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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의 심장
김하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8월
평점 :
줄리의 심장 (2017년 초판)
저자 - 김하서
출판사 - 자음과모음
정가 - 13000원
페이지 - 274p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면 일상속 작은 일들도 공포로 다가온다.
현실과 환상이 혼재하는 강렬한 단편집 [개들이 식사할 시간]으로 강한 인상을 준 자음과모음에서 또 한편
의 환상 단편집이 출간 되었다. 이 작품 역시 환상과 현실의 경계 그 어딘가를 그리는 단편집으로 7가지의
관계에 대한 독특하고 여운이 남는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은 정제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느낌이 강했다면, 이 [줄리의 심장]은 직접적인 잔혹한 묘사는 배제된체 현실과
환상과 망상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모호한 경계를 통해 은근한 공포를 주며 결말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단편 전반을 어우르는 사람과 사람간의 단절과 고요하고 고독한 느낌 때문인지
가슴 서늘한 황량한 느낌을 주는 단편집이었다.
1. 앨리스의 도시
정장차림의 토끼가면을 쓴 사내가 자신을 사시미칼로 찌르는 꺼림칙한 꿈을 꾼 남자는 길거리에서 자신에게
간밤의 꿈이야기를 하며 잡아 끄는 흙발의 소녀 앨리스에게 관심이 간다. 앨리스와 얘기를 하는 도중 앨리스
는 남자에게 10초뒤 어떤 일이 벌어질것이라 말하고, 10초뒤에.......
- 끝없는 악몽을 꾸는 듯한 단편이다. 앨리스와 토끼가 만나 초현실적인 환상의 세계로 간다는 동화에 악의에
의한 복수를 덧입히면 이런 네버엔딩 나이트 메어 스토리가 탄생되는구나....
2. 버드
태어난지 얼마 안된 신생아에게 치명적인 RS바이러스가 감염되 고열에 시달리다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
하게 된다. 아기의 엄마와 아빠는 어린 몸으로 바이러스와 싸우는 참혹한 아기의 모습에 생의 의지를 잃고
하루하루 악화되 가는 아기를 바라 보기만 한다. 아기의 생사를 가를 마지막 고비가 지나고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닫혀있던 집에서 새들의 흔적을 발견하는데......
- 딸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한동안 인큐베이터 신세를 진적이 있다. 젓가락 처럼 가녀린 팔과 다리에 이름모를
주사 바늘과 전선을 꽂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다 못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고 모든것이 내 탓인것 같아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었다.(물론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낸다..)
이 단편을 보니 그때의 지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갑고 답답한 백색 공간 속에서 아이의 건강을 빌어 주는것
밖에 할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이 와닿는 작품이다. 유령이 나오지만 공포스럽다기 보단 슬픈 이야기이다..저편
에선 새처럼 훨훨 날아오르길....
3. 유령버니
아내와 이혼하고 인적이 드문 아파트로 이사한 남자는 입주자가 거의 없어 자신이 이사한 곳을 빗대 유령도시
라는 신문 기사를 읽고 조용하고 차분한 삶을 기대한다. 그러나 들뜬 마음도 잠시....잡음조차 없는 무소음의
고요한 공간에 방치된 남자는 서서히 공포감이 들기 시작하고 아파트에 자신외의 다른 사람을 찾기 위해 초인
종을 누르며 사람을 찾는데.....
- 빈집엔 유령손님이 찾아온다...자고로 집을 계약할땐 이것저것 따져보며 여러 사항을 체크해야지...쯧쯧..
유령도시 처럼 조용하다고 덜컥 계약을 하나...-_-;;; 그러니 아내가 도망가지...부실공사와 유령의 상관관계
를 보여주는 단편. 멀쩡한 사람도 유령처럼 보이는 유령도시에서 누가 유령이고 누가 인간인지 모를 모호한
상황들이 공포감을 더해준다.
4. 줄리의 심장
다섯살짜리 첫째와 십일개월 아이를 키우는 평범해 보이는 집. 잘자던 첫째가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나 바지에
오줌을 적시며 외친다. "늑대가 줄리를...." 이내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딸..그리고 아빠는 하얀색 털뭉치의
고깃덩이를 발견한다. 7년동안 그의 집에서 키우던 푸들 줄리는 심장이 잔인하게 도려진체 죽어 있는것....
이후 육아 스트레스로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아내는 이상증세를 보이는데.....
- 두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보면서 미쳐버리는줄 알았다. -_-;;;; 아무래도 산후 우울증으로 보이는 아내의
이상증세와 점차 육아와 살림에서 손을 놔버리고 집안과 아이는 방치된체 엉망진창이 되고....아빠는 어떻게던
무너지지 않고 제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지만....가장 미쳐있던건 아빠였을지도....아...과하게 감정이입 되고
답답하고 숨막히는 상황 때문에 힘든 작품이었다...잘 버텨준 아내가 고마울 지경...
5. 아메리칸 빌리지
외도하는 아내를 심판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한 오키나와 여행을 가는 조. 조는 아내 안을 데리고 사전에
계획한 소바집으로 위장한 불법무기거래소에서 아내의 머리를 관통시킬 매그넘 44구경을 인도 받는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미군들이 머무는 아메리칸 빌리지 대관람차 안에서 아내의 숨통을 끊을 수 있다고 위안한다.
그리고 결행의 당일 아침....매그넘이 사라졌다!.....
- 환상이 배제된 현실적 단편. 9년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진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살인 여행을 계획
하고 매그넘을 구매하지만....그런 일탈 여행이 또 다른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난 이제 8년
차구나...나도 슬슬 계획을 짜볼까?....
6. 파인애플 도둑
아내가 생각을 정리한다며 친정 경주로 내려가 버렸다. 혼자 텅빈집에서 지내는 사이 남자가 사는 도시에선
신출귀몰한 파인애플 도둑이 나타나 도시의 모든 파인애플을 휩쓸어 간다. 도둑의 정체는 CCTV에도 잡히지
않고 목격한 사람도 없지만 값비싼 보석이 아닌 그저 파인애플 이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미적지근 하다.
몇일이 지나고 거리 곳곳에선 썩어가는 파인애플 껍데기 무덤이 발견된다. 썩은 파인애플 무덤 근처를
지나던 소녀가 말벌에 쏘여 죽는 사건이 발생되고, 남자는 자주 가는 떡볶이집 사장과 의기투합해 파인애플
도둑을 잡으려 하는데......
- 왜 파인애플 인가?...-_-;;; 도둑의 정체는?....어떤 메타포가 숨겨져 있는가?..모르겠다..-_-.머...세상의
희한한 일에 대해선 관심과 열정을 쏟아내지만 뭣때문에 아내가 친정으로 갔는지, 왜 한달이나 연락이 없는지에
대해선 신경도 안쓰는 무신경함....그렇게 살지 맙시다...
7. 디스코의 나날
경력단절을 우려한 아내의 의지로 3개월된 아이들 낙태한날 태오는 답답한 마음에 아내를 홀로 두고 병원
앞 주차된 아우디에 탄다. 맞은편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의 문자를 무시한 뒤 투신자살한 친구 때문에 거리를
배회하던 율은 아우디속 남자를 보고 아무 거리낌 없이 남자의 옆자리에 타 집에 데려달라고 한다. 그렇게
누군가를 잃은 두 남녀는 어둠속을 달리고....무언가를 치는데......
- 상처 받은 영혼은 서로를 알아보는 건가. 아이를 잃은 태오의 앞에 나타난 의문의 소녀와 연이어 벌어지는
불행한 사건...태오에게 벌어진 최악의 하루인듯....
작가의 의도인지 공교롭게 7가지 단편 모두가 가족간의 소통의 부재로 인한 갈등이나 불화에서 비롯된 이야기
들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모든 단편의 주인공이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남편인 남성으로 특정된다.(마지막
7번째 단편 [디스코의 나날]은 남자와 소녀가 주인공이지만) 안타깝게도 여기 등장하는 남자들은 지독히도
무신경한 남자들로 아픈 아이 때문에 이상증세를 보이는 아내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버드), 아이를 출산
하고 지독한 산후 우울증도 눈치채지 못해 둘째까지 출산하게 만드는 무신경함(줄리의 심장)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아내들은 남자와 별거를 하거나(파인애플 도둑) 심지어 남편을 떠나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앨리스의 도시, 유령버니, 아메리칸 빌리지) 무신경하면서도 좀스럽기까지한 남자는 아내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해계획을 세우기도 하고(아메리칸 빌리지) 살인을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_-;;;;; 몇몇 단편은 해피엔딩
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최악을 향해 치달아 가니 공허한 마음만 남더라...그들도 이시대 평범한
남자들이기에 그들의 무신경을 탓하기엔 세상이란 정글이 너무 치열하고 각박하다...이미 생생한 공포를 경험
했으니 용서해 주기로...-_- (내가 왜 쉴드를 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아픈 아이나 낙태 같이 육아와 관련된 단편은 두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더욱 감정 이입되고 작품에서
묘사 되는 지독한 상황들이 과장이 아니란걸 알기에...그런 건드리기만 해도 깨져버릴것 같은 살얼음 같이
긴장되고 날선 감정의 대치 상태를 경험 했기에 충분히 공감가는 이야기였고 마음이 쓰렸다. ㅠ_ㅠ
평범한 일상속에서 갑자기 미쳐버린 세계로 360도 바뀌어 버리는...평범한 일상속 공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었다.