇혀있는 사람들을 미쳐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정신적 스트레스
이기도 하니 말이다. 뭔가...문밖 귀신의 부름에 대답하면 혼을 빼앗긴다는 괴담처럼 작품속 광인들의 정신 공격은
한정된 공간이란 밀폐된 고립감 속에서 상당한 정신적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요소였다.
딸 희정을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릎쓰는 엄마 수하의 불굴의 모정은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대재난의 비정함 속에서
더욱 빛나는 요소로 거듭난다. 클리셰 같지만 극적인 모녀상봉과 더불어 비극적 결말도 알면서도 집중하게 만드는
맛이 있었고...여러 흥미로운 요소와 함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다만 첫 작품인 만큼 대재난에 어울
리지 않게 너무 우유부단한 행동이나 극한 상황인데도 급박한 감정 전달이 잘 되지 않는등 군데 군데 허술한
설정들이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일단은 막힘없이 재미있게 읽었으니...합격점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