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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수를 죽이고 - 환몽 컬렉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0
오쓰이치 외 지음, 김선영 옮김, 아다치 히로타카 / 비채 / 2018년 11월
평점 :
메리수를죽이고 : 환몽컬렉션 (2018년 초판)
저자 - 오츠이치, 나카타 에이이치, 야마시로 아사코, 에치젠 마타로
해설 - 아다치 히로타카
역자 - 김선영
출판사 - 비채
정가 - 13800원
페이지 - 319p
"네 소설, 메리 수가 나오지? 그 녀석 좀 어떻게 해봐. 솔직히 말해서 찝찝해."
실로 오랜만에 '오츠이치'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본작가이자 전작주의로 가는 작가....처음 '오츠이치'를 만난날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빼놓지 말고 이야기 해야 할 작품이 바로 작가의 첫 단편집[ZOO]이다. 괴기, 공포, 추리, SF, 엽기, 잔혹, 고어가 어우러진 장르종합 선물세트와 더불어 수록된 전 작품이 강렬하고 수준급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는...그렇게 혜성같이 등장한 작가에 흠뻑 취해 버린다. 이후 출간된 엽기고어 범죄물 [GOTH]에 또다시 맛이 가버리고...바로 '오츠이치'의 전작주의로 갈 것을 마음 먹는다. 하지만 이후 출간되는 작품들은 강렬함을 뒤로하고 감동을 주는 힐링계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작가의 작품이 암흑계와 힐링계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극명하게 나뉘던 작풍은 [암흑동화]를 기점으로 암흑계와 힐링계가 서로 공존하는 이야기를 보이기 시작한다. 미치도록 강렬하고 끔찍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결말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_-;;;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설정과 감성을 자유자재로 떡주무르는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다만 그만의 오리지널 작품에서 벗어나 인기만화 [죠죠 시리즈]의 2차 창작물로서의 시도였던 [더 북]에서는 잡았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ㅜ_ㅜ)
좌우간...환몽컬렉션이라는 부제로 출간된 오랜만에 나온 이 앤솔러지 역시 암흑계와 힐링계, 그리고 암흑+힐링계가 적절히 섞여 있는, 뭣하나 버릴것 없이 고루 인상적인 작품들로 구성된 단편집이었다. 이 단편집을 보면서 이제 고립감, 상실감, 고통, 아픔등 인간으로 느끼게 되는 수많은 감정을 이야기에 담아내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이 감정들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작가로서의 능력이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ZOO]를 읽었을때의 강렬함과 신선함을 10년이 지나서도 그대로 간직하면서 여전히 인간내면의 감정선을 자극하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다니...역시 '오쓰이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1. 사랑스러운 원숭이의 일기 - 오쓰이치
약물에 취해 살던 쓰레기 같던 인생에서 우연히 실종된 아버지의 유품인 잉크병을 얻게되고, 잉크병을 쓰기위해 일기장을 사고, 일기장만 두기 뭣해서 읽지도 않을 책을사고, 꽂아만 놓은 책이 아까워 책을 읽고...그렇게 사소한 일을 계기로 전과는 다른 변화된 인생을 살게 되는데....
- 굳이 가르자면 힐링계 작품이다. 물흐르듯 단순하게 흘러가는 주인공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인생이 변화하게 되는 계기는 이렇게 작고 사소한 잉크병 하나가 될수도 있다는것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꾸는 계기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인생은 신비하다는 것이다. 이 단편의 환몽 소재는 잉크병인가...
2. 염소자리 친구 - 오쓰이치
바람을 타고 내일의 신문이 날아오는 기묘한 집에서 사는 마쓰다 유야는 우연히 낙엽조각들 사이에서 수일 뒤의 신문 조각을 발견한다. 왕따를 당하던 소년이 가해자를 죽이고, 자수한 경찰서 화장실에서 목을 메달아 자살...그로부터 며칠뒤...편의점을 향하던 유야는 지독한 왕따를 당하던 동급생 와카쓰키 나오토가 가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돌아가는 길목에서 딱 마주친다. 촞점을 잃은 동공...살점이 묻어있는 피투성이 방망이...이대로 보내면 경찰에 붙잡힐 것이 뻔하다...결국 나오토를 돕기로 한 유야는 자신의 방으로 나오토를 숨겨주면서 도피행각에 동참하는데....
- 추리와 반전에 미래의 신문이라는 환몽적 소재가 더해지면서 재미가 배가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오츠이치'식 환상잔혹동화랄까...확실히 어떻게 써야 최대의 재미를 이끌어 내는지 아는 작가이다.
3. 소년 무나카타와 만년필 사건 - 나카타 에이이치
초딩 소녀 야마모토는 친구의 만년필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반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자신은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친구들, 선생님의 시선을 싸늘하기만 하고, 급기야 학교만 가려고 하면 배가 아파지는 등교거부증상까지 나타난다. 등굣길 아픈 배를 잡고 웅크리고 있는 야마모토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은 같은반 소년 무나카타...언제나 구멍나고 더러운 옷을 입고 구릿한 땀냄새를 풍겨 아이들이 피해다니는 그 소년이 내게 만년필이 사라진 날에 대해 물어봐준 것이다. 기억나는대로 그날의 일을 설명하자 구겨지고 찢긴 공책에 사건의 정황을 써내려 간 무나카타는 자신이 만년필 절도사건의 진범을 잡아주겠다고 말하고, 그때부터 무나카타의 수사는 시작된다....
- 모두가 피하던 소년이 외톨이가 된 나를 믿어줄 유일한 사람이 된다면...얼마나 믿음이 갈런지 모르겠다. ㅎㅎ 하지만 그런 의심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무나카타가 증명하는 학급재판의 열기는 성인의 법정재판을 뛰어넘는 긴장감과 치열함을 선사한다.
4. 메리 수 죽이기 - 나카타 에이이치
선배의 한마디로 시작되었다. "네 소설, 메리 수가 나오지? 그 녀석 좀 어떻게 해봐. 솔직히 말해서 찝찝해."....고등학교 동아리에서 게임의 2차 창작 동인지를 집필하는 내게 다른 동아리의 선배가 건넨 이 한마디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메리 수는 기존 게임이나 애니의 세계관에 자신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집어넣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2차 창작물속 자신의 소망을 투영하는 캐릭터를 가리킨다.(작품에서는 중2병의 망상속 존재로 설명하기도 함) 현실의 내가 너무나 볼품 없어 상대적으로 자신이 투영한 캐릭터가 말도 안되게 완벽해지는 것이다....-_-;;; 결국 메리 수를 죽이기 위해서는 현실과 소망의 간극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나 자신을 바꿔야 한다!!!
- 한 오덕녀의 눈물겨운 성장기?...메리 수를 죽이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여성으로 성장하지만...하지만 죽은줄 알았던 메리 수는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아....이렇게 힐링되는 기분...세상을 향해 자신을 향해 팬들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향해 응원을 보낸다....
5. 트랜시버 - 야마시로 아사코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은 남자는 매일같이 심장을 찌르는 아픔을 안은채 폭음으로 고통을 달랜다. 그날도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가던중 아들과 함께 갖고 놀던 워키토키에서 이상한 화이트 잡음이 들리는 것을 들으며 필름이 끊긴다. 워키토키의 한쪽은 쓰나미에 휩쓸린 아들이...남은 한쪽은 남자가 갖고 있었고, 워키토키 안에는 건전지 조차 없었다. 하지만...폭음을 한 날이면...그 워키토키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 [시그널]?...부자의 이야기 이니 [프리퀀시]?...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다른 곳에서의 신호를 잡아 통신한다는 소재는 익숙하다면 익숙할텐데...여기에 동일본 대지진의 상실의 아픔을 더하니 더없이 슬프고 아련한 작품이 되었다...자식 키우는 아빠로서 작품속 남자의 가족에 대한 처절한 그리움에 공감의 눈물이 맺히고
기적같은 교신 후 새로운 삶으로의 도전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6. 어느 인쇄물의 행방 - 야마시로 아사코
정체불명의 생체실험 연구소에서 소각장 일을 맡게된 여성은 안에서 만난 한 연구원과 만나 사랑을 시작한다. 3D프린터 연구원이라는 남성 역시 자신이 하는 연구를 여성에게 철저히 비밀에 붙인다. 그러던 비오는 어느날...그날도 종이상자에 쌓여있는 소각품을 소각로에 옮기던중 빗물에 미끄러져 상자를 떨어트리고, 떨어진 상자를 살피던 여성은 상자속에서 작게나마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는데.....
- 3D프린터...생체연구소....대체 무슨 실험을 했던것인가...인간의 편의를 위해 벌어지는 끔찍히고 역겨운 상상력의 암흑계 작품이다.
7. 에바 마리 크로스 - 에치젠 마타로
고아원에 큰 기부를 해오던 부호 제임스 번스타인이 죽고 반년뒤 그의 아내가 권총 자살을 한다. 고아원에 근무하는 에바 마리 크로스는 남자친구인 나에게 부인의 죽음이 번스타인의 숨겨둔 치부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자살한 것이라는 얘기를 전하고, 잡지기자인 나는 아내를 자살로 내몰은 번스타인의 충격적 치부에 관심을 갖고 조사하려한다. 부인이 자살하기 직전까지 시중을 들던 시종의 동생에게서 부인이 봤던 것이 '인체 악기'였다는 말을 들은 나는 점점 더 '인체 악기'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되고, 우연히 번스타인의 유품 잔해에서 정체불명의 초대장을 발견하게 되는데.....
- 작가가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써냈다고 하는데....정말 [피의 책]같은 기괴하고 몽환적인 끔찍한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가면을 쓰고 비밀리에 벌이는 인체 악기 연주회는 [아이즈 와이드 셧] 속 가면난교파티를 떠올리듯 비밀스럽고 환상적이며 이어지는 결말까지 웨스턴식 괴기환상소설의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동안 '오츠이치'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인듯...
'오쓰이치'와 '나카타 에이이치', '야마시로 아사코', '에치젠 마타로' 등 여러 작가가 써낸 앤솔러지로 생각하게 만들지만....사실은 작가 '오쓰이치'의 다른 팬네임으로 모두가 '오쓰이치'의 작품이다. 나역시 처음엔 여러작가의 엔솔러지로 알고 있었으나 한참을 작가의 이름들을 보자니 눈에 익은 이름들이라 책장을 뒤져보니 '나카타 에이이치'의 이름으로는 [기치조지의 아사히나군]이, '야마시로 아사코'의 이름으로는 [엠브리오 기담]으로 국내에 출간된 책이 꽂혀 있는것이 아닌가...ㅋㅋㅋ 결국 작품의 해설을 썼다는 '아다치 히로타카'까지 모두가 '오쓰이치'의 농담같은 장난인 것이다. 역시 난 '오츠이치'의 왕팬이니까 알아챈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마지막장의 '옮긴이의 글'을 읽어보니 모두가 '오쓰이치'의 작품이라고 밝히더라는...-_-;;; 이정도로 작가가 농간을 부리면 출판사에서는 끝까지 밝히면 안되는거 아니요?!!!...>_<
단지 팬네임을 달리하면서 단편을 수록한 것이 작가의 농간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단편 하나 하나가 각기 다른 장르와 매력을 보여주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로 다른 작가의 손에 쓰여진 작품이라고 믿을 정도로 개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의 아픔을 보여주는 [염소자리 친구]와 [소년 무나카타와 만년필 사건]은 타인의 아픔뒤에 가려진 무관심과 외면이 어떤 끔찍한 일을 가져오게 될지, 끝없는 고통속에서 허우적대는 친구를 구원하는 것은 작은 관심과 용기 한조각이라는 것을 말한다. 표제작 [메리 수 죽이기]는 코믹스 [죠죠 시리즈]에 열광하며 5년간 집필한 2차 창작물 [더 북]을 써낸 본인의 경험과 감정을 살려 써낸 작품이라 생각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전일본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상실감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방사능의 공포를 가족이라는 새로운 희망으로 극복해 내려는 의지가 담긴 [트렌시버]역시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끔찍하고 괴이한 상상력에 웨스턴 공포를 접목한 마지막 작품 [에바 마리 크로스]도 몽환적인 공포작품으로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었다.
짜릿하고 강렬한 카타르시스와 잔잔한 감동이 공존하는 '오쓰이치'의 작품집...[더 북]과 [하나와 앨리스]로 멀어졌던 애정을 다시금 활활 불태우는 단편집이자 정말 책값은 하는...아니 책값 이상의 재미와 만족감을 주는 작품집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때 당시 그모습 그대로 돌아와줘서 다행스럽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말고 기똥찬 새로운 작품들이 쭉쭉 나오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