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아르테 미스터리 19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2021년 초판)

저자 - 아시자와 요

역자 - 김은모

출판사 - arte

정가 - 13000원

페이지 - 271p



공포 괴담과 미스터리의 성공적 콜라보




'그 혼령과 연을 맺고 싶은 게 아니라면 무람없이 말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 관계도 없는 고인에게 기도를 올리면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연을 스스로 만드는 셈입니다.' _225p



새로운 작가의 독특한 공포 미스터리 작품이 출간됐다. 안 그래도 괴담을 좋아라 하는데 그 괴담에 미스터리 기법을 더 했다니! 호기심과 궁금증, 기대감이 넘쳐났다. 더군다나 일본 아마존 서스펜스 부문 랭킹 1위에 일본서점 대상 후보작이라는 '인정'을 받은 작품이니 재미와 작품성 둘 다 인정받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근래 읽은 공포중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를 꼽는다. 사실 이 작품도 정통 공포라기 보다는 미스터리적 기법을 섞어 강렬한 충격을 선사하는 작품이었기에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었더랬다. 그런데 이 작품은 본업이 미스터리작가가 써낸 공포 괴담이니 공포호러로서도, 미스터리로서도 어느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괴담. 6편의 단편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누군가..... 



괴담 수집 작가인 나는 출판사로부터 가구라자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괴담집 출간 제의를 받게 된다. 가구라자카라는 지명을 들으면서 나는 얼마전 있었던 기묘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한 점쟁이를 찾아가 궁합을 본 커플의 이야기인데, 점쟁이는 그 커플에게 당장 헤어지라며 좋지 않은 점괘를 내놓는다. 이에 남자는 격분하며 점집을 박차고 나온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변화한 것이다. 결국 커플은......



이렇게 괴담 수집가가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자를 소개시켜 줬던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 그 이야기와 엮여 있는 다른 사람이 겪은 이야기 등등등....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야기가 거듭되면서 전체적인 이야기에 깊이 엮여 있는 누군가가 존재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옆나라 일본의 이야기인 만큼. 지금도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으며 토속 무속 신앙을 섬기는 일본의 이야기는 때마다 점집을 찾아가 점을 보고 부적을 붙여 액막이를 하는 우리나라의 무속 신앙과 많은 점이 닮아있어 거리감이 들기는 커녕 작가가 이야기 하는 공포의 방향성을 굉장히 이해하기 쉬웠다. 뭐랄까. [곡성]에서 일본과 한국의 점쟁이들이 서로를 향해 살을 날리는 장면이 떠올랐달까. 두 나라의 무속신앙이 어디에서 어느 쪽으로 흘러갔는지는 모르지만 나라는 다를지언정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나 방법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앞서 차근차근 복선을 깔아두고 결말에서 모든 복선들이 조합되면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미스터리의 반전이 공포호러와 만나니 결말부에서 느끼게 되는 독자의 충격과 공포는 여타 공포 작품보다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6 단편중 [망언]을 최고로 꼽고 싶다. 현실 미스터리라면 통용될 수 없는 반전이나 심령 공포, 오컬트 세계속에서는 설사 말이 되지 않더라도 독자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리얼리즘을 벗어난 경계를 벗어난 반전은 더욱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충격을 선사한다.



작가가 직접 등장하면서 괴담의 실체와 후기들을 이야기하여 독자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만드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이른바 메타픽션적 요소로 픽션과 리얼의 경계를 교묘하게 허물고 있다는 말이다. 악의를 품고 저주를 쏟아붓는.... 인간의 말초적 공포를 자극하는 신비한 작품이다. 괴담속에 녹아든 미스터리와 반전의 묘미는 공포를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굉장히 취향저격이었고 비슷한 류의 공포 미스터리를 계속 보고 싶다는 갈망이 들었다. 공포와 미스터리의 성공적 콜라보. 강력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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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록트 도어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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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온록트도어 (2021년 초판)

저자 - 아오사키 유고

역자 - 김은모

출판사 - 엘릭시르

정가 - 13000원

페이지 - 302p



불가능?

불가해?

이들이 앞에서 완전 범죄는 없다



역시 미스터리하면 본격이요. 본격의 맛은 밀실을 비롯 암호해독, 광장밀실, 서술트릭, 독살 미스터리 등등등 다양한 사건과 트릭의 해법에서 오는 쾌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본격에서 빠질 수 없는 포인트가 있으니, 바로 이 트릭들을 시원하게 깨부숴 주는 탐정의 역할이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두 명의 탐정이 등장한다. 지금껏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원맨쇼 수준의 탐정들(물론 왓은 같은 조수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활약은 탐정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니 배제하고)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번 작품은 조금은 다른 맛을 보여주리라 생각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작품의 탐정은 두 명. '히사메'와 '도리'이다. 그리고 각 탐정은 주력으로 하는 능력을 따로 지닌다. 도저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을 기막히게 해결하는 밀실트릭의 달인 '도리'와 이론적으로 불가해한 사건을 풀어내는 '히사메'. 이 두 콤비가 있는 한 불가능, 불가해 한 완전범죄는 없다.



인터폰이 없다. 초인종도, 차임벨도, 노커도 없다.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에 찾아오는 사람은 무조건 현관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리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히사메와 도리는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속도와 패턴을 통해 

찾아온 손님의 성향을 예측한다. 

사무실로 찾아온 일곱 명의 사연들이 독자를 미스터리의 묘미로 가득 채운다.  


1. 노킹 온 록트 도어

잠긴 방안에서 등에 흉기를 찔려 살해된 화가의 죽음. 하지만.... 밀실이 아닐지도....


2.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

욕실 안. 벌거벗은 상태로 액살되어 발견된 여성의 사체. 이상한 것은 그녀의 머리가 죽기전과 비교해 짧아 졌다는 것?


3. 다이얼 W를 돌려라!

탐정 사무실로 들어온 2건의 의뢰. 첫번째 의뢰는 죽은 할아버지가 남긴 유서의 암호를 해독하여 금고를 열어 달라는 것.

두번째 의뢰는 거리에서 피격당해 사망한 아버지의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 


4. 칩 트릭

암막 커튼을 친 방안에서 총에 맞아 죽은 남자. 남자는 창가에서 죽은 채 발견되지만 밖에서는 암막 커튼 때문에 남자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태. 범인은 어떻게 남자를 죽였을까?


5.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

눈 쌓인 공원 한복판에서 칼에 찔려 죽은 남자. 남자의 발자국은 딱 하나 뿐. 남자를 죽인 자는 누구인가?


6. 십 엔 동전이 너무 없다

탐정 사무소에서 알바를 하는 여고생 우연히 들은 한마디에서 두 탐정의 추리가 시작되고.... 


7. 99퍼센트 확실한 독살

연단에서 연설을 하던 남자가 연설 도중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사인은 독극물에 의한 사망. 바닥에 부딪혀 깨진 샴페인 잔에 묻은 독극물이 발견되고 두 탐정은 남자에게 독이 든 샴페인을 먹인 자를 추리하는데...



사실 일본 본격물이 트릭을 이리 꼬고 저리 꼬아서 상당히 복잡하게 꼬아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작품들에 비하면 이 작품집의 트릭은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트릭이라 이해도는 좋은 편이다. 물론 트릭을 알고 나니 이해가 쉬웠다는 말이지 독자가 트릭을 맞추기 쉽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더불어 불가능과 불가해의 복합적 요소를 넣어놓고 각 탐정을 통해 따로 추리하게 만들어 반전의 반전을 주는 요소도 좋았던 것 같다. 간단히 말하자면 쉽고 간편하게 본격의 묘미를 주는 작품인데 반면 트릭을 먼저 만들어 놓고 이야기를 끼워 넣는 우연성에 기대는 작위적인 느낌의 단편도 있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각자 개성 뚜렷한 탐정들의 티키타카와 함께 불가능 범죄를 타파하는 유쾌한 탐정 미스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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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 사람과 사물들 2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거짓말쟁이 외 지음 / 푸른약국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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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 사람과 사물들 2 (2021년 초판)

저자 - 거짓말쟁이 외

출판사 - 푸른약국

정가 - 15000원

페이지 - 179P



독자들이 만드는 책



앞서 참여한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 사람과 사물들 1]에 이어 두번째 권의 리뷰이다. 1권이 첫번째 프로젝트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 우연한 사랑, 필연적 죽음]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기성(?) 작가들의 모음이라면 2권은 이번 프로젝트에 처음 참여하는 신진(?) 작가들의 모음집이다. 물론 몇 분은 이전 프로젝트의 필명을 버리고 새로운 필명으로 참여하여 2권에 배치된 분도 있는 듯 한데, 대체적으로 처음 참여하는 분들의 글들이 과반수 이상이라 생각된다. 결국 진짜 독자들이 만든 책이 이 2권이 아닐까 싶다는.



첫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이 나오길 기다리고, 실제로 책을 받아보고 느꼈던 감회를 이번 2권에 참여한 작가들 역시 느끼리라 생각하니 덩달아 즐거워 진다. 뭐 나도 한 번 경험이 있다지만 이번 프로젝트 역시 설레이는 건 첫 참여 작가들과 마찬가인 것도 사실이랄까... ㅎㅎㅎ



1진실퀴즈 - 거짓말쟁이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갈망했던 내 앞에 불현듯 소설을 쓰고 있다고 고백하는 너. 나는 그런 녀석의 글이 궁금해 미칠지경이었다. 결국 호기심을 못이기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고, 녀석의 글을 읽던 나는 소설속 사건들이 허구가 아닌 리얼이었음을 깨닫고 혼란에 빠지는데....



2.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 BB

"너는 내 손에서 어떤 실이 보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러면 이제 곧 나도 너한테서 사라지겠다. 아마도."


끈으로 이어진 인연이라는 수 많은 실타래중 우리가 스치듯 지나는 끊어진 실들은 얼마나 많고 많을까.



3. 연애시대 - 금모래

고된 질병의 고통속에서 떠나버린 아빠. 그리고 그런 아빠를 눈물로 떠나보낸 엄마. 딸은 묻는다. 미처 자신은 몰랐던 엄마와 아빠의 풋풋한 연애시절을.



4. 운수 좋은 날 - S.J.Romi

첫 출근. 기대감과는 달리 허름한 회사 외관에 기분이 상하고, 퇴근 후 이어지는 꼰대 부장과 단 둘 뿐인 회식. 술 병은 늘어만 가고 부장은 고주망태가 되어 첫 출근한 여사원에게 추파를 던지는데..... 참으로 더럽게 운수 좋은 날이구나!



5. 플랫 어스 - 진수란

지구가 평평하나고 주장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딸. 딸은 엄마의 말도 안되는 주장 속에서 차츰 그녀가 짊어졌던 인생의 무게와 진실을 이해해 나간다.



6. 은밀한 계절 - G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별의 잔상도 언제나 그러하 듯 시간이 해결해 준다. 마치 때가 되면 바뀌는 계절처럼....



7. 은영 - 새빛

관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은 아님을 안다. '부디 평안하기를 바라.' 친구가 건넨 메모 한장과 네 권의 책에 은영은 용기를 내본다.



8. 우리는 겨울을 건너고 있다 - 겨울정원

홀로 사는 엄마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 행복해 하는 엄마를 보며 심란한 마음의 연과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가와 주는 재신. 그렇게 온 우주의 생명이 소생하는 계절 봄을 기다리며, 그들은 겨울을 건너고 있다.



9. 너의 부재 - 해바라기

부가 행복의 조건은 아니건만, 열심히 살아가려는 희영 가족의 형편은 나날이 힘들어져만 간다. 기록적인 기나긴 장마. 낡은 용달을 몰고 일을 나간 정우.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 걱정하는 희영의 가족과 연락이 끊겨버린 정우..... 그 예상치 못한 부재가 앗아간 것은....



10. 구름 속의 범고래 - 복잡한농담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님에도 작품에서 스치듯 그려지는 제주의 풍광은 그곳을 계속 찾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풍긴다.



몇몇은 본인에겐 난해했고, 몇몇은 풋풋하고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나는가 하면, 기발한 발상으로 소재를 따오고 싶은 작품도 있었다.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들임에는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진실퀴즈], [운수 좋은 날]을 꼽고 싶다. 특히 [운수 좋은 날]은 과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거 다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맛이 있는 웃픈 작품이었다. 이렇게 두 번째 프로젝트도 마무리 됐다. 기분 좋은 기획에 다시 한 번 참여할 수 있어 좋았고, 약국 대표님을 비롯해 이막이2에 참여한 모두들 수고하셨다고 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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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Art & Classic 시리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설찌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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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2020년 초판)

저자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삽화 - 설찌

출판사 - RHK

정가 - 16500원

페이지 - 551p



아련한 기억속의 그 작품



'빨강 머리 앤 귀여운 소녀~ 빨강 머리 앤 우리에 친구~'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한 유년시절 즐겨봤던 만화영화 [빨강 머리 앤]의 원작소설이다. 일본 원작 만화가 1979년에 방영 됐으니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ㄷㄷㄷ 최근에(이라지만 몇 년 전) EBS에서 다시 방영해서 반가웠던 기억이 나는.... 만화로만 봤던 그 원작 소설을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접했다. 페이지를 넘기며 펼쳐지는 앤 셜리의 조잘대는 모습들이 오래전 만화영화속 장면들과 오버랩 되면서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 책이었다. ㅠ_ㅠ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천방지축 말괄량이면서도 당차고 할말은 하고야 마는가 하면 사소한 일에도 상처입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여리디 여린 감수성 풍부한 소녀 앤 셜리를 보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딸아이를 생각했다. 조울증에 가까울 정도로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감정변화와 다분히 연극적으로 보이는 과잉 감정들은 딱 우리 둘째 딸의 행동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ㅎㅎㅎ 뭐랄까.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 아줌마가 바라보는 눈에 딸의 모습을 대비하여 앤 셜리를 바라보게 만든달까. 묘하게 감정이입 되는 건 내가 아버지가 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초반 줄거리는 만화장면이 선하게 떠오를 정도로 흡사하다. 

과묵한 매슈 아저씨는 농사일을 도울 남자 고아를 들이려 하지만 아이를 데리러 마중간 기차 역에는 남자 아이 대신 새빨간 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소녀가 앉아 있다. 그냥 돌려 보낼 수 없었던 매슈 아저씨는 그렇게 앤을 마차에 태워 초록 지붕 집으로 데려가고, 이를 본 마릴라 아줌마는 황당해 한다. 앤은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 아이라는 걸 깨닫고 크나큰 실망과 좌절에 속사포 같은 하소연과 눈물을 쏟아낸다. 마릴라는 앤을 다시 돌려보내려 하지만 야물딱지고 맹랑한 앤 셜리의 매력에 어느새 빠져드는데.......



사실 만화를 완결까지 보진 못했기에 초반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했었는데 원작 소설로 그 궁금증을 떨쳐낼 수 있었다.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앤이 아슬아슬 지붕위를 걸어야 했던 이유를, 물이 줄줄 새는 보트를 타고 강 한가데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에피소드를 볼 수 없었으리라. 더불어 마릴라의 브로치를 훔친 도둑으로 몰리는 에피소드는 앤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어렵고 험하게 자라왔지만 자신을 거둬준 마릴라와 매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앤의 마음은 그녀의 행보를 흐뭇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쉴새 없이 떠들어 대는 앤의 이야기를 계속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세월은 책속에서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언제나 말괄량이 소녀였던 앤도 나이를 먹고 더 많은 경험을 겪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서서히 성장해 간다. 그렇다. 성인이 되는 것이다. 초록 지붕 집에서의 16년의 시간들. 당연하게도 매슈와 마릴라도 앤과의 추억 만큼 나이를 먹어간다. 영원한 것은 없다. 만남 뒤엔 필연적인 헤어짐이 오는 것이니까. 



대학 진학을 앞두고 마을을 떠나려 하는 앤과 노인이 되버린 매슈와 마릴라. 그리고 앤의 결단. 내 아이들 역시 언젠간 내 품을 떠날 것이기에 대견하면서도 아쉬운 감정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청소년이 보는 동화같은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고 다시 보는 [빨강 머리 앤]은 그때는 느낄 수 없던 새로운 감정을 불어 넣는다. 그래서 명작은 세월의 영향을 타지 않고 명작이라 불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유년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물론 딸아이에게도 꼭 추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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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블러드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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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블러드 (2020년 초판)

저자 - 임태운

출판사 - 시공사

정가 - 14300원

페이지 - 359p



좀비 아포칼립스페이스 오페라



흥행했던 작품들의 요소요소를 뽑아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낸다면 과연 성공적인 재미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흥행의 법칙은 산술적인 1+1=2가 아니기에 어려운 것인데, 이번에 출간된 국내 SF장편이 여기에 도전장을 내미는듯 하여 눈길을 끈다. 이 작품 이전 [백혈]이라는 단편을 발표하고 긍정적 반응에 이야기를 늘려 이번 장편을 출간했는데 배경이 되는 설정들에서 여러 인기 SF작품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SF를 좋아하는 그대여. 여기엔 당신이 좋아할 것이 무조건 하나는 있다." 라고 말하는 '김보영'작가의 추천사가 이 작품에 대헤 명쾌하게 설명한 듯 하다. 크게는 좀비아포칼립스에 호쾌한 액션이 난무하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접목했다. 그리고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더 많은 작품들과 마주하게 된다.



지구에 정체불명의 광견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광견병에 걸린 인간들은 이성을 잃고 살아있는 고기를 뜯어먹기 위해 같은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바로 좀비화 된 것이다. 좀비를 막아내는데 실패한 인류는 급히 우주선 방주를 짓고 선택된 사람들만이 우주 멀리 위치한 새로운 지구를 찾아 떠난다. 이후 첫번째 방주를 따라 출발하려 했던 두번째 방주는 여러 재난들이 겹쳐 출발하지 못하고 그렇게 몇 십년의 세월이 흐른다. 밖에는 좀비들, 안에는 무정부 주의의 불한당들이 점거한 약육강식의 지구에서 마침내 두번째 방주가 완성되고, 마지막 선택된 인류는 먼저 떠난 방주를 따라 우주로 나서게 된다. 


두번째 방주 엘리에셀에서 깨어난 이도는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하여 깨어난 것이 아니라 방주를 책임지는 AI 마리에 의해 깨어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AI 마리가 육체를 강화시킨 백혈인간인 이도에게 미션을 내리기 위해 깨운 것이니, AI의 미션을 이랬다. 앞서 떠난 첫번째 방주가 우주공간에서 표류중이니 방주로 넘어가 원인을 파악 하라는 것. 이도는 자신의 부하 2명을 깨워 첫번째 방주로 넘어가는데......



자, 이 작품을 읽으며 떠올랐던 작품들을 늘어놔 보련다. 우선 좀비아포칼립스로 인류가 우주로 탈출하는 설정에서 '정명섭'작가의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가 연상됐다. 다만 '정명섭'작가의 작품은 우주로 떠났던 인류가 다시 지구로 귀환하는게 다른점. 이후 유령선 처럼 우주를 방황하는 우주선을 탐사하는 것에서 [라마와의 랑데뷰]가 떠올랐다면 무리수일까. -_-;; 여튼, 우주공간에서 미치광이 좀비때를 피해 도망치는 장면에서 [에일리언]을, 생체 과학으로 육체적 강화를 이룬 백혈인간은 [노인의 전쟁]을, 백혈인간에 맞서 파워 수트를 입고 전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우주의 전사]를, 재난을 피해 방주를 만들어 지구를 떠난다는 설정에서 [원수성역]이나 [세븐 이브스]를 떠올리게 된다. 본인이 미처 떠올리지 못한 작품들도 있을지니 얼마나 많은 작품들의 소스가 이 작품에 녹아들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흥행의 공식은 기존의 설정에서 새로움을 찾아 내는 것.



언급한 작품들을 전면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갔더라면 30부작 시리즈로 써도 모자랐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설정'만을 따서 중심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결국 중심 배경은 좀비를 피해 먼저 출발했던 우주선이 표류중이며, 그 우주선에서는 상상못한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 정도? 여기에 강화인간과 파워슈트를 향신료로 뿌려내 깊은 맛을 더했달까. 스포가 되어 언급하지 못한 설정까지 더한다면 정말 정신없이 흘러가는 스토리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봤음직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광범위하게 믹스한 작품도 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새롭게 다가오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중심을 잃고 표류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던 건 효율적으로 안배를 잘했기 때문인듯 싶다. 물론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도 없진 않다. 후반부 AI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나 굳이 카난을 버리는 것은 감정과잉에 의한 전개같아 아쉬움을 줬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짬뽕탕임은 분명하다. SF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재미를 느낄 요소는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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