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사라진 세계 (2020년 초판)

저자 - 톰 스웨터리치

역자 - 장호연

출판사 - 허블

정가 - 16000원

페이지 - 567p



하늘에 검은 태양이 뜨는 날. 

모든 것이 끝난다.



"그녀는 옆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 동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벌써 다른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손으로 눈 위를 가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별빛이 너무도 밝았다. 마치 밤하늘에 태양이 뜬 것 같이 지구의 차가운 광채를 되살리는 강렬한 빛이었고, 그 주변의 어둠은 농도를 높인 것처럼 새카맸다. 그리고 달을 포함해 하늘에 떠있는 모든 별의 빛깔은 탈색을 한 것처럼 희미해졌다. 그녀로선 여태까지 이렇게 밝은 빛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쳐다보는 동안에도 점점 더 밝아졌다. 


그녀가 아는 모든 것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_503p



작년 한해 '김초엽'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한국 SF계를 평정했던 출판사 허블에서 20년을 맞이하여 초대작 SF가 출간되었다. '톰 스웨터리치'? 작가 이름은 낯설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난 뒤 본인에게 대박SF작가로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무지막지한 볼륨안에서 한 눈 팔새도 없이 수많은 복선과 암시가 교차한다. 시간 여행장르의 특성일까? 단지 장르적 특성이라고 치부하기엔 호러에 가까운 암울한 분위기와 복잡한 스토리가 주는 깊이와 몰입감, 그리고 결말의 카타르시스가 무지막지하다. 그렇다. 이 작품은 타임워프물이다. SF를 리뷰해오며 누누이 이야기 하지만 일단 타임워프 라는 장르 하나만으로도 기본 재미는 먹고 들어간다. 그런데 여기에 잔혹한 살인을 깔고 언더커버 임무를 수행하는 매력적인 여수사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오호~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계 종말의 거대한 음모와 우주의 미지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공포감을 자극하는 코즈믹 호러를 더하고, 양자역학, 페러럴 월드, 화이트 홀, 웜홀 등등 과학이론들을 양념으로 뿌려주니, 이건...뭐.....-_-;;; 포스트아포칼립스 타임워프 언더커버 스릴러 코즈믹호러 하드 SF인가?!!!! SF장르의 재미요소를 집대성한 끝내주는 하드SF였달까. 



 


하늘에 검은 태양이 뜨는 날. 

인류는 종말을 맞는다.


 


지구위의 모든 인간은 하늘에 뜬 역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근육과 혈관, 혈액이 분리되어 끔찍한 고통속에 죽을 것이다. 


이것은 종말에 대한 신화가 아니다. 

인류의 종말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터미너스. 인류는 우주에서 강림한 종말의 존재를 

터미너스라 부른다. 


시간 여행 수사관 섀넌 모스는 지구에 강림할 터미너의 시기를 늦추고

인류가 생존할 방법을 찾기 위해 미래로 타임워프 한다. 


무수한 가능성의 시간선에 도착한 모스가 본 미래의 지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평행세계에서 터미너스의 강림을 막을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인류의 미래가 섀넌 모스에게 달려있다.



현재와 미래, 미래와 현재. 미치도록 꼬이고 얽혀가는 시간선 속에서 현실과 환상, 광기가 폭발하고 독자들의 아드레날린도 덩달아 폭발한다. 더군다나 초반부터 배경 설명은 최소화하여 짙은 안개속을 헤쳐나가듯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드러나는 배경과 진실들이 등대처럼 독자들을 밝히는 재미를 선사한다. 스포가 안되는 선에서 몇가지 이야기 하자면, 일단 타임워프에 대한 설정이 독특하다. 타임머신 같은 머신을 통한 시간 여행이 아니라 웜홀 같은 차원의 통로를 통해 다중 우주의 세계로 떠난다는 설정이다. 하여 시간 여행 당사자(모스)는 워프한 공간에서 자신과 똑같은 본인을 만날 패러독스를 피하게 된다. 또한 모스는 미래의 시간선으로만 워프가 가능하며, 다중 우주의 공간에서 원래의 시간선으로 돌아오는 즉시 모스가 있었던 시간선의 세계는 소멸된다. 결국 모스의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현재를 변화시키기 위한 힌트로서만 작용한다는 말이다. 과거로 워프할 수 없으니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수정하는 것도 불가하다. 물론 이 설정이 신박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비슷한 타임워프 수사물로 '폴 앤더슨'작가의 [타임 패트롤]이 떠오르는데, [타임 패트롤]은 오직 과거로만 타임워프 할 수 있다는 설정과는 정반대되는 설정이다. 



사실 볼륨도 무지막지하거니와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떠들 수 있는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나 이야기 하면 할수록 스포성이 짙어지니 스토리 얘기는 그만두고,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를 비롯한 코즈믹 호러물을 선호하는 편인데, 근원도 이유도 모를 인류를 멸망사킬 터미너스라는 호러요소가 농도 짙은 잔혹도와 공포에 이르는 광기를 끌어올려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일단 멸망을 상정하고 시작되는 이야기니 인간의 절박함이 기본 탑재되고, 세계는 더없이 암울하다. 머....현재와 미래에서 흩뿌려 놓은 떡밥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아지는 결말에서는 추리 뺨치는 반전요소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즐기면 된다. 하드이기도 하고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는 작품은 아니다. 다만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읽는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 특유의 묵시록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근래 읽었던 영미권 SF중에서는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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