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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디오게네스변주곡 (2020년 초판)
저자 - 찬호께이
역자 - 강초아
출판사 - 한스미디어
정가 - 17500원
페이지 - 459p
찬호께이 그의 10년의 궤적
지금까지 본인이 읽어본 '찬호께이'의 작품들을 살펴보니 장편 2편에 단편집 1편을 읽었더라. 최신 IT기술을 접목한 사회파 추리소설 [망내인]과 오컬트 호러의 탈을 쓴 추리소설 [염소가 웃는 순간] 그리고 기발한 재치가 돋보이는 연작 단편집 [풍선인간]까지...불과 3편의 작품안에서도 다양한 장르를 접목하는 시도와 나름의 완성도를 끌어내는 것을 보면 확실히 홍콩, 중국, 대만등 중국어권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발하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그의 10년간의 작가생활을 망라하는 열 일곱편의 단편을 담아낸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일단 중화권에서 가장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역사를 담아낸 작품집인만큼 무척 기대를 많이 했던 단편집이었고 확실히 작가 '찬호께이'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더없이 만족할만한 '찬호께이' 종합선물세트인 작품일 것이요, '찬호께이'를 처음 접하는 예비 팬들에겐 그의 두툼한 장편을 만나기에 앞서 가볍게 워밍업하게 안성맞춤인 단편집이라 평하고 싶다.
무작위로 다섯 가지 키워드를 선택한 후 그 키워드를 순서대로 사용하여 하나의 엽편을 만들어 내는 3편의 습작을 포함하여, 본격 추리, SF, 심령소설, 풍자소설, 공포소설 물론 이 장르들을 믹스한 혼합장르까지 작가의 머리속을 잠시 들어갔다 나온것 같은 기분이다. 뭣보다 이런 기획이 아니라면 절대로 만나지 못할 3페이지 짜리 엽편이나 습작들까지 만날 수 있어 개인적으론 너무나 좋았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느낄진 모르겠다.)
1. 파랑을 엿보는 파랑
여성의 집에 침입한 뒤 퇴근한 여성에게 수영복을 입히고 바닷가로 데리고 간 남자. 남자는 여성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는 데...
- 타인이 훤히 들여다보는 개인 SNS에 자신의 일상과 중요한 정보들을 올리는 이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08년 타이완 추리작가협회 공모전에 낸 작품으로 작가의 초기 느낌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마지막 반전을 보면서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2.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
노숙자들이 산타클로스에 대한 실없는 농담을 하던중 한 노숙자가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의 범인에 대해 문제를 낸다. 썰매를 끌고 나갔던 산타클로스가 돌아왔는데, 썰매에는 밧줄로 묶인 머리없는 시체가 타고 있었다. 썰매에는 수염으 흩뿌려져 있었고, 피가 범벅돼 있었다.
- 범인은 누규? -_-
3. 정수리
어느날 거울을 보던 남자는 깜짝 놀란다. 거울 속 자신의 머리 정수리에 끈이 매달려 있고 그 끈의 끝에는 흉측한 괴물의 형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급히 집밖으로 뛰쳐나왔고 경악한다. 거리의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 정수리에 이상한 괴물들을 메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 2018년에 쓴 공포 작품인데, 작품을 읽자마자 만화 '이토준지'의 [목메는 기구]와 '야마모토 히데오'의 [호문쿨루스]가 떠올랐다.(물론 이 만화들은 내 인생만화라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만화들이다.) 뭐 소스를 땄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에게 닥친 혼란과 공포 그리고 하무한 듯 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반전이 좋았고 앞서 언급한 만화 만큼이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4. 시간이 곧 금
자신의 인생 곧 시간을 팔거나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시간을 팔 것인가? 살 것인가? 시간 거래소에서 인생의 시간을 거래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 이 작품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말년'작가의 [잠은행]이 떠올랐다. 환상소설풍의 작품으로 하고자 하는 얘기나 결말이 예상되면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던 작품이다.
5. 습작 1
- 키워드 : 슬픔 / 옷 / 농장의 동물 / 예배당 / 적 , 이 키워드로 써놓은 2페이지짜리 엽편을 보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ㅠ_ㅠ 허허.
6.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
추리작가로 성공하려면 정말로 사람을 죽여봐야 해! 편집자의 말에 예비작가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편집자가 이야기 하는 살인과 추리소설의 상관관계를 듣다보니 정말로 완벽한 완전범죄를 저지른다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감 있는 추리 소설을 쓸 수 있을것 같다고 느꼈다. 결국 예비작가는 누구도 풀 수 없는 밀실 살인을 선보이는데....
- 사람을 잘 죽여야 성공한다. 더 많이, 더 복잡하게, 더 잔혹하게, 더 충격적으로....암살요원의 얘기가 아니다.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추리소설 작가인 '찬호께이'가 설파하는 살인의 필요성이 묘하게 외닿고 이어서 선보이는 밀실살인이 본격의 묘미를 살려낸다! 웬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소설]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7. 필요한 침묵
- 그야말로 엽편이다. 어찌보면 장편을 쓰기 위해 쓴 도입부 인 것 같기도 하다.
8. 올해 제야는 참 춥다
- 역시 장편을 쓰기 위해 쓴 도입부의 느낌이다. 미완성의 느낌.
9. 가라 행성 제9호 사건
- '찬호께이'의 SF 단편이다. 아쉽지만 작가의 SF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_-;;;
10. 내 사랑, 엘리
2층 침대에는 싸늘하게 식은 아내의 시신이, 1층에는 아내의 여동생 내외가 식사를 하러 왔다. 남편은 언니의 죽음을 알아채지 못하게 동생 부부의 접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 치정에 의한 가족간 살인. 뭔가 서양의, 영미권 추리소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11. 습작 2
- 키워드 : 병에 걸리다 / 배 / 옷 / 연인을 만나다 / 함정
12. 커피와 담배
거리 벤치에서 깨어난 남자는 잠들기 전의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가 무겁고 멍한 남자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어간다. 그런데 커피숍 안에 있는 사람들은 커피 대신 모두가 담배를 피고 있는데......
- 느닷없는 상황 설정. 그리고 그 판타지스러운 상황을 현실적으로 이해시키는 설득력이 돋보인다. 짧지만 강렬한 환상소설 혹은 SF 작품이었다.
13. 자매
여친의 언니를 죽인 남자. 남자는 여친과 짜고쳐 아무도 모르게 언니의 시신을 완벽하게 없애야 한다.
- 시신을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묘사되지만 허무한 느낌의 결말이다.
14. 악마당 괴인 살해 사건
지구를 정복하려는 괴인들의 본부에 유전자 실험으로 만든 감자 괴인이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범인은 괴인들 중에 있다!
- 가벼운 느낌의 판타지 추리 작품이데, 역시 본인 취향에는 그닥 맞지 않았다.
15. 영혼을 보는 눈
거리의 노인에게 담배를 선물한 남자. 노인은 남자에게 답례라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젊었을적 영혼을 보는 눈으로 여러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을 해결했다고 말하는 노인에게 남자는 묻는다. 지금은 왜 노숙자 처럼 거리를 배회하냐고......
- 환상특급 같은 단편인데, 이쪽이 본인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다.
16. 습작 3
- 키워드 : 악마 / 부모 / 곧 사망한다 / 행운 / 반지
17. 숨어 있는 X
대학교 추리학과를 교양 과목으로 청강하던 남자는 학과 교수의 퀴즈에 흥미를 갖게 된다. 자신이 내는 추리 퀴즈를 맞추는 사람에게 A하점을 주겠다는 것. 문제는 수업을 들으러 온 일곱 명의 학생 가운데 숨어있는 조교가 누구인지 맞추는 것이다. 이름하야 숨어있는 X를 찾아라! 남자와 학생들은 X를 찾기위해 난상토론을 펼치는데....
- 떡밥과 거짓이 난무하는 카오스에서 진실을 맞춰야 하는 난상토론 추리 배틀! '이시모치 아사미'의 [절벽 위에서 춤추다]와 유사한 지적 유희를 선사한다.
몇몇 작품은 실로 무릎을 탁 치고 Hands UP을 할정도로 예상치 못한 기똥찬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고 몇몇 작품은 아직 미완성의 덜 여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렇든 저렇든 한편 한편 시간가는줄 모르게 충분히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넘치는 아이디어와 각기 다른 색깔에 놀라게 만드는 단편집이었다.
"나는 영감이 부족해서 작품을 쓰는 데 애를 먹은 적은 없다. 오히려 손맛이 없어서 고생한 적이 많다. 간단히 말하자면 꽤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어떻게 써도재미있거나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_444p
작가의 다양한 소스와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작품세계는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