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맞지 않는 아르테 미스터리 18
구로사와 이즈미 지음, 현숙형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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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맞지 않는 (2021년 초판)

저자 - 구로사와 이즈미

역자 - 현숙형

출판사 - arte (아르테)

정가 - 15000원

페이지 - 374p



그로테스크한 가족 드라마



좋아하는 장르를 말하라면 SF, 미스터리를 꼽는다. 하지만 SF, 미스터리 이전부터 즐겨 읽던 장르는 공포 호러이다. '스즈키 코지'의 [링]시리즈를 보며 열광했던 게 벌써 수십년이 지났다. 근래 좋아하는 장르를 SF, 미스터리라 말하는 이유는 공포 호러를 읽는 권수가 줄기도 했지만 시장에서 호러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아르테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일본호러 시리즈가 반가운 이유가 그 때문인 것이다.  



얼마전 읽었던 호러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합인 '아시자와 요'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이 현실에 기반을 둔 호러라면 이번에 출간된 [인간에 맞지 않는]은 괴이한 세상을 그리는 SF 호러 작품이다. 괴이한 상상력이 빚어낸 끔찍한 세상의 도래. 그 안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 가족들의 이야기는 설령 미지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나 그들의 고뇌와 갈등은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형성 변이 증후군.

어느날 갑자기 발병한 괴이한 질병에 세상은 생소한 이름이 붙였다. 생소한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질병은 일본열도를 충격으로 몰아 넣는다. 평범했던 인간이 하루 아침에 이형의 생물로 변해버리는 질병. 인간으로서의 형체를 잃고 괴생명체가 되버린 사람들을 정부에서는 사망처리한 뒤 희망하는 자에 한해 안락사 시켜버린다. 이십대 초반의 히키코모리 아들 유이치를 둔 미하루의 집에도 이형성 변이 증후군이 덮친다. 비록 문제아지만 아들을 애지중지 하던 미하루는 아들이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버린 것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데....



얼굴 턱이 반으로 갈라져 양배추를 서걱서걱 씹어먹고, 머리 아래로 마디화 되었으며 체절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다리가 되어 꿈틀대는...굳이 비슷한 것을 비유하자면 거대한 배추나방 애벌레의 형상이 되버린 아들. 내 자식이 하루아침에 혐오스러운 벌레로 변해버린다면 그 충격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구역질나는 벌레를 계속 아들로서 키워나갈 수 있을까?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엄마 미하루의 고군분투는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꼭 벌레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형성 변이니까... 벌레 뿐만 아니라 인면견, 인면어, 인체의 식물화 등등등 작가는 그로테스크한 혐오의 끝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온갖 종류의 변이자들을 등장시키고 아주 잔혹하게 말살시켜 버린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믿었던 가족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20에서 40대 사이의 니트족이나 히키코모리에게서 발병하는 질병이란 설정. 가족 중 불필요한 존재였던 구성원의 발병. 그리고 그 괴물에 대한 다양한 가족들의 반응을 통해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는 현재 가족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토록 괴이한 설정으로 가족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 캡사이신 처럼 독한 설정이 오히려 대비가 되어 희미하게만 보이던 가족간의 정이 오묘하게 빛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을. 끔찍하지만 감동적이다. 흉측한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하듯이 말이다. 괴물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끝까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 미하루의 눈물겨운 노력이 담겨있는 화해와 용서의 가족 드라마였다. 물론 결말이 해피일지 불행일지는 읽어 본 사람만이 알겠지만....ㅎㅎㅎ 단점도 보이지만 초반 설정이 워낙 강렬해서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혐오와 감동의 기묘한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독특한 호러 작품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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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충동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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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충동 (2021년 초판)

저자 - 오승호 (고 가쓰히로)

역자 - 이연승

출판사 - 블루홀6

정가 - 16500원

페이지 - 491p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당신은 죄 만을 미워할 수 있는가?



제일교포로 일본 유수의 미스터리와 문학상을 수상하며 가장 핫한 작가로 거듭나고 있는 '오승호'작가의 신작이 출간됐다. [도덕의 시간][스완]에 이은 세 번째 국내 출간작으로 앞선 두 작품과 같은 선상의 사회파 미스터리이지만 이번 작품의 주역이 심리상담사, 카운슬러라는 점에서 캐릭터간의 대화를 통한 심리묘사와 긴장감의 수위는 앞선 작품들과 차원이 다른 급을 보여주는 듯 했다. 



"저는 사람을 죽여보고 싶어요."

흥분이라고는 없는 담담한 선언이었다.

이쪽을 똑바로 향하고 있는 감정의 색이 없는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될 수 있으면 죽여 마땅한 사람을 죽이고 싶어요."

지하야는 대답을 신중히 골랐다. 그러나 그전에 아키나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선생님께서는 거슬리는 사람 없나요?"

"뭐?"

"제가 그 사람을 죽일 수 있게 허락해 주시지 않겠어요?"

_44p



어느날 중고등부 심리 카운슬러인 지하야를 찾아온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에서 튀어나온 말에 지하야는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다만 소년의 발언이 장난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지하야는 상담을 통해 소년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무진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소년조차도 자신의 이상 충동에 힘겨워 하고 있으며 무수한 고민 끝에 지하야를 찾아왔음을 밝힌다. 지하야는 고민한다. 순수한 살인 충동을 가진 고등학교 1학년생 소년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말이다.



언젠가는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두려움에 떠는 소년. 소년은 살인에 이르는 병에 걸린걸까? 살인에 이르는 병에 걸린 소년을 위한 치료법은 뭘까? 시한폭탄 같은 소년을 계속 동급생들과 함께 둘 수 있는 걸까? 아직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소년을 격리해야만 하는 걸까? 살인 충동이라는 독특한 개성외에 소년은 평범한 학생과 다를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다른 이들보다 섬세하고 똑똑하기까지 하다. 내가 만약 카운슬러 지하야라면 어떻게 해야 바르게 대처하는 것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한편, 세 명의 소녀를 강간하고 잔혹하게 신체를 훼손한 희대의 싸이코패스 범죄자가 15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한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군집한 사회에 갱생의 첫 발을 들인다. 은밀하게, 조용하게 몸을 사릴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범죄자는 보란듯이 일탈행동을 선보이다. 알루미늄 야구배트를 들고 쇳소리를 내며 거리를 활보하는 범죄자.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새롭게 일어날 범죄를 두려워하며 공포에 휩싸인다.



범죄자와 함께 사는 마을사람들이 집단적 패닉에 이어 범죄자를 마을에서 내치기 위해 집단 행동을 벌이는 것은 자명한 일. 범죄자 추방 운동에 선봉자로 나서는 지하야의 남편을 보면서 지하야는 혼란에 빠진다. 범죄자와 자신이 카운슬링 하는 소년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끔찍한 범행으로 공공의 적이 되었지만 어찌됐던 죗값을 모두 치르고 출소한 범죄자를 우리는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대립하는 첨예한 문제를 소재로 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로서 이번 작품 [하얀 충동]의 사례는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우리도 바로 얼마전 만기 출소한 극악한 범죄자의 귀가를 매스컴에서 생중계하고, 혹여 범죄자를 기습하는 상황이 발생할까 우려해 그의 신상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일개 경찰 중대가 일렬종대로 라인을 치고 경호하는 장면을 우리 눈으로 지켜보지 않았던가.



아이러니 하지만 그만큼 복지국가로서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안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건 아니라고 통탄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지하야의 마음이 딱 본인의 마음과 같다. 이성과 감정의 대립. 이성적으로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사회가 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약 내가 사는 집 근처라면 과연 본인은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심리적 갈등. 정확히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기에 고민과 고뇌는 깊어만 간다. 사실 작품에서 제시하는 결과를 보면서 그런 결과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작품을 읽는 독자를 위해서라면 아마도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 



여튼....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카운슬러라서인지 대화의 수준이나 심리학에 기반한 비유들이 많았고 그로인한 긴장감의 조성, 섬세한 심리묘사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대화체의 작품에서 쫀쫀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언제 사람을 찌를지 모르는 소년과 지하야의 대화를 통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팽창한 풍선을 보는 듯한 아슬아슬함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번 작품의 반전은 웬만한 미스터리 팬이라면 충분히 눈치 챌만한 수준이다. 다만 중심이 되는 메인 반전보다 사이드 반전이 본인에겐 더욱 충격적이었으니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오승호'는 이 작품으로 '오야부 하루히코 상', '요시카와 에이지 신인상'등 일본의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사회파 미스터리로 받아낸 문학상이라는 말인데 작품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간결한 문장과 주제의 시의성. 작품 전체의 완결성 등 장르문학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문학성을 말이다. 



때묻지 않은 도화지 같은 순수한 충동. 그렇기에 더욱 위험하고 치명적인 [하얀 충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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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감 선생님은 아이들이 싫다
공민철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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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해지고 울컥해지는 힐링 미스터리 : 다감 선생님은 아이들이 싫다 (2021년 초판)

저자 - 공민철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11p



가슴이 벅차오른다

감성을 자극하는 미스터리

사람을 살리는 미스터리가 바로 이런 것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우수 단편에 수여하는 '황금펜 상'을 유일하게 2년 연속 수상한 '공민철'작가의 연작 단편집이 드디어 출간됐다. 앞서 출간된 단편집 [시체 옆에 피는 꽃]으로 수준 높은 단편들을 선보여 놀라움을 안겼던 작가의 신작은 과연 어떨지, 장르전문 아프로스미디어와의 콜라보로 인한 시너지는 어떨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되었는데 마침내 베일을 벗고 만난 신작은 한층 높아진 완성도와 문장 마다 집약된 인간미가 돋보이는 미스터리였다. 



여덟살 차이 때로는 엄마 같았던 언니 다정은 

다감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었던 다정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다감은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죽기살기로 공부하여 마침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임용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거랑 언니가 그런 선택을 한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언니가 왜 죽어야만 하냐고요! 왜요? 왜냐고요! 

애들이 죽든 말든 나는 전혀 상관없는데! 언니만 살아주면 되는데!" _18p



다감은 마음 먹는다.

차가운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그 속에서 언니가 죽음을 선택한 진짜 이유를 알아내리라고.



1장 시아의 꿈

우연히 엘리베이터 근처를 지나던 다감은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틈 사이로 늘어진 끈을 목에 묶어 자살 하려던 시아를 발견한다.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는 2층으로 올라가고 안쪽에 묶었던 끈이 올라가면서 시아는 공중에 대롱대롱 메달렸다. 다감과 동료 선생님의 발빠른 대처로 가까스로 시아를 구하지만 시아는 자살의 이유에 대해서 입을 다물어 버리는데....


2장 은경이의 결심

시아 자살 미수사건으로 다감은 시아가 있는 6학년의 임시 담임을 맡게된다. 같은 반 학생인 은경은 시간제 선생님 모집에 이웃에 사는 퇴직한 교장선생인 강진교 선생을 추천한다. 은경의 바램대로 시간제 선생님으로 강진교 선생이 발탁된 그날. 강진교 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온 이해할 수 없는 전화를 받은 다감. 그리고 그 다음날 강진교 선생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3장 다감의 마음

여전히 다감이 선생이 된 것을 반대하는 엄마와 싸우고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로 다감과 반 아이들은 식물원으로 현장학습을 간다. 다감의 기분을 느낀 아이들은 다감에게 내기를 제시하는데.....


4장 태근이의 약속

시한부 선고를 받은 동생을 두고도 언제나 밝았던 태근이는 얼마전 결국 동생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다감은 그런 태근의 상태를 유심히 체크한다. 그러던 어느날 태근이 혼자 있던 집에 불이 나고, 경찰은 화재의 원인을 태근의 방화로 추정하는데....


5장 현수의 세상

어느덧 1학기가 지나 2학기가 된다.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던 현수와 태형이 학폭 논란에 휩싸인다. 태형이 현수를 집요하게 괴롭혔다는 것. 반아이들 대부분이 현수가 피해자라는 설문을 작성한다. 그동안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다감은 심하게 좌절하고, 마침내 학폭위원회가 열리는데.....


6장 다정의 이유

우연히 퇴근길에 언니 다정이 자살직전 담임이었던 학생을 만난 다감.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제자는 다감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언니 다정이 자살했던 이유를...



총 6장의 에피소드를 겪어가면서 아이를 싫어했던 다감은 진정한 선생님으로 거듭나게 된다. 키는 훌쩍 컸지만 아직은 어리기만 한 6학년 아이들의 깊은 마음과 놀라운 사연들도 사연이지만 가식을 벗어던지고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열변을 토하는 다감의 교육 방식은 거칠지만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자살, 학폭, 성소수자, 소아성애 등등..... 초등학교에서 절대로 발설조차 하기 힘든 충격적 사건들이 소재이나 작품을 읽어가면서 단순히 독자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앞선 단편집 [시체 옆에 피는 꽃]에서도 느꼈지만 공작가의 작품에서는 숨길 수 없는 인간미가 풍겨난다. 휴머니즘, 가족애 등등으로 치환할 수 있는 그 선한 감성. 이번 작품에서 그 감성이 단단하게 결집돼 완성된 느낌을 받는다. 사람을 살리는 미스터리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각 단편의 주제와 추리와 반전의 묘미를 살리는 미스터리적 재미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고 사로잡은 수작이다. 선생이 제자를 향해 산탄총을 발사하지 않고, 복수를 위해 제자의 목을 조르지 않는 한국적 정서를 가득 담아낸 힐링 미스터리.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의 화이트 버전이랄까. 찝찝하고 불편한 이야미스가 아닌 힐링미스 아니 큐어미스라고 명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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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 - 금을 삼키다
장다혜 지음 / 북레시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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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 : 금을 삼키다 (2021년 초판)

저자 - 장다혜

출판사 - 북레시피

정가 - 15800원

페이지 - 398p



비극적

가련함

고혹적



고대 중국에는 이런 형벌이 있었단다. 죽을 때까지 금을 삼키는 형벌. 목구멍까지 금을 밀어 넣고나면 오장육부에 피가 돌지 못하여 신체의 곳곳이 썩어 들어가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다 결국 숨이 끊어지는 무서운 형벌. 돌덩이도 아니고 그 귀한 금덩이를 삼키는 형벌이니 당연히 일반 백성들에게 내리던 벌은 아니고 왕의 혈통을 가진 왕족에게 내리던 벌이란다. 자. 이 작품의 제목이 바로 그 잔혹한 형벌을 의미하는 [탄금]이다. 억지로 단단한 금덩이를 목구멍에 밀어 넣는 죄인의 심정이, 금덩이를 삼키고 몸부림치며 서서히 죽어가는 죄인의 고통이, 탄금으로도 씻어낼 수 없는 죄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예술품 거래로 부를 축적한 상도 심열국이 이끄는 상단은 나날이 번창해 간다. 첩실의 딸로 태어난 재이는 본처 민씨부인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러던 어느날 민씨 부인의 어린 독자 홍랑이 실종되고 집안은 발칵 뒤집힌다. 재이 역시 사방팔방 동생을 찾아 나서지만 감감무소식. 심열국은 홍랑 대신 양반 가분의 양자인 무진을 들여 상단을 맡긴다. 그렇게 십수년이 지나고. 유명한 추노꾼이 성인이 된 청년을 심열국 앞에 대령하고 그 자가 잃어버렸던 아들 홍랑이라 말하는데.....



독특한 이력의 작가에 눈길이 갔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하고 호텔리어로 일했던, 한국에 있던 시간보다 외국에서 체류한 시간이 많았다는 작가의 말이 놀랍게 여겨진건 이 작품의 배경이 조선시대라서였고 작품의 문체가 고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이야 많이 봤다만 이렇게 방언과 고어를 사용하여 문장을 써내는 작품은 보지 못한 듯 하다. 조선시대에서 갓 튀어 나온듯한 문장들로 인해 상당히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아름다운 어휘로 이루어진 문장에 취하고 인물들간 복잡하게 얽힌 사연과 갈등 속에서 피어나는 서스펜스, 반전의 묘미는 정녕 이 작품이 작가의 장편소설 데뷔작인지 의심이 가게 만들 지경이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드라마 등에서 자주 접하던 클리셰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자식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타나고, 갑자기 나타난 자식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는 가족의 이야기. 오지게 멸시 받았지만 미모의 규수로 성장한 재이. 비밀을 가득 품고 돌아온 홍랑. 홍랑이 아니었다면 상단을 물려받았을 입양아 무진까지..... 세 남녀의 소용돌이 치는 운명의 굴레는 과연 어디로 향할지..... ㅎㅎㅎ 물론 홍랑과 무진이 재이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격돌 로맨스가 펼쳐지리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랴.



단순히 꽁냥꽁냥 로맨스로 끝났다면 이 작품은 미스터리 서스펜스가 아니었으리라. 앞서도 말했지만 [탄금]이다. 지독하리만치 잔혹하고 몸서리처지게 추악한.... 욕망에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추악한 인간 말종들의 민낯은 후반부에 포진돼 있으니 차라리 진실은 모른채 청춘남녀의 로맨스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ㅠ_ㅠ 폐쇄적이고 엄격한 신분제도에 좌우되던 조선시대가 배경이기에 더욱 비극으로 다가온다. 한글의 고혹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예술적 문장이 돋보이는 조선 서스펜스였다. 전체적으로 좋았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래도 작품의 주인공인 재이의 활약상이 너무 미미했다는 것. 운명에 맞서는 조선시대 처녀의 기상은 알겠으나 극을 반전시키는 키메이커의 역할로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하긴 뭐 그 암흑의 시대에 재이가 뭘 하길 바라는 게 무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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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교
이동륜 지음 / 씨큐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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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교 : 이동륜의 SF스냅스릴러 소설집 (2012년 초판)

저자 - 이동륜

출판사 - 씨큐브

정가 - 15000원

페이지 - 273p



짧지만 강렬하다



현재 유튜브에서 괴담을 제보받아 컨텐츠로 제작하는 '브레이든의 들리는 책방'을 운영중인 저자 '이동륜'의 단편소설집이 출간됐다. 본인은 유튜브를 보지 않는 탓에 '브레이든'이던 '이동륜'이던 처음 접하는데 작품을 소개하는 'SF스냅스릴러 소설집'이라는 문구와 제목 [인간교]에 호기심이 일어 읽게 되었다. 



표제작 [인간교]를 비롯해 1장짜리 초단편까지 다양한 분량과 소재들의 단편 24편이 실려있다. 각 단편의 성격에 따라 2개의 장으로 나누었고 1부는 '미래-휴머니즘 혹은 SF'라는 부제로, 2부는 '현실-호러 혹은 스릴러'를 부제로 나뉜다. 현재 괴담 컨텐츠를 운영중이라서일까. 아니면 원체 이쪽 방면을 좋아해서일까. 미래와 현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각 작품들은 일관된 분위기를 풍기는데 바로 세상과 인간을 향한 냉소적 시선이다. 찝찝하고 불쾌하게 마무리 되는 이야기들을 접하고 있노라니 ㅎㅎㅎ 딱 내 스탈의 작품들이 아닌가. ㅋ



경계를 허무는 상상력을 확장하여 써낸 이야기들은 [환상특급]을 보는 듯 흥미롭게 다가온다. 반면 몇몇 단편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의 이야기들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이게 저자의 순수 창작이지만 우연찮게 설정이 겹친 것인지, 아니면 기존 작품에 아이디어를 추가하여 써낸 오마쥬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작품을 넘어서는 신박함은 주지 못하여 아쉬운 느낌이다. 



인상적이었던 몇몇 단편들을 이야기 해보자면, 표제작 [인간교]는 말 그대로 이다. 먼 미래. 인간은 진즉에 멸종되고 지구상에는 AI가 탑재된 로봇들이 삶을 이어간다. 인간이 만들어낸 AI인 탓일까. 그들은 인간이 멸종된 뒤에도 아기 로봇을 데려워 키우고, 로봇끼리 결혼을 하는 듯 인간의 생활약식을 따라하려 한다. 더불어 능력차에 따른 로봇 계급사회가 만연하게 되고, 이에 반기를 든 로봇들은 사이비 종교를 믿으며 혁명을 준비했으니..... 사이비교의 이름은 인간교였으며 교주는 멸종한줄 알았던 인간이었다.



인간과 로봇의 주체가 바뀌었으나 그들이 하는 행동은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의 가르침을 맹신하는 로봇들의 모습이나 인간과 로봇의 철학적 대화를 보면서 '박성환' 작가의 [레디메이드 보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AI. 인간의 말에 깨달음을 얻는 AI. 결말이 아쉽지만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두번째로 [황야의 5인]은 서부시대에 떨어진 5명의 사람중 정교하게 제작된 로봇을 찾아 죽이면 나머지 4명은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벌 물이다. 뭐랄까 서바이벌 역튜링 테스트랄까. 비슷한 설정으로 '하오징팡'의 [인간의 피안]에 실렸던 단편 [전차 안 인간]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기계가 인간을 찾아내 죽이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 진행되지만 결말이 예상가능하여 아쉬웠다.



세번째는 [유작공장]이다. 신인상을 타고 전도유망했던 작가는 슬럼프에 빠지고 자긴과 같은 상황에서 인기작을 발표하고 다시 상승세를 탄 선배작가가 한 시설을 소개한다. 그렇게 찾아간 시설에서 작가는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이 단편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소설]에 실린 첫번째 단편 [글 쓰는 기계]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런 류의 설정은 누구나 떠올릴 만한 설정이라 괜찮았는데, 바로 다음 만난 작품 [목격자]에서 고개를 갸웃 하게 된다. -_-



[목격자]는 화자가 2층에서 한 여인이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화자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담을 타고 넘어 집안에 들어가지만 살인자에게 발각되 머리에 충격을 받고 의식을 잃는다. 이후 시점이 바뀌어 경찰이 집에 찾아오고, 살인마였던 남자는 경찰을 집으로 들이는데...... 이건 그냥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다. 기억이 가물하여 [검은 고양이]가 3인칭인지, 1인칭인지는 모르겠다만.... 작가로서 '포'의 오마쥬라 생각하지만 새로움이 없는 점은 아쉽다.



이렇게 쓰니 별로인것 같은데 의외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몇몇 작품은 아쉬웠지만 몇몇 작품은 놀랄만한 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익숙한 설정의 작품은 기존 설정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를 주었고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도 매력적이었으며 대부분의 작품들이 '불행'하게 끝나버리기 때문에 좋았다. ㅎㅎㅎ 해피엔딩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지. ㅋㅋㅋㅋ 본인 역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본인이 추구하고 쓰고싶어 하는 스타일의 글이었다. 하여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분량에 구애되지 않고 일단 써야 겠다고 마음먹게 만드는 작품집이었다. 익숙한 설정에 새로움이 부족하다는 말은 본인이 원고를 보여주었던 지인에게 들었던 말인데, 그 말을 내가 하는게 우습기도 하지만 역시 난 이런 스타일이 좋다. 



짧지만 강렬한 악몽 같은 이야기. 공포, 미스터리, SF, 호러, 단편, 엽편, 초단편 등등 전 장르를 망라한다. 다크다크한 취향의 독자라면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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