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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의 밤 ㅣ 안 된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청미래 / 2022년 4월
평점 :
절벽의 밤 (2022년 초판)
저자 - 미치오 슈스케
역자 - 김은모
출판사 - 청미래
정가 - 13000원
페이지 - 264p
글과 이미지로 반전을 꿰하다
한꺼번에 3편의 작품이 출간되며 '미치오 슈스케' 풍년을 이끌고 있는 한 작품 [절벽의 밤]이다. 절벽 위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인상적인 남자의 표지답게 작품은 매년 자살자로 사망사고를 내고 있는 집게모양의 바다와 맞닿은 유미나게 절벽과 얽혀있는 미스터리한 4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립된 3가지 이야기와 마지막 4번째 단편에서 앞서 뿌려둔 3편의 복선이 절묘하게 회수되는 구성으로 이루어진 연작 단편집인데 "시각적 요소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라고 밝히는 작가의 말답게 이번 작품에서는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방법의 트릭을 차용한다.
1. 유미나게 절벽을 보아서는 안 된다
유미나게 절벽 근처에서 접촉사고가 난다. 가까스로 의식을 잃지 않은 구니오는 다가오는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남자는 다짜고짜 구니오의 얼굴을 핸들에 처박는다. 귓가에 들리는 낄낄대는 목소리들. 그렇게 고통속에 정신을 잃는데....
2. 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 이민온 초등소년 커는 색연필을 훔치고자 문방구에 들어간다. 언제나 반겨주던 주인 할머니는 방안에서 다리밖에 보이지 않고 처음 보는 남성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커는.....
3.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어서는 안 된다
사이비 종교 포교활동을 하던 여성이 집안에서 멀티탭 전선에 목이 감긴채 발견된다. 사망자 발견 당시 집안은 완벽한 밀실상태. 다케나시와 미즈모토 형사는 처음 시신을 발견한 주택 관리자와 사이비 종교 지부장을 찾아가는데....
4. 거리의 평화를 믿어서는 안 된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고 엇갈리는 고백속에 그들은 진정한 안식을 찾을 수 있을까?
앞서 말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반전의 묘미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 시각적 도구로 트릭의 힌트를 주고 있다. 첫번째 단편에서는 마을의 지도를 두번째 단편에서는 TV 뉴스의 한장면을 캡쳐한 사진으로, 세번째 단편에서는 낙서를 마지막 단편에서조차 사진 한장으로 결말의 진한 여운을 남긴다. 텍스트로 반전을 선사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이런 도전은 독자에게 전에는 느끼지 못한 신선함과 유희를 선사한다. 작품의 말미에 제공하는 힌트가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결정적 트릭의 비밀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독자가 작품을 더욱 재미있게 즐기길바라는 작가의 작은 배려라는 느낌이 들었달까. 4장의 마지막 사진 한 장은 글로서는 전하기 힘든 다른 느낌의 진한 여운을 전달한다.
저주에 씌인 것 같은 유미나게 언덕의 괴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원망과 한에서 비롯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 지니는 인간의 양면성을 그려낸달까. 한없이 다정한 인간이 살인마로 변하는 과정을, 정의로운 인간이 제 손을 더럽히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평화로운 거리의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깨닫게 된다.
주제를 떠나 어쨌던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사진 속 힌트로 복잡하게 얽힌 4가지 이야기를 꿰어 맞출 수 있을지. 어서 도전해보라고 손짓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